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인생은 내 것.
세월 참 고약스럽다.
가끔 쉬었다가 가도 되는데 뭐가 그리 급한지 멈추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지? 하고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주시하다 말고 놀란 것은, 나 또한 세월과 별 차이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더란다.
왜 그랬냐고? 물고 싶었다.
스스로 물었더니 어처구니없게도 대답은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인 줄 알았다. 였다.
사실 어떻게 사는 것이 나다운 것인지 전혀 모르고 반평생을 흘려보낸 것이 맞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니 그 이후로 나란 존재는 없고 억척같이 돈을 벌고 그것으로 집안을 돌보고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의무감속에 살았다.
내가 왜 이렇게 살지? 라는 고급스러운 고민 따위는 아예 할 수 없었기에 내가 사는 방식에 대한 어떤 의문도 없었고 당연히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돈을 벌고 의식주를 책임져야 하는 의무감만이 늘 나를 압박해 그냥 생각 없이 열심히 살아온 것이 내 인생의 전부다.
그렇게 살다가 49살 즈음에 의문이 들었다.
이게 뭐지? 난 그냥 이렇게 늙어가다 죽는 것. 이것이 내 인생이냐며 서글픈 생각이 들고, 세상에 태어나서 오직 한 사람만 사랑하겠다고 결혼식 때 약속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정조를 지키고 지아비나 아비의 의무만 충실하며 사는 게 내 인생이냐며 혼자 있는 시간 동안 허공에 대고 수없이 되뇌며 잠을 설치는 밤을 맞이하기도 했다.
회사를 관두고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다른 사람을 사랑해보고 싶은 불순한 감정에 사로잡혀 보기도 하고,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방황 속에서 컴퓨터 음악방송을 접하게 되고 헛한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은 음악을 듣는 것이고, 그것으로 마음에 위로와 안정을 취하고 있을 때 나도 해보고 싶은 관심을 느껴 자주 가는 컴퓨터 음악방송 디스크자키에게 방송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여 배워서 음악방송을 하고 난 뒤 밤이 나에게 주는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방송하면서 사람들과 먹고사는 걱정이 아닌 여지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다양한 종류의 생각들을 교환하면서 아내 아닌 누군가가 좋아지는 마음속 또 다른 감정이 잉태함을 깨닫고 새로운 활력이 찾아들고 있음에 놀라기도 했다.
혼자 아는 비밀이라면 가끔은 설레는 느낌도 좋고 또 다른 대화가 가져다주는 활력이 상당한 매력으로 다가와 황홀할 때 가만히 몇 날 며칠을 지켜만 보던 아내가 한 말, “육체적인 바람만 바람인 줄 아시는 모양인데 정신적인 바람도 바람이니까 조심해요.”라는 짧고 굵은 한마디였다.
부인하고 싶었지만 사실 부인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 것은 한동안 잊고 살았던 사랑하는 감정을 지금 느끼고 있으니 아내의 말을 부인할 수 없음을 깨닫고 인정했다.
그것도 두리 뭉글하게 그런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내는 참 지혜로운 여자였다는 느낌이 있다.
만약 모른 척 내버려 두었다면, 만남.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나쁜 흔적들을 만들지 않았을 거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 충격요법에 정신이 들어 수많은 하객 앞에서 검은 머리 파 뿌리 되도록 사랑하겠느냐는 주례의 물음에 네라고 대답한 그 약속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오늘이 존재하니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우쨌던 시간은 흘렀고 사회생활도 내 의사와 관계없이 관둬야 하는 시간을 맞이하고 그렇게 열망하던 내 나름의 시간이 찾아오고 보니 어느덧 인생은 석양길에 접어들어 바쁨이 없는 느긋함이 연속되고 있다.
아침에 제시간에 일어나 출근을 해야 하는 의무도 해제되었고, 식사시간을 맞춰야 하는 의무감도 없는 자유인인 된 것은 천만다행이지만 인간의 습관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오늘도 어제 그때처럼 그 시간쯤에 잠에서 깨어나고 변함없이 아내가 차려준 아침상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 신비롭다.
노는 게 지겹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고, 주어진 환경에 자연스럽게 순응하면서 추하지 않은 모습으로 늙어가고 싶은 생각은 늘 가지고 산다.
