|
123화 육지호혈(六指呼血)-1
악소채의 수련은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고 파파는 반년을 예상했지만 악소채의 재능과 노
력은 그 이상의 효과를 드러내 다섯 달만에 수련을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고 파파는 악
소채를 내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반년이 지나 일곱 달이 넘었음에도 고 파파는 악소채를 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고 파파에게 있어 악소채는 단순한 후계자가 아니라 딸이자 손녀였다. 반년이 넘는 시간을
같이 지내는 동안 생긴 따뜻한 정이 그렇게 만들었다.
고 파파는 남은 여생을 악소채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품에 안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고 파파 자신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고 파파는 오늘도 검을 수련하는 악
소채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헤어져야할 시기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것
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고 파파는 악소채가 검을 거둘 때까지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할머니."
고 파파가 멍하니 자신만 바라보고 있자 악소채는 휘두르던 검을 거두었다.
"내가 방해를 했구나."
"아닙니다."
"흠... 그래. 어차피 결심한 이상 말해야겠구나."
악소채는 아무런 말없이 물끄러미 고 파파를 바라보았다.
"이만 네가 갈 길을 가도록 하거라."
"할머니..."
악소채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고 파파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고 파파와 지
낸 일곱 달은 지금까지 살아온 동안 가장 평화로웠고 행복했다. 스승이었던 비연자 목추영
이래 악소채에게 애정을 준 인물은 고 파파가 처음이었다.
깨달음을 얻은 경운 도장도 그녀에게 무학뿐 아니라 정을 주었지만 비연자 목추영과는 달랐
다. 오직 고 파파만이 목추영이래 처음으로 악소채의 차가운 마음을 열었던 것이다. 악소
채의 마음은 고 파파와 별반 차이 없었다. 그녀도 고 파파와 함께 평화롭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할 일이 있었다.
"어서 떠나거라."
"아, 알겠어요..."
악소채는 고 파파에게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일배... 이배... 삼배... 그리고 아홉 번의 절을
마친 악소채는 눈물을 글썽였다. 사부에게 올린다는 구배지례. 오직 목추영에게만 했고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구배지례를 악소채는 고 파파에게 올렸다. 악소채의 마음은 고 파파
의 가슴에 진한 여운을 남겼다.
"이만 떠날게요. 그럼 할머니 제가 다시 올 때까지 평안무사 하셔야 합니다."
악소채는 고 파파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났다. 고 파파는 악소채가 사라지는 모습이
보기 싫어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청명한 하늘에 떠도는 구름마저 고 파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러나 고 파파는 시선을 돌리지 않고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았다.
어느새 푸른 하늘이 붉게 물들더니 어둠이 깔리고 총총히 빛나는 별들과 새하얀 은하수가
아름답게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 파파는 망부석이라 된 듯 한 치의 미동도 보이지 않
았다. 달이 지고 별이 제 색을 잃어버리는 새벽이 올 때까지 고 파파는 움직이지 않았다.
해가 중천에 떠올랐을 때 고 파파는 결심했다. 마음을 정한 고 파파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
어섰다. 고 파파가 향한 곳은 신녀가 있는 사당이었다.
"어서 오세요. 유모."
"오랜만에 보는군요."
"그래요. 정말 오랜만이에요."
신녀의 음성에는 서운한 감정이 실려 있었다. 그동안 악소채에게만 신경을 쓰는 고 파파의
모습이 신녀에게 아픔이었던 것이다. 신녀는 그 마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고 파파는
신녀에게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 노파가 신녀를 서운하게 했구려."
"네. 그래요..."
"그렇구려... 그럼 정말 미안하오."
"됐어요. 유모가 오늘 온 것으로 모든 것이 풀렸어요."
신녀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라오. 신녀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여행을 할 생각이오."
"여행이라고요!"
"그래서 오늘 신녀를 만나러 온 것이라오."
"악 아가씨를 따라갈 생각인가요?"
고 파파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녀는 격심한 감정의 분출을 느꼈다. 그녀의 마음 속
에 있는 사람은 임백령과 고 파파 단 둘에 불과했다. 그러나 임백령은 그녀의 마음에는 아
랑곳하지 않고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오직 고 파파만이 그녀를 위로해주고 아픈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등불이었다. 그런데 그런
고 파파를 악소채가 뺐어간 것이다. 신녀는 모용수수이래 처음으로 한 여자에게 표현할 수
없는 증오와 질투가 섞인 격렬한 감정을 맛보았다.
