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선 100주년 기념회의 참가기.
이반야행(뉴욕주립대 환경임업대학박사과정)
올해는 1893년 시카고 〈세계박람희>에서 동양의 스님들이 예불을 하고 법문을 하면서 불교가 미국에 첫선을 보인지 100년이 되는 해여서 미국 전역에서 기념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이 글은 뉴욕주립대 시라큐스 캠퍼스에서 있었던 행사에 대한 취재기인데 여기에 나오는 일본인 스님과 미국인 스님에 관한 기사는 본지 〈탐방>시리즈에 소개된 스님들이다.--편집자 주
뉴욕주 시라큐즈에서1993년 4월 15일부터 4월 18일까지 4일간 미국에서는 보기 힘든 특이한 회의가 열렸다. 시라큐즈에 있는 참선센터(the Zen Center of Syracuse Hoem-ji)주최로 열린 이번 회의의 이름은 '100 Years of Zen in America'이며, 시라큐즈대학, 뉴욕 주립대 환경임업대학, 에머슨 미술관의 후원으로 진행되었다.
주최자인 참선센터 소장 쉐리 샤얏(여성) 씨는 이번 회의의 목적은 참선을 실생활에서 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생각들을 교환하며 이 지역에 선을 알리는 것이라며, 축하가 주목적이므로 학구적이기 보다는 실험적인 회의라고 하였다. 150여 명의 사람들이 80불의 참가비를 내고 참석하였으며 참가자돌은 학생, 주부, 교수, 심리요법사, 할머니, 사회운동가 등 다양하였으며 불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불교를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 출가한 사람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회의가 행사위주보다는 주제발표와 토론, 질문이 중심이었기 때문에 미국과 일본 불교에 대해 무지인 필자에게는 다소 소화해 내기가 힘든 회의였다. 주최 측 및 참가자들의 스승이 일본 스님이었으므로 대회 전체가 일본색체로 일관되었으며 복장과 용어도 일본 것이 사용되었다. 참선보다는 일본이라는 새로운 문화에 몰두한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소수이기는 하나 그러한 미국인들을 볼 때 그들의 문제들이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일본인들의 조직력과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일본인에 대한 신뢰감에 놀랐다. 일본 불교를 기조로 한 좌선과 관련된 가능한 한 많은 것들을 미국인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회의는 짜여져 있었으며, 필자는 미국인들이 어떻게 일본 불교와 참선을 받아들이는지에 관심을가지고 참가하였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 이심전심의 가르침인 선의 경지를 실용주의와 물질 우선인 미국인들이 어떻게 받아 들이며 해석하는지가 궁금하였다. 우선 회의 일정을 간단히 소개함으로써 회의의 구성을 알아보기로 한다.
4월 15일 목요일 12시-오후 8:30
아메리카 선 100주년 기념사
선과 윤리-주제발표 및 토론, 시낭송
4월 16일 금토일
10시-11시 선과 심리요법
12시-1시 선과 자연
3시-4시 선과 사회운동
6시-7시 선과 예술
7시-8:30 사쿠하찌(일본 퉁소)연수, 전람회
4월 17일 토요일
9시-5시 비디오 상영
8:30-11:30 좌선 실기
10시-1시 좌선 강연과 실습
2시-5시 서예실습
8시 사쿠하찌 연주
4월 18일 일요일
10시-11시 여성과 선
11시-12:30 토론 및 책낭독
2시-5시 서예실습
5:30 야외 오찬
대부분의 회의 내용은 알아듣기 쉬운 초보적인 것들이었으며 그 중 필자의 흥미를 끄는 몇 가지를 소개하기로 한다.
기념사는 참선센터 소장의 전 남편이며 출가승이라고 하는 (승복은 입지 않았음) 루이스 노르드스톰 박사의 일본 스님 스승들에 대한 추억담과 불교 교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첫날 두번째 주제발표는 '선과 윤리'였는데 그 중두 교수들의 발제를 소개하기로 한다. 시라큐즈 대학의 법대 교수이며 범죄심리치료센터 소장인 죠 배럿박사의 발표는 비교적 불법의 참선에 근접하려 하면서 참선에서 발생되는 유익한 변화들을 범죄를 줄이는데 적용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불교는 바로 삶 의 윤리 그 자체라고 하며 내면의 윤리, 즉 마음을 다스리는 윤리이며 그것이 불교의 윤리라고 하였다.