그래서 늦잠을 자는 것과 아침밥을 거르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아서 늘 한결같이 일어나고 아침을 맞이하지만 예전처럼 밥맛이 꿀맛은 아니니까 어느 순간 소식가가 되어있다.
서너 숟가락 먹으면 끝이다.
예전처럼 생선도 구워놓고 입에 맞는 나물을 가득 차려 놓아도 생각과 달리 속은 언제나 몇 숟가락만 먹으면 그만 먹으라고 난리를 치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잘 먹었소 하고 수저를 놓고 만다.
에너지를 소비하는 곳이 없어서 그런지 배고프거나 힘이 든다는 생각이 전혀 없어서 점심은 때론 굶기도 하고 건너뛰기도 하지만 그래도 얼굴에 살이 빠져 흉하게 변하지 않은 내 모습을 보며 신통방통하다며 혼자서 웃는다.
시간은 온통 내 편이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온전한 자유인이다.
돈을 벌고 싶은 생각도 없고, 돈에 대한 개념도 완전히 예전과 다르게 정립되어 부족함에서 오는 두려움 따위는 아예 없다.
코로나가 마음에 드는 것은 사람과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술잔을 나누는 기회가 줄어들어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누군가는 또 돈을 벌라고 닦달하지도 않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혼자서 히득거린다.
일주일 내내 한 푼도 없어도 상관없다.
굳이 사람 만나 술 마시고 히득거릴 환경이 아니니 돈에 대해 걱정은 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내가 다니던 목욕탕에서 코로나가 발생했다고 하여 두 달 이발을 못 하고 있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장발이다.
예전에 한창 젊어 청춘일 때 장발이 유행했고 거리에서 단속하는 때도 있었지만 원래부터 내 마음이 꽁생원에 가까워서 단속하는데 굳이 기르고 싶다고 맘을 내지 못하고 아예 시도도 해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나 보다.
‘이참에 머리를 장발로 길러봐’
불현듯 떠오른 옛 추억에 대한 보상심리 같은 게 약간의 설렘을 가져다주고 실행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기른 지 벌써 다섯 달 정도 된듯하다.
장발을 관리하기 위해서 해야 한 일은 파마였다.
그냥 무작정 길면 관리하기가 어려울 듯해서 미장원에 들러 미용사와 상의해보니 파마를 하시면 머리 관리가 수월할 수 있다는 말에 단 1초의 망설임 없이 파마를 했고 그렇게 장발을 향한 40년 내 마음속 아쉬움을 달래려 용기를 낸 것이다.
사실 머리를 기르니 기분이 상당히 만족스럽다.
나이가 들어 가나다란 머리카락과 빠져 횅한 기분이 드는 머리와는 달리 곱슬머리로 만들어 놓았으니 횅한 기분이 사라지고 듬뿍 내 머리를 온전히 덮고 있는 느낌 때문에 상당히 기분이 좋은 것은 틀림이 없다.
간혹 바람이 횅하니 부는 날 외출을 하면 파마머리가 예전 보았던 영화 가위손의 남자 주인공처럼 온통 부풀려져 하늘을 날아갈 듯하지만 내 현재의 정신상태와 일치하는지 만족감이 상당하다.
아마 몰라도 남들은 내 머리 상태를 보면 약간 정신상태가 이상한 사람은 아닐까 하고 의문을 가질지 모르지만, 자연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의 머리카락과 춤추는 모습은 항상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고 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삶은 이미 포기했다.
내 인생은 내 것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모습을 만들고 만족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동기는 물론 예전에 해보지 못한 아련한 추억 속 아쉬움 때문이겠지만 사실은 그냥 이다.
사람들을 만나면 머리 스타일을 보는 눈에 따라 다양한 표현으로 그 느낌을 말하다.
베토벤 같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신 나간 미친 천재 같다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평가에 관한 관심은 사실 없고 그냥 가위손의 남자 주인공의 머리카락이라며 웃어 넘긴다.
