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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시의
유물 · 유적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의 고인돌군을 비롯해 성계리 신암마을의 고인돌군, 구월리 어유마을의 고인돌군 등 11기의 고인돌이 산재해 있다. 성터로는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부흥군을 토벌하기 위해 신라군이 주둔했다는 교동의 성산성터, 부량면의 명금산(鳴琴山) 토성터, 만경읍 성터, 성덕면 성덕리의 성덕산토성터, 금구면의 산성터, 황산면 난봉리의 도리봉 성터, 금산면 선동리의 상두산성터, 금산사 성터 등이 있다. 봉수대지(烽燧臺址)로는 남쪽으로 부안의 계화도(界火島)와 북쪽으로 옥구현의 사자암(獅子巖)을 연결하는 길곶봉수대지(吉串烽燧臺址)가 있다. 현존하는 사찰로는 삼불암(三佛庵) · 흥복사(興福寺) · 망해사(望海寺) · 문수사(文殊寺) · 귀신사(歸信寺) · 금산사(金山寺) 등이 있다. 금산면 금산리의 금산사 경내에는 금산사 미륵전(국보, 1962년 지정) · 금산사 대장전(보물, 1985년 지정) · 금산사 노주(보물, 1963년 지정) · 금산사 석련대(보물, 1963년 지정) · 금산사 혜덕왕사탑비(보물, 1963년 지정) · 금산사 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 금산사 금강계단(보물, 1963년 지정) · 금산사 육각 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 금산사 당간지주(보물, 1963년 지정) · 금산사 심원암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 금산사 석등(보물, 1985년 지정) 등이 있다. 또한 금산면 청도리의 귀신사에는 귀신사석탑, 귀신사부도, 귀신사석수가 있으며, 월촌동에 재궁리석등이 있다. 귀신사석탑, 귀신사부도, 귀신사석수는 1974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재궁리석등은 1976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사지로는 성덕면 대목리의 용호사지(龍虎寺址)와 석동리의 난와사지(蘭瓦寺址)가 있다.
유교 유산으로는 교동에 김제향교와 김제향교대성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71년 지정), 금구면 금구리에 금구향교와 금구향교대성전(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만경읍 만경리에 만경향교와 만경향교대성전(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이 있다. 또한 갈공동에 1652년(효종 3)에 세웠다가 1868년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으나 뒤에 중건한 백석서원(白石書院)을 비롯해 교동에 용암서원(龍巖書院), 백산면 하정리에 삼현서원(三賢書院), 진봉면 두곡리에 두곡서원 등 20여 개의 서원과 사우가 있다. 관아로는 1699년(숙종 25)에 중창되고 1881년(고종 18)에 중수된 교동의 김제동헌(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과 1667년(현종 8)에 창건된 김제내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가 있다. 시도무형유산으로는 향토술담기 송순주(전라북도 무형문화재, 1987년 지정), 김제농악 설장고, 상쇠(전라북도무형문화재, 1996년 지정), 악기장 장고제작(전라북도 무형문화재, 1995년 지정), 완제시조창(전라북도 무형문화재, 1995년 지정), 단청장(전라북도 무형문화재, 2007년 지정), 탱화장(전라북도무형문화재, 2002년 지정)이 있다. 고가로는 조선 말기의 실학사상가로서 황현(黃炫)과 함께 호남삼절(湖南三絶)로 불리던 이기(李沂)의 생가와 백산면 상정리의 이석정선생생가(전라북도 기념물, 1974년 지정)가 있고, 금구면 상신리에는 장태수선생유물(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83년 지정)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봉남면 행촌리의 김제 행촌리 느티나무(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 종덕리의 김제 종덕리 왕버들(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이 있으며, 신풍동에는 팔효사 은행나무(전라북도 기념물, 1996년 지정)가 있다. 또 제언(둑)으로 우리 나라에서 쌓은 것으로 가장 오래된 벽골제지(碧骨堤址)가 있는데, 김제 벽골제가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벽골제는 신라 흘해왕 때 쌓았다고 하며 이 외에도 50여 개의 크고 작은 제언이 있다.
