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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뼈에 계신 하나님
에스겔 37:1-14
2024년1월21일 주일낮 11시
인도,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 교회 진천
https://youtu.be/rCVU7T1ca1I?si=wRmjJiLZaiBrSvTt
하나님은 사람(2:7)과 동물(창 2:19)을 흙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람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과 짐승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허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창 1:26,27).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늘, 땅, 바다의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창1:26).
하늘, 땅, 바다의 동물, 나무, 바위 등 모든 것은 인간의 섬김의 대상이 아닙니다.
인간이 그것들을 아름답게 합리적으로 지혜롭게 다스려야 합니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 넣으시니, 생명체가 되었습니다(창2:7).
'아담'이란 말은 사람인데, '아담아' 즉 흙에서 온 자라는
뜻입니다.
에스겔 34-36장은 이스라엘 회복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 에스겔 37장 1-15절의 마른뼈 환상과 16-28절 막대기 상징행동은 모두 이스라엘 회복을 말합니다(NIV study
bible, Zondervan, 2002,1297).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는 하나님만 섬겨야 할 그들이 하늘, 땅, 바다의 것들을 우상으로 섬겼기 때문입니다.
돈, 쾌락, 명예, 권력, 지식, 명예 등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더 우선 순위에 두는 것은 우상 숭배입니다.
1절 골짜기는 협곡이 아니라 산으로 둘린 평지입니다.
마른뼈는 포로 상태 이스라엘의 절망적 상황을 말합니다(11절).
2절 "아주 많은 뼈들"은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 전체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아주 말랐다"는 것은 어떤 소생술로도 살릴 수 없는, 죽은지 오랜 상태라는 말입니다(왕상 17:17-24; 왕하 4:18-37; 왕하
13:21; NIV study bible,1298).
성경에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한 과부의 아들이 죽은 후, 그가 야웨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 아들이 살아났습니다(왕상 17:17-24).
엘리사 선지자는 수넴 여인 아들이 죽자, 그가 야웨 하나님께 기도 하니 그 아이가 살아났습니다(왕하 4:17-37).
두 선지자가 기도하여 하나님이 살린 것은 육신이었습니다.
그 과부 아들과 그 수넴 여인 아들이 각각 후일에 그 영혼이 구원을 얻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 두 아들은 각각 자기 어머니로 부터 엘리야 선지자, 엘리사 선지자가 기도하여 다시 생명얻은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으면서 자랐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두 아들 영혼도 훗날 구원을 얻었을 것입니다.
구약 시대 백성이 구원 얻은 기준은 무엇이었을까요?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오셨으니 그를 믿어 구원을 얻지만, 구약시대에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기 때문에 어떻게 구원을 얻었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구약성경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많이 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은 나타나지 않습니다.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얻었다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믿어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 근거는 창세기 15장 6절 말씀이 대표적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도 하나님을 믿어서 의롭게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구약시대에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은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시대도 율법을 100% 지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살인은 행위의 살인뿐만 아니라 마음의 미움까지도 살인으로 간주됩니다(요일 3:15).
간음도 행위의 간음뿐만 아니라 마음의 음욕까지도 간음으로 간주됩니다(마 5:28).
율법을 어길 때 하나님과 관계가 깨집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깨진 관계를 회복했을까요? 이는 구약시대 성막/성전을 통한 속죄에 답이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십계명은 제20장에 나오고 언약의 책은 이어서 제24장까지 나옵니다. 그런데 십계명과 언약의 책보다 약 3배의 분량에
해당되는 제 25-40장은 대부분 성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구약시대 성막이 중요합니다.
구약시대 성막의 속죄제와 속건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죄 용서 받았습니다.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예표합니다. 제사에 드린 짐승인 어린 양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소나 염소도 마찬가지입니다.제물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예표합니다.중재 역할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 중재 사역을 예표합니다.
