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223) - 새로운 풍랑 이는 현해탄을 오가며(1)
지난달에 선출된 여당의 박근혜 후보에 이어 이번 주에 야권의 대통령 후보들이 확정되었다. 16일에는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고 19일에는 그간 잠재적 후보로 거론되던 안철수 씨가 공식적으로 대통령선거에 나서겠다고 천명하였다. 어느 땐 들 평탄하리만 험난한 파고가 눈앞에 다가선 위기를 해쳐나갈 지도자의 선택은 오로지 국민의 몫, 때마침 부산의 안희재기념관에서 살핀 안중근 의사의 '見利思義 見危授命‘(견이사의 견위수명, 이를 보거든 공의를 생각하고 위기를 당하거든 목숨을 바치라)이라는 휘호에서 올바른 치국(治國)의 본분을 새겼다.
19일부터 22일까지 3박4일간 가족들과 함께 일본의 북규슈 지방을 다녀왔다. 한, 일간에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는 시기에 수많은 민초들의 애환이 서린 현해탄을 오가며 보고 느낀 소감을 2회로 나누어 올린다.
제1일 한일교역의 전초기지 부산을 돌아보며
19일 오전 11시, 고속버스로 광주를 출발하여 3시간여 남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부산 사상터미널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조금 지났다. 직전에 태풍 산바가 관통하여 많은 피해를 입은 지역인데도 차창에 비친 외양으로는 들판에 누렇게 익은 벼이삭들이 황금물결이고 울창한 삼림과 수량이 늘어난 강물이 도도히 흐르는 산천의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터미널에 내리니 부산에 거주하는 친지가 반가이 맞아준다. 그의 안내로 버스를 타고 국제여객터미널이 있는 도심 쪽으로 향하였다. 부산지리를 잘 모르는 탓에 평소에는 지하철을 이용하였는데 구덕터널을 통과하는 버스 편을 이용하니 거리도 가깝고 시간도 절약된다.
처음 찾은 곳은 국제시장, 1950년대에 피난민들의 애환을 담은 유행가 '굳세어라 금순아'의 가사에도 등장하는 이곳을 둘러보기는 난생 처음이다. 저녁시간이 더 붐빈다는 시장골목은 낮에도 찾는 이들이 꼬ㅔ 많다. 69라고 쓴 노점에서 꼬치와 찌지미를 맛보며 수더분한 인상의 오정숙 여주인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영업을 하고 주변에 있는 사찰이 땅주인이며 상인연합회에서 시장을 관리한다고 일러준다. 며칠 전에는 TV예능프로그램의 유명연예인 팀이 와서 촬영하였다는 사진도 보여주고.
국제시장에서 가까운 곳에 부산근대역사관이 있다. 역사관의 인쇄물에는 1929년, 일제식민시대에 착취기관이었던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부산지점으로 출발한 이 건물은 해방 후인 1949년부터 미국문화원으로 사용된 외세주둔이 상징적 건물인데 70년 만인 1999년에 부산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적혀있다. 부산의 근대사를 한눈에 조명할 수 있는 200여점의 유물을 비롯해 영상물, 모형물 등이 2층과 3층 전시실에 마련되어 있다.
근대역사관에서 국제여객터미널로 가는 길목에 일제침략의 민족적 위기상황에서 교육, 거업, 언론 등 다방면에 걸쳐 주권회복에 심혈을 기울인 백산 안희재를 기리는 백산기념관이 있다. 지하 1,2층의 전시실에는 위기의 시대를 열심히 살다간 백산의 활동상황과 독립 운동가들의 행적을 살필 수 있는 자료들이 알차게 진열되어 있어 뜻밖의 알찬 탐방이 되었다. 방명록에 '보국제민(報國濟民)의 삶이 아름다워라"고 썼다.
이어서 가까운 곳에 있는 용두산 공원에 올라 영도다리와 항만의 모습을 살피는 중에 서울의 가족들이 터미널에 도착하였다는 전화가 왔다. 친절하게 안내해준 친지와 작별하고 서둘러 터미널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지났다. 이번 여행은 여동생의 회갑에 즈음하여 가족들이 가볍게 이웃나라를 돌아보자고 제안하여 마련된 것이다. 우리 가족들은 여러 차례 중국과 일본, 동남아 등을 함께 여행하였다. 참가자는 모두 8명, 우리 3남매와 일가아저씨, 사촌여동생 내외와 장조카 내외가 합류하였다.
오후 5시 반, 터미널 2층에서 이른 저녁을 들고 6시 반에 시모노세키로 가는 대형여객선 하마유호에 올랐다. 한일간의 미묘한 관계와 일본대지진 여파로 여행객이 크게 줄어 출국수속이 간편하게 진행된다. 11명 정원인 선실을 우리 가족 8명이 사용하게 되어 호젓한 분위기다. 여장을 풀고 대욕실에서 목욕을 하고나니 심신이 가뿐하다. 뱃전에 올라 야경을 살피고 8명이 둘러앉아 윷놀이를 하는 등 여유를 즐겼다. 출항은 9시 반, 1만 톤이 넘는 거대하고 육중한 배가 천천히 뱃머리를 돌려 칠흑 같은 밤바다를 해쳐나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제2일 험한 뱃길이던 현해탄은 잔잔하였다
한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오랜 뱃길, 현해탄을 건널 때마다 여러 가지 상념이 떠오른다. 특히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는 부관(釜關)페리는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식민시대의 통한(痛恨)이 서린 뱃길이라 그 감회가 별다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선실 밖으로 나와 갑판에 오르니 바람은 잔잔하고 별빛은 희미한데 육중한 선체는 미끄러지듯 조용히 검은 바다를 가른다.
