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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장가계 갈까?'
가을 타는 세 여인이 소주잔을 부딪치며 우리 한번 거하게 뭉치자는 송의 제안에 정이 답했다. 다음 날 뜬금없는 장가계 가을 날씨와 여행지 베스트에 대해 주고받는 카톡 방에서 강은 무슨 말인지 기억을 더듬었다. 웬 장가계? 강이 고개를 갸웃대는 동안 송과 정은 언제 갈 건지 날짜를 주고받고 있었다.
'아. 뭐야. 강 언니. 또 밧데리 나간 거야. ㅋㅋ'
정이 날린 맨션에 강은 아차 싶어 가뭇없는 기억 속을 헤집으며 답했다.
'밧데리는 머 아무 때나 나가나? 달력 보고 있었떠. ㅎㅎ'
'칫. 언니. 다 알아. 어제 또 잔 비우다 기절했잖아. ㅋㅋ'
'내가? 언제?'
송곳처럼 찌르는 정의 말에 강이 뜨끔하여 내뺐다. 어쩔 수 없이 난처한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 강이 재빨리 답을 했다. 'ㅇㅋㅂㄹ'
생각하니 불과 보름 전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공항 출국장이다. 오늘 밤 열시 장가계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 로비에 모였다. 다음 달 막내가 수능이라는 러블리 송은 얌전한 카디건 차림이다. 밧데리 강은 어제 과음으로 겨우 공항에 왔다며 오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간 지 한참만에야 나타났다. 대형 캐리어를 끌고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화려한 선글라스를 낀 럭셔리 정은 팔짱을 끼고 앉아 있다. 정은 송과 강을 올려다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강은 정의 캐리어가 수상했다.
'아마도 저 안엔 어마어마한 알코올과 나트륨이 가득할 거다.'
캐리어를 유심히 쳐다보는 강을 보며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를 채고, 두 여인은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키득거렸다. 그것도 잠시 아직도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차피 이리 된 거 대륙에서 멋지게 놀고 오자며 집합지로 향했다. 마치 전장에 나가는 군인처럼 비장한 뒷모습이었다.
송강정은 멀리 여행사 직원의 설명을 듣고 있는 한 무리의 일행들에게로 다가갔다. 패키지 팀에 합류하여 여권과 여행 안내서를 받아들고 보는 둥 마는 둥 서 있었다. 그리고는 이들과는 달리 여행의 설렘을 가득 안은 표정으로 서있는 다른 일행들을 빙 둘러보았다. 부부 팀이 2, 아들 둘과 함께 온 4인 가족 팀 하나, 모녀 팀 1,자매와 남편들 팀 1, 송강정 팀 1, 모두 17인 이랬다. 여행사 직원이 그중에서 대표를 뽑았다. 별다른 기준 없이 그저 무작정 제일 처음으로 접수한 1번이 대표라 했다. 보아하니 일행 중 가장 연장자인 듯싶은 초로의 부부 팀이었다.
송강정은 이 여행 피곤하겠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예감은 틀리지 않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우리 팀의 대표가 발권을 하다가 멀리서 강에게 손짓을 했다. '아, 왜 날 불러.' 강은 입속말을 하며 대표에게 다가갔다. 항공권 영문이 여권 영문과 다르다는 거다. 아마도 여행사에서 예약 과정에서 잘못 기재를 한 것 같다. 여행사와의 통화로 발권은 되었으나 귀국 티켓도 수정해야하기 때문에 중국 도착 후 가이드에게 꼭 확인하라고 당부했다.
'아, 살다 살다 이런 경험 처음이네. 아니 비행기 티켓에 탑승자의 이름을 달리 기입하다니.'
어쨌거나 야간 비행의 설렘을 안고 비행기에 탑승하여 좌석을 확인하니, 강은 혼자 따로 앉게 되었다. 그런데 승객이 모두 탑승했는데도 드문드문 빈자리가 많이 보였다. 다행히 세 자리가 빈 곳을 발견하고 자리를 이동해서 나란히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오, 불행 중 행운이군.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엄지 척을 보냈다. 셋이 여행의 설렘으로 들떠서 한참 수다를 떨고 있는 사이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 내용은 즉 장비 결함에 의해 한 시간 정도 연착이 된다는 거였다.
