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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화평케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웁니다.(마5:9)
2026, 1/11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마5:9절 말씀으로“화평케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웁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일주일 전에 베네수엘라 마드로가 체포되어 미국으로 압송된 것 때문에 일부에서는 주권 침해라며 마두로의 복귀를 주장하는데, 이는 마드로가 부정선거로 13년을 통치하며 한때 세계경제 4위였던 나라를 최빈국으로 추락시켰고, 정적들을 불법체포 감금하며 재판 없이 살해한 게 확인된 것만 17,000명이며, 그로 인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건 괜찮은가? 만약 내 나라가 저 지경이 되고 나와 내 가족이 같은 일을 당해도 똑같은 주장을 할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미국이 아니라 누구라도 끌어내리는 게 기독교적 가치입니다. 소련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과, 중국이 대만이나 동남아 국가들을 침탈하는 것은 눈을 감는데, 잣대가 동일해야지 선택적 정의를 주장하면 안 됩니다. 이건 이 정도하고,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은혜를 주셨는데,
화평케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워 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아들로 불린다는 것은 참으로 큰 복 중의 복입니다.
이것을 역으로 말하면 주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는 이 세상에 화평이 없었다는 뜻인데, 진짜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까지는 이 땅에 화평은 없었습니다.
물론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해 선악과를 따먹기 전까지는 이 세상은 평화로웠습니다. 하나님과 인간들은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고, 옷을 다 벗어도 부끄러움을 모를 만큼 너무도 순수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는 그 좋은 화평을 일시에 깨뜨렸는데, 범죄 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자 친밀했던 하나님과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되고, 그 좋든 평안함과 안전과 행복도 사라지고 맙니다. 그 결과 미움 다툼 시기 질투 욕심 갈등 분노가 떠나질 않아 서로 다투고 싸우는 전쟁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은 결코 이런 상태가 지속되기를 원치 않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화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고전14:33). 그래서 당신의 아들인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죽이심으로 우리의 죄를 해결하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다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구원의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 땅에서 화평케 하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특별히 화목케 하는 직책까지 주셨는데(고후5:18), 그래서 화목, 화평케 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인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을 따라가면서 우리가 왜 화평을 도모하고, 어떻게 도모하며, 그럴 때 어떤 복이 있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누가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본문 9절 말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아멘.
화평의 뜻은‘마음이 평안한 것’또는‘나라 사이가 화목하고 평화스러운 것’으로 평화와 평안, 평강과 화목과 같은 뜻으로 히브리어로 םוֹלשׁ(샬롬)이 있습니다.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다음 순서로 따라오는 것이 바로 마음에 평안, 화평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나만 평화를 누리는 것에 그치지 말고, 나아가 네가 화평케 하는 사람, 화평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는 Peacemakers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화평케 하는 사람, Peacemakers가 될 수 있을까요?
내가 먼저 화평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화평한 사람만이 남을 화평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코가 석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화평케 할 수 있겠습니까?
내 머리가 복잡하고, 근심 걱정이 가득하고, 내 가정이 복잡하고 심란한데 어떻게 다른 사람, 다른 가정에 화평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누가 화평케 할 수 있을까요? 먼저 주님과 화평을 이룬 사람입니다. 왜냐면 주님은 우리의 화평이시고(엡2:14), 평강의 왕(사9:6)이며 우리를 사랑하시되 자기 몸을 내어줄 만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주님만이 본질적으로 Peacemaker가 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화평을 이룬 사람도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아 Peacemaker가 될 수 잇습니다.
가시나무에게 포도 열매를 맺으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맺을 수 없듯이, 내가 화평하지 않으면, 즉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남을 화평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마음이 청결하고, 그로 인해 내 마음이 화평한 상태가 되면 남에게도 화평을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화평한 사람이 외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먼저 온유와 겸손한 모습입니다. 주님도 이 땅에 왕으로 오실 때 말구유로 오셨습니다. 그보다 더 낮고 온유하고 겸손할 수는 없습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온유한 사람이 바보처럼 보이지만 화해를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온유와 겸손한 사람이 남을 화평케 하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 바로 인내와 관용입니다. 이 인내와 관용은 약자가 하는 게 아니라 강자가 하는 것입니다. 약자가 참는 것은 관용이나 너그러움보다는 힘이 없어서 참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여러분!!! 화평케 하기 위해서는 관용과 인내가 반드시 필요한데, 이 관용과 인내는 모두 참는 것인데, 참지 못하면 화평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온유와 겸손, 그리고 관용과 인내로 화평을 이루는 삶이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그러면 누구와 화평해야 할까요?
