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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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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북정맥 체험기 [☆하늘과 땅 사이에 산이 보이네☆☆☆☆☆]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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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사이에 산이 보이네]
김천규 한북정맥체험기 / 책과나무(2015.11.03) / 값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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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logue
나는 산이 좋다. 특히 사계절이 잇는 우리나라 산이 더욱 좋다. 봄이면 개나리며 진달fp며 지천으로 피어오른 꽃들을 보며 봄 내임을 그 어느 곳보다 더 잘 느낄 수 있고, 여름이면 녹음이 우거진 나무그늘이며 산그늘이 찜통 같은 더위 아래 송글 맺힌 땀방울을 식혀 주며, 가을이면 온통 울긋불굿 가을 옷으로 갈아입은 나무들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내 마음으로 성큼 다가온다. 그리고 겨울이면 또 어떠한가. 눈에 자칫 미끄러질 수도 있지만 은백색으로 펼쳐진 설원만큼 진귀한 풍경이 또 어디에 있으리.
2010년 6월 11일 지리산 천왕봉에서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해서 2012년 11월 11일까지 2년 5개월 동안 홀로 735.34km를 걸어 우리나라에서는 휴전선이라는 장애물에 가로막혀 더 이상 갈 수 없는 강원도 진부령에서 종주를 마쳤다. 백두대간 종주를 마친 후 거의 산행을 하지 못한 채 직장 생활에 전념하던 2013년 5월 어느 날 , 정말 문득이었다. 다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작은 열망이 가슴속에서 꿈틀거렸다 그것은 또 다른 산행을 향한 작은 도전의 씨앗이었다.
“그래, 백두대간 종주에 이어 이번에는 거리가 약 2.087km에 달하는 우리나라 9정맥 종주에 도전해 보자.”
산의 부름 같은 끌림에 순간 내 몸에 흐르고 있는 혈류의 요동을 느꼈고, 그날 이후 나는 9정맥 종주를 향해 등산화 끈을 동여매고 산을 오리기로 했다.
이 책은 2013년 7월 20일부터 2014년 1누월 18일까지 약 6개월에 걸쳐 친구들과 함께 우리나라 9정맥의 하나인 약 175km의 거리에 달하는 ‘한북정맥’을 걸으면서 각 구간의 특성이나 도착 시간 및 거리, 산, 도로, 고개의 지명이나 유래 등을 적은, 그저 내 개인 소회 위주로 쓴 산행 체험기이다. 나는 한북정맥을 걸으면서 단순한 산줄기만을 본 것이 아니라 시야를 넓혀 주변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지게 되었고, 이렇게 산행을 통해 얻은 포괄적인 시각으로 길 위에 발자국을 책으로 엮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을 내면서 인접 지역의 시청, 군창, 문화원의 홈페이지와 인접 마을 주민과 이장님으로부터 들었던 내용들을 가능한 그대로 인용하였고, ‘고산자의 후예들’이 한북정맥을 6구간으로 나누어 GPS를 사용, 2개월여에 거쳐 현지답사 후 제작한 지도인 <한북정맥6>에 나와 있는 산 지명과 높이, 도로 번호, 마을 이름, 구간 거리 등을 참고 했으며, 그 외 각산의 정상적석과 유적지에 세워진 안내 글, 필자가 찍은 사진 속 시간 등을 참고하였다. 또한 많은 선답자들의 노고와 기록 등도 크게 도움이 되었음에도 오류나 혼선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혀 둔다.
끝으로 이 글을 쓸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와준 사랑하는 가족과, 마루금을 나란히 걸으며 고락을 함께한 나의 친구 정근철, 김재중, 이동규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중간 중간에 우정 산행을 해 주고 많은 도움을 주었던 “재경 유은 1325회(광주상고 25회), 광주여상고 13회의 재경 동창회 모임)” 친구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2015년 10월
貞松 김 천 규
■ Epilogue
사람에게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지만, ‘하고 싶은 일’도 있다. ‘하고 싶은 일’은 곧 꿈이다. “사람은 꿈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듯 꿈은 사람에게 있어서 삶의 희망이자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런데 이 꿈은 단순히 잡히지 않는 그 무엇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실현 가능할 수도 불가능할 수도 있다.
나는 앞으로도 백두대간과 한북정맥을 걸었던 것처럼 우리나라의 9정맥 중 남은 정맥을 걸어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묘ㅕ 꿈을 실현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기록 또한 책으로 남겨, 산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분들, 삶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길 간절히 소망하는 많은 분들과 함께하고 싶다.
한북정맥 종주는 복잡한 일상에서의 나를 비우고 그 속에 맑은 산의 기운을 채우게 했다. 길을 오르고 내리며 이리저리 굽어진 대로 걷다보면, 나는 어느새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한북정맥의 기운을 가슴 가득 채우며, 이제 남은 8정맥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한 발 힘차게 내딛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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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Prologue
Chapter 01. 정맥에 대한 이해
- 우리나라의 9정맥
- 미완성의 한북정맥
Chapter 02. 한북정맥 종주기
- 9정맥 종주의 첫 구간
- 야생의 자연을 느끼며
- 곳곳에 숨은 전쟁의 상흔을 느끼며
- 여유로움 속에서 산과 교감하는 낭만을
- 한북정맥의 꽃에서 우거진 풀숲을 헤치며
- 힘든 산행도 함께 이기에
- 운악산 정상에서 가을을 만나다
- 빨리 가려면 혼자, 멀리 가려면 다 함께
- 없어진 마루금을 찾아 걷는 길
- 겨울의 무턱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 눈 덮인 바위 절벽을 오르고
- 오솔길을 걸으며 쌓는 추억
- 한북정맥 종주에 마침표를 찍다
Epilogue 글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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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1. 정맥에 대한 이해]
• 우리나라의 9정맥
산은 바람, 물과 더불어 풍수의 3대 요소 가운데 하나로, 음택陰宅 풍수에서 가장 먼저 고려하는 중요한 요소로 다루어져 왔다. 풍수에서는 산을 ‘용龍’이라 부르는데, 이는 산의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모습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산은 삼라만상 발생의 근원이자, 에너지를 생성하고 전달하여 생명체를 키우는 곳이다.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던 한반도의 산맥체계는 산맥이 아니라 하나의 대간大幹과 하나의 정간正幹, 그리고 13개의 정맥으로 이루어진 것, 즉 ‘1대간 1정간 13정맥’이었다. 이는 영조 때 여암 신경준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조선의 산맥체계를 도표로 정리한 책인 <산경표山徑表>에도 잘 드러나 있다. <산경표>에는 이와 더불어 1,650개의 지명과 1,500여 개의 산과 고개가 마치 족보 책을 엮듯 일목요연하게 표기되어 있다.
여기에서 ‘1대간’은 밷두대간을 말하는데, 그 구간은 ‘백두산-두류산-금강산-설악산-오대산-태백산-속리산-덕유산-지리산’이며, 남한 구간은 설악산 진부령에서부터 지리산 천왕봉까지 약 735.34km이다. ‘1정간’은 북한에 있는 정맥정간을 말하며 원산에서 서루라곶까지다.