교육 · 문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1404년(태종 4)에 창건해 정유재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635년(인조 13)에 중건한 김제향교가 최초이다. 이어 1407년 송전리(지금의 만경읍 몽산리)에 창건했다가 1637년 만경리로 옮긴 만경향교(萬頃鄕校)와 금구면 금구리에 1390년에 창건해 1404년에 중건하고 1675년에 금구리로 옮긴 금구향교(金溝鄕校)가 있다. 또한 교동에 1488년(성종 19)에 세운 용암서원(龍巖書院), 성덕면 묘라리에 1574년(선조 7)에 세운 남산서원(南山書院), 1577년에 세운 저산서원(楮山書院), 1602년에 세운 회동서원(檜洞書院), 1634년에 세운 지음서원(芝陰書院), 갈공동에 1652년에 세운 백석서원(白石書院), 백산면 학당리에 1654년에 세운 학당서원(學堂書院), 1844년에 세운 삼현서원(三賢書院), 1827년(순조 27)에 세운 구암서원(龜巖書院) 등은 1868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기 이전까지 많은 유생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아울러 1653년에 팔효사(八孝祠), 1575년에 구성사(九成祠), 1663년에 육송사(六松祠) · 낙양사(洛陽祠), 1573년에 쌍계사(雙溪祠)를 창건해 유생들이 재실에 기거하면서 교육을 받았다. 신교육기관으로는 1908년 김장호(金漳昊)가 백구면에 신명학당(新明學堂)을 설립, 개교했는데 뒤에 치문보통학교(致文普通學校)로 개칭되었다. 이 보통학교는 오늘날 치문초등학교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한편, 같은 해에 김제중앙초등학교의 전신인 사립 삼성학교가 세워졌고, 1910년에는 이낙조(李樂祖)가 지금의 공덕초등학교의 전신인 사립 호성학교를 개교하는 등 많은 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
중학교로는 1947년에 설립한 김제공립초급중학교가 1951년 김제중학교로 되었고, 1941년 김제공립고등여학교가 개교해 여학생의 교육을 담당했으며, 뒤에 김제여자고등학교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 36개교, 중학교 13개교, 고등학교 10개교가 있으며, 한국폴리텍V대학이 있다.
또한 시립도서관(만경분관 포함)과 원평공공도서관이 있어 이 지역의 교육 ·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문화행사로는 벼 재배의 유구한 역사를 되새기기 위해 국악잔치 · 농악놀이 · 단야뽑기 등을 경연하는 벽골제(碧骨祭)가 매년 시행되어 왔으며, 매년 음력 9월 9일을 시민의 날로 제정하고 이 날을 전후해 벽골제행사와 병행해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또한 지평선축제 · 벚꽃축제 · 포도축제와 같은 다양한 문화관광축제도 매년 열리고 있다. 1966년에는 김제국악원을 설립해 국악의 이해와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제문화원은 사단법인으로 지방문화진흥을 위해 발족해 이 지방 향토문화발전에 공헌하고 있다. 또한 벽골제의 복원과 함께 우도농악관과 수리민속유물전시관을 건설, 국내 유일의 동진수리민속박물관을 건립하였다.금산사가 위치하고 있는 명산 모악산 주변에는 과거 신흥종교와 무속종교가 크게 번창했으나, 현재는 증산교 · 대순진리교 등의 교당이 있다.
민속