아내는 정신이 없다면 다시 단정한 모습이 좋으니 돌아갔으면 하고 바람을 전하지만 아직은 예전처럼 단정하게 머리를 손질하고 다니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의 나풀거림도 좋지만, 가끔 내 눈을 덮었다가 바람에 사라지는 머리카락이 스치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그냥 행복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다른 표현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규칙적인 것은 아니지만 간혹 불현듯 찾아드는 생각에 따라 다양한 일을 하고 있으므로 내 인생의 무료함은 전혀 없어 너무 기분이 좋다.
수채화를 그리고 산책을 하고 노래방 앱에다 노래를 부르고 이런 다양한 일거리들이 연이어 있으므로 남들이 볼 때는 무료할 것 같지만 무료함은 전혀 존재하지 않고 나름의 방식대로 집에서 뒹굴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누군가 내게 당신의 직업이 뭐냐고 묻는다면 당당하게 대답한다.
나요 백숩니다. 하고
비록 백수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백수가 아니고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하는 일도 많은 나름대로 멋지게 시간을 할애해서 쓰는 백수니까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어쩌면 행운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굳이 내가 힘들게 노력하지 않아도 나를 바라보는 눈들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단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고 착각하면서 살지만 사실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으로 나를 인식하고 대하고 있음에 즐겁다는 얘기다.
굳이 돈을 벌지는 않지만, 남에게서 얻어먹는 술은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어른이 되었을 때부터 줄곧 40년 넘게 술을 마셨지만 언제나 술값 때문에 고민하거나, 먹고 싶을 때 못 먹어 한스러운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알코올 중독자는 아니고 그냥 취하기 위해 간혹 마시다 보니 굳이 술을 마시고 싶다는 욕망은 존재하지를 않아도 어떤 여건이 허락하면 마음 편히 허리끈 풀고 인사불성에 가까울 때까지 마시는 낭만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어중간히 마시면 오만가지 잡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우는 것이 싫어 일단 마시면 취해 아무 생각 없이 잠들 수 있을 때까지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함께 사는 아내는 늘 걱정이다.
나이도 있는데 너무 과음한다면서.
하지만 아침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거뜬히 일어나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장군이다. 하며 의아해 하지만, 사실은 내 몸이 견딜 수 있을 만큼만 마시는 방법을 터득한지 오래 되었다면 믿을지는 의심스럽지만 사실이다.
흔히 술을 마신 뒤 사람들은 갈증도 심하고 속이 아파서 온 종일 헤메는 경우가 허다한데 난 아직까지 뒷날 술 때문에 움직이는데 힘이 든 경우는 거의 없다.
체질인가보다,
시골살이에 대한 그리움도 있다.
그래서 혹여 그 그리움이 현실로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다가 요리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요리학원에 등록하여 양식을 배웠다.
꿈이 없으면 희망도 없다는 말처럼 이루어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혹여 기회가 온다면 작은 냉장고 냉동실엔 고기를 가득 채어두고 그리운 이가 오면 요리를 해서 대접해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한식은 함께 사는 아내가 대가니까 굳이 경쟁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호젓한 시골 툇마루에 술상을 챙겨 벗과 마주 앉으면 스테이크 한 조각을 직접 만들어 먹고 싶은 낭만이 아직도 내 속에는 늘 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해보고 싶은 생각은 다를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위해 미리 준비하는 것 또한 백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 같아서 학원에 다니면서는 신났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음식을 만드는 것 그것은 신기하기도 하지만 반드시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취미에 속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나고 즐거웠다.
아직도 그 실력을 내보일 날이 언제쯤 올지 모르지만 나 스스로 만든 음식을 누군가에게 대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벅찬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의 얘기에 관심을 버린 지가 오래됐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짓들을 하면서 만족하고 그것 때문에 행복한 것은 인생은 내 것이니까 내 맘대로 살고 싶다는 평소의 소망이 이루어졌기 때문인지 모른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든 상관이 없는 일이다.
흔히 말하는 나쁜 짓은 절대로 하지 않으니 굳이 누군가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 그렇게 살고 싶은 생각도 아예 없다.
글 쓰는 것도 취미가 있어 그냥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면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생각이나 자연스럽게 적어 내려가고 그것을 훗날 읽으면 그땐 그런 생각을 했구나 하고 혼자 감동하고 감탄하는 묘한 버릇도 있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는 삶은 필요하지가 않다.