13정맥은 청북정맥, 청남정맥, 해서정맥, 임진북예성남정맥, 한북정맥, 한남정맥, 한남금북정맥, 금북정맥, 금남정맥, 금남호남정맥, 호남정맥, 낙동정맥, 낙남정맥을 말한다. 특히,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상에 기초하여 10대간1)을 가름하는 분수령들을 기본정맥으로 삼고 있어, 대부분 정맥 이름이 강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9정맥은 13정맥 중 북한에 있는 청북정맥, 청남정맥, 해서정맥, 인진예성남정맥을 제외한 나머지 남한에 있는 아홉 개의 정맥, 즉 한북정맥, 한남정맥, 한남금북정맥, 금북정맥, 금북정맥, 금남정맥, 호남정맥, 금남호남정맥, 낙동정맥, 낙남정맥을 통상 ‘9정맥’이라부르며 그 거리는 약 2,087km2)이다.
그리고 백두대간을 기준으로 뻗어나간 정맥 가운데 가장 높고 수려한 산 혹은 큰 도시의 진산鎭山이 되는 산을 ‘증조산’이라 하는데, 9정맥의 증조산은 다음과 같다.
∙한북정맥 - 대성산, 광덕산, 운악산, 도봉산(북한산)
∙한남정맥 - 광교산, 계양산
∙한남금북정맥 - 좌구산, 소속리산
∙금북정맥 - 흑성산, 일월산 가야산
∙금남정맥 - 대둔산, 게룡산
∙호남정맥 - 내장산, 무등산, 조계산
∙금남호남정맥 - 마이산
∙낙동정맥 - 백암산 주왕산 금정산
∙낙남정맥 - 무학산
<산경표>는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강은 산을 넘지 못한다. 고로 두 능선 사이에는 계곡이 하나 있고, 두 계곡 사이에는 능선이 하나 있으니 산 없이 시작되는 길이 없고 강을 품지 않는 산이 없다. 결국 산과 강은 하나다’라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원리에 입각하여 위와 같이 나누었다고 한다. 이러한 분류는 산과 물에 따라 나뉜 지역간 문화 차이를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문화와 인문 역사 등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제 통합통일이 되면 9정맥이 아닌 13정맥을 모두 불러볼 수 있겠지. 그리고 한국의 문화와 인문 역사 등을 제대로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날이 오면, 우리는 새로운 역사 앞에서 그동안 정신없이 달려온 숨결을 가다듬고 두근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한국의 13정맥을 완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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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만강,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임진강, 한강, 금강, 낙동강, 섬진강을 말함
2) 1대간 9정맥에 대한 거리는 박성태님의 책 <신산경표> 참고
• 미완성의 한북정맥
백두산이 한민족의 진산이라고 한다면 서울의 진산은 북한산이다. 북한산은 주봉인 백운대를 중심으로 남쪽의만경대 보현봉 및 북악산으로 연결되는 주능선과 북쪽으로 도봉산(인수봉 우이암 주봉 자운봉) 및 사패산으로 연결되는 주능선을 축으로 동서東西로 대별되는 아름다운 산이다. 이러한 북한산이 속해 있는 정맥이 바로 ‘한북정맥’이다. 그러나 북한산의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접근하고 가까이 닿을 수 있는 탓에 산을 찾는 사람들로부터 북한산에 대래 그 진가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필자는 북한산에 속해 있는 도봉산 능선과 사패산 능선 부분 등 그 진가를 제대로 알리고, 또한 한북정맥이 9정맥 가운데 유일하게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어 통일이 되어야만 완주할 수 있는 정맥이기에 그 의미를 부여하여 9정맥 가운데 ‘한북정맥’을 첫 번째 종주지로 정하였다.
한북정맥은 북한 추가령애서 분기하여 백암산, 양쌍령을 지나 남한 지역인 적근산, 대성산, 수피령,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강씨봉, 청계산, 운악산, 죽엽산, 도봉산(북한산), 노고산, 현달산, 고봉산까지 대략 235km를 말하며, 남한 지역에서의 한북정맥은 출입할 수 없는 적근산과 대성산을 제외한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에 있는 수피령에서부터 경기도파주시 교하면에 있는 장명산까지 약 175.4km를 말한다.
한북정맥은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남과 북을 가로지르며 동으로는 회양(북한)-화천-가평-양주-의정부 유역이 있고, 남쪽으로는 서울-고양 등 한강 유역이, 서쪽으로는 평강(북한)-철원-포천-동두천-파주 등 임진강 유역이 있다3).
한북정맥은 9정맥 가운데 유일하게 통일이 되어야만 완주할 수 있는 정맥이다. 하루 빨리 통일이 이루어져, 한북정맥을 완주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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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산자의 후예들’이 제작한 지도인 <한북정맥6>에서 ‘한강 정맥 소개’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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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02. 한북정맥 종주기]
• 9정맥 종주의 첫 구간
야생의 자연을 느끼며
따사로운 햇살이 땀방울을 부르는 여름의 시작이건만
어찌 오늘은 나의 첫 산행을 위로라도 하는 듯
잔뜩 흐린 날이 선선한 산바람으로 나를 감싸 안는다
산은 온통 푸르른 생명력으로 가득했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이 닿지 않는
자연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이리라
마지막에 계곡에 발을 담그며 시원함을 더할 수 있었던
오늘의 산행은 이렇게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1구간(수피령→하오현)
•종주 구간: 수피령-촛대봉-복계산 갈림길-복계산-복계산 갈림길-943봉-950봉-헬기장-네모바위-복주산-하오현-하오터널
•산행 날짜: 2013년 7월 20일 토요일
•산행 날씨: 종일 흐림
•산행 시간: 9시간 1분
•도상 거리: 15.1㎞(접근로 1.1㎞포함)
•종주 대원: 김재중, 강성규, 이동규,정근철, 나
구간 기록
09:24수피령 산행시작→10:06촛대봉→10:13복계산 갈림길→10:20바위동굴→10:45복계산→11:17갈림길 도착→12:47우측암석→13:13점심(헬기장, 삼각점)→14:55우측 군막사→15:05네모바위→15:42좌측철탑 및 임도→16:45밧줄로 된 급경사→16:55복주산(1,152m)→17:34헬기장→18:03하오현(하오고개)→18:25하오터널 도착
출발하며
2013년 7월 20일, 드디어 9정맥 종주의 첫 산행을 시작하는 역사적인 날이다. 9정맥을 종주하기로 마음먹고 약 2개월에 걸쳐 준비했던 산행을 오늘 시작하기 때문이다.
들뜬 마음을 애써 차분히 가라앉히고 밖을 나섰다. 하늘이 구름을 잔뜩 인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땀방울을 부르는 여름의 시작이건만, 어찌 오늘은 나의 첫 산행을 위로라도 하는 듯 잔뜩 흐린 날이 신선한 산바람으로 나를 감싸 안을 것만 같다.
사람은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 나름대로 사전에 준비를 한다. 미국 16대 대통령인 에브라함 링컨도 “만약 나에게 8시간의 나무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중 6시간은 도끼날을 가는 데 사용하겠다”라고 했고, 세계적인 비즈니스 연설가인 페터우르스 벤더도 “준비를 실패하면 실패를 준비하는 것과 같다.”라고 했다. 사전 준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교훈이다.
나는 9정맥 종주를 준비하면서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첫 째, 9정맥 중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한북정맥’을 먼저 종주한 후 차츰 남쪽인 한남정맥, 금북정맥 순으로 종주해 가는 소위 ‘남진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기준은 약 175㎞의 거리인 한북정맥 상 고개나 령,현 등으로 접근할 수 있는 교통편과 체력 등을 감안해 모두 12구간으로 나누어 산행하고 12구간에 대해서는 ‘인도어클라이밍’4)을 하는 것이다.