성막/성전 자체도 예수 그리스도 몸을 예표합니다(출처:www.ezrainstitute.org, 에스라 연구소, 2019.4.24).
골짜기 가운데 가득한 마른뼈는 너무 오래 땅에 묻히지 못하고 방치되어 뼈만 남아 바싹 말라 있었습니다.
죽은 몸이 땅에, 동굴이든 땅속이든 장사되지 못하고 하늘과 땅의 들짐승에 노출되어 방치되는 것은 큰 수치요 비참한 상태였습니다.
뼈만 남아 바싹 마른 상태라 엘리야나 엘리사 선지자가 와서 하나님께 기도해도 다시 살리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물론 엘리야나 엘리사 선지자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그 아이들을 살리신 것이니, 혹시 누군가 그 마른 뼈가 생명을 얻도록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살리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한다고 다 yes는 아닙니다.
모든 기도에 yes로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답은, yes, no, wait 세 가지입니다.
생명을 거두시거나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어떤 분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으로 죽는 사람도 하나님이 그 생명을 거두신 것이냐고 질문합니다.
원칙은 그렇습니다.
이 세상 만사는 하나님 섭리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나 사건이나 사고 혹은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 것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습니다.
인간의 죄와 폭력과 오류와 허물과 지도자의 욕심이 더 큰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5:23 KRV 에서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 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죄 용서는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일어나 걸어가라는 것은 육신을 고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영혼 구원과 육신을 고치는 일을 다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영혼 구원과 육신을 고치는 일을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만 "네 죄가 사하여졌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석가, 공자, 마호멧 혹은 그 어떤 이도 "네 죄를 사하노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주기도문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하는 것입니다.
사람끼리 잘못과 죄는 서로 화해와 용서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계에서 죄는 하나님만 우리 죄를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제한된 범위에서 의술의 힘 등으로 육신의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용서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하나님만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물었습니다.
"이 뼈들이 살 수 있느냐?"
그 마른 뼈들은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합니다(MacArthur study bible,1174).
포로로 바벨론 나라 등의 이방나라에 잡혀간 백성 상태는 마른 뼈처럼 죽은 자와 같은 삶이었습니다.
나라가 기능하려면 영토, 백성, 주권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영토를 뺏겼고, 주권이 없었고, 백성은 포로 상태였습니다.
나라가 마비상태 혹은 망한 모습, 죽은 것과 같았습니다.
흩어져 포로가 되어 사는 백성 개개인은 절망과 좌절 속에 죽지 못해 살았습니다.
에스겔에게 "이 뼈들이 살 수 있느냐?"라는 하나님의 질문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백성은 부활의 교리를 알았습니다(왕상17; 왕하4; 13:21; 이사야25:8; 26:19; 다니엘12:2; 호세아 13:14).
이사야 선지자가 기도하니 여인의 죽은 아들을 하나님이 살리셨습니다(열왕기상 17장).
엘리사 선지자가 기도하니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하나님이 살리셨습니다(열왕기하 4장).
엘리사가 죽어 장사되었습니다.
모압 군대가 쳐들어 왔습니다.
어떤 사람을 장사 지내려다가 모압 군대를 보고 엘리사 무덤에 다급하게 그 죽은 사람을 던졌습니다.
당시 무덤은 동굴처럼 되어서 사람이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그 죽은 자가 엘리사 뼈에 닿자 살아나서 그의 발로 일어났습니다(열왕기하13:20-21).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그 죽음을 영영히 멸하시고
주 야웨께서
모든 얼굴의 눈물을 씻기시고
자기 백성의 모욕을 온 땅에서 제하실 것이라
야웨 말씀이라
(이사야 25:8; 참조: 개역개정, 허성갑 직역).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시체들이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깨어 노래하라
정녕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
(이사야 26:19; 참조: 개역개정, 허성갑 직역).
다니엘은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땅의 흙에 자던 이들중 많은 자가 깨어
영생을 얻거나
모욕으로 영영 부끄럽게 되리라
(다니엘 12:2; 참조 개역개정, 허성갑 직역).
