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 다잉 (well dying)
이경선
‘서호’ 천의 푸르름이 베란다 창밖으로 하나가득이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푸른 빛은 점점 물감처럼 번져 호수 전체를 덮을 정도로 짙다. 며칠간이나 게으름으로 서호에 나서질 못했다. 바로 눈앞에 바라보는 곳에 있어서인가 직접 발로 딛지 않아도 대지의 숨결이 느껴져서인지 운동에 꾀를 피우고 있었다. 서호 천에는 건강해야 장수 한다는 이유 하나로 시간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형태로 몸을 움직인다. 호수를 걷다 보면 그동안 이슈가 되던 ‘웰 빙’이란 단어에 요즘은 한 단계 더 깊게 생각하여 이 세상을 잘 떠날 수 있는 것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사실 죽음을 생각하기에 이른 부분도 있겠지만 사람의 생명은 정답이 없고 또 누구나 가야하는 길이라 인생의 절반을 지낸 지금 크게 거부감이 없다. 태어나는 것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늘의 뜻으로 사람흉내를 내며 살았고 마지막 가는 길까지 흉내를 낼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고 잘 죽는 것일까 요즘 들어 부음소식을 자주 듣는다. 시댁에서도 윗세대는 거의 돌아가셨고 우리 세대에서도 옛 사람이 되신 분이 점점 늘어난다. 잘 죽는 것도 타고난 복이라고 어르신들이 이야기 할 때 그 의미를 몰랐는데 이젠 알 것 같다.
사람의 운명으로 태어나 의무를 다하고 칠성판에 누울 때까지의 삶을 인생이라 부른다. 불사조처럼 살 것 같던 사람도 홀연히 떠나는 걸 보면 나와는 멀기만 했던 장례식장이 이제 그리 무섭지만은 않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문화가 가장 큰 걸림돌이던 우리 사회였다. 일부 대기업이 사원 연수프로그램으로 유서쓰기를 하는 것도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유언장을 작성하는 모습이 매우 진지했다는 것은 그 만큼 소중한 인생이리라. 사전 유언장을 받은 배우자와 자녀들이 건강한데 무슨 유언이냐며 처음에는 놀라다가 쉽게 이해했다고 한다. 평소 유서를 쓰는 습관을 들이면 차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어 권유하고 있다는데 바로 그것은 내가 잘 살아 가는 방법과 맞아 떨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눈길 한번 받아보지 못한 풀잎도 창공을 나는 독수리도 설산의 호랑이도 누구나 땅에 떨어지고 쓰러져 뜯기고 바스라져 사라진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란 말대로 부여된 짧다면 짧은 각자 삶이 도화지에 붓을 빌어 발레를 한다. 완성된 것도 있을 것이고 미완성으로 바톤을 넘겨 줄 것이다. 호스피스들이 죽음을 앞둔 환자 천 명에게 들은 후회하는 것들이 생각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더라면,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더라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기억에 남는 연애를 했더라면,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살아온 증거를 남겨두었더라면’ 등등이다. 고개가 끄덕여 진다. 이 모든 것이 물론 제약을 받는 부분도 있지만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인데 후회 없이 사는 삶을 구상해 보는 것도 재고해 봐야할 듯하다. 또한 죽음에 대한 준비가 덜 된 환자일수록 임종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공포와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경우가 많고, 힘들게 정복한 산도 언젠가는 내려가야 하는 것처럼 인생 또한 하강하는 것임을 깨달으면 두려움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마음은 누구의 말도 빌릴 수 없으므로 추측할 뿐이다. 투병 중이던 지인은 죽음을 앞두고 자녀에게 엄마 없이도 강하게 살 것을 다짐받았다는 말을 건네며 초연한 표정을 지었다. 한 손으로 들어도 안아 올릴 수 있을 것 같은 그녀의 작은 몸은 서서히 이승과 멀어져 가건만 의식만은 생생한 것이 안타까웠다. 자신의 사후처리도 가족에게 부탁하여 편안하다며 빨리 고통 없는 곳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가엔 눈물 따윈 미리 저승에 보낸 듯했다. 건강할 때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아름다우나 빛깔마저 변한 채 매달려 있는 꽃은 처량하기 짝이 없다. 다행이 편하게 평소처럼 웃으며 떠났다는 말을 들었다. 장례식장, 단발머리 여고생 딸에게서 그녀의 생전 모습이 스쳐갔다.
