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액션 전문 여배우가 있다. 무작정 액션에 뛰어들어 액션 여배우로, 나아가 좀 더 커다란 연기자로 살아가고픈 그녀의 이름은 김효선이다. 좀처럼 쉽지 않은 길, 그녀가 들어선 그 길을 찾았다. 배우 김효선을 기억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머리를 써라’는 카피를 내걸었던 모 휴대폰 광고에서 현란한 발 차기를 선보이며 상대 남자를 곤죽나게 만들었던 사람이 바로 그녀다.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에서 ‘쌍문동에서 오신 효리님’으로 등장해 최민식에게 주먹을 날렸던 것 또한 그녀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맥주 광고와 <아라한-장풍대작전>의 쇼 프로그램 MC, 혹은 정철과 견우의 뮤직비디오로 그녀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심지어 그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단막 드라마까지 만들어졌다. 뛰어난 극의 완성도로 호평 받은 MBC 베스트극장 <액션 배우 정맑음>은 그녀의 삶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였다. 배우 윤진서가 극중 김효선의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생방송 화제집중> 같은 프로그램에서조차 김효선은 주목받는 대상이다. 올 초 방영된 <화제집중>의 ‘액션 배우 김효선 편’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녀의 존재를 새삼 일깨워줬다.
이처럼 김효선에 대한 미디어의 관심은 그치질 않는다.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매력적으로 만드는가. 액션이다. 그녀는 연기를, 그중에서도 액션 연기를 하는 배우다. “그럼 스턴트우먼인가?“라고 반문한다면 무식한 거다. 이제는 무술감독을 ‘스턴트 지도’로, 혹은 아예 스탭으로조차 취급해주지 않았던 그런 시대가 아니다. 고난도 액션 동작을 배우 대신 보여주는 대역 배우와 전문적인 액션을 연기와 함께 소화해낼 수 있는 액션 배우를 구분 짓는 일은 액션이라는 장르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작업이다. 김효선은 후자에 속하는 액션 배우다. 한국에는 이소룡이나 성룡, 양자경이나 장즈이 같이 완성도 있는 액션을 선보일 수 있는 전문 배우가 없다. 물론 그들을 능가할 무술 실력을 갖춘 이들은 많다. 그런 '배우'가 없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언제까지나 잠깐 연습한 액션 실력을 카메라 앵글과 편집으로 감춰가며 멋있는 척하는 배우와 영화들을 봐줄 수는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액션이라는 장르가 진화하고 배우들의 동작과 그들이 벌이는 합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이 날카로워지면서 한국에서도 자연히 액션 배우에 대한 수요가 생겨나고 있다. 액션 배우 김효선은 그런 대중의 수요를 미리 예측하고 ‘한국의 장즈이, 양자경’을 육성하기 위해 고민한 정두홍 무술감독의 ‘작품’이다. "한국의 장즈이로 만들어주겠다"고 이 바닥에 끌어들인 게 벌써 6년째다. TV나 영화를 통해 김효선의 화려한 액션 동작을 본 사람들이 그녀에게 묻는 첫 번째 질문은 늘 "무술이 도합 몇 단이세요?"다. 하지만 그녀는 단증이 단 한 개도 없다. 그녀가 정두홍에게서 배운 것은 액션 연기지 무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 액션 연기를 공부하기 시작했던 것이 열여덟 살이었던 2000년 여름. 제 나이 또래 아이들이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할 때 김효선은 맨 얼굴에 츄리닝을 입고 서울액션스쿨에서 뒤돌려 차기를 연습했다. ”여자로서 가장 많은 것을 꿈꿀 나이잖아요, 그런데 전 남들이 캠퍼스를 누비는 동안 죽어라 운동만 했어요, 고민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후회해본 적은 없어요.“주먹질 한 번, 발길질 한 번마다 유혹과 고뇌가 뒤따랐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진정 나의 길일까? 다른 데로 가서 나에게 맞는 다른 일을 찾아볼까? 하지만 의구심이 들 때마다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참고, 믿고, 다시 한 번 와이어 줄에 매달려 하늘을 날았다.