호세아는 다음과 같이 죽음을 말했습니다.
쉬올의 손에서 내가 그들을 구속할 것이고 죽음에서 내가 그들을 구속할 것이다.
죽음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쉬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긍휼이 내 눈에서 숨겨지리라
(호세아 13:14).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
"주 야웨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겔 37:3).
인간은 할 수 없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릴 수 있습니다(마 9:5-6; Elicott's commentary, Bible Hub
app.).
죄인이 회개하고 거듭나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요한복음 1:13; Gill'exposition, Bible Hub app.).
사람이 하나님 아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것은 사람의 뜻이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요 1:13).
불신자가 하나님 아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골짜기 평지에 바싹 말라 널부러진 마른뼈가 다시 사는 것과 같습니다.
야웨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뼈들에게 예언하여 그것들에게 말하라
'마른 뼈들아
야웨 말씀을 들어라(4)
주 야웨께서 이 뼈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 속에 영이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 것이다(5).
그리고
내가 너희 위에 힘줄을 주고
그리고 너희 위에 살을 입히고
그리고 너희 위에 가죽을 덮을 것이라
그리고 너희 속에 영을 주고
그리고 너희가 살리라
그리고 너희는 정녕
내가 야웨 임을 알리라(6)'"
그래서
나는 명령 받은대로
예언했다.
그리고
내가 예언할 때
소리가 났고
그리고 보니 진동하며
뼈들이 이어지고
뼈가 뼈에 닿더라(7)
그리고
내가 보았다
그리고 보라
그것들 위에 힘줄이 있었다
그리고 살이 올랐다
그리고 가죽이
그것들 위에
덮였다
그러나
그것들 안에
영이 없었다(8).
하나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불 같아서 냉랭한 심령을 녹이고
해머같아서 바위처럼 굳은 마음을 부수기도 합니다(예레미야 23:29).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은 믿는 자를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롬 1:16).
하나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서 사람의 심령을 꿰뚤어 봅니다(히 4:12).
이 뼈들은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절망했습니다.
"우리 뼈가 마르고
우리 소망이 없어졌다
우리가 끊어졌다(11)."
그러나 에스겔 37장 본문은
"사망이나 생명이나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의 하나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롬 8:38-39)"는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에스겔은 유다와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망하고 포로기에 예언했습니다.
에스겔은 주전 597년 1차 유다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그 후 11년 동안 유다(에스겔1-24장)와 주변 국가들(에스겔25-32)에게 파멸의 어두운 메시지를 전했습니다(NIV study bible,
1246-1247).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불탔습니다.
2차 유다 포로가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다윗 왕조는 막이 내렸습니다.
그 소식을 접한 에스겔은 하나님 나라 회복과 그 영광을 예언했습니다(겔 33-48장).
그중에 에스겔 37장, 특히 마른뼈 환상은 이스라엘 회복과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표면적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께서 바벨론 신들에게 패배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바벨론에 의해 거룩한 도시와 성전과 거룩하신 하나님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땅과 집과 재산이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깨고 우상숭배와 불의에 빠진 이스라엘을 이방나라 바벨론에 내어주신 것입니다.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과 그 성전이 이방신들을 섬기는 바벨론에 무너지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수치였습니다.
그러나 타락하여 구제 불능 상태에 빠진 이스라엘이 재창조 되려면 하나님 자신이 당하는 수치를 감내하셔야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 택한 자들을 거듭나게 하시고자 십자가 고난을 감수하시고 물과 피를 흘려 죽으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말씀과 영으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직접 개입하지 않으시고 선지자 에스겔을 세우시고 그의 입을 통해 야웨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 일하게 하셨습니다.
항상 하나님 말씀과 성령이 일하심으로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기도 합니다(요1:1).
항상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에스겔에게 말씀을 예언케 하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에스겔에게 그 영에게 예언케 하여 죽은 자들을 숨쉬게 하신
분도 하나님입니다.