내면의 윤리를 개발시키면 법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외적 행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하였다. 그의 발표는 경봉스님께서 참선을 하면 선한 마음이 생긴다는 말씀을 떠올리게 하였다. 코넬대학에서 동아시아 종교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존 맥래 교수는 미국에서의 불교를 명상센터형과 소수민족들의 그들의 문화를 지키며 불교의식에 참여하는 가족불교형 두 가지로 나누었는데 분리되어 있는 이 두가지 형태가 연결된다면 미국의 불교는 얻는 바가 클 것이라고 하였다. 한국불교가 바로 참선과 가족 불교를 연결하는 불교 형태인데, 대부분의 동아시아 불교가 알려졌지만 한국불교만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뉴욕 캐스킬산의 다이 보사쯔 젠도의 주지이며 맨하탄의 뉴욕 젠도의 주지인 에도 시마노 일본 스님의 선에 대한 간단한 기조발표가 있었는데 비록 일본식 발음이었으나 정확한 영어를 구사하였다. 에도 스님은 영어로 이야기 하면서도 질문받기는 거절하였다. 미국인 제자들에게 초청받아 왔기 때문에 예우로 영어로 이야기 한다는 예의바름과 당당함을 느끼게 하였다. 흰 옷에 받쳐입은 금빛 승복과 작은 가사가 우리 나라 스님들의 회색 승복에 비해 화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에도 스님은 쉑스피어,성경, 중국의 선문답 등을 인용하여 선 정신을 표현하려고 하였으며 그가 즐긴다는 쉑스피어의 인용구를 소개하면 "공정함이 부정함이고 부정함이 공정함이다 (Fair is foul, foul is fair.)"이었다.
둘째날의 발표와 토론들도 이번 회의에서 필자에게는 대단히 흥미있는 부분이었다. 선과 심리요법의 주제발표와 토론에서 4명의 심리요법의사들이 참석하였는데 좌선을 심리요법에 응용한 사례들을 발표하였다. 그들은 좌선 바로 그 자체가 심리요법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루스 맥케이 의사는 어머니와 아이가 함께 좌선을 하면서 어머니의 안정감이 아이에게 전달되어 아이의 심리적인 문제들이 치료된 사례를 들었다. 아버지와 아이들의 실례는 없냐는 질문이 있었으나 아직 시도한 적이 없다고 하였다. 로체스터와 로체스터 공대, 버팔로 대학 등에서 상담과 심리요법을 하고 있는 마빈 스코르만 씨는 자선을 함으로써 자신의 내부의 움직임을 스스로 깨닫게 하며 현실과 정면으로 맞서게 하며 부정적인 감정들, 즉 미움, 두려움 등을 제거할 수 있었다고 하면서 좌선은 훌륭한 치료방법이며 또한 수행법이라고 하였다. 시라큐즈 전 전 센터 이사이며 심리요법의사인 로버트 스트릭랜드 박사도 좌선은 깊은 자아와 만나게 하며 이기주의와 과대망상을 통제하며 겸손을 불러일으킨다고 하였다. 월리엄 크로스 박사도 좌선이 성적, 심리적으로 학대를 받은 아이들과 여환자들을 치료하는데 효과가 컸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좌선을 하나의 심리학의 방어기능이라고 분석하였으며 좌선은 타인의 감정을 깊이 느끼게 하며 인간이 인간다워지게 한다는 의견들이 토론 시간에 나왔다.
100여 명의 참석자들과 토론자들 모두 진지한 분위기였으며 좌선의 유익한 점들을 좌선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한국보다 더 많이 생활에 응용하는 미국인들의 실용주의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청중이나 토론자들 대부분이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동양의 신비스런 수행방법의 하나로서 좌선을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참선자체보다 '앉는다'는 형식에 큰 중점을 두는 듯 하였다. 거의 땅위에 앉는 시간이 없고 차로 돌아다니는 것이 생활의 주인이들이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과 자연에 대한 주제는 '지구라는 존재'라는제목으로 일본서 출가한 미국 스님 죤 루리 씨가 발표하였다. 그는 작년에 시라큐즈 대학에서 금강경을 강의한 적이 있었으며 일본에서 참선과 불교를 본격적으로 공부한 스님이다. 우리의 모든 문제들, 정치, 경제, 사회, 윤리 등이 자연 환경의 위기와 관련되어있다고 전재하고 자연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것들을 가르친다고 하였다. 범 우주적인 상호연관성을 말하면서 자연과의 일치가 바로 자신을 아는 길이라고 하며 그것이 자연보호라고 하였다. 어린이들을 가능한 자연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것이 자연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알게하는 길이라고 하였다. 선과 사회운동 주제발표와 토론에는 불교나 참선에 관심이 있는 사회운동가들이 발표자로 참석하였다. 그들 중 심리요법의사인 윌리엄 크로스 박사는 불교에 관심이 많은 분으로 그의 발표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불교는 대단히 과학적인 종교이며 불교는 그에게 휴머니즘을 더욱 증진시켰으며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게 하였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마음의 상처들을좌선을 통해서 극복된 후에 사회운동에 참여해야 올바른 사회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민주주의는 슬픔에서 파탄된 가정에서, 부랑인들에게서 꽃피워야 하며 그런 곳이 바로 올바른 사회운동이 시작되어야 할 곳이라고 하였다.