"알았어요. 그럼 떠나세요."
신녀는 고 파파를 외면해버렸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는 뿌연 물기가 서려 있었다.
"미안하오. 신녀. 그러나 일이 끝나는 대로 바로 돌아오겠소. 그리고 내 한 가지 부탁을 해
야겠소."
"무슨 부탁이에요?"
"설삼단(雪蔘丹)이 필요하오."
신녀의 안색이 삽시간에 굳어버렸다. 고 파파가 설마 설삼단을 요구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설삼단은 신녀의 모친인 전대 신녀가 구한 천년설삼(千年雪蔘)을 황궁의 어의
들이 여러 영약과 함께 응축해 겨우 세 알을 만들었다.
두 알을 사용하고 세 알이 남아 있지만 쉽게 내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설삼단 한 알
이면 무려 30년간 수련해야 얻을 수 있는 내공뿐 아니라 강력한 체질로 변화시킬 수 있었
다. 그만큼 설삼단은 천하지보(天下之寶)라 할 수 있었다.
"유모. 설삼단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죠."
"잘 알고 있소. 그래서 내가 부탁하는 것 아니겠소."
"설삼단 한 알은 내가 복용하고 이제 두 알 남았어요. 물론 유모가 사용한다면 내 쾌히 내
줄 수 있어요. 유모. 말해봐요. 설삼단은 누가 복용할 거예요?"
"소채에게 줄 생각이오."
신녀의 분노는 극한까지 도달했다.
"좋아요. 드리죠. 그러나..."
"무엇이오?"
"악소채가 설삼단을 복용한 순간 모용수수이래 내게 두 번째 원수가 되는 거예요."
"신녀..."
고 파파의 음성에는 안타까움이 짙게 서렸다. 그러나 신녀는 두 말하지 않고 벽장의 금고
를 열고 봉인된 목갑을 꺼냈다. 봉인지를 뜯고 목갑을 열자 강렬한 삼의 향기가 실내를 가
득 채웠다. 목갑 안에는 두 알의 설삼단이 있었다.
"여기 있어요."
신녀는 마치 싸구려 사탕을 주는 듯이 설삼단 한 알을 고 파파에게 넘겼다.
"하아... "
신녀의 행동은 고 파파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고 파파는 신녀의 비틀린 마음을 풀
어 줄 도리가 없어 한숨을 쉬고 말았다.
"내 이만 가리다. 나중에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나눕시다."
신녀는 말없이 고 파파를 외면했다. 고 파파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악소채 때문에
신녀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가슴을 메이게 했다. 그러나 마흔이 넘은 신녀가 아직도 애
정을 독점하려는 행동과 투정을 버리지 못한 점은 이해는 해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신녀가 진정한 어른이 되기를 고 파파는 기원했다. 고 파파는 사당을 나오자마자 바로 짐
을 챙기고 무당산을 향했다. 악소채가 무당산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만나야 했다. 늦어도
악소채가 검성 일양자를 만나기 전에...
밝은 빛을 인식하는 순간 장소군은 자신이 기절한 것을 기억해냈다. 장소군은 그 순간 창
피함과 수치심을 느꼈다. 그러나 눈을 뜨고 주위를 살피다가 악삼을 목견한 순간 창피함과
수치심은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깨어났군요."
"아... 네."
장소군의 심장은 거세게 뛰었다. 눈앞에 악삼이 있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악삼은 장소
군이 고심하는 모습을 보고 씁쓸하게 웃었다.
"아가씨는 적등영이 미쳐 날뛸 때 기절했습니다. 워낙 흉악한 곳이라 내가 이곳으로 모셨습
니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악삼은 손사래를 쳤다. 별일도 아닌데 인사를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장소군
은 악삼이 자신의 정체를 모르는 것 같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그런데 집으로 가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어째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 인지요?"
"아가씨의 집이 사해방이라면 지금 갈 수 없습니다. 지금 그곳은 처절한 혈전이 벌어져 매
우 위험합니다."
