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수주문학상 / 조수일
먹갈치 / 조수일
야행성이었다
달이 뜬 후에야 낡은 통통배를 밀고 바다로 향했다
대낮엔 모래 틈이나 펄 바닥에 엎드려
밤을 기다리는 갈치를 닮았다
딱 한 번 흙탕물에 발이 빠졌을 뿐인데
당신의 얼룩은 평생을 따라붙었다
어둠이 더 편한 밑바닥의 생
북항의 밤은 늘 멀리서 찬란하였다
날렵한 지느러미에 주눅 든 새끼들을 싣고
밤하늘의 유성을 따라가고 싶을 때도 있었을까
은빛의 유려한 칼춤으로
자신의 바다에서
단 한번도 刀漁가 되어본 적이 없는 아버지
갈라터진 엄마의 울음이 뻘밭에 뿌려지던 날
마지막 실존이었던 銀粉마저 다 털려
유영의 꿈을 접었던
평생 들이켠 바다를 다 게워내느라 갑판 위가 흥건했다
짠물을 다 마시고도 채우지 못한 허기
삶을 지탱하는 힘이 어쩌면
꿈을 좇는 허영인지도 모른다
바다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 갈치 떼
가쁜 숨 몰아쉬며
눈먼 만삭의 어둠 속에서 습관처럼
살점 저며주고 뼈만 남은 먹갈치 한 마리
또 한 번 서툰 몸짓으로 비상을 꿈꾼다
[심사평]
간결하면서도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시인의 고집이 느껴지고 삶의 리얼리티가 잘 드러난 작품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사물 혹은 인간에 대한 감수성에서 진정성이 느껴지며, 현장감 있는 언어와 경험의 감각화도 특장으로 여겨집니다.
주제의식 측면에서도 날것의 냄새와 형상을 통해 구현된 생명에 대한 옹호 혹은 생명 의식이 핍진하게 다가옵니다. 다소 재래적이고 퇴행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소재를 개성 있고 창의적으로 소화한 점도 미덕이라 여겨집니다. 「먹갈치」나 「대장장이 아버지」, 「곤포 사일리지」, 「박주가리 그녀의 옥탑방」 등에서 보여준 시인의 장점은 관념이나 상상 위주로 시를 끌어가는 작금의 주류적 경향과 대비됩니다. 자유로운 실험의식이나 언어의 밀도 혹은 미학적 측면에서 다소 부족하다 볼 수도 있겠으나, 기교에 기대지 않는 소박한 자기만의 발성법과 자기만의 화법이 시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는 점은 상찬하고 고무할 만한 매력이기도 합니다.
다소 낡아 보일 우려도 있는 시인의 성장사 혹은 가족사가, 그와 연루된 사물에 생명의 숨결을 부여함으로써 낡은 것이 새로울 수 있다는 것 또한 보여준 작품입니다. 이에 수주문학상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여, 조수일 시인의 「먹갈치」 외 7편을 제25회 수주문학상 당선자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심사위원 김해자(시인)
전반적으로 작품 수준이 고르고 안정된 어법으로 조형된 시들이 많았다. 행정심의에서 넘어온 413명 응모자의 전작을 5인의 심의위원들이 꼼꼼히 살피며 블라인드 사전심의를 진행한 결과 토론심의 대상으로 총 20명의 작품이 거론되었다. 블라인드 본심으로 만난 20명의 작품들은 각자의 개성과 특징이 분명하였고, 동시대의 문제의식과 미래적 징후를 드러내고 있었다.
토론심의에서 추천된 시편들 중 최종적으로 논의의 대상이 된 작품은 조수일과 함인우의 작품이다. 한국 시단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증명하듯 두 시는 경향 면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전자는 삶의 중력을 느끼게 하는 시어들을 조합해 ‘찬란한 설움’의 상을 응축해내는 능력이 돋보였다. 물질적 체험이 환기되는 비릿한 이미지 속에 통증을 이겨내는 회복력도 내장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다만 익숙한 시재들을 활용한 고전적 어법이 자칫 고전적 정서로 흐르지 않는지 염려되었다. 후자는 발상의 부력을 느끼게 하는 시어들이 시 안에서 자유롭게 일렁이고 있었고, 리드미컬하고 감각적인 표현들을 생의 비의와 연결하는 능력도 탁월했다. 입체적인 각도에서 시적 정황을 조성하는 지점도 매력적이었다. 다만 정제된 시어들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는 일부의 시편이 다소 낯설게 다가오지 않을까 우려되었다.