그러니 혼자만의 시간도 늘 행복하고 즐겁고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하루가 참 수월하게도 지나간다.
연금이 나오면 내가 쓸 수 있는 용돈이 생기고 그 용돈으로 나보다 나이 어린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것도 나에게 있어서 빼 놓을 수 없는 행복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나보다 돈도 많고 벌이도 좋지만 난 그들이 술을 사주겠다고 제안해도 거절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그들과 만나 마시고 계산은 언제나 내가 한다.
왜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내 방식이기 때문이다.
늙어 나는 아직도 멋있다고 혼잣말로 웃고 말하지만 사실 거울 속에 드러난 내 모습은 주름과 흰 머리카락과 흰 수염이 가득 찬 영락없는 늙은이다.
이런 늙은이와 함께 술을 마셔주는 젊은 친구들이 늘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내 능력에 맞게 맛있는 술자리를 만들고 술을 마시는 것이다.
그래야 그들이 또 나를 반갑게 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늘 그렇게 한다는 얘기다.
참 재미있는 것은 세상 살면서 무리라는 단어와 익숙하지 않다.
무게 잡으려고 무리하여 지출한다거나 과신하기 위해 무리하는 짓을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쪼잔하다는 평을 듣지 않고 사는 것은 씀씀이의 방식을 내 수준에 맞춰 살아왔기 때문이다.
척이란 단어를 싫어한다.
없는 게 있는 척, 모르는 게 아는 척 등과 같이 위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있으면 있다고 말하고 없으면 없다고 말하며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을 좋아한다.
굳이 없으면서 있는 척, 모르면서 아는 척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들이 존재하듯이 사람마다 환경이 존재하기 때문에 굳이 거짓말로 상황을 때우고 싶은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 산다.
좋으면 좋은 것이고 싫으면 싫은 것이다.
좋은 것은 좋다고 말은 하지만 싫은 것은 굳이 싫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하지만 미워는 하고 싶지 않은 내 경험이 언제나 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과 미움은 똑같은 감정 곡선에서 나온다.
그런데 사랑하면 행복하고 즐겁지만 미워하면 나 스스로가 힘들고 불행해지는 경험 때문에 사랑은 하지만 미워는 하지 않는다.
굳이 미운 사람이 있다면 마음속에서 지워버리는 편이다.
쉽게 말하면 관심에서 제외하고 무관심해지고 싶다는 얘기다.
세상 이야기에도 관심을 없애고 살고 싶다.
그것은 내가 굳이 알아야 할 이야기도 아닐 수도 있고 그 쓸데없는 이야기 속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감정들이 늘 좋을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르면 그냥 불쾌한 감정이라든지 아픔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데 쓸데없이 알아서 내가 힘들어지는 것은 이미 나와는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만큼 한가한 인생이 아니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백수니까.
백수는 생산적이거나 생동감이 있는 일에 사실은 관심이 없다.
관심을 가진다고 해도 당장 내 인생이 새롭게 달라질 수 있는 여건도 아니거니와 나이가 너무 많아 내 관심에 다른 사람이 반응하지 않기 때문에 체념하고 있다.
혼자 생각하는 것, 이것은 누군가의 공감이 필요는 없지만 혼자 생각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그저 평화롭고 안온하다는 장점이 있다.
누군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동식물도 나에게는 평화로운 감정적 안락을 선물하고, 횅하니 지나는 바람도 가끔 가슴 한편을 뻥 뚫리게 하는 마력을 지녔음을 알기 때문이다.
장발하고 굳이 머리를 단정하게 관리하지 않아도 바람에 마음대로 흩날리는 머리카락의 스침이 너무 좋다며 혼자는 웃고 있는 내 인생은 분명 내 것이어서 좋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 좋은 생각이 스멀스멀 들어 좋다.
설령 아무일도 생기지 않을지라도 상관없으니 그냥 작은 움직임이 있는 이 공간에서 베란다에 있는 화분에 물을 주고 멍하니 바라보는 순간마저도 한없이 유쾌하게 만드는 나만의 세상이 바로 오늘이니까 좋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