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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녀와 대판 말다툼으로 단편 장르 가족의 애증 지은이 장미자
“아니 당신이 내게 잘해 준것이 무엇이냐고요, ”아니 너는 이 아침에 그렇게 먼곳에서 웬일이니 뭐 타고 왔니 소리 지르지말어 시끄럽다 조용히 말해라 지금 아침 9시도 않됬구나 들어와라 어섯,하고는 그녀는 구부정한 등으로 거실로 들어간다. 나는 눈물이 주르륵 나온다 너무 억울햇다 슬펏다 .아니 내가 왜 저분의 배를 빌려 제일 맏자식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힘들게 내돈을 모두 뺏기고 사는지 우습구나 이상하게 말려서 나랑 말다툼 하신분은 나의 어머니이시다.
그분은 당시 2021년 그분의 나이는 91세 이셨다. 그분은 신박 하시고 그 나이에도 총명하시고 맑은 정신을 가지고 계시고 성품이 고즈녁 하시고 침착하셨다. 언제는 조용 하시고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시다 .내 어머니이지만 고우시다 .그분의 나이 89세때에 프로포즈를 52살 어린 남자에게 받었다 “그가 누구냐구요 정신이 이상한 아저씨냐구요 아니요 그 아저씨는 바로 46가지의 농산물은 실
고 그분의 차에 모두 실고같죠 떡을 50키로를( 영양떡 쑥절편 흰떡 백설기에 골고루 넣고 ) 해가지고 그때가 봄이었죠 4월인지
저에건 동기간이 많죠 제가 9남매의 맏인데 시골에 사는 사람은 나 하나죠
나는 당시 현금 일백만원을 봉투에 넣고 자랑스런 부모님의 상장을 만들고 46가지의 농산물을 9번으로 나누고 해서 동생이 8명이니 엄마네것 까지 바리 바리 가지고 같죠 같이 가신 아저씨는 저의 엄마를 보시더니 엄마에게 자꾸 말을 걸면서“어르신 너무 고우시군요 예쁘시군요 조용 하시고, 하면서 그는 이상하게 수작을 거는식 으로 말을 한다 .마침 근처에 사는 여동생들 둘이 마중을 나오고 점심이 되니 중요리를 시켜 주었다. 나는 동생들 보는 앞에서 ”엄마 절 받으시고 이것 엄마에게 드리는 감사장이고 이건 엄마에게 드리는 용돈이에요 ,하고 백만원의 돈봉투를 내놓고 엄마 오래 사세요 엄마에게 맞자식으로 태어난 것이 고맙습니다,
하고 큰절을 올리고 상장과 돈을 드리니 그분은 돈 봉투는 옆에 휙 던져놓고 상장만 끓어안고 그렇게 우신다. 여동생들도 같이울고 갑자기 친정이 울움바다가 되었다 .한참 우시더니 “오복아 너는 내 새끼고 나의 큰자식이 맞구나 이런 생각도 하고 고맙구나 오복아 오복이는 나의 진짜 이름이다 .내가 미자로 개명을 했어요. 엄마는 시집 오셔서 아들을 못낳아서 계속 딸을 6명 내리 낳고 아들을 3명 낳으셨다. 너무 고요하시고 예쁜,그녀였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엄마가 화장하시는걸 단한번도 못 봤다. 화장품은 화장대에 항상 스킨 료숀 영양크림 세가지 뿐이고 우리들이랑 항상 같이 쓰셨다. 머리 헤어스타일은 파마를 하시고 뒤로 뮦을 때도 있으셨다. 옷은 항상 수수 하게 입으시고 우리를 기르시는냐고 항상 고생이 많으시다. 나는 그분에게 한글을 4살반에 배웠다 수원이 고향인 나다. 시내에 살엇죠 지동이라고 ,엄마랑 어디갈때에 시내버스 타고 앉아서 휙 휙 밖으로 지나가는 간판을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63년의 세월이 휙 휙 지나가니 그래도 생각이 난다.