심리요법의사인 찰스 그란트 씨는 인간 고통의 본질이 규명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행동이 취해져야만 한다고 하였다. 서예가이며 반핵운동가이기도 한 카주아끼 타나하시 씨는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왔는데 타인의 불행을 방관하는 이순간이 과연 '좋은 순간'인가, 미래 세대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 과연 어려운 일인가 등의 질문으로 발표를 대신했다.
금요일 오후와 토요일에 잇달은 선과 예술에 관한 강연, 서예실습, 좌선실습에는 필자의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였다. 토요일 밤의 사쿠하찌 (일본 퉁소)연주에 참석하였는데 로니 셀던이라는 미국인이 일본식 정장을 하고 꿇어 앉아서 서투른 솜씨로 연주하였다. 매 곡마다 어떤 장면을 연상하면서 좌선을 하면 도움이 된다고 설명을 덧붙였으며, 그가 미국식으로 의자에 앉아 연주하는 것이 불교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 올랐다.
일요일 오전의 선과 여성 주제 발표와 토론에는 일본 승단에서의 비구니의 불리한 입장에 대한 발표가 있었으며 미국인으로 일본에서 출가하고 일본에 거주하는 다이엔 비나지 비구니 스님이 발표를 하였다. 발표 중 일본의 절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그녀에게 행복한 생활인가를 말하면서 한국에서 수행하려면 참선은 이 절에서 경전은 저 절에서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수행해야 함으로 외국 수행자들에게는 힘들다고 하였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한 절에서 다 수행할 수 있어 좋다고 하였다.
전반적으로 준비와 조직이 거의 완벽하게 이루어진 회의를 끝내면서 필자의 심정은 착찹하였다. 미국인들에게 불교란 일본불교를 뜻하며 일본인들은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을 전달하기보다는 좌선이라는신비스런 수행방법을 소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선센터회원들, 좌선을 심리치료에 이용하거나 자신이 좌선을 하는 미국인들 모두가 깨달음이라는 신비스러운 경험을 맛보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는 듯 보였다. 6개월이나 좌선을 했는데도 어째서 깨달음을 얻지 못했나 등의 질문들이 있었다. 선은 보리심을 기초로 하는 수행방법이며 보리심이 없는 선은 선이 아니고 요가나 명상일 수 밖에 없는데 누구도 그러한 것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선에게 여러가지 옷을 입히고, 유익하게 미국사회에 이용하기 위해 선을 해부하고 분석하고 있었다. 1893년 시카고 에서 열렸던 세계종교회의에서 소엔사꾸 일본스님이 선에 대한 발표가 있은 후 일본 불교와 좌선에 대한 일본 스님들의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포교가 계속 되어 왔다.
필자 생각에는 일본불교보다 훨씬 더 부처님의 가르침에 가까운 한국불교가 어째서 지금까지 전혀알려지지 않았는지 의문스러웠다. 캐나다의 어느 한국스님이 일본식으로 법회를 하시는 것을 씁쓸한 기분으로 참여한 적이 있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불교에 대한 긍지, 민족적인 자부심이 우선이며, 대승이라는 명목하에 일부 스님들은 막행막식의 전통이 없어져야하며, 동사섭의 포교를 하기 위해서는 스님들께서 우선 인간 사회에서 요구되는 기본적인 덕목들을 익히셔야 국제사회에서 한국불교의 포교가 가능할 것이다. 우선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제신의 세계에 한 발을 들여 놓는 것이다라고 하시던 큰 스님의 법문이 생각난다.
1993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