"네!"
장소군은 깜짝 놀랬다. 악삼의 입에서 나온 혈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그녀가 집법원
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내부 정리는 큰 문제가 없었고 혈전을 벌일 세력도 전혀 존재하
지 않았다.
"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장소군은 허리를 숙였다.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지 허리를 굽힐 수 있는 여자가 장소군이었
다. 특히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면 생사를 보장할 수 없는 상대와 같이 있다면 그보다 더
한 일도 그녀는 할 수 있었다.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말로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고 합니다. 나를 따라 오십시오."
악삼이 안내하는 장소를 장소군은 군소리 없이 따라갔다. 작은 분지를 지나 언덕 위로 올
라가면 사해방 전경이 훤히 보였다.
"헉!"
장소군은 사해방 총단을 보는 순간 할말을 잃어버렸다. 사해방 총단의 건물 절반이상이 불
바다 속에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어제 밤 사해방을 기습 공격한 세력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아세요?"
"지금은 모릅니다. 하지만 곧 알 수 있겠군요.."
악삼의 시선은 사해방에서 도주하고 있는 복수혈의 생존자들을 향했다. 그들은 악삼과 장
소군이 있는 언덕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모두 열한 명에 불과했고 하나같이 피투성이였다.
게다가 세 사람은 제 발로 걷지도 못해 업혀 있었다.
"저들이 본 방에 난입한 자들이군요."
"그럴 겁니다."
"아는 분들인가요?"
"전혀 모릅니다. 하지만 안면이 있는 사람이 한 명 있군요."
악삼이 안면이 있는 사람은 팽가섭이었다. 복수혈의 생존자 열한명은 전력을 다해 언덕을
오르다가 악삼과 장소군을 발견하고 경계의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악삼의 나이가 젊다는
것에 안심한 복수혈의 생존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협은 누구요? 정체를 밝히시오."
일우 대사가 정체를 밝히라고 말했지만 악삼은 눈썹하나 꿈적이지 않고 팽가섭을 쳐다보았
다. 팽가섭은 극심한 중상을 입은 팽가적을 업고 있었다. 팽가적의 상태가 위중해 다른
곳에 정신을 팔 여력이 없었다. 팽가섭은 아직도 악삼을 쳐다보지 않고 있었다.
"오랜만이오. 팽가섭 선배."
악삼의 말투는 싸늘했다.
"누구냐?"
"나를 잊었소?"
"너, 너는 악가의 젊은이..."
"맞소. 악삼이오."
악삼은 하북팽가와 남궁세가의 힘을 빌려 산동악가를 쳤다는 육가문에 대해 생각했다. 그
러나 그것은 피부에 와 닫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어린 시절 표행에 몸을 싣고 궁륭산
에 가기 전에 받았던 공격과 태을궁에서 벌어진 참경은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었다.
"섭제, 저자가 누군데 그러시는가?"
"남궁 가주님. 저 청년은 악가의 인물입니다."
남궁세가주의 질문을 받은 팽가섭은 공손한 말투로 대답했다.
"혹시 태을궁에서 키워졌다는 악가의 인재를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럼 사해방의 인물은 아니군."
"후우~."
악삼이 사해방의 인물이 아니라는 말이 나오자 안도의 한숨이 여러 곳에서 흘러나왔다. 그
때 제자인 팔걸사의 등에 업혀 있던 용개 풍시종은 겨우 정신이 들었는지 눈을 떴다.
"내려다오."
"사부님."
용개 풍시종은 제자 등에서 내려와 주변에 있는 바위에 정좌했다.
"너 혼자 남았느냐?"
"크흑... 그렇습니다. 모두..."
"그만!"
용개 풍시종의 안색은 참담하게 변해버렸다.
"풍 방주. 그들은 용감했소."
"허허... 용감했다. 이 못난 나를 살리려고 말입니까. 제자의 목숨을 잡아먹고 살아난 사부
라... 이보다 더한 수모와 고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적운 도장은 풍시종을 더 이상 위로 할 말이 없었다. 설령 그 어떤 훌륭한 말이 있다해도
풍시종의 참담한 얼굴을 풀게 할 수는 없었다.