농업을 주생활로 하는 이 지방에는 농경문화 속에서 이루어진 벽골제의 쌍룡놀이와 풍년을 비는 마을당제 때 행하는 선돌줄다리기가 유명하다. 또 김제의 농악놀이는 옛날 전라우도에서 이름이 있었으며, 지금도 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벽골제쌍룡놀이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이 곳 부량면에는 백제 때 농경지의 수리시설로서 쌓은 벽골제가 있었는데, 그 아래 두 개의 용추(龍湫)에 백룡과 청룡이 살고 있었다. 백룡은 성질이 양순해 수리시설의 제방을 보호했는데, 청룡은 심술궂어서 때로 성을 내어 노도(怒濤)를 일으키면 제방이 무너지곤 하였다. 신라 원성왕 때 무너지기 직전에 있는 제방을 수축하기 위해 조정에서 기술감독으로 원덕랑(元德郎)을 보냈다. 벽골태수 유품(由品)의 딸 단야(丹若)가 원덕랑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원덕랑의 약혼자 월내(月乃)가 멀리 경주에서 찾아왔다. 이 때 청룡이 성을 내어 백룡과 싸움이 벌어지고 제방이 무너지기 직전에 이르렀다. 당시에는 이렇게 되면 처녀 하나를 청룡에게 제물로 바쳐야만 무사하게 된다는 풍습이 있었는데, 태수가 낭자 월내를 밤중에 보쌈해 용추에 넣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것을 미리 알게 된 단야가 그를 대신해 제물로 희생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 이 곳 주민들은 단야의 거룩한 연정을 기념하는 뜻에서 해마다 이 축제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쌍룡놀이의 내용은 벽골제 밑에서 백룡과 청룡이 싸우다가 백룡이 패하는 광경과, 단야가 청룡 앞에서 제방의 영원한 보호와 원덕랑의 성공을 빌면서 희생되는 광경을 놀이로써 연출하는 것이다. 선돌줄다리기는 벽골제를 쌓고 해마다 풍년을 기원하는 뜻에서 입석을 세웠다는 설과, 벽골제 사이에 당재와 토끼재를 연결하는 능선이 작은 구릉을 이루고 있어 터가 세기 때문에 이를 누르기 위해 김제동헌에서 입석을 세웠다는 설이 있다. 아무튼 삼국시대의 유물로 내려오는 이 돌 앞에서 정월대보름날 밤 달이 동쪽 하늘에 떠오르면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이 때 쓰이는 줄은 5, 6척 되는 큰 동아줄을 만들어 이를 원줄로 하고, 여기에 개인의 손아귀에 들어 잡아당길 수 있는 작은 줄을 수없이 매 둔다. 줄은 남성과 여성을 뜻하는 수줄과 암줄로 나누어 만드는데, 줄의 머리에 모두 고리모양을 만들어 남성줄의 고리가 여성줄의 고리에 꿰어 들어가게 하고, 고리에 비녀장을 꿰어 두 줄을 연결시킬 수 있게 한다.
정월대보름날 밤 달이 뜰 무렵에 마을의 남녀가 모두 모여, 동쪽의 남성줄 머리에는 남자 한 사람을 태우고 서쪽의 여성줄 머리에는 여자 한 사람을 태운 뒤, 양편에서 줄을 메고 풍물을 울리면서 행진하다가 중앙 선돌 앞에서 양편이 서로 만나 두 줄의 머리에 있는 고리를 연결해 줄다리기를 한다. 남녀가 섞여 줄다리기를 하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로 변장하는 일이나, 또는 남녀의 풍기문란을 막기 위해 정절부인 중에서 금란사(禁亂使) 2명을 선정해 규율 단속을 한다. 이 줄다리기는 여성측에서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해 남성측에서 짐짓 져 주는 것이 상례이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선돌에 감겨 있던 묵은 줄을 풀고 새 줄로 감아둔다. 그리고 선돌 앞에 제물을 차려 놓고 축문을 읽으면서 당산제를 지낸다. 제사가 끝나면 술과 떡을 나누어 먹고, 석주의 주변을 돌면서 풍물놀이를 즐긴다. 이 밖에도 이 지방의 풍물놀이로서 농악의 전형적인 우도굿놀이가 유명하다. 이 곳에서는 명절이나 7월 호미씻이 때 각 마을 단위의 농악놀이도 성행하지만, 특히 추석에 두 마을의 줄다리기 경합과 동시에 농악놀이 경연이 매우 극렬하였다. 이 농악놀이 경연에서 지는 마을이 이기는 마을의 세금을 부담하는 경합까지도 한 적이 있었다. 이 놀이는 민족항일기 말에 중단되었고, 지금은 각 마을 단위의 농악놀이가 있을 뿐이다. 동제로는 부량면 대장마을 당산제, 봉황면 난봉리 당산제, 금구면 선암리 유령당산제, 금산면 금산리 산신제 등이 있다. 이들 제를 지내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정초에 풍물을 치고 마당밟기 · 당산굿치기 등을 한다. 동제는 대개 놀이와 상호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으나, 해가 갈수록 쇠퇴하고 있는 형편이다.