그 이외에 지도 구입, GPS기에서 사용할 각 구간의 트랙5)과 플래카드 등을 준비했다.
그런데 이렇게 산행 준비는 마쳤지만 이제는 누구와 함께 산행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결정해야 했다. 처음에는 ‘백두대간을 종주하던 때처럼 또 혼자서 해 볼까?’하는 생각도 했지만,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여러 차례 위험한 순간을 만나 힘들게 모면했던 아찔한 기억이 떠올라 망설여졌다.
또 백두대간을 고속도로에 비유한다면, 정맥은 일반도로로 비유될만큼 각 구간이 험한 편이므로 혼자 하는 것보다는 일행과 함께하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렇다면 어떤 일행과 함께하는 것이 좋을까? 아름다운 산행을 더욱 아름답게 빛내 줄 사람들.
나는 순간 “먼 길을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친한 친구와 함께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친한 친구와 함께하면 그만큼 서로 교감할 수 있고 수월하다는 생각에, 결국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출발하기 위한 모든 산행 준비는 완료되었다. 드디어 9정맥 완주의 첫 시작점인 한북정맥에 발자국을 남기기 위한 출발이다. 그중 오늘은 첫 구간인 수피령에서 하오현까지 약 15.1㎞를 종주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신발 끈을 질끈 묶었다.
오늘 종주계획은 이렇다. 서울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 그곳에서 택시를 타고 화천군 상서면에 있는 수피령으로 이동한 후, 한북정맥 남한의 첫 출발지인 수피령에서 산행을 시작해 촛대봉, 복계산, 복주산, 하오고개, 하오현까지 약 15.1㎞를 산행하고 다시 시외버스를 이용해 서울로 돌아오는 것이다.
오전 6시 40분, 들뜬 마음에 결코 무겁다고 생각되지 않는 배낭을 메고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있는 동서울종합터미널에 나가니, 이미 종주 대원들이 나와 있다.
김재중, 이동규, 정근철은 한북정맥을 종주하는 동안 함께 동행하기로 한 친구들이고, 강성규는 한북정맥 첫 산행을 기념해 주기 위해서 참석한 친구다. 모두들 반가움에 인사를 건네는데, 왠지 친구들 얼굴에 긴장감이 감돈다. 아마 내가 느끼는 것처럼 첫 시작하는 한북정맥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버스는 창밖의 건물들과 나무들을 빠르게 지나치며 자동차전용도로를 시원하게 달렸다. 친구들의 얼굴에 흐르는 긴장감만큼이나 가는 길이 길게만 느껴진다. 6시 50분에 출발한 버스는 8시 40분이 되어서 이 화천군 상서면 사창리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4) ‘인도어클라이밍’이란 방 안에서 산행을 한다는 의미로, 산행 전 집에서 지도를 보며 등고선과 오르내림으로 산을 미리 거닐어 보거나, 특히 인터넷을 이용하여 산행후기, 동영상, 3D지도 등을 미리 산행지점을 탐색해보는 것을 말한다.
5) 선답자들이 한북정맥을 종주하면서 사용했던 GPS에 저장된 산행 자료
수피령
8시 50분,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손님을 태우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타고 수피령으로 출발했다. 택시는 56번 도로를 따라 미끄러지듯 달리며 명월삼거리, 백마촌, 북방골, 실내고개, 다목삼거리를 지나 9시 15분, 드디어 수피령에 도착했다.
780m의 수피령은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에서 철원군 근남면 와수리로 넘어가는 56번 국도가 지나가는 곳이다. 이곳에서 계속 직진하면 근남년 육단리와 와수리 수피마을을 지나 김화에 도착하게 된다. 남한에서 한북정맥의 첫 출발지인 수피령은 북위 38도 11분 55초로, 남한의 정맥 중에서 위도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며, 백두대간에 있는 미시령과 비슷한 위도 상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수피령’이라는 지명은 어떻게 붙은 걸까? ‘수피(樹皮)’라는 단어가 나무껍질과 관련되어 있고, 수피령 고개를 넘어가면 ‘수피’라는 자연마을이 있는 점에서 혹 이와 관련되어 있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해가 구름 속에 가려진 채 감도는 시원한 공기가 푸른 나무로 뒤덮인 산 공기와 함께 온몸을 감싸는 게 느껴졌다.
북계산에서 김시습의 체취를 느끼며
철원군과 화편군의 경계인 수피령 표지판을 지나면 오른쪽에 작은 주차장과 간이화장실이 마련되어 있고, 그 언덕 위에 ‘대성산 지구 전적비’가 우거진 녹음을 바탕으로 우뚝 서 있다. 대성산 전적지는 철원의 백마고지, 양구의 펀치볼, 도솔산 전적지와 함께 6․ 25전쟁의 3대 격전지로 꼽힐 만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이 비석은 육군 제15사단에서 세운 것으로, 비에는 “대성산 지구 전투 장병들의 영웅적인 전공戰功을 높이 찬양하고 조국 수호를 위해 불굴의 신념으로 산화散花한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넋을 추모하며 그 위훈을 자손만대에 길이 전하고자 1980년 8월 15일이 탑을 세웠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수피령 입구에 있는 대성산 지구 전적비 앞에서 기념 촬영 후, 배낭을 다시 점검하는 등 산행준비를 모두 마쳤다. 드디어 9시 24분, 한북정맥 종주, 아니 9정맥 종주의 첫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 이 발걸음이 2,087㎞를 걸어 5~6년 후면 9정맥의 마지막 구간인 낙동정맥의 종착점인 부산 몰운대沒云臺까지 이어진다는 생각이 앞서자 뿌듯함이 밀려온다. 과연 9정맥 종주를 무사히 완주할 수 있을까?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있는 사람에게나 없는 사람에게나 하루 24시간은 똑같다. 그러나 사람은 이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할애하여 현명하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의미가 달라진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해 끈기 있게 도전하면 분명 완주하는 그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고개 좌측 절개지를 따라 한참을 오르니, 시간은 어느덧 9시 33분, 헬기장이 나오고, 도로 건너로는 웅장한 대성산이 조망된다. 늘 바라만 봐야 하는 대성산이 아스라이 그리워진다. 대성산은 우리 땅에 속해 있지만, 민간인통제구역내에 위치해 있어 군의 허가를 받아야만 산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성산 또한 자유롭게 등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안부를 지나 30여 분 더 진행하니 촛대봉이 나오는데, 사실 촛대봉은 한북정맥에서 벗어난 곳으로 그냥 지나칠까 하다 들렀다가 가기로 했다. 10시 8분 촛대봉 정상에 서니 대성산 방향으로 서 있는 바위가 마치 촛대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이곳을 촛대봉이라부른 것 같다.
10시 13분 복계산 갈림길에 도착했다. 그런데 복계산도 한북정맥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다녀오려면 50분 정도 소요되는 곳이다. 그러나 복계산은 우리나라에서 비무장지대와 가장 근접한 최북단의 산행지로 알려진 곳이라 다녀오기로 했다.
지도에서 보면 복계산은 남과 북을 연결한 한북정맥 줄기가 끌어안은 채 우뚝 솟아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남북 화합의 산’이라 불리는 복계산은 1057.2m의 제법 높은 봉우리임에도 불구하고 산세가 험하지 않아 ‘화합’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누구라도 차분히 오르내릴 수 있는 산이다.
