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하자면, 경명왕, 경애왕을 전후하여 왕건이는 경상도로 남하하면서 신라를 잠식해 들어갔고, 신라도 이를 거부하지 않아 신라와 고려의 후백제에 대한 연합 전선이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 견훤은 결국 대야성을 깨고, 북쪽 길을 통해 영천을 점령했으며, 이로써 경애왕을 잡아 죽이고 경순왕을 세웁니다. 게다가 이를 구원하러 온 왕건이를 공산 동수에서 아주 크게 이겼습니다. 이 때부터 견훤은 경상도 중부, 남부 일대를 석권하고, 기세를 올리며 북부로 진격했으나, 고창 병산에서, 단 한 번의 승리를 거두지 못해서 패하고 말았습니다. 고창의 승리로 왕건이는 다 죽어 가던 명줄을 살렸고, 경상도를 견훤에서 다시 이탈시켜 자기 편으로 만들었으며, 신라를 확실히 부용으로 삼았습니다. 견훤은 결국 이 형세를 역전시키지 못했고,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 드라마를 보면서 알았던 것들인데, 이렇게 사료를 뒤지며 글을 써 보니 또 재미가 있네요. 관심 있는 분들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중 신덕왕본기에서 경순왕본기까지, 삼국사기 열전 10 궁예와 견훤, 그리고 고려사 태조세가를 중심으로 읽어 보시면 재구성하시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것입니다.
출처: https://philosophistory.tistory.com/39 [달마시안의 역사, 철학 이야기]
고려가 후백제에게 우세를 점하기 시작한 시점, 신라가 명분에서도 유명무실하게 된 시점은 언제일까?
첫댓글 발해가 내투한 시점, 서라벌 함락 후
견훤도 한끝 차이였네요
고창이 전북 고창인줄 알았는데 경북 안동이네요.. 8천명 전사라니.. 어마어마한 패배였네요..
엄청난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