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장의사
"세월이 약이겠지요."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죽을 것 같은 실연의 상처도 세월이 지나면 무뎌지거나 잊혀지게 마련이어서
세월이 약이라는 데는 대체로 공감이 갑니다.
그런데 세월을 약으로 쓰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곳이 있습니다.
디지털 세계로 규정되는 요즘 인터넷 관련 사이버 공간이 그러합니다.
사람의 기억력과는 달리 컴퓨터를 매개로 하는 메모리 체계는
한번 기억하면 일부러 지우지 않고는 절대로 없어지지 아니하여
즉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를 존중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요즘 평판관리사나 디지털 세탁소 또는 디지털 장의사로 이름하는
신종 직업이 생겨나 성업 중에 있습니다.
빅데이터, 클라우드, SNS 등 디지털 신기술의 발전으로
정보의 수집 및 공유가 대폭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증가한 정보의 양 때문에 개인 사생활의 노출이 심화되고
한번 노출되면 디지털 속성상 여기저기 복사되어 뿌려지기 때문에
그 족쇄에서 헤어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지요.
피해를 당한 사람은 불특정 다수의 보이지 않는 손과의 전쟁을 하여야 하고
개인적인 노력으로 서버를 찾아다니며 아무리 지우고 또 지워도
누군가 다시 올리기 때문에 지우는 속도보다도 공유의 속도가 빨라
죽을 만큼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디지털 장의사인데요.
그들은 각종 웹사이트에 노출된 개인의 디지털 흔적을 지워줍니다.
블로그, 카페 등에 파기되지 않고 남은 개인정보, 타인이 무단 게재한 사진, 영상, 댓글 등을 말이지요.
하지만 그 이용료가 싸지 않습니다.
업체마다 다르긴 하지만 사진 같은 것은 1장당 5만 원 정도로 비싸고, 한 달 이용료는 300만원에 육박합니다.
문제는 유포되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은
익명성 뒤에 숨을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이지만
내가 쓰고 기록하고 올린 것들이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고
어느 귀퉁이에 숨어 있다가 신상털기로 세상에 알려지기도 하고
그것이 나중에 일신상의 족쇄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지요.
편하고 좋은 사이버 세상이이고 문명의 이기이지만
생각 없이 욕망의 배설로서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이고
기록을 남김에 있어 글 한 줄, 단어 하나에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되는 큰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