10시 20분 바위동굴을 지나 10시 45분, 드디어 복계산 정상에 도착했다. 북계산은 지리상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잠곡리에 위치해 있다.
복계산은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과도 관련이 있다. 김시습金時習(1435~1493)은 조선 초기의 학자로,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작은 키에 뚱뚱한 편으로 성격이 괴팍하였으나 배운 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지성인이었다고 전해진다.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찬탈하자 비분한 나머지 김시습은 모든 관직을 버리고 복계산 아래서 은거하며 단종의 복위를 도모했는데, 지금도 매월대(595m), 매월대 폭포, 매월동, 굴골 등 김시습과 관련한 지명이 남아 있다.
매월대는 심산유곡深山幽谷의 울창한 숲 속에 40m 높이로 솟아오른 산정에 있는데, 이 산정은 층암절벽으로 형성된 험준한 곳이어서 은거생활을 하기에 적당했다고 한다. 김시습은 바로 이곳에서 동지들과 시를 읊거나 바둑을 두면서 세상사를 논했다고 전해진다.
매월대폭포는 복계산 심곡에서 흐르는 물이 기암절벽 사이로 떨어지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철원8경에 꼽힐 만큼 수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선암폭포’라고도 불리는 매월대폭포는 특히 겨울에 얼음조각으로 탈바꿈하는 빙벽의 모습이 아름다워 해마다 겨울이면 이곳을 찾는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또한 복계산 아래 ‘굴곡’에는 수년 전 SBS에서 방영한 <임꺽정>을 촬영했던 청석골 세트장도 마련되어 있다.
복계산 정상은 커다란 암봉과 넓은 공터로 되어 있는데 한가운데 정상석이 서 있고 주위 전망은 정말 탁
월했다. 바로 건너편으로 보이는 대성산이 그야말로 압도적이고, 정상 아래로는 수피령을 넘어가는 56번 도로가 굽이굽이 조망된다. 그리고 시계방향으로 보면 앞으로 가야 할 복주산, 하오현, 광덕산, 광덕현, 백운산, 도마봉과 그 건너편으로는 번암산, 화악산(1,468㎞)도 한눈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우측(동쪽)으로는 잠곡저수지 방향으로 광덕산에서 분기한 명성지맥이 각홀봉과 명성산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북쪽으로는 철의 삼각지대인 철원․김화․평강과 휴전선 너머로는 북녘 땅이 넓게 펼쳐진다.
특히, 철원은 궁예가 후고구려(마진) 도성을 이곳으로 옮겨서 왕건에게 빼앗기기 전까지는 궁예의 터전이었다. 앞으로 잉질 한북정맥구간에서 궁예의 숨결이 서려 있는 곳이 많다. 도마치봉이며, 국망봉, 강씨봉, 운악산도 궁예와 관련된 곳이다.
복주산을 지나고
11시 17분, 왔던 길을 되돌아 바위굴을 통과 보계산 갈림길로 회귀했다. 이제부터 이곳에서 수피령에서 이어온 한북정맥을 다시 이어 걸어야 한다.
얼마를 갔을까. 나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놓칠세라 열심히 사진을 찍느라 지체되면서 두 갈래 길 앞에 서게 되었다. 직진, 아니면 우측 길? 잠시 망설이는 찰나, 우측 길 아래쪽에서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산꾼들에게는 이 길이 맞는지 혹은 잘못 들었는지 직감적으로 알게 되는 기운이 있는 것만 같다. 왠지 친구들이 길을 잘못 들은 것 같아 주위를 살펴보니 직진 방향으로 시그널이 부착되어 있고, 지니고 있는 GPS
기도 직진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아마 친구들이 잠깐 착각해 우측으로 진행해 버린 것 같다. 11시 37분, 급하게 친구들을 불러 다시 되돌아오게 하니, 아뿔싸 10여 분 알바6)다.
12시 14분 ‘보계산 등산로 4지점’을 통과하고, 12시 47분 큰 바위를 통과하여 13시 13분 삼각봉에 도착했다. 이곳은 헬기장으로 주위에 나무가 없어 햇볕이 내리쬐는 곳인 데, 한쪽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점심은 푸짐하다. 정근철이 오리로스를 준비했고, 강성규가 오징어 횟감을, 김재중이 소고기 요리를, 이동규는 갓김치를 가져왔다. 막걸리와 함께 먹는 점심에 그동안 걸어왔던 피로가 싹 가신다.
식사 후 14시경 다시 출발한 산길을 비교적 순탄한데, 한 가지 특징은 군사지역이어서인지 산 정상이 아닌 8보 능선을 따라 산길이 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르내리막이 없고 걷기에 안성맞춤인 산길이다. 아마도 군 작전 시에 노출이 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산길을 만든 것 같다.
계속해서 걷기 좋은 능선을 따라 걷는데 15시 5분경 산모퉁이에 자로 재단하여 쪼개 놓은 것 같은 바위 두 개가 나란히 나타난다. 꼭 두부를 칼로 베어 놓은 듯한 형상이다. 이런 산중에 어떻게 저런 바위가 있을까. 새삼 자연의 신비에 감탄할 뿐이다.
15시 47분, 이번에는 임도에 들어섰다. 아마도 다목적용(군사 산불)으로 임도를 개설한 것 같은데, 사후 관리가 안 돼 거의 산길이나 마찬가지다. 폭우로 심하게 파인 임도를 따라가다 16시 45분 로프구간을 통과하니, 16시 55분 1,152m의 복주산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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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산행 계획에 지장을 주는 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지칭하는 등산인들의 은어로서 대표적인 경우가 길을 잘못 드는 경우를 말함
복주산
해발 1,152m인 복주산은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과 사내면, 철원군 근남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그동안 휴전선 부근이어서 입산이 금지되었다가 개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산은 온통 푸르른 생명력으로 가득했다. 길 주위에는 온통 숲이 가득하고 온갖 꽃들이 만발해 있어, 마치 요정의 정원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이 닿지 않는 자연상태로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이리라.
조그맣게 세워져 있는 정상석에서 기념촬영 후 문득 지나온 마루금7)을 바라보니 실타래처럼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을 걸어 왔다고 생각하니 사람의 발길이 참 대단함을 느낀다. 무엇이든 시작하여 꾸준히 쉬지 않고 한다면 못할 게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9정맥 완주에 대한 결의를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겼다.
높은 봉우리에 발을 묻고 사방을 바라보았다. 복주산에서의 조망도 탁월했다. 우뚝 솟은 봉우리 위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마치 지도처럼 산과 산이 능선을 따라 이어지며 도로를 치닫다가 다시 저수지로 흐르며 끝도 없이 이어졌다.
좌측(동쪽)으로 56번 도로가 실타래처럼 화천군 사내면소재지까지 이어져 있고, 화천군 하남면에 있는 백적산과 장군산, 두류산, 장안산도 조망된다. 그리고 우측(서쪽)으로는 복주산 바로 아래 하오터널을 관통하는 463번 도로와 그 옆에 있는 잠곡저수지는 물론 철원군 서면 면소재지를 관통하는 56번 도로와 47번 도로가 보이고, 광덕산에서 시작되는 명성지맥의 넘실대는 능선도 조망된다. 정맥은 직진으로 이어지지만,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하산하는 길은 없다.
