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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3:1-5)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1. 말세의 의미
사람들이 “말세야. 말세!”라고 하는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그런데 언제 그런 말을 합니까? 가장 뚜렷한 사실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일들을 볼 때에 그러하지 않습니까? 또한 세상에 재앙이 많이 쏟아지는 것을 볼 때에 멸망의 위기를 느끼면서 그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두 가지의 말세가 나타납니다. 곧 첫째는 세상의 마지막이고, 둘째는 개인의 마지막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원한다고 해서 죽음이 안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나 죽습니다. 이것이 우리 개인의 마지막입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곧 “한 번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됩니다.” 잠깐 이별하는 경우가 많지만, 죽음이 찾아오면 영원히 이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한 나라에도 흥망성쇠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수없이 많은 나라들이 세워졌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망하였습니다. 이렇게 개인과 나라에게 마지막이 있듯이 인류의 역사에도 분명히 마지막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신약성경에 ‘말세’ 또는 ‘마지막 때’라는 단어만 해도 열세 번이나 나옵니다. 그 중 우선 세 가지만 소개합니다.
① (마 13:39-40,49)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
② (마 24:3) 제자들이 예수께서 와서 물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 세상 어느 경전에도 인류의 마지막 때에 관한 말씀은 나오지 않습니다. 세상의 어느 위인도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자신 있게, 밝히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③ (딤후 3:1-5) 위의 본문입니다.
우리 개인의 마지막은 언제입니까? 요즘 한국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남자는 78세, 여자는 85세쯤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무 병이나 사고가 없이 살아도 100살을 살기가 힘듭니다. 늙으면 다 죽어야 합니다. 한 나라의 수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조선은 2000년쯤 갔습니다. 통일신라가 1,000년 갔습니다. 고구려는 900년, 백제도 700년 갔습니다. 고려나 조선은 500년 정도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는 이보다 훨씬 짧습니다. 진시황의 나라는 겨우 15년, 유방의 한(漢)나라는 전한(前漢)과 후한(後漢)을 합하여 400년, 송(宋)나라가 59년, 수(隨)나라가 37년, 당(唐)나라가 289년입니다.
2.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배운 바, 나라들의 멸망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1) 세상의 나라들이 망하게 될 때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① 왕이 백성을 돌보지 않고 향락을 즐기고 음란을 많이 행했습니다. 그러면 충신들은 떠나가고 간신들이 왕의 주변을 둘러싸고 귀에 듣기 좋은 말만 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칭찬해주는 소리를 좋아합니다. 여러분들 중에 누가 자기를 책망하고 비난하면 그것을 좋아할 사람이 있습니까?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책망하거나 비난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런 사람을 미워하고 멀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더욱 타락한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왕이 혼미해지면 모든 판단이 그릇되어 나라가 멸망 길로 가게 됩니다.
② 나라에는 간신들이 많아져서 충신들을 몰아내고, 뇌물을 좋아하며, 재판을 그릇되게 하고, 관직을 매매합니다. 물론 향락과 음란에 빠져서 살면서 국방을 소홀히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외국의 침략을 받게 되어 멸망합니다.
③ 특히 종교가 타락합니다.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할 종교가 타락하면 세상의 흑암이 됩니다. 그래서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어두워지면 온갖 도둑과 강도, 깡패, 불량배들이 많아지고 사회가 혼란해집니다. 종교인들은 명예를 좋아하여 정치가들과 결탁하여 백성들의 돈을 갈취합니다. 그래도 어리석은 백성들은 사제(司祭)들에게 와서 복을 받게 해 달라고 부탁하고 기도를 요청하지만, 그들이 기도해 봐야 복은 오지 않고 오히려 모두가 구덩이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백성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원망과 불평이 커지고, 희망을 잃은 백성들이 됩니다. 따라서 사람으로서의 존귀함을 잃고 짐승들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2) 인류 역사의 마지막도 똑같습니다. 우리 인류는 이미 노아 시대에 홍수로 전멸을 당한 전례가 있습니다. 이것은 장차 나타날 대환난의 예표로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7년 대환난」이라는 말을 익히 들어서 잘 알지 않습니까? 이 ‘7년’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 아닙니다만, 여하간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기 직전에 전무후무(前無後無)한 대환난이 있을 것을 믿습니다. 주님이 친히 “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 24:21)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징조들이 나타납니까? 우리가 많이 들어서 잘 아는 이야기지만 다시 정리를 해야 하겠습니다.