두 시인이 보유한 고유한 미덕을 저울질하여 한 명의 당선자를 꼽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다. 수주 선생이 노래한 『조선의 마음』이 오늘날의 현재적 언어로 현상된다면 어떤 형태일 것인가를 고심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고민들 속에서 원형적 상징과 실존적 속울음을 결합하여 ‘설움’의 복합체를 생생히 주조해낸 조수일의 작업이 좀 더 선명한 의미로 다가왔다. “깊이를 가늠하지 못”하는 시의 “뻘밭”에서 설움의 진경을 예시해준 당선자에게 감사와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심사위원 노지영(문학평론가)
수상작으로 선정된 조수일 씨의 작품들은 건실하고 견고한 서정적 작법이 매우 뛰어났다. 작품들 사이의 편차가 지극히 적은 균질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 공동체에서 비교적 친숙한 소재를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리는 역량에 적지 않은 신뢰가 갔다. 수상작으로 뽑힌 <먹갈치>는 밤바다에서 생의 어둠을 은빛 칼춤처럼 다져온 아버지의 모습이 먹처럼 번져오는 감동적 시편이었다. 최근 인류사적 의제인 생태적 사유에도 큰 시사를 줄 작품이었다. 나아가 <들독>, <곤포 사일리지> 등에 나타난 개성적 화법 또한 수상자로서 모자람이 없는 수준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최종적으로 논의가 된 함인우 씨의 작품들은 꽤 긴 호흡을 능숙한 시적 발화로 이어가는 역량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특별히 <역류성 식도염>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존재론적으로 다룬 활달한 보고서이자, 시간성에 대한 사유가 위트 있게 전개된 명편이었다. 다음 기회에 더 커다란 영예가 있기를 빈다. 결국 수주문학상은, 심사의 공정함과 투명성을 자산으로 하여, 가장 든든한 균형과 고전적 충격을 다시 한번 건넨 시세계에 돌아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심사위원 유성호(문학평론가)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다만 시가 어려울 필요가 전혀 없는데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어 안타까운 마음을 지우지 못했다. 요즘 우리 시가 독자를 잃어가는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생각이다. 시라는 장르가 갖고 있는 형식미는 일체 사라지고 무언지도 모르는 채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향해 무작정 앞으로만 달려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선작 <먹갈치>의 시인은 이런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자신의 일상적 주변에서 얻는 평범한 소재에 생각하는 바를 편안하게 담아내는 솜씨가 돋보였다. 작품에 특별한 기교를 집어넣지 않는 점도 무한한 가능성을 짐작케 해주는 부분이다. 전반적으로 우리 시의 현재성은 역시 운문이라기보다 산문이라는 인식에서 별로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하였다. 작품의 질적 수준과는 다른 문제이지만 다음 해에는 시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형식미를 살리는 작품이 나타나주기를 기대해 본다.
심사위원 장종권(시인)
올해 수주문학상 응모작은 대체로 수준이 높았다. 예심과 본심을 거쳐 추천된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논의하였고, 그중 조수일의 시와 함인우의 시를 두고 오래 의견을 주고받았다.
함인우의 시는 간결하고 자유로운 언어와 경쾌한 리듬이 특징이었다. 긴 호흡으로 시를 밀고 가는 힘이 인상 깊었다. 조수일의 시는 투박하지만 단단했다. 삶을 토대로 한 언어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서로 다른 개성이었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오랜 숙고 끝에 조수일의 시를 당선작으로 정했다. 정직한 언어의 힘을 믿기로 했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최지인(시인)
[출처]제25회 수주문학상 / 조수일|작성자 ksujin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