설화 · 민요
이 고장에는 지명유래전설이 많고 특히 벽골제와 관련된 전설이 유명하다. 「쌍룡추와 벽골룡전설」은 고려 고종 초기의 인물로 김제조씨의 시조인 조연벽(趙連璧)과 관련된 것이다. 원평천의 포교(浦橋) 근처에 있는 초혜산(草鞋山) 북단의 용추(龍湫)에는 백룡이 살고 있었고, 연포천(連浦川) 앞 용골마을 남단의 용추에는 청룡이 살고 있었다. 조연벽이 어렸을 때 꿈에 백의노인이 찾아와 자기는 벽골대제를 수호하는 백룡인데, 외지의 흑룡이 습격해 자기 집을 빼앗으려 하니 구원해 달라고 하였다. 이튿날 백룡이 흑룡과 싸울 때 조연벽이 활을 쏘아 흑룡을 죽였다. 그러자 백룡은 조연벽의 후손을 대대로 흥성하게 하겠다고 약속했고, 그 보은으로 조연벽은 이름이 세상에 크게 드러났으며 그 자손도 번창했다는 것이다. 「부잣집 손부(孫婦)와 이랴소리 전설」은 청하면의 장산리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마을에 천석꾼 김씨가 손자며느리와 함께 살았는데, 이 손부가 기운이 무척 세어 여장군으로 소문이 나자, 이를 조정에서 알고 손부를 죽일까 두려워한 김부자는 손부를 야반도주하게 하였다. 손부는 많은 의복과 곡식을 소의 등에 싣고 떠났는데, 청하산 고갯길을 소가 넘지 못하였다. 이에 끙끙대는 소를 짐을 실은 채로 번쩍 들어 자기 머리에 이고 걸어가자, 머리 위에서 배가 눌린 소가 고통스러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손부는 소가 지칠 때마다 머리에 이고 갔는데, 소가 더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고는 소가 지칠 때마다 “이랴, 이랴.” 하고 다그치며 고개를 넘었다. 그 뒤로 ‘이랴’가 소를 다그쳐 몰 때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그 밖에 승려와 아름다운 여인이 혼인해 불도에 정진했다는 「부설거사(浮雪居士)와 묘화부인(妙花夫人) 전설」, 부안군의 형제산이 풍랑으로 떠다니다 이 곳에 정착해 울었다고 해서 ‘울엉산’이라고도 하는 이야기 「명량산전설(鳴良山傳說)」, 「입석산(立石山)과 와석산(臥石山)싸움전설」, 「구렁이와 흥복사(興福寺) 전설」 등이 전해오고 있다.
이 고장에 구전되는 민요에는 노동요가 많은데, 평야지대이므로 농업노동요인 들노래가 중심이 된다. 들노래의 전승상태가 좋은 곳은 만경읍 대동리로, 모를 내기 전 논고르기에서 벼를 베어 내기까지 전 과정의 노래가 잘 전승되고 있다. 「모심기노래」는 “패랭이 꼭지에다/장화를 꽂고서/마호라기 춤이나 추어보세/여 · 이여 · 어여허 · 여루우/상 · 사아 뒤 · 여……”라고 해 후렴이 ‘상사디어’계이면서 앞뒤 여음이 풍부하고, 느린가락 · 빠른가락이 모두 있다.
「논매기노래」는 “……바람불고 눈비올 줄 알면/어느 뉘가 빨래질을 갈까/나아 · 하아 하아 · 헤 · /헤 · 헤어헤 에에헤에 헤헤헤/노호오오리 헤 · 에이 허 · 허리가/산아지로 고으나 에헤에에야……”로 후렴이 「만경산타령」과 비슷하고, 풍부하면서도 세련되었다. 벼베기노래」도 어느 지역보다 가락이 세련되었고, 「등짐노래」라고도 하는 벼를 져내는 노래도 “오오 · 허어 · 오/어허 · 어허 · 오호호/바늘같은 몸에다가/황소같은 짐을 싣고서/이 고개를 어이 넘어 갈꺼나……”라고 해 노동의 힘듦을 내용으로 하면서도 여음이 풍부하다. 「등짐노래」 · 「김매는 노래」 등은 앞소리 · 뒷소리의 교환창으로 부르는데, 받는 소리는 “아허허 허아하 에헤 · 에하 · ”, “아헤 · 에 에헤야 에헤오호” 등 모두 다양한 여음으로 구성되어 있고 풍부한 가락으로 부른다. 그 밖에도 「메물노래」 · 「지층개노래」 · 「나물노래」 · 「담배노래」 등이 있는데, “담장안에 담뱃모를 붓어서/낮이로는 볕내쐬고/밤으로는 이슬맞어/점점이 자라나니……”의 「담배노래」는 농사 짓는 모습, 식물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함께 담고 있다. “신통방통 고부랑통/인천 소금통/서울 오줌통/일본놈 장통/서양놈 우유통……” 등 어희요 계통의 「풍소요」가 많으며 「꼬리따기」 · 「다리빼기노래」 등의 동요도 있다.
