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 살아오면서 가족에게 마음 걸린 일들이 많다. 오래 전 운전면허를 힘들게 취득하긴 했지만 자가운전에 자신이 없어 승용차 소유를 단념했다. 이러고 보니 기계문명에 종속되지 않은 자유로움을 얻은 대신 잃은 것도 있다. 가족끼리 단란하고 오붓하게 나들이 한 번 나가보지 못한 무능력한 가장이다. 자주 갈 수 없겠지만 집사람과 동행하여 백화점에 들려 보낸 느긋함도 갖지 못했다.
일 년에 집사람과 함께 바깥으로 나가 1박 2일로 보내는 일정이 네 번은 기본이다. 설과 추석 명절 고향걸음을 하여 큰형님 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온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면 신혼 이후 지금까지 여덟 명 대학 동기가 만나는 ‘회초리’라는 모임이 있다. 그간 삼십 년 가까이 된 모임이니 명산대천은 다 순례했다. 중년을 지나자 자녀들은 성장해 떠나고 어른들끼리 만나는 사이다.
회초리 회원들은 지난겨울 창원의 한 따뜻한 방에서 함께 밤을 보냈다. 그때 올 여름 모임은 경주 근교에서 텃밭을 가꾸는 회원의 농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회원 친구의 농장은 경주지만 청도와 인접한 산골이다. 여근곡으로 잘 알려진 건천읍에서 운문사 방향의 당고개 근처 깊은 산중이다. 친구 농장은 김유신이 신검을 얻어 시험해 본 바위가 쪼개졌다는 설화가 전해오는 단석산에서 가까웠다.
우리는 지난해 여름도 친구 농장에 모였던 바 있다. 지나간 겨울방학 때 나는 혼자 친구를 만나러 농장을 찾은 적 있다. 그때 눈이 많이 와서 타고 간 친구의 차는 아랫마을 어귀에다 두고 농장까지 걸어갔다. 밤을 새워 대작을 하고 이튿날은 참나무 장작을 패 놓고 나왔다. 친구는 나처럼 중등으로 전직했다가 초등으로 되돌아간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회원 중 교감으로 승진한 친구가 세 명이다.
팔월 둘째 주 토요일 아침나절이었다. 우리 부부는 창원시내 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하는 친구내외와 같이 경주 산내로 향했다. 밀양 얼음골을 거쳐 가지산터널을 지나니 석남사였다. 그곳에서 언양으로 가질 않고 좌회전하여 운문사 방향으로 가다가 고개를 넘어 산내로 가는 범곡천 따라 골짜기를 한참 내려갔다. 계곡의 민박집과 물가는 여름휴가를 맞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더위를 식혔다.
우리는 면소재지에서 매운탕 집을 찾아 들어갔다. 우리가 먹은 다슬기국은 일명 고디탕으로 민물음식으로 꽤 명성이 있는 식당이었다. 차림표에는 없었지만 현지 산골에서 생산된 곰취와 가죽나물 짱아지도 팔았다. 친구 농장은 면소재지에서 멀지않은 감산마을에 있었다. 마을을 지나 안쪽으로 조금 더 올라갔다. 친구는 하루 전날 먼저 들어와 청소도 하고 풀도 뽑으면서 우리가 오길 기다렸다.
천여 평 되는 농장에는 고추를 비롯한 여러 작물이 자랐다. 친구는 곰취나 더덕 같은 산나물과 약초 종묘도 구해 심어 놓았다. 닭장에 취미로 기르는 현인과 오골계는 백여 마리가 된다고 했다. 친구가 닭을 키웠지만 자기가 기른 닭을 살생할 수 없어 인근 양계 동호인한테 가서 회원들이 먹을 토종닭을 미리 사다 놓았다. 잔디마당 솥에다 오가피와 엄나무 같은 약재를 넣어 토종닭을 푹 삶았다.
나는 반바지 차림 농부가 되어 친구 농장 이곳저곳 김을 매었다. 시골 고향집 형님 댁을 찾아가도 나는 일거리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미다. 살림집 주변 널브러진 쓰레기도 치웠다. 어스름 해질녘이 되자 함양과 대구를 비롯한 각처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통영에서 와야 할 친구는 사정이 있어 빠졌다. 그림같이 파릇한 잔디밭에 식탁을 차렸다. 네댓 시간동안 고우다시피한 토종닭으로 안주를 삼았다.
늘 그렇듯 내가 먼저 잠에 들고 친구들은 밤 이슥하도록 잔을 주고받았단다. 이튿날 새벽 먼저 일어난 나는 할 일이 있었다. 숙소 뒤 호두나무 아래 표고버섯 참나무를 언덕 위로 올리는 작업이었다. 민달팽이가 표고버섯을 갉아먹어 위치를 바꾸어야했다. 친구들도 연이어 일어나 함께하니 수월했다. 창원으로 돌아오다 언양 자수정동굴에 들렸다. 산중 동굴 수로에서 시원한 보트를 타보고 왔다. 11.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