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도 거의 끝 무렵입니다. 요즘은 김장을 담그지 않고, 그때그때 사 먹는 이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김장은 아직도 대부분의 집에선 일 년 농사입니다. 특히 저처럼 신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김장김치는 1년 반 정도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는 보약 이상의 찬입니다. 어린 시절, 4남매에 막내이모까지 한 집에 산 때가 있었습니다. 하루에 도시락을 7개씩 싸야하는 어머니께 가장 값싸고 쉽게 준비할 수 있는 반찬은 김치였습니다. 그래서 김장을 130포기씩이나 담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배추 사와서 축담에 쌓아놓고 얼지 않게 허드레 이불로 덮어두고, 절이는 24시간여의 과정은 참 힘들었습니다. 김장을 할 때 양념 만들고 버무리는 것보다는, 배추 절이기가 맛에 더 큰 영향을 주고, 힘도 많이 듭니다. 배추를 절이기 위해 배추를 자를 때, 배추 밑동 쪽에 칼집을 낸 뒤 손으로 쪼개면 전체를 칼로 잘랐을 때 배춧속이 떨어져 나오는 걸 피할 수 있습니다. 배추를 양념에 버무리기 전에 소금에 절이는 건 밑간이 배게 하는 의미도 있지만, 배추의 물이 빠져나오면서 해로운 미생물이나 세균이 번식하는 것을 막고, 김치가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랍니다. 배추는 반쪽이나, 1/4쪽으로 쪼개 배춧잎 2~3겹마다 사이사이에 천일염을 뿌려준 다음, 속이 위로 오도록 누여 머리 부분을 엇갈리게, 윗부분이 수평이 되도록 크고 넓은 그릇에 담아 소금물을 붓습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아래쪽의 것은 위로, 위의 것은 아래로 오도록 뒤집습니다. 절여진 배추는 건져서 넓은 채반에 엎어 물기를 빼고 서너 번 씻어 다시 물기를 빼주는 걸 반복합니다. 마지막으로 건져서는 배추 속이 아래로 향하도록 해줍니다. 이 과정이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힘도 많이 듭니다. 그래서 요즘은 절임배추를 사서 김장 담그는 이가 많이 늘었지요. 단가야 조금 비싸지만 밤잠 설치고 간 밴 무거운 배추를 몇 번이고 아래 위 바꾸어 포개는 수고를 피할 수 있고, 맛이 어느 정도 보장되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며칠 전 제가 소속된 봉사단의 주 봉사처인 셀린의집에 김장봉사를 하였습니다. 200포기, 적지 않은 양이었지만, 직원과 봉사자의 손이 합쳐지니 생각보다 빨리, 두 시간여 만에 끝이 났습니다. 몇 년 째 김장봉사에 참여하다보니 이젠 김치통을 보면 2개의 대형 김치 냉장고와, 1개의 대형 냉장고 중 어디 갈 것인지, 마지막에 남은 통을 어떻게 테트리스 하듯 짜 맞춰 넣을지, 그냥 자동적으로 위치선정, 적재가 됩니다.
학창시절, 자식들이 거들긴 했지만, 그 많은 양의 김장을 친구 한 두 분과 해내시는 걸 보면 어머니는 참으로 강하셨습니다. 맛도 최강이었습니다. 전혀 질리지 않았습니다. 제 신혼 초까지는 개인 주택에 사셨기에 김장독을 묻어 저장을 하였고, 그래서 더욱 아삭하고 시원한 맛을 오래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참 좋았습니다. 김장 거들면서, 어머니께서 떨어진 속꾸뱅이에 양념을 발라 주시면 그걸 날름날름 받아먹으면서 물도 많이 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만, 이젠 추억의 한 페이지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결혼 후에도 이십 수년을 어머니와 함께 김장을 해왔습니다만,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김장 포기 선언을 하신 후엔 처가에서 해주시는 김장김치를 얻어먹습니다. 이제 어머니의 김장 맛은 관념 속에 남아 있고, 장모의 손맛에 길들여졌습니다. 처가에서는 김장김치에 김장무를 넣지 않으시기에 삭은 무를 젓가락으로 푹 찔러 한 입씩 베어 먹던 어머니표 곰삭은 맛은 추억이 되어 버렸습니다. 간혹 아내의 수강생이 김장김치 몇 쪽을 맛보라 주시기도 하고, 지인이 한 통씩 주기도 하기에 다양한 김장 김치를 맛보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김장은 나눔이고 사랑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김치국물을 가슴에 흘려도 좋겠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소속된 민들레봉사단의 주 봉사처인 셀린의집 김장 봉사를 하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3288166732
가슴에 묻은 김치국물(모셔온 글)=======
점심으로 라면을 먹다
모처럼만에 입은
흰 와이셔츠 가슴팍에
김치국물이 묻었다.
난처하게 그걸 잠시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평소에 소원하던 사람이
꾸벅, 인사를 하고 간다.
김치국물을 보느라 숙인 고개를
인사로 알았던 모양
살다 보면 김치국물이 다 가슴을 들여다보게 하는 구나
오만하게 곧추선 머리를 푹 숙이게 하는 구나
사람이 좀 허술해 보이면 어떠냐
가끔은 민망한 김치국물 한두 방울쯤
가슴에 슬쩍 묻혀나 볼 일이다.
-----손택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