마른뼈가 생명을 얻고 큰 군대를 이루게 한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우리 주님이십니다(Stan Mast, 에스겔 37:1-14주석, cepreaching.org).
하나님 명령대로 에스겔이 예언('나바'가 8회 쓰임)하고 성령이 임하셨습니다('루아흐'가 9회 쓰임).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을 통해 일하신 것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 말씀 대언자로 쓰임 받았습니다.
오늘날 말씀 대언자는 일반적으로 목사가 감당합니다.
말씀이 전해질 때 성령이 일하십니다.
마른 뼈가 이제 사람의 형체를 다시 가졌으나 그 속에 영이 없었습니다.
영이 없으면 진열장의 마네킹과 같습니다.
생명체가 될 수 없습니다.
인격체가 아닙니다.
요즘 AI 로봇이 빠르게 발전합니다.
그 기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 속에 영이 없으니 그냥 인간이 만든 로봇입니다.
영은 어디에서 옵니까?
그리고 그가 내게 말씀하셨다.
"그 영에게 예언하라
인자야 예언하라
그리고 그 영에게 말하라
주 야웨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방에서
그 영이 와서
이 죽임 당한 자들을
숨쉬게 하여
그들이 살게 하라(9)"
내가 명령받은대로 예언했다.
그리고 그 영이 그것들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이 살았고
그들 발로 섰다
매우 매우 큰 군대였다(10).
마른뼈가 생명을 얻고 큰 군대를 이루는 환상은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 회복을 말합니다(12-14).
마른 뼈가 골짜기 평지에 널려 있는 것은 처절한 전투가 벌어져 칼이나 창 혹은 화살에 죽은 자들이 매장되지 못하고 방치되었습니다.
들의 새나 짐승이 와서 죽은 자들의 살을 쪼아 먹고 뜯어 삼켰습니다.
그리고 뼈만 남고 서로 탈골되어 이리저리 땅에 딩굴며 널부러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자요 하늘, 땅, 바다 생물을 다스리는 인간이 죽어서도 짐승이나 새에 그 살이 먹히는 가장 비참해진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이 아담과 이브의 죄의 결과입니다.
그 모습이 선민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의 말로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자손 이스라엘을 구분하여 택하시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나라 사람의 정체성을 잃었습니다.
그들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서 이방인들처럼 살았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불의하고 음란해졌습니다.
솔로몬은 이방 여인들을 많이 아내로 삼고 이방 풍속을 따라서 우상을 섬기는데 앞장섰습니다.
결국 그의 아들 르호보암 때 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졌습니다.
그후 세월이 흐르며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하고 포로로 흩어졌습니다.
그뒤 남 유다는 약 100년 정도 겨우 명맥을 잇다가 결국 바벨론 나라에 망했습니다.
그리고 쓸만한 자들이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오늘 본문 12,13절에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 상태를 무덤 속에 갇힌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 무덤을 열고 하나님이 그들을 올려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갈 때 그들은 그가 야웨임을 알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마른 뼈와 같은 이스라엘을 "암미" 즉 "내 백성아"라고 부르셨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항상 자식과 자손에게 향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택한 백성이 이방인 군대 칼에 상하여 쓰러지고 매장되지 못하고 짐승 밥이 되고 마른 뼈가 되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도 함께 쓰러져 누워 계신 것과 같습니다.
"내 백성아"
"내 백성아"
"내 백성아"
무덤 속에 갇힌 것처럼 망한 백성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할 때
그곳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내 백성아"
"내 백성아"
그래서 에스겔의 주제는 "야웨 삼마" 즉 "야웨께서 거기 계신다"입니다(에스겔 48:35).
여러분이 나는 혼자야 라고 외로움과 고통에 신음할 때 하나님은 거기 함께 계십니다.
여러분과 함께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저와 여러분과 자녀들 자손들 되길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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