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참된 신앙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2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43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44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
45 율법 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46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루카 11,42-46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사람은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할까? 아니면 부정적인 생각을 할까요? 많은 학자의 의견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한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바로 생존 능력 때문입니다.
원시시대의 인간은 너무나도 나약한 존재였습니다. 하늘 위로 날 수도 없고,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칠 수도 없었습니다. 또 빠른 발을 가지고 있어서 도망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날카로운 이빨과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덩치도 초식동물보다도 작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 앞에 사나운 맹수가 다가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긍정적인 생각으로, ‘저 맹수는 나와 친구가 될 거야.’하며 다가갔을까요? 아닙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힘차게 도망쳤습니다.
이렇게 원시시대부터 시작된 부정 편향성이 지금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인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잘 보이고, 상대방이 잘해준 것보다 못 해준 것이 더 생각나는 것입니다. 칭찬의 말보다 비난의 말이 더 오래 기억나는 것도 여기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생존의 문제로 부정 편향성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적들을 만들어 피곤해지고, 혼자 살기에 너무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여전히 부정 편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만큼 진화가 덜 된 것이 아닐까요? 진화가 잘 된 사람은 현대에 맞게 긍정 편향성을 더 많이 지니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정 편향성을 이제는 긍정 편향성으로 바꿔야 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나를 지켜주시는 함께해주신다는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통해 세상을 더 쉽게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리사이와 율법 교사를 향해 ‘불행 선언’을 하십니다. 그들에게 왜 불행하여라 라고 선언하셨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긍정 편향성이 아닌, 부정 편향성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까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엄격하게 강조하면서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윗자리를 좋아하고 인사받기 좋아하는 허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율법 교사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이냐를 자세히 규정합니다. 일반 백성들은 이 규정을 면밀하게 지켜야 했고, 그것을 지키려면 몹시 고통스럽고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규정을 제정한 율법 교사는 그 규정들을 지킬 필요가 없었습니다. 지켰다 하더라도 불필요한 규정들을 만들어 일반 백성에게 강요하곤 했지요. 진정한 사랑의 모범이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 불행 선언을 하셨던 그 모습 그대로, 우리에게 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나의 이웃을 부정 편향으로 이끈다면 우리에게도 “불행하여라.”라고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이제는 긍정 편향으로 이끌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조명연 신부님 「오늘의 묵상」에서)
*********
조명연 신부님 글 하나 더 드립니다~~~
「지금을 즐기세요.」
한 20년 전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교육을 받았는데, 다음 날 일정이 의정부에 있는 어느 산 중턱에 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정상에 모이는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기는 했지만, 인천에서 의정부까지 가는 시간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컸습니다(당시는 운전하지 않을 때라서 전철을 타고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본당에 급한 일이 생겨서 일 처리를 한 뒤에 전철을 타고 의정부로 향했습니다. 늦지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대로 늦고 말았습니다. 당시에는 휴대전화가 흔하지도 않을 때라서 연락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래서 늦어도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약속 시각보다 1시간 늦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시 내려오는데, 산행이 너무나 싫은 것입니다. 짜증도 나고 화도 납니다.
바로 그 순간 다른 등산객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어두운 표정으로 산을 오르지 않았습니다. 모두 즐거워 보였습니다. 똑같이 산행하는데, 저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을 즐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마음으로 즐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하지요. 그런데 지금을 즐기고 계십니까? 이런 명언이 생각납니다.
****<무언가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꾼다면 바라보는 대상이 바뀔 것이다(웨인 다이어).>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너희는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다.
사람들은 무덤인 줄도 모르고
그 위를 밟고 지나다닌다.
(루가 11,42-46)
あなたたちは不幸だ。
人目につかない墓のようなものである。
その上を歩く人は気づかない。
(ルカ11・42-46)
”Woe to you!
You are like unseen graves over
which people unknowingly walk.”
(Luke 11:42-46)
年間第28水曜日
너희는 화를 입을 것이다.
ノヒヌン ハル イブル コシダ。
너희는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다.
ノヒヌン ドロナジ アンヌン ムドムガ カッタ。
사람들은 무덤인 줄도 모르고
サラムソルン ムドムインジュルド モルゴ
그 위를 밟고 지나다닌다.
ク ウィル バルコ ジナダニンダ。
(루가 11,42-46)
あなたたちは不幸だ。
아나타타치와 후코오다
人目につかない墓のようなものである。
히토메니 츠카나이 하카노요오나 모노데 아루
その上を歩く人は気づかない。
소노 우에오 아루쿠 히토와 키즈카나이
(ルカ11・42-46)
”Woe to you!
You are like unseen graves over
which people unknowingly walk.”
(Luke 11:42-46)
Wednesday of the Twenty-eighth Week in Ordinary Time
Luke 11:42-46
The Lord said:
“Woe to you Pharisees!
You pay tithes of mint and of rue and of every garden herb,
but you pay no attention to judgment and to love for God.
These you should have done, without overlooking the others.
Woe to you Pharisees!
You love the seat of honor in synagogues
and greetings in marketplaces.