그리고 복주산 아래 잠곡저수지 옆에는 ‘복주산 자연휴양림’이 있는데, 이곳은 계곡과 숲이 잘 조화를 이룬 쾌적한 산림휴양시설로 알려져 있다. 울창한 산림과 맑은 계곡이 흐르는 수려한 자연경관이 빼어난 이곳은 특히 휴양림 내 활엽수림의 울창한 숲 속 계곡 주변으로 데크로드가 설치돼 있고 전설의 용탕폭포는 신비함을 더한다고 한다.
넋을 잃고 사방을 바라보면, 산행 중에 흘렸던 땀은 순식간에 마르고 만다. 야생이 살아 숨쉬는 산속, 시원한 계곡 물가, 그리고 물이 깊어 수영은 금지되어 있지만 바위에 걸터앉아 발을 살짝 담그면 금방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며 온몸에 시원함이 감도는 곳.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아쉬운 복주산에서의 조망을 뒤로하고 순탄한 산길을 따라 얼마쯤 갔을까. 타이어로 만들어진 급경사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따라 내려서서 17시 34분 헬기장을 통과해 18시 3분 하오현荷吾峴8)에 도착했다. 이제 이곳에서 좌측으로 약 1.1㎞쯤 내려가면 오늘의 산행마무리 지점인 하오터널이지만,
다음 구간 때는 하오터널에서 다시 이곳으로 올라와 회목봉 방향으로 직진해야 한다.
하오현에서 하산을 시작했다. 하오고개 옛길을 따라 내려가니 좌우로 군 벙커 몇 개가 있고 길을 폭우로 인해 움푹 파인 채 계속 이어져 있다. 약1.1㎞정도 옛길을 따라 내려 와 좌측 작은 냇가를 통과하니 463번 지방도로다. 18시 25분 마침내 하오터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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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산릉)능선과 능선을 연결하는 선
8) 우리나라 고개에는 령, 현, 치, 재가 있는데, 령嶺은 규모나 통행량의 면에서 관방이 설치되었고(예: 대관령, 조령, 죽령, 추풍령), 현峴은 령보다는 한 단계 아래의 고개로 지방 중소 산지의 고갯길을 나타내고, 치峙는 고개가 통과하는 산지가 다소 험준한 느낌을 주는 곳으로 나지막한 산이면서도 우뚝 솟은 듯한 산을 경유하는 경우다.(예: 지리산의 정령치, 소백산의 마당치, 미내치)
산행을 마치며
산행을 시작할 때부터 날씨가 꾸물거렸다. 친구들 간에 의견도 분분했다.
“소나기가 틀림없이 올 것이다.”
“아니다. 소나기는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대신 바람이 불어 산행하기에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일 것이다.”
친구들의 이런 기우 덕분이었을까? 9시간 1분 동안 산행하는 내내 마파람과 하늬바람이 불어 주어 시원한 구름 속에서 비도 맞지 않고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제 9정맥 종주의 첫 구간이자 한북정맥의 첫 구간인 수피령에서부터 하오현까지의 산행을 마쳤다. 물론 10여 분의 알바가 있었으나, 마지막에 계곡에 발을 담그며 시원함을 더할 수 있었던 오늘의 산행은 이렇게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앞으로의 산행이 무척 기대된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뭔가를 시작했을 때에는 항상 끝이 동반된다.
이 정맥종주도 앞으로 쉬지 않고 계속 걷는다면 5~6년 후에는 9정맥의 마지막 끝인 낙동정맥 종착점 부산 몰운대에 분명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바쁜 가운데 첫 구간 산행을 축하해 주기 위해 동행해 준 강성규와 앞으로 계속해서 함께 고락을 함께할 정근철, 이동규, 김재중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2013년 5월 31일 ‘9정맥 출정식’때 비록 행사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고급 양주 여러 병을 보내 주며 축하해 준 ‘하나투어 부회장’ 권희석 친구, 참석해 맛있는 저녁과 술을 대접해 준 나의 친구들, 김원국 권혁진 박당현 박병하 양동완 최강숙에게도 이 글을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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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북정맥 종주에
마침표를 찍다
수피령에서 출발해 쉼 없이 걸어왔던 한북정맥 종주를
드디어 오늘, 그 마침표를 찍고자 한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장명산에서 바라다본 전망은
춥지만 맑은 날씨 덕분에 뚜렷하게 조망되었다
장명산에서 하산해 공릉천교 아래 강가에서 완주식을
거행하여 한북정맥 종주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2구간(윗배다리→장명산)
•종주 구간 : 윗배다리-공양왕릉분기점-현달산-견달산 삼거리-예빛교회-고봉산정상 갈림길-고봉산 삼거리-벤치 쉼터-일산가구단지 사거리-야당4리 사거리-56번지방도-고인돌산림욕장-평고개-장명산-공릉천
•산행 날짜 : 2014년 1월 18일 토요일
•산행 날씨 : 매우 추운 영하의 기온
•산행 시간 : 8시간 15분
•도상 거리 : 23.59㎞
•종주 대원 : 김재중, 이동규, 정근철, 나, 권혁진, 김원국, 박당현
구간기록
09:03윗배다리 산행 시작→09:33전주이씨 묘역→09:42군부대 철조망→10:03광목장 정문→10:22현달산(138.7m)→10:51예빛교회→11:32만경사→11:52고봉산(209m)→12:07~13:00점심→13:08금정굴→13:34숯고개→13:56파주식당 타운→14:14한빛도서관→14:23야당 4리 사거리→16:17핑고개→16:20공사현장→16:27향나무→16:56장명산→17:18공릉천
출발하며
작년 7월 20일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에 있는 수피령에서 출발해 쉼 없이 걸어왔던 한북정맥 종주를 드디어 오늘, 그 마침표를 찍고자 한다.
이제 오늘 마지막 구간을 종주하게 되면 거리 175.4㎞(실제거리 195㎞이상)의 한북정맥을 모두 마치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오늘 종주는 뜻 있는 산행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의미를 되새기며 차분하게 종주 준비를 했다.
그런데 지난 구간 함께해 주었던 김원국, 권혁진, 박당헌 친구들이 한북정맥의 마지막 구간을 산행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한북정맥 마지막 구간을 마무리하는데 친구들이 어떻게 보고만 있을 수 있느냐? 함께 산행하자!”고 연락을 해 왔다.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함께하기로 했는데, 친구들의 참여로 이번 종주는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오늘 산행 계획은 이렇다. 지하철 3호선 원당역에서 친구들을 만나 택시로 윗배다리로 이동한 후, 이곳에서 산행을 시작해 현달산, 고봉산삼거리, 일산가구단지사거리, 경기인력개발원, 핑고개, 장명산을 지나 공릉천까지 약 23.59㎞를 종주하고 이후 버스를 이용해 서울로 귀가하는 것이다.
오늘 산행의 특징은 전 구간의 반 이상은 시내도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는 점이다. 일산과 파주 지역의 택지개발 등으로 인해 한북정맥의 일부가 끊어지거나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행을 하다 보면 가끔 도로나 임도를 걷기도 하는데, 이럴 때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오늘 걸어야 하는 구간은 그러한 의미조차도 사라지게 한다. 그래도 한북정맥 종주를 위해서는 어차피 지나야 할 구간이다.
현달산을 지나며
집에서 아침 6시 10분에 출발하여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8시 40분 원당역에 도착하니, 이미 친구들이 나와 있다. 언제 봐도 반가운 친구들이다.