액션 배우 김효선이 있기까지
봄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던 날 신사동 더블 에이치 멀티짐에서 운동 중인 김효선을 찾았다. 더블 에이치 멀티짐은 정두홍과 이훈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피트니스 센터다. 서울액션스쿨이 경기도 파주로 이사하고 난 후에는 이 곳에서 주로 운동을 한다. 촬영이 없는 날이면 이렇게 운동을 하거나 학원에서 연기실습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녀에게 액션 배우 김효선의 탄생 비화를 물었다.
처음에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 어린 그녀의 눈에 비춰진 가수들의 세계는 황홀한 별천지 그 자체였다. 열여섯 살 되던 1998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무작정 기획사 문을 두드렸다. 기획사가 그녀의 예사롭지 않은 노래솜씨와 춤을 높게 평가한 덕분에 금세 녹음도 하고 데뷔를 기다리는 입장이 됐다. 구름 위를 걷는 듯, 하루 하루가 설레는 날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기획사 재정상황이 위태로워지고 언제 무대에 오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자 미래는 어두워졌다.
2년을 허비했다는 생각에 허탈해하면서도 그녀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드시 무대에 서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됐어요. 주저앉아 있는 편이 오히려 더 힘들었죠.” 서울액션스쿨의 존재를 안 것이 바로 이때다. 대학 방송 연예과에 진학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그녀는 “액션을 가르쳐주는 시설이 있는데 심지어 공짜라더라”는 주위의 소개를 듣고 당시 보라매공원 체육관에 입주해 있던 서울액션스쿨을 찾았다. ‘이걸 배워두면 틀림없이 나중에 쓸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다른 결정에 주위 사람 모두가 반대했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체육관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영화를 위해 한참 액션 연기 연습 중이었던 정우성. 눈이 뒤집혔다. 다짜고짜 정두홍 무술감독에게 “열심히 해보겠다” 했고,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정두홍 역시 흔쾌히 승낙했다. 여자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곳을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이 특이한 여학생을 모두들 좋아했다.
하지만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고된 것은 고된 것. “제가 운동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기껏 수영밖에 배워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하루 아침에 시커먼 남자들과 함께 훈련하는 게 쉬웠겠어요?” 기어이 사단이 났다. 그녀와 함께 액션을 배우겠다고 들어왔던 친구 한 명이 두 손 들고 나가버린 것이다. 나도 나가야 하나, 잠시 망설였지만 이쯤에서 그만 두려면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김효선은 혼자 남아 훈련에 매진했고, 정두홍은 그런 그녀를 눈여겨보게 됐다. 밖에서 주먹 꽤나 썼다는 사람들, 태권도장에서 십수 년 동안 관장 노릇을 하던 사람들도 한 달이면 진저리를 치며 도망치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끝장을 보겠다며 매달리는 김효선에게서 정두홍은 가능성을 봤다.
먼저 제의한 쪽은 정두홍이었다. “한국의 장즈이가 될 생각이 없느냐?”고 묻는 그에게 김효선은 믿고 따르겠다 대답했다. 이때부터 액션 배우 김효선으로 거듭나기 위한 고강도 트레이닝이 시작됐다. 어깨가 넓어지는가 싶더니 근육이 붙고, 걸음걸이가 달라지는가 싶더니 제법 날렵해졌다. 눈물 콧물이 흘러나올 정도로 힘들었지만, 단 한 번도 그만둬야겠다 생각해보지 않았다.
