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이야기
낙남정맥 종주를 마치고 인근마을로 내려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밤하늘을 점점이 밝히는 수많은 별들을 보았습니다. 경남고성의 망림마을 정류장에서 진주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우연하게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생각지 않게 수많은 별들이 하늘을 꽉 채우고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것을 보고 마치 딴 세상에 와 있는 듯 했습니다. 오래 잊었던 별들을 다시 보게 되자 그동안 원래 하늘에 주소를 두고 있는 가장 큰 무리들이 바로 별이라는 사실을 새까맣게 잊고 지냈다 싶었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 십리를 걸어 나와 삽 십리 떨어진 읍내학교를 버스로 통학을 하느라 시골의 밤길을 많이 걸었습니다. 금방이라도 땅바닥으로 쏟아져 내려올 것 같은 별들이 밤길을 밝혀 손전등 하나 없이도 캄캄한 시골길을 잘도 걸어 다녔습니다. 한 여름 밤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반딧불을 보고 별이 이 땅에 내려와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게는 별이 아주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엄밀하게 말해 별(star)이란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를 뜻합니다. 별이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는 것은 핵융합반응이 계속 일어나는 덕분입니다. 쉽게 이야기해 수소폭탄이 계속 만들어지고 폭발된다는 것입니다. 핵융합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지구나 달은 스스로 빛을 발할 수 없기에 별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달 다음으로 밤하늘을 밝게 밝히는 샛별도 별이 아닙니다. 달과 샛별 모두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고 태양으로부터 받은 빛을 반사할 뿐입니다. 태양을 돌고 있는 수성, 금성의 내행성(內行星)과 화성, 목성, 토성 등의 외행성(外行星)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떠돌이별로 모두 별이 아닙니다.
우리와 가장 친근한 별은 태양일 것입니다. 태양은 스스로 빛을 발해 그 주위를 돌고 있는 태양계의 행성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태양처럼 학교에서 붙박이별이라 배운 항성(恒星)이 바로 별입니다. 우주에 별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태양은 우리 은하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별 중 그저 작은 하나의 별일뿐입니다. 지구와 행성은 태양 주위를 돌고, 태양은 우리은하의 중심을 돌고 있는데 그 공전주기가 지구의 공전주기 1년과는 비교가 안 되게 긴 2억년이 넘습니다. 우주의 모든 별은 소멸되고 또 새로운 별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집니다. 지구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태양의 나이가 50억년이 다 되는 데 이 태양이 더 이상 핵융합반응을 하지 못해 소멸되는 데는 대략 50억년이 조금 더 걸릴 것이라 합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유한할 뿐입니다.
별을 죽이는 것은 핵융합반응의 멈춤이지만 별빛을 죽인 것은 사람들이 만든 빛입니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별을 도심에서 만나볼 수 없는 것은 별의 핵융합반응이 멈춰서가 아니고 인간이 만든 전깃불 때문입니다. 지구는 별이 아닙니다. 지구가 스스로 빛을 내려면 지구가 기체로 만들어져야하고 핵융합반응이 계속 일어나야 하는 데 그리되면 이 지구상에 살아남을 수 있는 생물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인데 사람들은 이에 고마워하지 않고 별을 흉내 내려 각종 빛을 만들어 밤을 밝히고 있습니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듯 사람이 만든 약한 불빛이 우주가 만든 강한 별 빛을 가리는 바람에 도시에서 별을 만나볼 수 없습니다. 작은 산이 가깝게 있어 큰 산을 가리듯이 약한 전기 불빛이 강한 별빛을 먹어 삼킬 수 있는 것도 별들이 너무 먼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양 빛이 지구에 다다르는데 8분이 걸립니다. 북극성은 태양보다 훨씬 멀어 그 빛이 이 땅에 오는 데 무려 약800년이 걸립니다. 인간이 만든 빛이 더 유용하다며 800백년 걸려 내달려온 북극성의 빛을 중간에 되돌려 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북극성이 있어 진북(眞北)의 방향을 알 수 있고 그 덕분에 캄캄한 망망대해를 안전하게 항해해왔다는 한 가지 만으로도 그렇게 매몰차게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별 빛을 죽인 사람들은 그들의 빛으로 끝내 귀신도 죽였습니다. 이제 귀신은 TV드라마나 영화에서나 그 모습을 보일 뿐 어디를 가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귀신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우리의 어르신들은 부뚜막, 뒷간 등의 집안이나 묘지나 숲속 등의 집밖에서 귀신을 많이 만났고 저도 어렸을 때 소복한 여인의 모습을 한 귀신을 보았습니다. 제가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입니다. 학교에서 모 방학을 하여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초저녁에 논길을 걸어 집으로 가는데 하얀 소복한 여인이 자꾸 따라와 정말 무서웠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저 여자는 틀림없이 사람이 아니고 귀신이라 확신한 것은 때 마침 지나가는 군용차의 라이트가 비쳐지면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라이트가 안 비치면 다시 나타나 따라왔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죽으면서 이 땅에서 설화가 사라졌습니다. 옛날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자들에 들려준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거의 다가 귀신이 나오는 설화였습니다. 설화는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에 생성된 것으로 구전에 구전을 거듭해 제게 이어졌는데, 앞으로 제가 손자를 본다 해서 설화를 들려주기가 뭣할 것 같습니다. 이미 죽은 귀신을 되살릴 수 없는데 귀신이야기가 무슨 재미가 있겠는 가 싶어서입니다. 전기 빛이 죽인 것은 별빛과 귀신 그리고 설화만이 아닙니다. 설화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역할도 같이 죽였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본 별들에 미안해하며 집으로 돌아와 전깃불을 켰습니다. 별은 아무래도 가슴 속에나 간직해야 할까 봅니다.
2013. 5. 2일 산본에서
*위 글은 2011년 1월2일 경남 진주와 사천의 경계를 이루는 ‘돌장고개-봉대산-배곡고개’ 구간을 종주하고 남긴 졸고에서 발췌해 다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