아, 이건 또 머니? 항공권 착오 발행에 이어 비행기 연착? 이거 갈수록 꼬이고 있다. 뭔가 불길한 조짐을 느끼고 있는데, 정이 옆자리에서 갈증이 난다고 강의 옆구리를 찔렀다. '응? 맥주?' 강이 물으니 정은 바로 고개를 까딱였다. 강은 때마침 지나는 승무원에게 맥주를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승무원은 이륙하면 주겠다고 했다. 아니 그건 또 무슨 근거야. 장비 결함으로 한 시간이나 연착하는 주제에 맥주 하나 주는 건 왜 안 되는 거야. 송강정은 따지지도 못하고 자기들끼리 소심하게 키득거리며 외쳤다.
길고 긴 한 시간이 흐른 후 드디어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이륙했다. 비행기가 하늘로 치솟는 순간은 언제나 두렵다. 귓속이 찌릿하고 가슴속은 짜릿해 왔다. 드디어 비행은 순조롭고 기내식이 나왔다. 우리는 가볍게 맥주 한 캔 후, 한 캔 더 리필 후에야 만족감을 표시했다. 장사공항까지 두 시간이니 영화라도 한 편 보자며 서로 영화를 추천했다. 최근 개봉한 몇 편의 영화가 있었으나 강의 추천으로 배심원들을 보기로 했다. 그러나 딱 십 분이었다. 알코올의 영향으로 송과 정은 잠 속으로 빠져 연신 고개를 조아리고 있다. 강은 혼자 영화를 보았다. 개봉 당시에 본 영화였지만 마지막 장면은 다시 봐도 가슴이 뭉클했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비행기 한 시간 연착에 의해 장사공항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어갔다. 입국심사를 하느라 열 손가락 지문을 일일이 입력을 하고, 까다로운 심사대를 통과하느라 한 시간이 더 걸렸다. 공항 로비에는 여행사 가이드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리무진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으니 가이드가 자신을 김 반장이라고 소개했다. 우리 일행이 17명이니까 우리는 1학년 7반이고, 자신은 7반의 반장이라며 재치 있게 소개했다. 김 반장은 연변 출신으로 삼십 대 중반의 쾌활한 성격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호텔로 이동하는 동안 여행 일정에 대해 잠시 안내를 한 김 반장이 선포했다.
' 내일, 아니 오늘 아침 6시에 식사를 하고 6시 반에 장가계로 이동합니다. 호텔에 두고 나온 물건 없이 잘 챙기시고 잠시 후 뵙겠습니다.'
비행과 입국 심사로 일박 이일을 보내느라 벌써 몸은 만리장성을 걸은 것처럼 피곤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송과 정은 컵라면 두 개를 꺼내 속을 풀더니 꿀잠에 들었다. 강은 혼자 남아 무거운 눈꺼풀을 끌어올리며 소주잔을 채웠다. 창문 사이로 가을밤 찬바람이 스며들며 여수를 불러일으켰다. 강은 짭조름한 비스킷을 입안으로 넣으며 미지근한 소주를 컵에 따랐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알코올이 피로를 풀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아, 밧데리가 방전하지 않으면 도저히 맨 정신으로 잠들 수 없는 새벽이다.'
휴대폰이 충전되는 동안 강은 밧데리가 서서히 방전되어 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알람이 울렸다. 날밤을 지새운 강은 세수도 하지 못한 채 중국식 조식으로 간단히 때우고, 송과 정은 허여멀건 죽을 먹고 함께 버스에 올랐다. 밤새 눈을 붙이지 못한 강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이마를 찡그렸다.
'이거야 원, 여행을 마친 분위기로 벌써 귀국 모드네.'
자리에 앉자마자 강은 눈을 감았다. 김 반장은 자려면 선글라스 쓰고 자야지. 자는 얼굴 보면 기운이 안 나니까 모두 눈을 뜨라고 말했다.
'아, 그럼 더 재우던지. 이게 뭐야. 눈 붙이자마자 떠서 밥은 먹는 둥 마는 둥이고.'
정이 옆에 앉아 입을 삐죽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 반장은 마이크를 잡고 첫날 일정을 말했다, 대략은 이렇다.