5번 축구로 나가 덕양구 ‘성사1동 주민 센터 버스정류장’앞에서 택시를 타고 9시, 윗배다리에 도착했다. ‘윗배다리’라는 지명은 옛날 한강에서 공릉천을 따라 밀려오는 밀물이 다시 원당천을 따라 들어와 지금의 윗배다리 인근으로 차오르면 주민들이 배로 다리를 놓았다고 해서 ‘배다리’라는 지명을 얻은 것인데, 지금은 군부대가 들어서 있다. 참고로 원당천은 공릉천 ‘제2벽제교’에서 시작해 서삼릉 앞으로 흐르고 있는 지천이다.
윗배다리에 도착하니, 날이 꽤 쌀쌀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번 산행처럼 눈이 무릎까지 샇이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제 이곳을 출발해 장명산을 지나 공릉천에 이르면 오늘 산행을 마무리하고 또한 한북정맥도 마무리 된다. 괜히 들뜬 마음을 억누르며 부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9시 5분 산행을 시작했다.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약20여 분 포장도로를 따라갔을까. 도로가 끊기면서 군부대 정문이 가로막는다. 도로를 벗어나 우측 산길로 접어들어 군부대 철책을 따라 계속 가니 우측에 예사롭지 않게 단장된 전주이씨 묘역이 나오고, 9시 50분에 고려공양왕릉 갈림길이 나온다.
공양왕릉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위치해 한북정맥에서 벗어나 있지만 고려 마지막 왕인 제34대 공양왕과 순비 노 씨의 능이 있는 곳이다. 사적 제191호로 지정된 공양왕 능역은 쌍릉 형식이며, 능역에는 상석 1개, 장명등 1개와 두 쌍의 석인, 석호 및 삽살개 석상이 있다. 그런데 왕릉에 삽살개 석상이 서 있는 것은 의외이다. 도대체 삽살개 석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옛날 왕과 왕비 노 씨가 이성계 추종세력의 추적을 피해 지금은 메워졌지만 왕릉 부근에 있던 호수에 뛰어들어 자결하자, 삽살개는 왕을 찾아 헤매던 어느 인척에게 주인이 호수에 빠져 죽은 사실을 알리고는 자신도 그 물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이후 능역을 조성하면서 삽살개의 이런 애틋한 사연을 알고 능역 앞에 석상을 세워 준 것이라고 한다.
10시 3분 ‘사격시 입장금지(바로 옆은 광목장)’ 팻말을 지나 10시 23분 현달산에 도착했다. 138.7m인 현달
산은 고양시 일산동구와 식사동, 고봉동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견달산’이라고도 부르며, ‘반달’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또한, 옛날에는 풍수지리상 산봉우리가 마치 중국을 향해 절하는 형상이라 해서 ‘역적산’으로 취급받기도 했다고 한다.
현달산은 높이가 야트막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고양시 일대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어 의외로 조망이 좋다. 6․ 25전쟁 당시에는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인지 지금도 부근 곳곳에 군부대가 많이 포진되어 있었다. 산 정상에는 정상석은 없고 누군가 코팅해 나무에 걸어 놓은 종이가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었다.
고봉산을 지나고
현달산에서 내려와 10시 30분 견달산로삼거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우측도로를 따라가면 363번 도로와 문봉동으로 연결되고, 좌측 도로를 따라가면 고양에서 일산으로 이어진 356번 도로와 식사동으로 연결되는데, 한북정맥은 356번 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이 도로는 너무나 위험했다. 약20여 분 도로를 따라가는 동안 식사동과 풍동 방향에서 오는 대형덤프트럭들이 도로 좌측에 있는 자갈과 모래공장으로 수시로 드나들면서 심한 소음과 먼지를 내뿜으며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고, 특히 도로에 보도가 없기 때문에 걸어갈 때 꽤 신경 쓰며 걸어야 하는 곳이다.
나름대로 요령을 부려 먼지방향에 따라 좌측 우측도로를 횡단하며 걸어 보았지만, 결국 먼지를 뒤집어쓰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런 악조건에서 벗어나 10시 51분 삼거리에 도착했는데, 좌측에 예빛교회가 있고 우측으로 원각사로 가는 삼거리다. 이곳에서 계속 직진하면 고양시 풍동에 있는 동국대일산병원과 356번 도로를 만나고, 한북정맥길은 우측 원각사 가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마을길 포장도로를 따라 얼마쯤 갔을까. 11시 24분 다시 도로를 만났는데 이곳은 ‘성동고개’라 부르는 곳이다. 이곳 도로에서 우측으로 가면 363번 도로와 일산동구 성석동과 연결되며, 좌측으로 가면 356번 도로와 일산 동구 증산동과 연결되는 곳으로 정맥은 도로를 건너 만경사를 지나 계속 이어진다.
도로를 건너 가파른 시멘크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 11시32분 만경사에 도착했다. 만경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에 속해 있는 조계사의 말사라고 하는데, 조선 선조시절 때 홍이상이 자신의 원당으로 사용하기 위해 창건했다고 하며 이후 홍이상의 후손들이 계속 머물며 거주하고 있는 절이라고 한다. 홍이상洪履祥(1549년~1625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대사헌까지 지낸 인물이다.
절 옆 고목느티나무에서 기념촬영 후 5분 정도 오르니, 고봉산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고봉산 정상이지만 아쉽게도 군부대로 가로막혀 있어 갈 수 없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약 10여분 올라가면 장사바위가 나오는데, 현재는 그 장사바위가 고봉산 정상을 대신하고 있다. 11시 52분에 도착한 장사바위에 있는 안내도에는 다음과 같이 고봉산을 소개하고 있다.
“고봉산은 고양시 일산, 백제지역을 대표하는 주산으로 높이는 해발 208m이다. 일명 ‘테미산’, ‘성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고봉’이란 이름은 고구려 시대부터 사용되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고봉산의 한 씨 미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어 오랜 역사와 함께 명성을 증명해 주고 있다. 고봉산은 일산 지역의 최고봉으로, 역사 문화 지리적으로 중심에 있어 이 일대의 중산中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산 정상에는 조선시대에 사용된 고봉봉수대가 있으나 현재 군사시설지역에 포함되어 일반인의 출입은 자유롭지 못하다. 고봉산은 인근의 황룡산까지 숲길과 산길로 이어져 고봉누리기의 핵심이 되고 있으며 많은 시민들의 휴식 및 자연학습, 운동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장사바위에서 전망을 바라다보았다. 춥지만 맑은 날씨 덕분에 북한산 연릉과 사패능선을 볼 수 있고 고양시 일산동구 방향으로 뚜렷하게 조망되었다. 문봉동, 고봉동, 설문동, 지영동도 한눈에 들어오고, 문봉동 옆에 있는 133m의 현달산과 이미 지나온 138.7m 높이의 현달산 두 곳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장사바위를 뒤로하고 12시 3분 고봉정을 지나 12시 7분 98번 국도상에 있는 ‘순두부마을’ 식당에 도착했다. 여럿이서 함께 북적이며 먹는 식사는 산행 도중 먹는 달콤함에 꿀을 잔뜩 얹어 주었다.
