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 버려라 / 일타스님
불교를 가리켜 공문[空門]이라고 합니다.
만법은 인연을 따라서 생겨나는 것이므로
거기에는[아체[我體] 본체[本體] 실체[實體]라
할만한 것이 없으므로 공[空]이라 한 것입니다.
많고 많은 사람, 과거의 부처님과 수많은 조사[祖師]들이
이 공문에서 도를 이룬 것입니다.
공문은 바로 불문[佛門]과 같은 뜻입니다.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번째 관문이 바로 공문입니다.
큰 사찰에 들어갈 때는 먼저 문짝을 달지 않은
일주문[一柱門]을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문짝이 달려 있지 않기 때문에
일주문은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 부유한 사람,
죄많은 사람, 깨끗한 사람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들어 오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대로 들어 올 수 있고
나가고자 하는 사람은 마음대로 나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문이 일주문이요, 공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문을 통과하여
부처님의 경지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에게는
단 한가지 제약이 주어 집니다.
세속의 잡된 생각을 완전히 비우고
부처를 이루겠다는 한 마음을
잘 가다듬고 이 문을 들어 서야 합니다.
비록 문짝을 달지 않아 뻥 뚫려 있는 공문이지만
그 잡된 생각들이
공문을 유문[有門]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잡된 생각은
곧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삼독심[三毒心]과
재욕[財欲] 색욕[色欲] 식욕[食欲] 명예욕[名譽欲]
수면욕[睡眠欲]의 오욕락[五欲樂]등 입니다.
이와 같이 사랑에 걸리고 재물에 걸리고 명예에 걸리고
감정에 휘말리게 되면 어느새
일주문의 기둥과 기둥사이에서
문짝이 생겨나와 유문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그리고 출입을 막기위해
스스로 빗장을 굳게 걸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놓아 버리고
비워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탐착심이 있으면 결코 공문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흑씨 바라문에게 '버리라'고 한 말씀이야말로
공문에 들어 가는 지름길입니다.
참된 해탈과 진리를 어찌 밖에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놓아 버리지도, 비워 버리지도 못한다면
그 결과는 고통뿐입니다.
항상 열려있는 공문을 스스로 닫아,
고통의 세계를 옮겨 다니며 윤회하기를 되풀이할 뿐입니다
그런데 중생들은
왜 이런 고통의 삶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배각합진[背覺合塵]하여
어리석음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배각합진'의 각[覺]은
나의 참된 마음자리를 가리킵니다.
나의 본원 자성 자리가 '각'이요,
내 마음의 본래 청정한 자리가 '각'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각은 곧 부처입니다.
나의 자성불[自性佛]!
내 스스로에게 갖추어져 있는 자성불
나의 공문 속에 있는 부처님의 자리를 등져 버린 채
결코 주인이 될수 없는 객진번뇌[客塵煩惱]를
쫓아 끝없이 흘러다니고 있습니다.
이렇듯 참된 주인인 마음자리를 등지고
무수한 번뇌들을 주인으로 삼아 노예처럼 살고 있으니
어찌 자유가 있겠으며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제 놓아 버려야 합니다.
비워 버려야 합니다.
무수한 마음 속의 번뇌들을
칼로 줄을 베듯이 끊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참된공문으로 들어가는 불제자가 되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