< 장가계까지 300킬로 가까운 거리. 속도제한이 있고, 중간에 휴게소에서 20분 휴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5시간 소요. GPS로 차를 위치 추적하기 때문에 법을 반드시 지켜야 함. 휴게소 화장실은 대부분 휴지가 없으니 각자 챙길 것. 아울러 호텔을 나서면 무조건 양변기를 만날 수 없으니 중요한 용변은 호텔에서 반드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
김 반장의 화장실 설명에 럭셔리 정은 벌써부터 진저리를 쳤다.
죽기 전에 장가계를 꼭 봐야 한다고 누가 그런 거야. 나 다시 돌아갈래.'
'그러게. 어쩌다 술은 먹고 여기까지 왔을까.'
강과 정이 얼굴을 보며 주고받았다. 김 반장은 관광에 앞서 중국의 생활과 문화에 대해서 들려줄 테니 일단 귀를 기울여 달라고 말했다. 모르고 보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여행이 더욱 즐거울 거라는 누구나 아는 진리였다. 그러면서 아주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장사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고 문화대혁명을 이룬 중국의 붉은 별 모택동의 고향이라고 했다. 그리고 장개석과 모택동 시절 장군이었으며 중국의 십 대 원수元帥로 추종 받는 하룡賀龍장군의 고향이기도 하단다. 그래서 장사 출신들은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우리 여행지 장가계는 화남지역으로서 비가 많이 오는 아열대 기후라서 일 년 중 200일 이상이 비가 오고, 3대가 덕을 쌓아야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단다.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면 이번 생은 글렀구먼?' 강이 내뱉었다.
'그럼 다음 생에 와야겠네. ㅎㅎㅎ' 정이 맞장구를 쳤다.
김 반장은 이어서 중국의 달라진 주거 문화를 말했다. 요즘은 중국의 도시인들도 아파트를 선호한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과 달리 불편한 점이 있다고 했다. 한국에선 현관 키 하나만 있으면 바로 입주가 가능하지만, 중국은 분양 후 입주까지 할 일이 너무 많다고 했다.
중국의 아파트는 건물만 짓고, 나머지는 입주하는 사람이 알아서 인테리어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이 똑같은 집이 하나도 없단다. 김 반장도 결혼해서 두 살배기 아기가 하나 있는데 못한 게 너무 많아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의 건축 시스템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테리어야 취향의 문제지만, 벽지와 바닥, 전등과 싱크대, 심지어 전기 콘센트와 문고리까지 각자 알아서 시공을 해야 한다니. 공산국가인데 건축문화는 개방적이고 자유롭다고 생각해야 하나? 모두들 이해가 되지 않지만 중국 와서 살 건 아니니까 믿거나 말거나 하는 분위기였다.
김 반장은 이제 모두들 피곤할 테니 잠시 눈을 붙이라고 선심을 썼다. 장가계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이란다. 장장 5시간에 걸쳐 점심을 먹으러 가는 셈이다. 김 반장도 제자리에 앉아 잠을 청하고 옆자리의 정도 어느새 잠에 든 듯했다. 강은 차창에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커피를 한잔 따랐다. 중국 사람들은 기름진 식생활 때문에 차를 많이 마시고, 커피는 전혀 마시지 않는다는 걸 지난번 계림 여행에서 알았다. 커피가 아니면 하루를 온전히 시작하지 못하는 습성이 몸에 밴 강은 이번엔 보온병이랑 커피를 챙겨왔다. 커피 향을 음미하며 나른한 잠을 깨운다. 차창 밖으로는 광활한 중국 땅의 소박한 시골 풍경들이 지나갔다.
김 반장은 버스에 타자마자 마이크를 잡았다. 장가계를 여행 온 사람들은 실컷 장가계를 보고 돌아가는 버스에서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했다. '김 반장. 근데 장가계는 언제 가?' 그러고 보니 흔히 양가계는 몰라도 장가계와 더불어 원가계는 꽤 알려져 있다. 원가계는 영화 아바타의 배경지로 유명해졌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토가족이라는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던 곳인데, 워낙 산세가 험해서 산적들이었다고 한다. 양가계楊家界는 양씨 성을 가진 사람들, 장가계長家界는 장 씨 성을 가진 사람들, 원가계猨家界는 원숭이 젖을 먹고 자란 고아에 의해 번성하게 되어 원숭이가 많은 곳이라고 했다.