결정을 후회해본 적 역시 없다. 엉뚱하게도 데뷔는 장혁의 ‘헤이 걸’ 뮤직비디오였다. 김성수 감독이 연출한 이 뮤직비디오에서 전지현이 던진 벽돌에 놀라는 신부가 바로 그녀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꺼내고 나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내더라고요.” 본격적으로 영화에 데뷔한 것은 민병천 감독의 <내츄럴 시티>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정두홍이 ‘싸이퍼’라는 인물을 연기하기도 했던 이 영화에서 김효선은 사이보그 여전사 역을 맡아 열연했다.
사실 열연했다고 표현하기엔 민망한 출연 분량이었지만, 그저 시키는 대로 무조건 열심히 했다. 한 번은 사방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터널을 열심히 뛰어나가야 하는 장면이었는데, 별 다른 안전장치도 없이 촬영에 들어갔다. 뒤쪽과 머리 위쪽에서 정신 없이 폭발이 일어나는데 한번에 OK 사인을 받으려고 정말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결과는 NG. 알고 보니 폭발이 일어나면서 가느다란 나무 조각이 그녀의 머리 위로 떨어져 계속 꽂혀 있었고, 그것이 카메라에 잡혔던 것이다. 다치진 않았지만 만약 그것이 나무 조각이 아니라 송곳이었다면 어쩔 뻔했나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이후로 드라마 <대망>과 <무인시대>에 출연한 김효선은 지독한 슬럼프를 경험했다. 아무래도 미래가 걱정되고 물질적, 심적으로도 고민이 많던 때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까지 병환을 얻자 자포자기 심정이 되고 말았어요. 처음으로 모두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심각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전화위복이 될 만한 기회가 찾아왔다. 여태껏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모 휴대폰 광고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광고 에이전시와 감독 모두가 그녀를 지목했다.
애초 TV 광고는 무술에 능한 중국 사람을 기용하고 지면 광고만 김효선이 맡기로 돼 있었지만, 그녀의 발 차기를 본 광고 에이전시가 입장을 바꿔 방송과 지면 모두 연기하게 됐다. 광고에서 상대 남자를 엉망진창으로 몰아붙이는 격투기를 선보인 그녀는 장안의 화제가 됐다. 애초 2개월 계약이었는데 더하기 2개월, 그 위에 2개월이 더 붙어 총 6개월 동안 방송을 탔다. 심지어 자신이 그 CF를 찍었다는 ‘가짜 김효선’이 나타나 활개치기도 했다. 그동안 꾸준히 쉬지 않고 일을 해왔어도 단 한 번 제대로 외부에 드러나 본 적이 없는 그녀에게는 그 모든 유명세가 뿌듯한 것이었다.
그제야 부모님도 “네가 그렇게 잘 하는 줄 미처 몰랐다”며 딸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응원해주기 시작했다. 풀리지 않는 신세를 원망하며 새벽기도를 시작했던 그녀는 하늘을 향해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 번에 발 차기를 한 번 하면서 성공을 자축했다. 이후로는 배가 순풍을 탄 듯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아라한-장풍대작전>과 <주먹이 운다>,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와 정철, 견우의 뮤직비디오, 그리고 수 편의 CF에 출연한 그녀는 최근 <킬 러브>라는 DMB 영화와 류승완 감독의 신작 <짝패>를 작업했다. <짝패>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은 이범수를 지키는 4인방 가운데 한 명.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라는 후문이다.
한국에서 액션 배우로 살아남기
하지만 한국에서 ‘액션 배우’로 인정받는 일은 동시에 많은 것들을 잃는 길이기도 하다. 그녀가 액션을 배우게 된 동기는 ‘전문 액션 연기도 잘할 수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한 것이었지만, 액션 배우로 인정받는 순간 그녀는 그 단어 자체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액션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그녀의 연기력을 지레짐작하거나, 다른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때문이다. 인식의 골은 너무나 깊었다.