금정굴을 지나 장명산으로
보쌈과 순두부정식으로 점심을 마치고 일어서니 13시 1분이다. 이제 이곳 98번 도로를 건너 금정굴을 지나고 나면 지루한 도심거리가 장명산까지 이어진다. 도로를 횡단 후 산으로 접어드니 “통한의 금정굴을 평화의 공원으로”라고 새겨진 큰 나무목과 “금정굴”이라고 새겨진 장승이 서 있는데, 이곳을 통과해 조금 오르니 유해발굴현장이 나온다.
이곳에 위치한 금정굴을 1950년 6 ․ 25전쟁 중 9 ․ 28수복으로 점령 중인 북한군이 후퇴하자 부역자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부역자 가족을 포함하여 억울한 사람들이 반공단체와 경찰에 의해 집단 학살된 곳이다. 당시 학살당한 책임자인 고양경찰서장 이무성은 불법학살에 대한 책임으로 파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그 후로도 ‘빨갱이 가족’이라는 누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재산도 잃고 사회적 활동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며 온갖 어려움을 겪고 살아오고 있다고 한다. 이에 일부 유가족들이 모여 ‘일산 금정굴 가족회’를 결성하고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고 명예회복 및 유골의 발굴안장을 추진하기 위해 대통령과 국회 등 각계 요로에 청원서와 탄원서를 보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지금도 촛불이 켜져 있는 발굴현장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에게 진지한 마음으로 고개 숙여 조의를 표한 후 착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정맥을 이어 가기 위해 출발했다.
군부대 철책 옆으로 난 편안한 소나무 숲길을 따라가니 13시 36분 쉼터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134.5m인 황룡산이 나오고 한북정맥은 좌측 호곡중학교와 일산동고등학교 옆으로 진행해 시내를 통과해야 한다. 이곳 삼거리에는 ‘황룡산 이야기’와 ‘탄현동과 숯고개 이야기’가 적인 안내도가 있다.
황룡산 이야기
“황룡산은 고봉산과 함께 고봉누리길상의 주요 산으로 고양시와 파주시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높이는 해발 134.5m이며 산 정상에서는 고양, 파주, 양주, 김포, 강화, 개성 등이 조망되는 전략상 요충지에 해당한다. 지리적 군사적 중요성으로 인하여 산 정상에는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어 일반인의 출입은 통제하고 있다. ‘황룡’이란 이름은 상석동 두테비 마을의 두꺼비와 황룡산의 황룡이 다툰 이야기 등 여러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산 아래 감내 마을에는 한옥으로 이루어진 용강서원9)을 비롯하여 향토문화재인 이천우묘소,10) 권필, 권벽의 무덤이 남아 있어 이곳의 오랜 역사를 보여 주고 있다.”
탄현동과 숯고개 이야기
“탄현동은 고양시 일산서구에 속한 마을로 일명 ‘숯고개’라 불린다. 숯고개하는 이름은 일산지역의 명산이 고봉산과 황룡산에 많은 참나무를 이용하여 숯을 만들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개발 전 마을은 위쪽에 있는 성탄마을을 시작으로 하여 중탄, 하탄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산과 논밭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탄현동의 서쪽으로는 경의선 철로가 관통하고 있으며 일산 홀트학교가 들어서면서 널리 알려지기도 하였다. 1990년대 초반 행신, 탄현, 성사지구와 함께 택지 개발이 이루어졌고 이후 계속된 도시화로 인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마을 안에는 SBS드라마 제작센터를 비롯하여 탄현 문화의 집 등이 자리해 있다. 탄현동에서 황룡산과 고봉산을 연결하는 고봉누리길은 주민들의 휴식 및 운동공간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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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원래 함경도 용릉강변에 잇는 서원이었으나 6.25에 의해 남북이 중단되면서 서원에 제향을 할 수 없게 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박씨 문중과 고양군의 유림에서 재건한 서원임,
10) 조선조 태조 이성계의 조카로 태종의 왕위 등극에 큰 공을 세운 인물
고양시 일산 서구 시가지를 지나며
13시 36분 다시 출발했다. 그러나 이제 이곳부터는 산길이 아닌 도심지를 지나야 하기 때문에 지도를 보거나 GPS기가 안내하는 대로 가야 한다. 그래서 손에 익은 GPS기를 보며 진행해 호곡초등학교 부근에 이르렀는데, GPS기에 나타나는 트랙이 갑자기 일직선으로 나타나 길을 찾을 수 없다. 아무래도 트랙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나는 이 길을 먼저 걸었던 어느 선답자가 자기 GPS기에 저장된 트랙을 카페에 공개한 것을 다운 받아 사용하고 있다. 아마 선답자가 이 구간을 지나면서 일시적으로 GPS기에 이상이 있었던 것 같다.
할 수 없이 지도를 보며 다시 출발했는데, 원래는 호곡초등학교에서 직진해 일산가구단지 방향으로 가야 하지만 착각해 우측 ‘일신장애인 직업전문학교’ 쪽으로 진행해 13시 56분 운정지구 ‘야당4리사거리’에 도착했다. 가로질러 온 셈이다.
또한 이곳 사거리에서도 좌측으로 간 후 다시 우측으로 진행해 운정택지개발지구를 통과해 목동리와 교하중학교를 지나 핑 고개 쪽으로 가야 하는데, 369번 도로를 따라 직진해 ‘고인돌산림욕장’옆으로 도착했다.
고인돌산림욕장에는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지석묘가 있는데, 지석묘는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만든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하며 지상에 책상처럼 세운 탁자식(북방식)과 큰 돌을 조그만 받침돌로 고이거나 판석만을 놓은 바둑판(남방식)식으로 나뉜다.
경기도 파주시에는 모두 4군데의 고인돌 군락지가 있으며, 월룡면 덕은리에 주거지와 지석묘군, 다율리와 당하리에 지석묘군, 교하리 지석묘군, 옥석리에 민무늬토기시대 주거지와 지석묘군 유적 등이 있다고 한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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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파주문화원
핑고개
고인돌산림욕장에서 더 가니 교하초등학교와 교하파출소, 교하우체국, 교하읍사무소가 나오고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하여 16시가 되어 핑고개에 도착했다. 핑고개는 파주시 교하읍 당하리와 다율리, 연다산리를 잇는 고개로, 핑고개를 지나가는 도로는 359번 도로와 56번 도로를 이어 주기도 한다.
핑고개에 있는 오도봉 버스정류장에서 미진사 옆을 통과 해 힘들게 능선을 넘어가니, 엄청난 규모의 골재 채취장(유전골재)과 폐기물처리장이 보이고 건너편에 있는 장명산은 8부 능선에서부터 산이 잘려 나가 절개지만 남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곳에서 장명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모두 파헤쳐져 곳곳에는 골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져 있다.
골재 사이로 지나가 보려고 했으나 골재를 실어 나르는 덤프트럭들이 먼지를 날리며 수없이 드나들고 있었기 때문에 자칫 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도저히 지나갈 수도 없었다. 혹시 우회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하고 GPS기를 봤으나 아직도 활성화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좌측 능선을 따라 우회하여 16시 27분 오도리 주민들이 산신제 올리는 곳(향나무)이라고 적힌 안내문 옆을 통과하고 30여 분을 어렵게 진행한 끝에 16사 56분,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종점인 장명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명산에서
102m 높이의 장명산은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오도리와 당하리 하지석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지금은 골재 채취로 인해 산이 절반이나 절단되어 있는 상태다.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정상석이 세워져 있으며, 산불이 났을 경우 이를 알리기 위한 쇠파이프 형태의 종도 설치되어 있다.