나는 맏자식이라고 동생들 이 잘못 했어도 대신 내가 벌서고 혼나고 지지고 뽂고 먹거리가 있으면 어머니는 항상 ”우리들에게 나누아 준다 .우리들은 새 새끼처럼 받아 먹으면서 “엄마도 먹어요, 하면 엄마는”그런 것 싫어한다, 하신다 그것은 훗날 알고 나니 모두 거짓이엇다. 그전부 아니다. 자식 하나라도 더 먹일라고 나는 전날 엄마가 내게 하시는 말씀이
잘 들어 맏자식은 동생들을 위해서 희생을 해야 하는 것이란다. 하시고 내게 전화로 말씀에 나는 열리 뻗치고 화가났다. 사실인즉 지금부텨 48년전에 나는 아가씨가 수원 법원 앞에서 연쇄점을 조그맣게 했다. 억척으로 장사가 돠니 주인이 집을 내놓으라 해서 내어주고 보증금을 받아 가지고 친정으로 돌아와서 무엇인가 해볼라고 기다리는 찰나에 바로 한살 차이의 시집간 여동생이 당시 그녀는 자식이 3명이 있었다. 나와 한 살차이의 연년생으로 그의 남편은 직업이 직업 군인이었다.
그 남자는 사실 나의 남편이 될번한 인물이 였다 내가 싫다 하니 바로 아래 동생을 시집을 보냈다 그런데 전세금이 부족하다고 당시 300만원을 빌려주라 하신다. 엄마는 동생이니 너 사업할 때 바로 준다고 그게 발단의 원인이었다. 그말만 믿고 돈 300만원과 당시 냉장고 500리터 미제 제너랄 냉장고도 빌려 달라서 내맘 같은줄 알고 아무런 문서 작성도 않하고 빌려주고 다음달 이자라고 남동생이 당시 5만원 준것이 그걸로 끝이었다.
모두 떼어먹고 나몰라라 한다. 지금 끼지 벌써 45~6년이지나도 소식 깜깜이다 거기다 4째 여동생도 그후 4년 있다 시집가면서 당시 250만원 빌려가고 가계 하면서 선풍기 장식장 등 모두 가지고 깉다 지금까지 1도 못받엇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말하면 동생들에게 돈달라기만 해봐 ”나는 농약 마시고 자살 하시고 협박인지 뭐인지 내게 말씀을 항상 그렇게 하신 분이다. 살아생전 50년 넘게를 나는 부모님 말씀이 이해도 않돴지만 이해를 할라고 노력해도 소용없고 사실 나도 힘들어 엄마가 멀씀하셔서 “니 언니 원금이라도 갚으려고 해달래도 자식중에 맏자식은 동생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늘 그렇게 말씀으로 일관 하신다.
너무 슬프고 아프다 가슴이 매어진다. 52년전 550십만원 이면 지금 돈으로 환산시 몇억의 값어치가 있다 ,넌지시 하시는 말씀을 보니 그녀는 내게 항상 너무 하신다 ,날씨는 추운 겨울인데 맑다. 나는 겨울에 더 심해지는 나의 우울중 때문에 미친다. 아니 엄마랑 내가 그것을 두고 펑생 싸우고 지낸 것이 문제는 아니다 .맏자식 이라고 뭐든지 참고 희생을 하고 살으라는법이라 대한민국 맏 자식 들은 서독 간호사로 광부로 방직공장. 서울로 식모살이
돈많이 번다는 더 험악한 양 색시 술집 색시로 전략하여 부모님과 그 알량한 핏줄 동생들에게 희생하고 공부 가르키고 남은 것이 그녀 맏자식엔 무엇이 남엇냐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냐고 동기간이 알어주면 얼마나 알아주냐고 모두 소용없다. 나는 끔찍히 동생들을 사랑했다. 그녀들은 나를 큰언니 하면서도 아니 내가 우렁엄마 냐고 나에게 해준것니 없다. 주기만 하는 나다. 내가 지들엄마냐고 아니지 나는 단지 이 여사님의 배를 빌려 처음 세상으로 나온 죄박에 없다 그렇다 그게 전부다. 일찍 동생을 보아서 엄마젖도 못 먹고 외가집 에서 큰 나다.