① 도덕적 타락 - 도덕이 타락하니까 인심이 메마르고, 범죄가 많아져서 사회가 불안해집니다. 엉뚱한 일에 돈을 써야 하니까 경제적인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돈을 사랑하며 무정하고, 선을 행치 않으며 불의를 일삼으며, 서로가 모함하며 사랑이 식어집니다. 또한 사람마다 자기만 사랑합니다. 이러한 이기심이 자라서 자식이 부모를 거역하게 되고, 부부 사이가 깨지고, 이혼이 늘어나면서 가정이 깨집니다. 자녀들은 방황하게 되고, 남을 믿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자라서 집단이기주의가 됩니다. 사회가 더욱 혼란해집니다.
② 천재 (天災) - 기근, 온역, 지진, 쓰나미, 화산폭발, 태풍, 산불, 가뭄, 홍수, 천체의 이상으로 말미암은 이상 기후, 지구 온난화로 기후가 변하여 농사도 망치게 되지만, 질병이 증가합니다.
③ 미신(迷信)의 증가 - 사회가 불안해지며 거짓 종교, 사탄 숭배, 교령술, 무당, 점성술, 점쟁이들이 많아집니다. 모든 종교를 철저히 없애버렸다는 북한에서도 무당들은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선 김일성, 김정일 같은 인간들도 무당들을 불러서 물어본다고 합니다.
④ 기독교의 타락인데, “왜 기독교냐?”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진리가 없는 다른 종교는 처음부터 타락한 것이기에 언급할 가치조차도 없으므로 기독교의 타락을 말하는 것입니다.
(눅 18:8) “ …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딤후 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벧후 3:3-5)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잊으려 함이로다.
(요일 2: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말세엔 기독교회 내에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소위 자유주의라 하여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불신 세력이 교회를 점령합니다. 그런가 하면 이에 대항하여 믿음을 지키고자 근본주의가 대두됩니다. 성경의 기본 교리를 사수하겠다는 운동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교리는 붙들고 있으나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 운동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성령운동이 일어나면 그 안에 각종 이단들이 출현하게 되는 위험이 아주 큽니다. 그래서 또 경건주의, 곧 성결 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말세에는 복음이라는 말을 강조하다가 도덕적이고 율법적인 것을 상실한 채, “입술로 믿는다고 고백만 하면 구원을 받았다.”고 가르치는 형식적인 종교로 전락하여 영적 능력을 잃은 교회로 타락합니다. 믿음으로, 곧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말을 강조하다가 보니까, 본궤도에서 이탈하는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은 믿음’(약 2:17,26)이 팽배하여, 행함을 강조하는 ‘산 믿음’을 가진 자를 오히려 박해합니다. 싸구려 구원론이 교계를 풍미합니다. 말세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자칭 정통이라고 하며 의인들을 박해하는가 하면, 표적은 행하며 이상한 계시를 내세우는 각종 이단들이 발호하게 됨으로, 참 성도들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고, 그래도 잘 믿어보려는 신자들은 어느 것이 참인지 분별을 못하게 됩니다.
한편 교회의 지도자들은 정치가들과 야합하여 세상 권력을 추구합니다. 진실한 교회 지도자는 자취를 감추고, 타락한 자들이 교권을 쥐고 흔들게 됩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고,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교회를 부흥시키겠다는 무리들이 많아집니다. 특히 민주주의의 발달로 인해, 교회의 교리도 다수결에 의해서 결정이 됩니다. 성경이 무시되고, 인간들의 모임과 교리가 권위를 갖게 됩니다.
a. 교리적 타락 - 성경에 대한 불신과 비판이 교계를 장악합니다. 물론 성경을 그대로 믿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성경적이고 전통적인 중요 교리들이 하나씩 거절되고 혼합주의, 타협주의가 일어납니다. 그릇된 성경 해석이 바른 해석을 몰아내고, 교계를 장악합니다.