장가계에 도착하니 과연 웅장하고 기이한 기운이 감돌았다. 지금까지 보던 산은 산이 아니었다. 장가계는 ‘강이 팔백 봉우리가 삼천’(江八白峰三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산수가 수려했다. 특히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을 보고 있자면 천국에 있는 산이 이러할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천문산까지 셔틀버스를 탔는데 굽이굽이 곡예운전을 하는 신묘한 체험을 했다. 이 길이 통천대도 通天大道란다. 그야말로 하늘로 가는 길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하늘로 들어갈 것 같은 커다란 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천문동天門洞이다. 천문동은 아주 옛날 절벽이 무너지면서 생겼다고 한다. 천문동까지 999계단이 있는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50m 길이를 연속으로 12번을 갈아타며 올라갔다. 무려 30분이 걸렸다. 천문동 뒤쪽으로는 잔도 棧道가 놓였다. 잔도란 절벽에 길을 만들어 붙여 만든 길이다. 유리잔 도와 귀곡 진도가 있는데, 대부분 사형수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내려올 때는 케이블카를 탔다. 천문산 케이블카는 7,455M로 세계 최장이다. 주택가 위를 지나서 지상에 내려온다. 주택 안에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다음 날은 여행의 백미인 원가계를 보는 날이라 날씨를 특히 걱정했다. 비록 내 복福이 아니더라도 우리 일행 중 누군가의 덕德으로 화려한 원가계의 장관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살짝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아침에 창문을 여니 역시 실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전에 십리화랑을 산책하고 대협곡을 따라 한 시간을 걸었다. 기암괴석으로 깎아내린 절벽에 인공으로 만든 폭포수가 흘러내리고, 시원한 계곡을 따라 새들이 포르릉 날아다녔다.
대협곡 끝에서 배를 타고 나와 점심을 먹었다. 드디어 원가계로 향하는 시간이 다가오자 비도 그치고 하늘이 점점 맑은 기운을 띠우고 있다. 그러나 습한 기운 때문에 정상에 오르자 안개가 가득했다. 원가계는 높이를 보는 게 아니라 깊이를 보는 것이라 했는데 그 깊이를 보지 못해 아쉬웠다.
세계 최대의 백룡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마지막 여행지인 황석채로 향했다. "황석채를 가보지 않으면 장가계를 보지 않은 것과 같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하니 기대를 해본다. 그러나 안개구름이 덮여 있어 그 절경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다. 김 반장이 우리 모두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염원하면 조금이라도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언제 다시 여기 올 수 있으랴. 송강 정은 마음을 모아 빌어보았다. 아, 그런데 정말 안개구름이 조금씩 움직이면서 8부 능선을 드러내더니 희미하게나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국적인 절경과 웅장함에 모두가 탄성을 질렀다.
장가계의 마지막 밤을 맞이했다. 호텔로 돌아와 짐 정리를 마친 송강정은 아쉬운 장가계의 밤을 위해 건배를 했다. 정은 원주민에게서 산 호박만 한 유자를 꺼내 놓고, 송은 칼로 껍질을 벗겼다. 대륙의 유자는 시지도 않고 달콤했다. 장가계 최고의 풍경인 원가계에서도 제일은 천하제일교의 미혼대迷魂臺라고 했다. 천하의 비경을 모두 둘러보고 돌아온 밤, 술잔에 어리는 봉우리들에 혼을 빼앗기고 말았다. 우리는 모두 길을 잃었다.
장가계에서 2박을 하고 3일째 날은 온통 쇼핑이었다. 아침 먹고 쇼핑, 점심 먹고 쇼핑, 이거야 원 한국 관광객들이 대륙을 먹여 살리는 꼴이었다. 더군다나 관광지에서 보여주지 않던 해님이 활짝 얼굴을 내밀어 원통하기까지 했다. 저 햇살 아래 원가계를 다시 가서 장엄한 원가계의 깊이를 느껴보고 싶다. 저 하늘 아래 장엄하게 빛나는 황석채의 절경을 만나고 싶다. 하지만 어쩌랴. 시곗바늘을 돌릴 수도 없고, 그저 내가 쌓아 놓지 못한 부덕을 탓할밖에.