어린시절에 그렇게 컷다 .그래도 나는 시골 살면서 해마다 쌀 2가마 고구마 마늘 고춧가루 참기름 들기름 감자 대봉감 나물류 등등 바리 바리 된장 고추장 청국장 보내드리고 했지 다 그질긴 인연도 애증도 작년 엄마가 고인이 되시면서 끝났다 94살에 돌아가신 엄마 그녀는 돌아가시기 두달도 못 되서 나를 만나서 하시는 말씀이 ”이제 너 내 맞자식을 보니 죽어도 여한없다 어서 빨리 죽고싶구나 고맙다 내새끼야 잘지내라 너는 맞자식이니 오복아 이리와봐라 ,하시고ᅟ는 내손을 꼬옥 잡으시고 우신다 .그녀와의 나의 그 잘난 돈과의 전쟁도 그녀의 승리로 끝났다, 정신은 말짱 하시었다. 그녀는 몸의 근육이 모두 빠지셨고 나를 쳐다 보시더니 오복아 나 이제 너를 만났으니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구나 잘있고 멀리 사니 잘가고 하시면서 나의 큰딸 미안하구나 동생들 하고 잘지내라, 하시고는 우신다. 나는 인생 여정의 길에서 엄마의 일생을 되집어 보니 그동안 울 어머니는 엄청 우리들에게 속 많이 썩으신 분이시다. 사실 바람 잘날 없으셨다. 참 고우시고 심성이 착하셨던 분인데 항상 내게 전화를 하신다 .하루에도 2~5번이다. 많게는 그러셨던 분이시다 “오복아 밥 먹었나 신서방은 일 같니 애들은 학교같니 하시고 시작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로 말씀도 잘하시는 분이시더니 그건 내가 그녀의 맏자식이니 그럴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녀는 항상 내게 부부 싸움 하지 말고 니가 선택했으니 열심히 잘 살으란다. 남의속도 모르고 이런 런 시골에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공부를 중간에 중단한 나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으로 사실 고교 시절에 우연히 배웠던 이 미용 기술이 내겐 훗날 밥줄이 되고 말었다.
우습다 .소록도 가서 봉사를 하고 살고 싶은 심정으로 배운 것이 내겐 그 기술이 밥줄로 이어졌다. 슬픔을 넘어서 어떤날은 죽고 싶었다. 그런 나날이 수도 없이 지나가고 내 죄로 태어나서 큰 아이들이 내배를 빌려 태어난 죄라면 죄다 그것이 인생순리다.
나는 갑자기 메밀꽃필무렵 의 단편이 셍각 난다. 이효석님의 지금 이 나이에 나는 새삼 부모님 이 만들어주신 나의 분신인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몽땅 그녀 이순이 여사님의 모든 것을 가지고 살었다. 누구든 그렇다 그러나 누가 그렇게 생각하냐고 테어났으니 태어난 것으로 사는 것이지 누구나 부잣집 재벌 자식으로 태어나고 싶지 내가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 태어 났겠
냐고다 .어린시절 식구들이 빙 둘어 앉아 밥을 먹을때에 아버는 항상 밥 먹으면서 아야기 하면서 밥을 먹으라고 하신다 그래야 소화도 잘된다고 말씀이시다.
국만학교를 년년생 으로 다니는 우리들의 형제었다. 어느날 아침 밥을 먹는 도중 3째 여동생이 한다는 소리가 ”아부지 턱주가리에 밥풀 붙었어 ,하니 4쩨 여동생이 당시 8~9살인가 보다 아부지 기뱅이 주세요,? 그런다 식구들은 모두 옷고 난리다.밥을 먹다가 재미있고 좋았다. 어린시절이 여름에 비가오면 빗물을 받아서 우리들을 빗물에 씻기신다 .머라도 감겨주고 55~7년전 이야기다. 당시 빗물은 참 맑고 좋았다. 부드럽고 세탁시 때도 잘 가고 유용하게 사용 했다 .그것도 지붕이 초가집 지붕의 빗물은 누렇다.
그것은 볕집의 썩음으로다. 기와집의 빗물은 어느정도 흘려버리고 받으면 맑고 깨끗하다. 커다란 항아리로다, 지금같이 푸라스틱이 없고 커다란 자박지 항아리다. 지금도 섬 사람들은 빗물를 유용하게 사용한다 오늘날에도 식수로 사용하고 그런다 모아 두엇다가 예나 지금이나 삶의 방식은 변한 것이 없는 것이 많다 .
보고싶은 그녀 이순이 여사님 그녀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는 끝이났다 25년 음력 71일 이다. “언니 어마 돌아가셨 어요 하고 5째 여동생이 울면서 내게 전화를 한다, 나는 왈콱 눈물을 쏟으면서” 언제 돌아가셨니, 하니 좀전에 운명 하셨다 한다. 아
~ 그녀는 아주 같다 두 번다시는 못올 곳으로 하얀 나비가 되어 날라같다 ,그녀는 살아생전 우리집에 오셔서 계시고 싶어 하셨다. “야 오복아 나 너의 집에 가서 있으면 않되니 가고싶구나 , 그래도 못 모셨다 쪼가리방 이라 침대와 화장실도 그렇고 좁고 아~ 그분의 마지막 말씀도 못들어 드리고 우리집에 오셔서 계시고 싶어 하셨다. 말년에 본인은 죽어서 불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불속에 넣지 말라고 내게 항상 그래셨다.