예수님이 온 인류의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요, 예수님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가장 근본적인 진리가 흔들립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도올 김용옥 교수와의 대담에서 “불교를 믿든지, 다른 종교를 믿든지 인간으로서 참되게, 양심대로 사는 사람을 하나님은 다 구원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동국대학교에 가서 강연하는 중에 기독교와 불교의 차별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긍정의 힘”의 저자 조엘 오스틴은 래리 킹과의 TV 대담에서 타종교에 대해 말하면서 “그들이 틀렸는지는 잘 모릅니다.”라고 했고, 유대인의 구원 문제에 대하여는 “제가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라고 모호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말세의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습니다. 물질적 풍요와 사업상의 능력을 자랑하지만 영적으로는 캄캄하고 혼돈한 교회가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며 성경을 사수하는 교회와, 성령의 은사와 능력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교회가 갈라지면서, 거짓 교회가 참 교회를 더욱 핍박하게 됩니다.
b. 윤리적 타락 - 온 세상이 윤리적으로 타락하였기에 교회도 이 세상 물결에 휩쓸려 들어갑니다. 그러나 실은 교회가 빛을 잃었기에 세상이 깜깜해졌고, 따라서 윤리문제에도 이런 어둠이 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음풍(淫風)이 가득해집니다. 동성연애자들도 목사 안수를 받고, 정당한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부부들이 늘어나며, 그러한 사람들이 교회의 중직을 맡아,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정당화하고 보호하는 방향으로 교회는 변질됩니다. 간음에 대한 계명은 점점 빛을 잃게 되고, 목사들 중에도 이혼을 여러 번씩 한 사람이 늘어나고, 음란한 자들이 큰소리치게 됩니다.
또한 물질적인 부정과 부패가 급증합니다. 말세에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대교회들이 물질적인 부요를 누리게 됩니다. 물론 거기에 걸맞은 많은 사업도 합니다. 부자가 우대 받고, 부자가 교회를 좌지우지합니다. 따라서 세상과 교회의 구분이 없어지게 됩니다.
c. 영적 타락 -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고,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외식적 신앙인들이 됩니다. 성령의 역사를 인정한다고 하는 교회들 안에도 성령의 은사를 빙자한 부작용과 부패가 만연해지고, 성령과 악령을 분별하지 못하여 기사이적만 따라가는 신도들이 늘어나면서 교계가 혼란스러워집니다. 또한 영적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 속에 악령이 역사하여 교계를 혼란케 하고 순진한 어린 신도들이 방황하게 됩니다.
d. 교회 일치운동 - 교세가 약화되면서 교회 일치를 부르짖게 되는데, 성령으로 하나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교회 통합운동이 일어납니다. 통합하려니까 결국 교리가 희생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배도(背道)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3에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말로 배도(背道)라고 번역한 말을 NIV성경은 ‘rebellion’ 곧 ‘반역’이라고 하였고, KJV성경은 ‘falling away’ 곧 ‘타락’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말의 뜻은 “도를 배반했다, 가르침을 배반했다, 기독교의 근본진리를 배반했다”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찾아본다면 광야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배반하고 불순종하다가 결국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 멸망 받은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사 시대, 남북 왕국 시대에도 계속적으로 이스라엘의 배도와 패역함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는 비참한 결과가 초래하였습니다.
⑤ 과학 문명의 급속한 발달 - 텔레비전, 컴퓨터, 초음속 비행기, 인공위성, 우주여행, 인터넷, 인간 복제 등인데, 본문 4절에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라고 한 대로 20세기와 함께 비행기가 발명되고부터 과학지식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오늘날에는 우주에 여행을 다니고 우주에 정거장을 만들어놓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과학의 발달은 인간의 삶을 훨씬 편하게 만들어주었지만, 동시에 더욱 많은 돈을 벌어야만 되었고, 따라서 더욱 바쁘고 더욱 여유가 없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교통이 끊어집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교회에 출석하는 것도 자꾸 줄어들게 되었고, 기도 시간이나, 성경을 공부할 시간도 더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극심한 생존경쟁으로 인해 어린이들까지도 자유를 잃고 건전한 정신과 사상을 가진 자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친절한데, 집에 오면 가족 간에는 친절하지 않습니다. 인격이 변화되지 않고, 상업적으로만 살기 때문입니다.