장명산은 ‘약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에는 전설 같은 유래가 담겨 있다. 옛날 조선시대에 아이를 갖지 못하는 한 아낙이 아이 갖기를 소원한 나머지 지금은 흔적도 없는 장명산 중턱에 위치한 약수터에 올라가서 약수에 밥을 지어 먹고 구절초 달인 물을 먹으면서 지성을 드(린 후에)렸다.
갖은 정성과 노력 끝에 그 아낙이 아이를 갖게 되자, 그 소문은 한양 땅에까지 일파만파로 퍼져 아이를 갖지 못한 양반댁 부인들이 매년 음력 9월 9일이면 장명산에 와서 약수에 밥을 지어 먹고 구절초 달인 물을 먹어서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장명산에서의 조망은 탁월했다. 장명산 아래로 말없이 흐르고 있는 공릉천 너머로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손에 잡힐 듯 하고, 한강 건너로는 멀리 김포시 양촌면 일대와 통진읍 일대를 비롯해 봉성리에 있는 129m 높이의 봉성산도 보이고 바로 옆으로 김포시 하성면도 조망된다.
그리고 파주시 교하쪽으로는 교하읍과 멀리 고양시 일산서구 쪽과 좌측으로 일산기가지도 조망되었다. 또한 지나온 일산동구 쪽으로도 고봉산 현달산이 아스라이 보이고 멀리 북한산도 펼쳐진다.
조선조 광해군 때에는 수도를 이곳 장명산을 주산으로 하고 교하지역을 왕궁터로 하는 교하천도 계획도 있었지만 신하들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었으며, 우리나라의 풍수지리 대학자로 알려진 최창조 교수도 앞으로 통일수도 자리는 ‘평지의 용(龍)’인 파주라고 말했다
하산하며
이제 이곳 장명산에서 하산해 공릉천교 아래 강가에서 준비한 간단한 음식으로 완주식을 거행하면 실질적인 한북정맥 종주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하산하기 전 이곳 장명산에서도 간이 완주식을 갖기로 했다.
먼저, 정상석 앞과 정상석 옆 나무에 매달려 있는 온갖 각양각색의 리본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기념사진을 찍었으며, 정상에 있는 종을 힘차게 타종하면서 한북정맥을 무사히 마쳤음을 온 주위에 알렸다. 그리고 친구들 간에 서로 그동안 수고했음을 격려하면서 간이 완주식을 마쳤다.
아쉽지만 이제는 내려가야 한다. 아쉬운 마음에 오늘 걸어왔던 구간을 다시 한 번 뒤 돌아보며 장명산을 뒤로하고 도로로 내려서니, 마침 옆에서 흐르고 있는 공릉천도 한북정맥 완주를 환영이라도 하듯 은빛 물결을 일으키며 반겨 준다.
17시 12분 공릉천교를 건너 공릉천변에 도착했다. 공릉천은 한때 ‘곡릉천’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지도상에는 곡릉천으로 소개), 경기도 양주시의 사패산 송추계곡에서 발원해, 고양시, 파주시에 걸쳐 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공릉천이라는 이름은 파주시에 있는 파주삼릉(공릉 순릉 영릉)의 공릉에서 유래하였다. 그리고 창릉천과 함께 고양시의 2대 하천으로 ‘신원천’으로 부르기도 하였으며, 관상동 일대에서는 공릉천을 별도로 ‘심천’이라 부르기도 한다.
산행을 마치며
한북정맥을 관장하시는 산신령님과 천지신명님
2013년 7월 20일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에 있는
수피령에서 시작한 발걸음으로 그동안 190㎞ 이상의
한북정맥을 걸어와 드디어 2014년 1월 18일
이곳 장명산 아래 공릉천에서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완주했음을 고하나이다
산신령님 그리고 천지신명님!
이렇게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산신령님과 천지신명님께서 굽어 살펴 주신 덕분이옵니다
오늘 제가 보잘 것 없는 음식과 술을 준비해
술 한 잔 올리오니 흠향하옵소서!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는 종주에도
용기와 무사히 완주할 수 있도록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공릉천교 및 한곳에 한북정맥 완주를 축하하는 플래카드를 걸고, 그 아래 막걸리 사과, 귤, 과자 등으로 간단한 제단을 차린 수 고락을 함께 해 온 김재중, 이동규, 정근철 친구와 합동으로 막걸리잔을 올리며 그동안 아무런 사고 없이 한북정맥 종주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산신령님과 천지신명님께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추운 날씨임에도 끝까지 24㎞를 함께 동행해 준 권혁진, 김원국, 박당현 친구와도 막걸리 잔을 나누며 고마움을 표했다. 다들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친구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 동행해 준 좋은 친구들이다. 다시 한 번 이 글을 통해 세 친구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감사는 감사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축복이자 선물”이라고 한다. 비록 산행을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서울 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 옆 ‘보들리곱창집’에 미리 와 2시간 이상 기다려 주고, 축하 케이크까지 준비해 준 김영숙, 김명숙, 박미애, 박용례, 장은이 친구에게도 이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항상 성원을 아끼지 않은 ‘재경유은 1325회(광주상고 25회 졸업, 광주여상고 13회 졸업생 서울 동창회 이름)’ 친구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이제 아쉬움과 또 한편으로는 후련함으로 2013년 7월 20일 수피령에서 시작했던 한북정맥 종주를 모두 마치고자 한다.
만남에는 분명 헤어짐이 따르지만, 그 헤어짐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쉬운 점 또한 많다. 하지만 이제 끝이 아니다. 한북정맥과 헤어졌으니, 또 다른 정맥과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 그야말로 9정맥 종주를 목표로 정신없이 달려왔다. 거친 숨결을 가다듬고 벅찬 가슴을 애써 억누르고, 이제 나의 도전은 다시 새롭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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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백두대간을 종주한 산사나이의 한북정맥 도전기!
12구간으로 나눈
산행을 통해 한북정맥의
역사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아 함께 떠나 보자!"
6개월간 수피령에서 장명산에 이르기까지 총 175.4㎞에 달하는 한북정맥을 종주한 기록을 담은 이 책은 마치 길 한 쪽에 붉게 물든 단풍이 발길을 잡듯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눈으로 이 책을 읽으며 가지런히 나열된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새 산에서 불어오는 산뜻한 바람과 맑은 기운에 몸도 마음도 절로 환해지며 지금이라도 당장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산을 오르고픈 열정이 가슴 가득 차오른다. 아름다운 산의 진경을 눈에 담고 저자의 고행을 느끼며 책장을 넘기니, 어느 순간 책의 마지막 패이지를 막 넘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권희석(하나투어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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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김천규∥
∙ 1957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그는 목포일중과 광주상고를 거쳐 조선대 경영학고와 한양대 행정대학원 부동산학고를 졸업했다.
∙ 2012년 10월 ‘Asia 서석문학’에서 수필부문에 등단하여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며,
∙ 현재 검찰청에서 근무 중이다.
∙ 그 동안 산이 좋아 약 25녀여 년 동안에는 홀로 735.34km의 백두대간 종주를 마쳤으며, 우리나라 9정맥 종주를 목표로 이번에 약 175km에 달하는 한북정맥의 종주를 완주했다.
∙ 앞으로도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남은 정맥들에 나이테를 새기며 한 발 한 발 힘차게 종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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