먼저 하나님과 화평해야 합니다. 고후5:20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이 말씀은 우리가 평생 마음에 간직하며 실천해야 할 중요한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화평하는 것은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다면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습니다. 온 우주와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과 긴밀한 사이가 되었다는 건 더 이상 실패와 좌절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 때문에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두 번 째는 하나님과 화평을 바탕으로 형제들과의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살전5:13절에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은 자동으로 형제와 화목해지게 됩니다.
형제들이 서로 싸우며 화목하지 못하면 부모 마음은 지옥입니다. 사람의 부모도 그럴진데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반드시 형제와 화목한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도 제단에 예물을 드릴 때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화해하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할 정도로(마5:23-24) 형제와의 화목은 반드시 해야 할 믿는 자의 의무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과 화평해야 합니다.
롬12: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화평의 대상을 형제를 넘어 모든 사람에게로 확장한 말씀인데, 많이 양보해서 형제까지는 화목한다 해도 모든 사람과 화목하기는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히12:14절은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좆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이렇게 주를 보지 못하다고 협박까지 하면서 당부하시는데, 안 할 수 없겠지요. 그래서 내 의지로는 안 되니까 주를 의지하라는 것인데, 겸손하게 주님를 의지할 때 주님이 우리를 통해서 화목을 이뤄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화평은 상대에게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동화시키는 것입니다(고후6:14-16 고전5:9-11). 화평한답시고 악한 자에게 물들지 말라는 뜻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뚝방촌에서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술을 따라주며 먹으면 교회 나가겠다고 해서 먹었는데 목사가 술을 먹었다고 가짜 목사라고 비난했답니다. 같이 먹자고 유혹할 때는 언제고, 먹으니 가짜라고 비난하는 게 세상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방법이 나쁘면 화평도 전도도 될 수 없습니다.(롬3:8) 여러분은 신앙의 틀 안에서 사람들에게 Peacemakers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화평케 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복음을 통해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여 갈등이 있는 곳에 화평을 심는 것은 때로는 자기를 부인하는 희생이 동반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화평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 일을 시작하기 위해 주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고 몹시 기뻐하셨는데,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의 남은 사역을 계승하여 화평케 하는 직분을 잘 감당한다면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며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화평을 이룰 수 있을까요? 다툼의 원인은 인간의 이기적인 정욕과 죄 때문입니다. 약4:1절에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러므로 문제를 해결하고 화평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를 버리는 희생적인 마음과 문제에 대해 절대 중립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형제와 B라는 형제가 다툼이 있을 때 중재자는 어느 일방 편을 들면 안 됩니다. A라는 형제와 말할 때는 B의 입장에서 설득하고, B라는 형제와 말할 때는 A의 입장을 설득하여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삐지고 섭섭해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같이 상대를 흉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만약 같이 상대를 흉보고 비난하면 그 말이 안 들어가겠습니까? 그러면 화평은 깨집니다. 자기편 안 든다고 교회를 떠나도 같이 상대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적이라면 당연히 비난해야겠지만, 같은 형제를 적처럼 대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 과정에서 예민하게 대하거나, 화를 내거나, 자신은 닫아놓고 상대에게만 열린 마음을 요구해서도 안 됩니다. 두 형제를 사랑하는 중립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이렇게 화평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주님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도우심을 위해 새사람이 되어야 하고, 전적으로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고후5: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사람이 되어야만 이기적인 자신을 버리고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화평을 이루시기 위해 친히 십자가를 지심으로 화목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이런 주님과 하나가 된다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어디서나 Peacemakers가 되셔서 보람도 누리고, 주님 사명도 감당하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러면 화평케 하는 사람이 어떤 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화평케 하는 자에게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요한복음 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말씀과 어떻게 다른지가 궁금해집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영접할 때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화평케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행위가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요한복음 1:12절에서의 자녀는(테크논) 출생, 하나님과의 관계, 신분 등을 뜻하는 것으로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자동으로 주어지는 신분입니다(롬8:15–16, 갈4:5–7). 이 신분은 내 행위나 공로로 받은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의 은혜로 모두가 동일하게 받는 객관적이고, 법적이며, 언약적인 신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의 아들(휘오스)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살아가면서 맺어야 할 열매를 맺을 때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화평케 할 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 하나님 아들로서 Peacemakers를 비롯해 신앙인의 삶을 살아갈 때 아들이란 호칭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녀는 은혜로 태어나고, 아들은 삶으로 증명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화평케 하는 일을 포함해 이 땅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 몸 되어 애지중지 함께 지냈던 육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에게 직접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고 말씀하셨고, 요14:27절에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들과 오늘 본문의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는 말씀이 다르지 않습니다. 비록 화평을 이루는 과정이 쉽지 않아도 걱정할 게 없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로 칭함 받는 축복이 우리에게 있고, 주님의 평안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더 이상 고아처럼 버려지지 않고 주께서 이루실 것이니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아들로 이 땅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 날마다 주님 말씀하신 화평케 하는 신앙인이 길을 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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