"아미타불. 풍 시주. 전원이 옥쇄(玉碎)한 산서쾌도문과 광동진가, 절강여가, 나부파에 비해
우리는 불은(佛恩)을 입었소. 그만 고정하시구려."
"모두 몇 사람이 살은 겁니까?"
"소림사는 일우 대사님을 비롯해 모두 세 분이고, 남궁세가는 남궁 가주 한 분, 하북팽가는
가주인 팽 도우와 그 아우님, 공령문의 언가 삼형제는 맏인 언백이오. 그리고 풍 방주와 제
자분이, 본 파는 빈도와 사제 한 명이 살았습니다."
적운 도장이 생존자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렇다면 모두 열한 명만 살았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참담하군요... 정녕 참담해..."
적운 도장이 참담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울분을 토하는 풍시종에게 할 수 있는 위로의 말은
고작 이것이었다.
"사해방도 치명적인 상태를 입었습니다."
"흐흐흐... 그런 소식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끝난 일입니다. 더 이상 아파해도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적운 도장의 위로는 오히려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것들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저만 아플 리가 없다는 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풍시종은 쓰디쓴 얼굴로 말하다가 사람들 숫자가 두 명이나 더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인식
했다.
"두 분이 더 있군요."
"이곳에서 만났습니다."
"그럼 사해방의 졸개라고 보아도 무방하군요."
풍시종은 마음속에 타오르는 울화를 풀기 위해 두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기로 했다. 몽환포
영을 익히기 위해 습득한 내공이 기절한 동안 내상이 진정시켰고 어느 정도 내력까지 되찾
아 주었다.
풍시종은 누가 말려도, 아니 설령 두 사람이 아무 죄 없는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피를 보겠
다고 생각했다. 만약 이대로 넘어간다면 가슴속의 울화와 분노가 자신을 불태울 거라고 생
각한 것이다. 그만큼 용개 풍시종은을 이성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나를 만나 게 너희들의 불행이라고..."
악삼과 장소군을 노리며 걸어가던 용개 풍시종은 말을 채 잇지도 못했고 걸음도 멈추었다.
"글세 누가 불행일까?"
악삼은 거꾸로 용개 풍시종을 빈정거렸다. 그러나 용개 풍시종은 대꾸하지 못했다. 아니
대꾸는 고사하고 숨이 막혀 쓰러질 지경이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악삼의 진정한 무위나 경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비슷한 경지에 도달해 있거나 더 높은
경지에 있어야 가능했다. 그러나 용개 풍시종 정도의 역량을 가지면 악삼의 진정한 무위는
알 수 없지만 자신보다 월등한 고수라는 것을 파악할 수는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중요한가? 거지 양반."
용개 풍시종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눈앞에 있는 20대 초반의 청년은 사해방주보다
강자였다. 그것도 최소한 한 단계 위의 고수가 틀림없었다.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건드렸구나. 저자가 날뛰는 순간 우리 모두는 죽는다... 어떻게 저
젊은 나이에 저런 강자가 나타났단 말인가...'
악삼이 서서히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하자 복수혈의 생존자들은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용개 풍시종 다음의 고수인 일우 대사와 적운 도장은 악삼이 살기를 풍기는 순
간 문제를 알아챘다. 두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최고수인 괴승 일묘와 검성 일양자를 뇌
리에 떠올리며 아찔해했다.
"어, 어떻게 저 나이에 삼대이인과 동급의 무위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악삼이 진룡거사 송자헌과 비슷한 경지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모르고 괴승 일묘와 검
성 일양자 수준으로 착각했다. 악삼이 전력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럴 필요도 없었
다. 현재 드러낸 살기와 역량으로도 복수혈의 생존자들은 숨조차 쉬지 못하고 허덕거렸다.
특히 절망에 빠진 인물은 남궁세가의 가주와 팽가섭이었다. 산동악가와 씻을 수 없는 원한
을 쌓은 두 가문의 입장에서 악삼은 악몽 그 자체였다. 그들이 보기에 악삼 혼자의 역량으
로도 자신들 가문이 멸문을 피할 수 없다는 현실 때문이었다.