양자경이나 장즈이를 ‘배우’라고 부르건 ‘액션 배우’라고 부르건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그 두 개념을 구분 짓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액션은 몸동작만으로 인물의 감정과 입장을 전달해줘야 하는 고도의 연기 형태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배우’와 ‘액션 배우’는 서로 매우 다른 개념이기를 강요받는다. 액션 배우는 오로지 액션만을 하는 존재여야 하는 것이다. “사실 서울액션스쿨에 소속된 대부분의 식구들이 배우를 꿈꾸거든요. 하지만 사회의 고정관념 앞에서 번번이 깨지고 부서지는 거죠.”
액션을 바라보는 사회와 영화계의 시선이 아무리 변했다 해도, 액션과 연기를 서로 다른 것으로 치부하는 속사정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김효선의 경우 역시 여자라는 상대적 강점에도 불구하고 마찬가지였다. 몇 편의 뮤직비디오에서 액션이 아닌 멜로 연기로 인정받기도 한 그녀지만, 여전히 ‘액션 배우’라는 단어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언젠가부터 김효선은 ‘액션’이라는 말 자체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액션이지만, 액션 배우라는 호칭이 타인으로 하여금 그녀를 일방적으로 정의 내리게끔 하고 있었다. “액션은 제게 있어 양날의 검과 같은 것 같아요. 액션 연기는 저를 유명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매우 제한된 틀 속에 가둬놓고 말았잖아요.”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녀는 내내 그런 걱정뿐이었다. 기사가 나가고 액션 배우라는 이미지가 더 강해져버리면 어쩌나. 아니 난 액션 배우가 맞는데, 하지만 그것은 액션만 할 줄 아는 배우라는 의미가 아닌데. 나는 액션 이외에도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고,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결국 연기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왜 그걸 모를까. 고민은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고민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녀는 스스로 훌륭한 연기력을 갖춘 액션 배우라는 사실을 증명해내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액션 배우에 대한 사회의 관념을 앉아서 원망하기보다, 액션 배우가 곧 배우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기로 했다. 김효선의 차기작은 놀랍게도 MBC 뮤지컬 <인어공주>다. <록키호러쇼> <헤드윅> <그리스> 등 유명 뮤지컬을 성공적으로 이끈 바 있는 이지나 연출가의 작품이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 인어공주를 연기한다. 구걸해 얻은 역이 아니다. “인어공주 역의 배우가 좀처럼 캐스팅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건 하늘이 내려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뮤지컬 배우는 어린 시절 꿈인데다, 액션만 할 줄 아는 배우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거든요.”
마치 정두홍 무술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녀는 다짜고짜 연출자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오디션을 봤다. 다른 배우들 틈에 섞여 들어가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대사를 읊었다. 그리고 기어이 역할을 따내고야 말았다. 부담도 있지만 그보다는 새로운 것을 향한 호기심과 열정이 우선이다. 노래와 율동, 연기력이 필요한 이 작품에서 그녀의 천부적인 가창력과 다년간의 훈련으로 다져진 체력은 큰 무기다. 오랫동안 틈틈이 학원에서 연기를 익혀왔지만, 최근에는 개인 강사를 두고 맹훈련 중일 정도로 연기력 향상에도 매진하고 있다. 덕분에 그녀의 하루 일과는 운동과 연기 공부, 그리고 뮤지컬 연습으로 빼곡이 채워진다.
한국에서 액션 배우로 살아남기 위해선 우선 그 스스로 액션 배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에 처한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김효선은 지금껏 보여준 성실함과 끈기를 십분 발휘해 지금과는 또 다른 지점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그 여정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날, 한국의 장즈이가 되겠다는 그녀의 바람은 홍콩의 김효선, 미국의 김효선이 되겠다는 다른 바람들로 번져나갈 것이다. 미래는 늘 손에 잡히지 않을 듯 어렴풋해 보이지만, 그것을 단순히 고민하는 데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의 손끝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기 마련이다. 김효선은 그것을 증명했고, 또 증명할 것이다.
사진 김춘호 기자
허지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