멋지게 살고 아름답게 떠날 수 있는 인생의 끝을 곰삭혀 본다. 죽음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 느껴지고 남은 삶이 한층 귀하게 느껴지리라 생각한다. 잘 죽는 것(well-dying)이 잘 사는 것(well-being)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도 확연히 알게 되었다. 삶이란 한 조각의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음은 한 조각의 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던 서산대사의 말처럼 본시 구름은 없는 것이다. 죽고 사는 것도 그와 같다지만 요즘 후렴구처럼 자주 들리는 부음소식이 서글프다. 목 쉰 매미의 단독공연이 귓가를 때린다.
첫댓글 이런 글을 쓸수 있는 것은 작가 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 이런 훌륭한 재능은 많은 분들에게 글로 행복할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별 말씀을요. 부족하지만 노력하겠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에구.. 1004 님이 제목을 크게 만들어주셨군요 ~
깜짝 놀랐습니다 ㅎㅎ
유언~~저도 한번 써볼까요? 글쎄요. 유언을 누구에게 어떻게 무슨 글을 남겨야 할 지 ~~사랑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등등~ 부족한 나를 생각해주는 모든 이에게 먼저 고맙다고 해야겠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또 나를 사랑해준 친구들에게 더 많은 걸 주지못해 미안하다는 아쉬운 말을 전해야겠죠. 잘산다는건 물질적인 것보다는 꿈을 잃지않고 꿈을 향해 달리고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는 게 아닐까요? 글 잘보고 갑니다. ^*^
저도 아팠던 시절엔 유언 비스무리하게 아이들이 살아가는 것에 지침이 될만한 일들 적었었지요.
건강할때 적으면 감정에 치우치지 않을 것같네요
사후에 어떤 이로 남을지..
죽으면 끝이라지만 기억에 남아있으면 살아있는거라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감사합니다.
컴 고장으로 고쳐보다 새 컴으로 인사드립니다 ㅎㅎ
그러게여어떤 말을 유서에 남겨야할찌 생각을 안해봐서 함 생각해봐야겟써염근데 매미들은 한해 살면 끝인가여
청윤님의 조은글 생각하며 읽게 만드네염^^감사염
저도 글은 썼지만 실상 유언의 내용은 생각치 못했네요
달콤님~~ 매미와 단독 인터뷰 해볼까요?
겨우살이를 하겠지요~저도 몹시 궁금하네요~~^^
고맙습니다.
제 데뷔작도 삶과 죽음에 관한 얘기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삶과 죽음이라는 화두는 영원한 딜레마겠지요.
이승을 떠나지 못해 구천을 떠도는 망자도 있겠고 불생으로 도솔천에 머무는 이들도 있겠지만 죽음은 살아 있는
모두에게 두려운 숙제입니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천재작가인 '개미'의 작가 베르나르베르베르의 '타냐토노트'에 이승은 가 볼만한 또는 가게되는 곳인데 어차피 반드시 가야 할 곳이라면 마음 편히 가겠습니다.
아픈 적이 있었고 그 후 꼬박 두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죽음은 항상 남자의 가슴에 붙은 작은 돌기처럼 달고 가야하는 것 뿐이랍니다.
따스한 작품 앞에 죽음은 정녕 웰-다잉 입니다.
잘 지내시지요?
지난번 재미난 글에 사진상으론 병고를 겪지 않은 분 같았는데 동병상련의 맘이 전해집니다.
전 아프고 난 후에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했는데
다행이 이승을 다녀오진 않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갈팡질팡 했던 시절이 떠오르네요
어차피 AS받으며 살아야 하는 절반 인생이라 맘편히 먹을랍니다.
닥친다면 또 두려울 것이지만..
고맙습니다 .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