장소군은 악삼의 역량이 외삼촌인 희부성에게 들었던 대로 경이적이라는 사실에 숨이 막혔
다. 악삼과 자신 사이가 무척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가 내린 선택은 간단했다. 그
녀는 자신의 정체를 악삼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는데 전심전력을 다하기로 했다.
귀면도 동문보는 운남의 더운 날씨에 짜증이 났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운남목왕부
의 왕야와 점창파와 오독문의 수뇌들이 모여 이구동성으로 단씨를 욕하는 것을 보는 건 더
욱 짜증이 났다. 그러나 동문보는 참았다.
운남의 밀림에 숨어 있는 서해방의 본거지를 찾기 위해서는 그들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
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많은 여러 부족들이 혼재된 운남을 활보하기엔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무수한 음모를 토해내는 그들의 입을 동문보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칼
한 자루에 영혼을 건 무사였기 때문이다. 동문보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덕분에 남들 못지
않은 귀계와 모략을 알고 있지만 생리적으로 반기지 않았던 것이다.
"내게 단가의 본거지를 알려주시오."
차갑고 싸늘한 동문보의 일언은 중구난방으로 모략을 토해내던 목 왕야와 오독문주, 점창파
장로의 입을 다물게 했다.
"좋습니다. 그러나 당장 아려주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요?"
점창파 장로가 난색을 표시하자 동문보는 이유는 추궁했다.
"운남에 퍼져 있는 단가의 세력들을 정리해야 우리가 도울 수 있습니다. 우선 본 파만 하더
라도 단가의 세력은 만만치 않게 퍼져 있습니다."
"위치만 가르쳐 주시오. 해결은 우리가 하겠소."
"그래도 며칠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오?"
동문보는 더 이상 그들과 같이 있고 싶지 않았다. 아니 운남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점창파 장로를 무섭게 추궁했다.
"오독문이나 목왕부는 괜찮지만 본 파는 문제가..."
점창파 장로는 말끝을 흐렸다.
"귀 파의 장문인 때문이오?"
"그, 그게..."
"숨길 필요 없소."
"그렇습니다..."
점창파 장로는 욕심을 드러냈다.
"알다시피 본 파의 장문인은 백족 출신입니다. 현재 점창파는 단씨 일족의 명령에 좌지우지
하고 있습니다."
점창파 장로는 자신의 욕심을 숨기기 위해 정당한 이유와 논리를 설명했다. 그러나 동문보
의 눈에 점창파 장로는 권력에 눈 먼 돼지에 불과했다. 시도 때도 없이 목 왕야에게 아부
하는 모습은 점창파 장로가 개인의 욕심 때문에 나섰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내 수하 2명과 같이 같다 오시오."
"네! 아니 어디를 갔다 오라는 겁니까?"
"점창산."
동문보는 짧게 말했다.
"두 사람만으로 가능하겠습니까?"
"한 사람만 가도 충분하오.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소."
"알겠습니다."
점창파 장로는 희색이 만면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동문보는 더 이상 점창파의 장고
가 보고 싶지 않은지 고개를 돌렸다.
"청귀조 조장."
"예."
동문보의 차가운 일성이 떨어지기 무섭게 청귀조 조장이 유령처럼 나타났다.
"쓸만한 녀석 한 놈을 데리고 점창산에 갔다와라."
"알겠습니다."
"가서 점창파 장로가 지적한 인물을 흔적 없이 저승으로 보내고 돌아오도록."
"예. 알겠습니다."
청귀조 조장은 대답을 맞치고 점창파 장로에게 다가갔다. 동문보는 한동안 점창파 장로의
면상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목 왕야. 점창파 장로가 돌아오면 그때 다시 부르십시오."
"알았소이다. 동문 노인."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동문보는 목 왕야에게 고개를 인사하고 뒤돌아 섰다. 그때서야 동문보의 얼굴이 환해졌다.
'서문 늙은이랑 같이 있던 게 이리도 그리울 줄 몰랐군.'
동문보는 목 왕부에서 마련해준 숙소로 향해 걸어가면서 서문종을 생각했다. 수십년간 티
격태격 싸워서 든 정도 만만치 않았지만, 더 큰 이유는 추잡한 인간들을 상대하다보니 서문
종의 인격이 훌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고맙습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즐감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즐독 ㄳ
감사...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 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이랍니다
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