그런데 요즘 장례문화가 모두 불에 넣고 화장으로 모신다. 죽은자가 무엇을 알리요 많은 너무 잔인하고 슬프다 살아서 지금 그생각을 상상하니 잔인하다. 못혀 무섭다. 사실 화장시간은 안 밀리면 40분이면 상주가 유골상자 를 받는다. 따끈하다. 사기의 유골함이 유골함 의 보관장소로 가서 안장하고 나는 괴로운 마음으로 살아서 그 장면을 본다는 것이 너무 괴롭고 슬펏다.
사실 나는 요 몇 년 사이에 용인 장례식장을 3번이나같다. 제부의 죽음 남동생의 죽음 엄마의 죽음으로 너무 슬프고 괴로웠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가족의 이별은 너무슬픈 한페이지의 역사다. 누구나 죽는다. 그 순간까지 그것을 모르고 산다 .나 부터 망각이 아니라 현실을 모르고 싸우고 시기하고 죽이고 남의것 질투에 욕심에 우 우 나도 자중을 하고 있다. 본인 마음속으로 욕하는것도 죄악이라니 나는 이 여사님과 의 전화중에 나도 모르게 “이런 성질난다 이c ,그랬더니 내게 ”야 이놈아 전화 끈아라 내가 그렇게 가르켰니 ,하시고는 전화를 먼져 끈는다.
그게 나의 어머니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두어시간후에 전화를 하면 어머나는 오복아 말 그렇게 하지말어 내가그렇게 가르켯니 오복아 왜 전화했니, 하신다. 나는 가만히 있다 “ 엄마 미안해요 고칠께요 ,하고는 ”그럼 잘 지내세요, 하고 전화를 끈는다 .
경기도 미스코리아 2등 후보로 올랏던 그녀 그녀는 키도 크다 날씬 하시고 하얀피부를 갖고 계시고 코도 오똑하시고 목은 기린목 같으시다 이쁘시다. 못난 나는 어쩌면 그렇게 울 아버지의 아버지 판박이다 .성격도 그렇고 어쩜 그렇게 똑같냐 어느날 남편은 아침 일찍 일어나더니 한다는 소리가 나를 처다보고는 ”아니 장인 어른이 오셨네 ,그런다. 나는 맞수를 놓았다 “으 아악 ! 시어머님 이 살아 오셨네, 하고는 맞불로 대웅을 했다. 그런 것이다.
그게 씨 도둑질 못하고 유전자는 어쩔수 없다. 이제는 모두 끝이다. 그녀는 떠났고 한줌재로 남었다 .그것도 납골당의 십년후엔 장소를 비워 주던지 아님 10년 더 연장에 합 20년 후엔 아주 납골당 을 떠나야 한다. 그게 납골당의 법칙 이란다 .24살에 꽃다운 나이에 도도하고 예쁘고 학식 높으신 당시의 그녀 부잣집 딸에 신부수업에 모두 갖추고 있다는 그녀를 아버지는 얼마나 좋아 하셨을까다. 그녀는 당신의 생일을 이틀 남기고 저 하늘의 별이 되었다.
첫 기일이 얼마 안남었다. 한달 이구나 첫 기일이 그래서 그런 것 인가 인간들은 단 한번의 인생이라 난리다. 누구든 정상에 올라 헤엄을 칠라고 그런다. 나라는 존제를 알리는냐고 죽으면 모두 끝인걸 왜 모르는지 오만함에 미워하고 증오하고 남의돈 떼먹고 않갚도 된다는 별 인간이 다아 있다. 그녀와 질긴 인년은 이제 끝이났다 동생들은 자리 잡고 모두 잘 산다.
중산층을 넘어서 맏자식이란 고로 힘들고 항상 어깨가 무겁게 힘들다 그녀는 같다. 저 하늘의 별이 되어 하얀 천사로 날라 다니신다 .어머니 내 어머니 저를 이 세상에 있게 해 주신분 고맙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훗날 뵙겠습니다. 안녕 이순이 여사님
그대 슬픔을 감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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