우리 일행들은 서서히 쇼핑에 동참했다. 엄마를 모시고 온 딸이 게르마늄 팔찌를 사고, 군포에서 부동산을 하는 선옥 씨가 목걸이를 샀다. 이어서 들른 라텍스 매장에선 상품 설명이 끝나도 특별히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없자 업자는 대놓고 투덜거렸다.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하고, 옆에 와서 이걸 만져 봐라. 저기 앉아 봐라 하며 추근거렸다. 마음 약한 몇 명이 목 보호대와 베개를 사자 그제야 우리를 놓아주었다. 점심을 먹고 들른 보이 차 매장에서는 2+1, 3+1... 기상천외의 판매 방식으로 물건을 팔았다. 과연 상인商人의 나라이다.
온갖 눈치와 갖은 수모를 견디면서 송과 정은 꿋꿋하게 노 쇼핑을 했고, 오래 살고 싶은 강은 게르마늄 목걸이와 팔찌를 장만했다. 하루 쇼핑을 위해 우리가 그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빡빡한 관광 일정을 소화했었다는 뒤늦은 깨달음에 일부는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즐거우나 괴로우나 이제 서서히 귀국할 시간이 다가왔다. 상덕 공항에서 중경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중경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된다. 마지막 일정도 무사히 잘 지나기를 기도하며 상덕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연착 소식이 들렸다. 이번에는 군사훈련으로 비행기가 한 시간 연착이란다. 아니 무슨 공항에서 군사훈련을 할까. 그러나 일행들은 공산국가이니 이쯤은 별거 아니라는 듯한 분위기였다.
중경은 중국의 4대 직할시의 하나로 인구 3천만의 대도시이다. 비행기의 연착으로 한 시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때마침 퇴근 시간이어서 도로가 정체 현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중국의 대표 요리인 소고기 훠 거 예 중경 맥주를 마신 후 양강 유람선을 타고 중경의 야경을 볼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는데 모두들 답답해했다. 지루하게 느껴지는 정체를 틈타 김 반장이 중국의 삶을 실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해주겠다고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중국이 공산국가라서 정부에서 추진하는 일에 개인 의사는 모두 무시가 된다고 했다. 그 일례로 중경에서 지하철 공사를 할 때 어느 아파트가 철거되는 상황이었다, 중경의 땅값이 워낙 비싸서 다른 데로 이주하기에는 너무나 적은 보상금을 받게 되자 주민들은 반대를 했다. 그러자 정부에서는 5,6층 주민들에게만 보상을 해주고, 그 층을 통과하는 지하철을 놓았다고 한다. 우리 같으면 있을 수 있는 일이겠는가. 인권이 어떻고 환경이 어쩌고 하면서 시민들이 들고일어날 테지만 중국에서는 모든 것이 국가 주도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어쩔 수가 없다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을 생각하니 우린 참 살기 좋은 나라에 태어난 복도 많은 민족이다. 어쩌다 취중에 벌어진 일로 대륙까지 날아오는 이 용감무쌍한 대한민국의 여인들을 보라. 어쩔 수 없는 일이 어디 있을까. 중국의 여인들이 남자 보다 살기 편하다고 한들 대한의 여인들 같으랴.
이번 패키지에서 송강정만이 친구 팀이었다. 대부분이 중장년의 부부였고, 모녀 팀 등 가족들을 동반한 여행자들이었다. 장가계가 효도여행이라는 인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하루 2만 보, 십 킬로 이상을 걸어야 하는 일정이라 결코 효도관광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70대, 80대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중국에는 '사람이 태어나 장가계에 가지 않고 백세가 되었어도 늙었다 할 수 없다.(人生不到 張家界, 百歲豈能 稱老翁)'는 말이 있다. 신선들의 땅이라고 여길 정도로 수려한 장가계의 위용 앞에서 인간의 꿈은 얼마나 헛된 것일까. 사람이 백 년을 살아서 이룬 것이라도 자연 앞에서는 티끌처럼 가볍게 느껴질 것이다. 딸의 손을 잡고 천하제일교의 유리 다리를 당당히 걷던 노인들은 이번 생에 여한은 없을 것 같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출국장에서 우리 1학년 7반은 김 반장과 마지막 포옹을 나눴다. 아직 아파트 인테리어가 끝나지 않아서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김 반장의 건투를 빌어주었다. 그리고 중경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도 또 한 시간의 연착이 있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까지 비행기든 기차든 하다못해 시외버스라도 연착해본 경험이 없었는데 참 아이러니했다. 그렇지만 덕분에 우리는 한 시간 더 중국 땅에 머물면서 여흥을 즐겼으니 어찌 나쁜 일이라 하겠는가.