산업 · 교통
만경강과 동진강 하류의 김제 · 만경평야를 끼고 있는 우리 나라 제1의 곡창지대이다. 2008년 현재 총경지면적은 2만8,325㏊로 경지율이 52.4%에 달하며, 그 가운데 논이 2만 3,977㏊로 83.8%를 차지하여 벼농사 중심의 주곡농업이 이루어진다. 시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이 논이어서, 농가 1호당 경지면적이 2.2ha로 영농규모가 상당히 크다. 논은 간척지인 진봉면 · 광활면 일대를 비롯한 거의 대부분이 경지정리가 잘 되어 있고, 수리안전답으로 농업기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광활방조제에서 생산된 쌀은 철 성분이 많아 김제 광활쌀로 유명하다. 부량면에는 삼한시대 이후 오랜 수리시설인 벽골제가 있으며, 일제강점기에 섬진강 상류에 축조한 운암제(雲巖堤)는 광활면 간척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수리시설이었다. 이 밖에도 금구면에 대율저수지, 백산면에 백산저수지 등이 있다. 쌀을 중심으로 보리 · 감자 · 채소류 · 양송이 · 잎담배 · 인삼 등이 생산되며 양잠이 이루어진다. 백산면 · 용지면 · 금구면에서는 고구마 · 감자가 많이 생산되고, 식량작물 외에 백산면 · 만경읍 · 용지면에서는 무 · 고추 · 수박 등이 생산된다. 전주시 · 익산시와 가까운 용지면 · 백구면에서는 근교농업으로 시설채소재배도 활발하며, 성덕면 · 백산면 · 부량면은 도내에서 양송이 주산지이다. 야산지대에서는 복숭아 · 배 · 포도 등의 과수재배가 활발하며 ‘전주백도’와 ‘전주배’가 유명하다. 백구면에는 포도 · 복숭아 과수원이, 용지면에는 배 과수원이 집중되어 있다. 용지면 · 백산면에서는 인삼경작도 활발하다. 금산면에서는 양잠이 활발하다. 동부 산악지대에 속하는 금산면 · 금구면과 봉남면 · 황산면 · 용지면 · 백산면에서는 한우 · 젖소 등의 축산업이 활발하며, 특히 용지면에서는 양돈이 많이 이루어진다. 서해안의 진봉면 · 광활면 · 죽산면에서는 연근해어업과 수산양식 등이 이루어지나 대부분 겸업이며 영세하다. 만경읍 · 광활면 · 성덕면에서는 소규모 제염업이 이루어진다.
모악산은 함금석영맥이 많아 산금(山金) 광산이 있었으나 현재는 폐광되었으며, 예로부터 모악산에서 흘러내리는 원평천과 두월천의 충적층에서 사금이 많이 채굴되었다. 오늘날에도 생산량은 미미하지만 사금이 채굴되고 있다.
공업발전은 미미해 양송이가공 · 견직 등 식품 · 섬유업체가 약간 발달했었으나, 최근 전라북도의 공업발전과 함께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인접한 전주시와 군산시에 자동차공업이 발전하면서 부품업체들이 많이 입주해 화학 · 금속 · 기계 · 장비 등의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서흥 · 봉황 · 월촌 · 황산 · 만경 등 5개 농공단지와 순동지방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시장 분포 현황을 보면 상설시장으로 요촌동에 김제시장, 정기시장으로 금산면에 원평장이 개설되어 2개에 불과하다. 이는 전라북도의 중심 도시인 전주시 · 익산시 · 군산시와 인접해 있어 금구면 · 용지면은 전주시, 백구면 · 공덕면은 익산시와의 교통이 매우 편리해 각 지역의 상권이 인접 시에 흡수되었기 때문으로, 생활권도 각각 분리되어 있다.
김제시장에서는 수산물 · 의류 · 청과물 · 식료품 · 생활필수품 · 농산물 등이 거래되며, 인접한 정읍시와 부안군의 일부지역까지도 이 시장의 상권에 속한다. 김제시장에서는 2·7일에 정기시장도 개설되어 농산물 · 생활필수품 등이 거래된다. 원평장은 금산면 원평리에 4·9일에 개시되고 마늘 · 고추 · 채소류 · 농기구 · 가축 등이 거래된다. 또 교동 등 2곳에 청과물시장이 개설되어 있다. 도로는 전주시 · 군산시 · 익산시 · 정읍시 · 부안군과 연결되는 국도가 시가지에서 교차하고, 시의 남동부에는 호남고속도로 김제인터체인지와 금산사인터체인지가 설치되어 있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전주시 · 익산시와는 시 중심부간의 거리가 20여 분에 불과해 중심기능을 많이 빼앗기고 있다. 호남선 철도가 시의 중앙을 통과하며 서해안고속도로도 통과하고 있다.
2026-05-07 작성자 명사십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