6시 넘어 동쪽하늘이 붉어지다가 15분 쯤 붉은 해가 환한 광채를 내뿜으며 규슈 쪽의 나지막한 산자락 위로 위용을 드러내고 일행들은 일출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하다. 동생이 스마트폰에 현해탄을 넣으니 오래된 극작'현해탄은 알고 있다(한운사 극본)'는 제목이 뜬다며 현해탄의 여러 설명을 보여준다.
아침 7시 45분이 하선시간이다. 승객은 백 명 남짓, 대부분 한국 쪽 관광객이다. 지금이 비수기라고 하지만 수백 명을 수용하는 뱃전이 한산하다. 덕분에 출국수속이 빨리 이루어져 오전 8시 반에 버스에 올랐다.
38세의 김송이 가이드는 일본유학을 거친 베테랑으로 야무진 어조와 해박한 지식으로 십여 차례 일본을 방문한 중에도 미처 알지 못한 일본역사와 문화의 깊숙한 면을 설득력 있게 전해준다. 서두에 언급한 몇 가지를 메모하였다.
'대기업보다 소상공인이 강한 일본, 300년 이상의 기업이 많아서 경제의 밑바닥이 튼튼하다. 1억이 넘는 인구, 수만 달러소득수준의 일본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사람을 보면 그 나라가 보인다. 오늘은 여자, 내일은 남자를 관찰해보시라.
한일 갈등보다 중일 외교 분쟁이 더 심각하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시모노세키 항을 벗어나 본토와 규슈를 잇는 관문대교를 거쳐 후쿠오카로 이동하였다. 처음 들른 곳은 동양최대의 청동와불상이 있는 남장원이다. 후쿠오카 교외의 공기 맑고 산세 좋은 숲 속에 자리 잡은 남장원은 여러 차례 후쿠오카를 여행하면서도 알지 못한 관광지다. 한국에서는 광주 인근의 화순 운주사의 와불이 유명하고 400만 개의 사찰이 있다는 미얀마에서 유명하다는 와불을 본 적이 있는데 남장원의 청동와불은 그 어느 것보다 윤곽이 뚜렷하고 크기가 엄청나다.
일본의 사찰은 기도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상담하는 역할이 커서 외진 산 속이 아니라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에 자리 잡고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사찰 주변에 울창하게 들어선 스기나무 숲에서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무욕의 청심(淸心)에 빠져든다.
한 시간 여 남장원을 둘러보고 나니 오전 11시, 30분 거리에 있는 태제부의 천만궁이다. 일본에는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신사(神社)가 많다. 태제부의 천만궁은 그중 학문의 신을 모신 곳으로 유명한데 작년여름에도 이곳에 들르는 등 여러 차례 와 본 곳이다. 그런데도 오늘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 흥미 있다. 신사는 신궁, 궁, 대신사, 중신사, 소신사 등 5단계가 있는데 신궁은 천황을 모신 곳, 궁은 왕족이나 이에 버금가는 이를 모신 곳이고 대, 중, 소 신사는 그보다 낮은 이들을 모신 곳이라고 한다. 태제부 천만궁의 학문의 신은 왕인의 후예라는 것도 처음 들은 이야기, 솟대를 닮은 돌문, 해태를 닮은 석상은 고구려의 개, 본전 앞의 문에 매단 금줄 등이 한국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도 김송이 가이드에게서 처음 듣는데 고증된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천만궁 안의 식당에서 깔끔하게 차린 도시락으로 점심을 들고 오후 1시에 규슈지방 제2의 도시 구마모도로 향하였다. 구마모토의 명소는 구마모토 성으로 오사카, 나고야 성과 더불어 일본의 3대 성으로 꼽힌다. 5년 전에 교회 어린이들과 함께 온 것을 비롯하여 두 세 차례 들른 곳인데 2008년에 복원된 혼마루어전대광관이 새롭게 단장되었다. 400년 전에 처음 지은 천수각은 1960년에 새로 지은 것으로 6층의 계단을 걸어올라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구마모토의 전경이 아름답다.
이어서 구마모토시의 중심가에 들러 한 시간여 백화점과 파친코 가게, 공원 등을 돌아보며 시민들의 사는 모습을 가까이서 살폈다. 수백 대의 슬롯머신이 1,2층에 깔려 있는 파친코는 10시부터 문을 연다는데 요란한 기계의 소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젊은 청년, 중년의 아낙, 백발이 희끗한 장년들이 곳곳에서 대낮의 도박 삼매경에 빠져 있다.
도심의 작은 공원에 세워진 비석이 눈길을 끈다. 이 공원은 1890년대부터 2000년대 초입까지 16년간 시장을 지낸 사람의 이름이 붙여졌는데 그의 재임 중에 구마모토의 기본 틀이 잡힌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세운 비석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공직자들이 많으면 좋으리라. 백화점의 서점에서 고령친화서적 등 최근의 시류를 읽을 수 있는 힌트를 얻은 것도 가외의 소득이다.
오후 6시, 구마모토 시내의 아담한 식당에서 초밥과 우동을 곁들인 저녁식사를 들고 도심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산 속의 세키아 호텔에 도착하니 저녁 7시 반, 골프텔의 불황으로 관광객을 맞이하는 레저호텔이다. 넓직한 온천장에서 몸을 씻고 나오니 저녁 9시,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돌아다닌 탓인지 심신이 고단하여 그대로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