사실 송강정의 인연은 함께 여행을 할 정도로 깊지는 않았다. 3년 전 인사이동에 의해 한 부서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러블리 송과 밧데리 강은 처음엔 좀 새침한 면이 있어 속내를 잘 알 수 없는 부류인 반면 럭셔리 정은 첫 대면부터 사부작사부작 친밀해질 수 있는 성격이었다. 송강정이 뭉칠 수 있었던 것 역시 정의 이런 성격 때문이었다. 셋은 어쩌다 저녁에 만나서 직장 생활의 애환을 나누고, 속내를 털어놓으면서 가까워졌다.
인생은 어쩌다 벌어지는 일들의 연속이다. 인생이 계획하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착착 진행되면 얼마나 좋을까. 나이가 들어서 삶이 편해진 것은 타인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지고 배려와 관용이 어렵지 않게 된다는 점에 있다. 누구에게나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송강정은 그런 면에서 통했다.
원가계의 아름다움이 산의 높이에 있지 않고, 그 깊이에 있는 것처럼 인간관계도 그렇다, 젊은 날엔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 않고 만나서 웃고 즐기다가 마음에 맞지 않으면 싸우고 헤어지면 그만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와도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 보면 잊힌 사연들이 많다. 그러나 중년 이후의 친구는 무덤까지 가게 된다. 슬픔은 나누고 기쁨은 더하면서 시들어가는 삶에 향기를 채울 수 있다.
여행에서 돌아온 어느 날 저녁 송강정은 소주잔을 다시 기울였다. 과단성 있게 명퇴를 결심한 강을 축복하는 자리였다. 누군가는 왜 더 다니지. 아깝다고 한탄하기도 했지만 송과 정은 미련의 싹을 남기지 말라면서 용기를 주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송강정은 지난 여행의 추억담을 들추며 즐거운 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아니나 다를까 밧데리 강의 카톡 방이 다시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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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함께 다녀온 듯, 잘 읽었습니다. ^^ 등산을 좋아하시던 어머니 다리가 다시 쌩쌩해지면 장가계에 꼭 모시고 가고프네요.
두 아들이 부모님 회갑 기념으로 같이 여행 온 팀이 잇었는데 너무 부러웠어요. ㅎㅎ
저도 지난 8월에 회갑기념으로 다녀왔는데, 글을 읽으니 그날의 여정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여권 강순덕을 항공권에는 강술덕으로 기재?ㅎㅎ
제목 '송강정...'이 기발합니다.^^
영문이름이 잘못 기재되었어요.
KANG를 KNAG로 ㅎ
신설들만 살 것 같은 장가계, 평생 가 볼 기회가 있으려나...
그들이 하는 말이죠. 우리나라도 좋은 곳 다 못가는 걸요.
장가계 참 근사하더군요
강시인님의 공감가는 글과
같은여행 다른 느낌들이
재미있었어요 ㅎㅎ
조만간 나도 장가계 느낌들
정리해서 또 만나요
어쩌다 다녀온 거라서 ㅎ
많이 다르겠지요. ㅋ
갈 수 있으려나...
유리다리 위에서 돌려차기 ㅎ
늑대님은 훨훨 날아다니실 걸요. ㅋ
패키지 여행기는 처음 보네요. 처음부터 끝까지 생생하게 들려주셨네요.
명퇴 이후의 삶은 더욱 알차고 의미있게 엮어가시리라 믿습니다.
패키지도 잘가면 편하고 좋아요.
그래도 이번 같이 간 일행들이 모두 좋은 분들이라서 별문젠 없었어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백두산 금강산 문학기행 가는 날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