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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및 정보 교란설: 초기에는 미국 대사관 내부의 비밀 통신을 도청하거나, 미국 측의 전자 감시 장비를 교란하기 위한 목적(마이크로웨이브를 이용한 오디오 도청 기술 등)으로 판단했습니다.
신경계 영향/생체적 영향 연구: 하지만 소련이 전파의 인체 영향(생물학적 효과)에 관한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면서, 미 정보당국은 소련이 미국 요원들의 정신을 교란하거나 건강을 악화시키려는 목적이 있는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② 비밀 프로젝트 가동 (Project BIZARRE / PANDORA)
미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ARPA)과 CIA는 '프로젝트 판도라(Project PANDORA)'라는 극비 연구를 착수했습니다.
마이크로웨이브 전파가 영장류(원숭이) 및 인간의 행동, 수면, 뇌파, 중추신경계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실에서 직접 검증하는 연구였습니다. (당시 연구진 간에 "이 전파가 수면 장애, 불안, 인지 기능 저하를 유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 치열했습니다.)
③ 대사관 건물 방어 조치
미국은 대사관 건물 외벽과 창문에 전파를 차단하는 특수 금속 쉴드(알루미늄/철망 블라인드 및 차폐막)를 설치하여 내부 전파 세기를 줄였습니다.
2. 사건의 공개와 대외적 대응 (1976년)
1970년대 중반, 대사관 내부에서 소문이 퍼지고 언론 폭로 가능성이 커지자 미국 정부는 마침내 직원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소련에 공식 항의했습니다.
공식 대사관 공지 (1976년 2월):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 지시 하에 모스크바 대사관 직원 및 가족들에게 "대사관 건물이 마이크로웨이브 전파에 노출되어 왔다"고 공식 발표하고, 위험수당 지급 및 무료 건강 검진을 약속했습니다.
소련에 대한 외교적 압박: 미국은 데탕트(냉전 완화) 국면 속에서도 소련 정부에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소련은 "도청이나 신체 공격이 아니며, 미 대사관의 방해 전파를 차단하기 위한 시도였을 뿐"이라고 부인했으나, 미 측의 거센 압박 이후 1979년 무렵 전파 조사를 최종 중단했습니다.
3. 피해자(대사관 직원 및 가족)들의 상황과 건강 상태
당시 모스크바 대사관에 근무했던 대사, 정보요원, 외교관, 가족들은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고통과 함께 "정부가 위험을 알고도 감췄다"는 배신감에 시달렸습니다.
① 주된 신체 및 정신적 증상
피해자들이 호소한 증상은 오늘날 '하바나 증후군' 사례와 매우 유사했습니다.
신경계 및 두부 증상: 극심한 두통, 안구 통증, 이명(귓속 소리), 만성 피로, 수면 장애(불면증).
정서 및 인지 장애: 우울증, 이유 없는 불안감, 기억력 저하, 집중력 장애.
백혈구 수치 이상: 일부 근무자 및 가족들에게서 혈액 검사 상 백혈구 수치가 이상 상승하는 현상이 관찰되었습니다.
② 백혈병 및 암 발병 공포
역대 모스크바 주재 미국 대사였던 찰스 볼렌(Charles Bohlen)과 루시우스 톰슨(Llewellyn Thompson)이 후두암과 암으로 사망하고, 월터 스토셀(Walter Stoessel) 대사가 눈 피막 출혈, 만성 두통 및 후일 백혈병으로 사망하면서 "마이크로웨이브 전파가 암을 유발한다"는 공포가 대사관 전체를 덮쳤습니다.
③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대규모 역학 조사 (1978년)
미국 국무부는 논란이 격화되자 존스 홉킨스 대학교(Abraham Lilienfeld 교수 팀)에 의뢰하여 모스크바 근무자 약 1,800명과 다른 동유럽 대사관 근무자 3,000여 명을 비교 분석하는 대규모 역학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조사 결과:
전파 노출 그룹에서 일반 대사관 그룹에 비해 암 사망률이나 암 발병률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지는 않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다만, 두통, 만성 피로, 불안, 이명, 눈 증상, 피부 자극 등 신경계/기능적 장애는 확실히 높은 빈도로 관찰되었습니다.
후속 연구자들은 조사 당시 소련이 쏘던 전파 세기가 일반적 열 손상을 일으키는 수준보다 매우 낮았기 때문에, 이 증상들이 전파의 직접적인 미세 신경 자극 때문인지, 혹은 장기간 비밀에 노출되었다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심인성 요인이 결합된 것인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쟁을 벌였습니다.
모스크바 신호 사건은 미국 정부가 '위험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정보 자산 보호와 외교적 마찰 방지를 위해 직원들에게 오랫동안 은폐했다'는 점에서 큰 비판을 받은 사건입니다.
피해자들은 수십 년 동안 원인을 알 수 없는 신경계 증상과 건강 불안 속에 살아야 했으며, 이 사건은 후일 2010년대 후반 발생한 '하바나 증후군'의 역사적 전조이자 미국 정부의 비가시적 무기 대응 매뉴얼의 기준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