⑥ 이스라엘의 회복과 약소민족의 독립 - 예수님은 누가복음 21:29-31에 중요한 예언을 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아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아라.”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우리나라도 해방되었지만, 3년 후인 1948년 5월에 무화과나무인 이스라엘은 드디어 고토를 회복하여 싹을 내고 독립하였습니다. 이를 신호로 하여 오랫동안 강대국들의 압제하에 있던 수많은 약소민족들이 새롭게 주권을 회복하고 독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든 나무가 싹이 난다”고 하신 말씀에 해당되는 예언의 성취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과거의 다른 전쟁들에 비해 뚜렷이 다른 전쟁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하면 상대 국가의 영토를 빼앗아서 자기의 영토를 확장하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그런데 2차 대전은 그와 정반대로 승전국들이 오랫동안 지배하고 있던 식민지들을 독립시켜서 새로운 국가들을 탄생케 함으로 오히려 자기들의 영토는 줄어들었습니다.
미국으로부터는 쿠바와 필리핀이 독립하였고, 오키나와도 반환하였으며,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3개국과 알제리아, 리비아 등 14개국을 독립시켰습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자랑하던 영국은 카나다, 오스트랄리아, 뉴질랜드, 쟈바, 보르네오, 싱가폴, 말레이시아, 인도 및 아프리카 대륙의 절반이 넘는 모든 나라들을 독립시키고 물러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공산국가들이 약소민족들을 독립시키지 않았었는데, 1990년에 소련이 붕괴되면서 15개국이 독립하고 말았습니다. 우크라이나, 벨라로시아, 몰다비아, 아르메니아, 조지아, 카작스탄, 우즈베키스탄 같은 나라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체첸 같은 나라는 독립하겠다고 러시아를 상대로 극한투쟁과 전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또한 머지않아 위구르와 티벳이 중국에서 독립하는 날도 오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우리가 결코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온 족속에게 복음이 전파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이런 모든 나라들을 독립시키셨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쉽게 전할 수 있도록 언어를 통일시켜주셨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⑦ 모든 나라에 복음이 선포되고 전파됩니다. 마태복음 24:14에 예수님이 친히 선포하시기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징조에 관하여는 이미 구약이 예견하여 구약의 예언자들은 말세가 곧 시작될 것이며 그때에 성령이 모든 육체 위에 부어질 것이며(욜 2:28), 땅의 모든 끝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사 52:10; 42:6; 40:5). 이것은 물론 전 세계 인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나라가 복음을 접할 수 있게 되어, 이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결단을 요청하는 하나의 증거물로써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직면해야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회심”이라는 말도 이해해야 합니다. 로마서 11:26에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하였는데, 여기의 ‘온 이스라엘’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많은 수가 세상 끝 날에 주님께 돌아올 것을 의미합니다.
3.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1) 때가 다 되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심판을 의식하고,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① 시편 49:20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서 12:10에는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라고 하였고, 호세아 14:9에는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그러나 죄인은 그 도에 거쳐 넘어지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바른 깨달음을 얻기 위해 간절히, 또한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② 심판의 날이 눈앞에 가까이 이르지 않았습니까? 또한 우리 개인도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불안한 가운데 살지 않습니까?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영원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옵니다.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③ 우리 개개인이 진리의 말씀 위에 서서 살아야 하지만, 또한 이 복음을 널리 전해서 마지막 대추수의 거룩한 사역의 대열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미 우리나라 성도들은 온 세계에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심전력하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말고 더욱 힘써 충성하는 지혜로운 사역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죄와 탐심을 회개하여 멀리 버려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11은 옛날 광야에서 멸망한 백성들의 가장 중요한 죄 네 가지를 지적하고 나서 한 말씀입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타산지석이 되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5:3에는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라고 책망합니다. 우리가 빨리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여 헛된 욕심을 버리고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3) 말세에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아니고는 절대로 구원이 없습니다. 이것이 진리요, 우리의 확신이 아닙니까?
① 히브리서 1:2에서는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라고 선포합니다.
② 베드로전서 1:20에는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마음에 모셔서 예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4)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땅에 불을 던지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으로 피의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드디어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이제 일어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거룩한 사역에 나아가야 합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하셨을 때에 베드로는 일어나 요엘서에 있는 예언의 말씀으로 설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렇습니다. 예언과 환상과 꿈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베드로는 또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7-8)라고 말하였습니다. 성령께서 이 일을 이루어주시지 않습니까? (2011년 7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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