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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통신 29-1호/복간호♣♧ [<거창 풍물 맛집 답사기> 류영수 지음] 인용 [장기식육식당]
거창군 가조면 중심지에서 약간 벗어난 삼거리에 이 식당이 있다. 북으로는 가북면으로 연결되고(사진 왼쪽 방향), 남으로는 가조 중심지(사진 오른쪽 방향), 서쪽으로는 88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거창읍내로 연결되는 구(舊)도로(道路)이다. 10 수년 전부터 이 식당에 출입하기 시작했다. 가북면 출신, 야간반 제자이자 나랑 갑장인 최 명교 씨를 따라 봄이면 산나물, 여름이면 천렵, 가을이면 오미자나 버섯을 따고 내려오면서 꼭꼭 들렀다. 아래 사진에서처럼 연탄불에 돼지 두루치기를 구워대니 온 벽과 천정은 연탄 연기로 시커멓게 그을려있다. “할무이, 간판이 바람에 떨어진 모양인데 와 지 자리에 달지 안섭니꺼?” “와 안달라 캐껀노(왜 달려고 하지 않았겠니)? 그런데 이누무 간판쟁이를 불러 놓으면 꼭 술을 한 잔 하고 작업을 시작할라쿠네? 그런데 이 간판쟁이가 술은 조아하는데 술이 약해, 그래서 한두 잔 미기노으모(먹여놓으면) 금시(금방) 헬렐레해가지고는 사다리도 제대로 걸치지 못하능기라, 나또 제발 하지마락꼬 말리지, 술 치해서 그라다가 널찌기라도(떨어지기라도) 하모 우짤라꼬. 그래가이꼬 돌아간지 벌시로 대엿 분 된다아, 다음 또 그라모 하는 수 없이 읍내 간판쟁이를 부릴까 시푸다.” 오호, 통재라! 안타깝고도 통절하구나!! 둥근 돌은 둥근 대로 쓰고 모난 돌은 모난 대로 받아들이는 후덕한 오지랖, 수천 년 전 농경시대부터 누대에 걸쳐 내려오던 미풍양속, 일러 <德業相勸(덕업상권): 좋은 일은 서로 권한다, 過失相規(과실상규): 잘못은 서로 규제한다, 禮俗相交(예속상교): 예의로 서로 사귄다, 患難相恤(환난상휼): 어려운 일은 서로 돕는다>던 아름다운 유습, “그대가 있길래 봄도 있”는, “아득한 고향도 정 둘 곳“인(채동선 곡, 박화목 시, <망향>), “그대 있음에 내가 있”고 “나를 불러 손잡”고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하라던(김남조 시, 김순애 곡, <그대 있음에>) 노랫가락속의 물아일체(物我一體)는, 홍익인간, 이화세상은 언제, 어디로, 어떻게 사라져 버렸는가? “할매요, 할부지는 잘 계십니꺼?” 대답에 잠깐 뜸을 들이더니, “돌아가신지 3,4년 되었다.” 이 식당 화장실은 안채 쪽에 있다. 10여 년 전 어느 날 통시이를 다녀오다 안채 안방에서 사람 기척이 있길래 할매한테 물었다. “할매, 안방에서 사람 기척이 있던데 누굽니꺼?” “그래? 내 서방님이다.” 그 이후 이 할매/할배에 관한 이야그를 제3자를 통해 들었다. (제3자를 통해 들은 이바구고 내 기억도 트릿해서 약간의 픽션이 가미되었음을 알려 둔다.) 50여 년 전인 1960년대, 이 할매가 아릿다운 처녀였던 시절, 이 할매의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해서 지참금이나 혼수감을 마련할 길이 막막하여 혼시를 놓칠까 말까였는데 한 중매쟁이가 들어 총각집이 살 만 하여 다른 거 필요업시 몸만 오면 된다고 했다나, 단 신랑감이 몸이 불편하기는 하나 바깥 출입은 문제가 없으니 걱정 말라 하였다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이 할매는 집안 어른들의 압력에 못이겨 풍습에 따라 사주단자를 주고받고 하던 차, 혼인식은 생략하고 바로 시집을 와달라는 전갈, 당일 가마에 올라 크고 작은 고갯길 넘어 시집에 당도하니, *&^%$#@! 그녀를 맞이한 신랑은 곱사등이에 앉은뱅이였다나, *&^%$#@!!!!! 그날 이후로 이 신부는 신랑의 재택 요양사 도우미가 되었지, 똥오줌 치다꺼리, 의복/잠자리 갈아치우고 빨아내고, 예민한 신랑의 악다구니 받아주고, 시부모는 시부모대로 모시고..... 더더욱 신기한 것은, 이 할매가 신랑 야그를 할 때면 반드시 존칭을 하는 것이었지, ‘그 인간’, ‘그 화상’ 하지 않고, ‘그 분’, ‘그 양반’, ‘내 서방님’이라꼬.... [2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