Woe to you!
You are like unseen graves over which people unknowingly walk.”
Then one of the scholars of the law said to him in reply,
“Teacher, by saying this you are insulting us too.”
And he said, “Woe also to you scholars of the law!
You impose on people burdens hard to carry,
but you yourselves do not lift one finger to touch them.”
2026-10-14「あなたたち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不幸だ。あなたたち律法の専門家も不幸だ。」
+神をたたえよう。神は偉大、すべては神に造られた。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年間第28水曜日です。
御心の主・イエス・キリストと御心の聖母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
ルカによる福音
<あなたたち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不幸だ。あなたたち律法の専門家も不幸だ。>
そのとき、イエスは言われた。11・42あなたたち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不幸だ。薄荷や芸香やあらゆる野菜の十分の一は献げるが、正義の実行と神への愛はおろそかにしているからだ。これこそ行うべきことである。もとより、十分の一の献げ物もおろそかにしてはならないが。43あなたたち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不幸だ。会堂では上席に着くこと、広場では挨拶されることを好むからだ。44あなたたちは不幸だ。人目につかない墓のようなものである。その上を歩く人は気づかない。」
45そこで、律法の専門家の一人が、「先生、そんなことをおっしゃれば、わたしたちをも侮辱することになります」と言った。46イエスは言われた。「あなたたち律法の専門家も不幸だ。人には背負いきれない重荷を負わせながら、自分では指一本もその重荷に触れようとしないからだ。」(ルカ11・42-46)
***********
チョ・ミョンヨン神父様の「今日の黙想」です。
人間は基本的に、物事を肯定的に考えるのでしょうか。それとも否定的に考えるのでしょうか。学者によってさまざまな見解がありますが、人間にはもともと否定的に考える傾向があると一般的に言われています。それは、生き延びるために必要な能力だったからです。
原始時代の人間は、とても弱い存在でした。空を飛ぶことも、水の中を自由に泳ぐこともできませんでした。また、足が速くて危険から逃げ切れるわけでもなく、鋭い牙や強い力を持っているわけでもありませんでした。体の大きささえ、草食動物より小さかったのです。
そのような状況で、目の前に恐ろしい猛獣が現れたら、どのように考えたでしょうか。「あの猛獣はきっと私と友達になってくれるだろう」と肯定的に考えて近づいたでしょうか。そうではありません。危険を感じ取り、必死に逃げたことでしょう。
このように、原始時代から身についた「ネガティブ・バイアス(否定的な偏り)」は、今も私たちの中に残っています。そのため、他人の長所よりも短所のほうが目につきやすく、親切にしてもらったことよりも、嫌なことをされた記憶のほうが強く残りがちです。褒められた言葉よりも、非難された言葉のほうが長く心に残るのも、そのためです。
しかし、現代では、いつも生き延びるために物事を否定的に捉える必要はありません。むしろ、そのような考え方によって周囲の人を敵のように感じ、人間関係に疲れ、孤独になってしまうこともあります。
それでは、いつまでも否定的な考え方にとらわれていることは、何を意味するのでしょうか。現代の生活にふさわしい心の成長が、まだ十分ではないということかもしれません。心が成熟した人は、物事の良い面にも目を向け、肯定的に受け止めることができ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今こそ、否定的な見方から肯定的な見方へと、心の向きを変えていくことが大切です。そのために必要なのは、いつも私たちと共にいて、守ってくださる主への揺るぎない信頼です。この信仰によって、私たちはもっと穏やかに、希望を持って生き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
今日の福音で、イエス様はファリサイ派の人々と律法の専門家たちに向かって、「不幸だ」と厳しく告げられます。
なぜ、イエス様はそのように言われたのでしょうか。
それは、彼らが否定的な見方によって人々を裁き、他の人々まで神様から遠ざけていたからです。律法を厳しく守ることばかりを強調しながら、神様の愛と正義をおろそかにしていました。その一方で、自分たちは上席に座ることや、人々から敬意を込めて挨拶されることを好み、虚栄心から抜け出せずにいたのです。
律法の専門家たちは、律法をどのように守るべきかを細かく定めていました。一般の人々は、その規定を忠実に守らなければならず、それは非常に苦しく、重い負担となっていました。
ところが、その厳しい規定を定めた律法の専門家たちは、自分たちではその重荷を負おうとしませんでした。たとえ自分たちが守っていたとしても、必要以上に細かな規定を作り、人々に押しつけていたのです。そこには、真の愛の模範がありませんでした。
イエス様が彼らに向かって告げられた「不幸だ」という言葉は、今日の私たちにも向けられてい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もし私たちが、他人の欠点ばかりに目を向け、周囲の人々を否定的な考え方へと導いているなら、イエス様は私たちにも「不幸だ」と言われるかもしれません。
だからこそ、私たちは人々の良いところを見つめ、互いを認め合い、神様の愛と正義を日々の生活の中で実践していきたいものです。
***********
今日の福音を読み、人の良いところに目を向け、主を信頼し、愛と希望を分かち合えますように。聖霊、来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