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15장 29-31절 치유의 결과는 하나님께 영광
예수님은 두로와 시돈을 떠나 갈릴리 호숫가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산에 올라가 거기에 앉으셨는데 큰 무리가 몸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고쳐주시길 구했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게네사렛 사람들이 했던 행동들을 보고 자기들 역시 자기가 아는 모든 병자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을 것입니다.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치료받는 것을 보는 일이 말입니다. 이것은 전도해본 사람만이 누리는 기쁨일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의 역사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는 사람들에게 전파되면서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기전 그토록 힘들게 했던 그들의 문제에서 구원을 받아 자유롭게 되는 것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하여금 기쁨이 넘치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낮선 곳에까지 가서도 그런 사람들을 찾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예수님을 만나 그들을 치료하시는 예수님의 능력과 사랑을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주 맛있는 음식점을 가면 거기서 음식을 먹으면서 누가 생각이 납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아 이 맛있는 것을 아내도 함께 와서 먹었으면 좋을 텐데 다음에 꼭 아내를 데리고 와서 함께 먹어야겠다”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 세미나를 갔었는데 이 세미나를 매주 1-5차까지 했습니다. 저는 3차부터 5차까지 갔는데 제가 존경하는 지방회 목사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함께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1-2차 세미나에 참석하셨던 목사님들이 두 가지의 행동이 일어났었다고 합니다.
한 가지는 세미나에서 준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음식을 먹어가면서 아내들이 생각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이 농담으로 “아내 생각이 나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니까?”하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한가지는 그 세미나에서 받은 은혜 때문에 다른 목사님들을 초청했습니다. 강사가 성경 한 권을 책으로 만들어서 열렬히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들었던 목사님들이 큰 은혜를 받아서 다른 목사님들을 초청했습니다. 다만 목사님들만 참석하도록 규정을 두었기 때문에 첫 번째에 아내를 생각했던 목사님들이 아쉬워하면서 함께 참석을 하지 못하다가 마지막 5차 때에는 사모님들과 함께 참석하라고 하니까 너도 나도 함께 참석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사모님들이 150분 정도가 오셔서 함께 강의도 듣고 음식도 먹고 선물도 받아가셨습니다. 만일 그날 다른 차고 가시는 목사님 부부가 아니었다면 늘상 차 한 대로 가던 것을 그 날은 차가 두 대로 가야했을 것입니다. 물론 결론적으로는 두 대로 가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 앉으셨을 때도 사람들에게 이런 흥분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지난 번에 사람들이 낫는 것을 보면서 이번에는 내가 아는 병자들도 데리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에서 돌아오셨다는 말을 듣고는 너도 나도 생각하고 있던 병자들을 다 데리고 온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천국의 섬김이며 천국복음의 역사입니다. 우리 제석교회에도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일으키셔서 예수님을 전하는 여러분들의 마음이 흥분되고, 또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고 영혼과 육체가 치료받는 사람들은 물론 가정이 치료받고, 동네가 치료받고, 사람들의 관계도 회복되는 이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이 역사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돈을 아끼기 위해서 우리 교회에 나와 병을 고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께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그 당시 의학으로는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몰려왔을 때 예수님은 그들 모두를 고쳐주셨습니다. 우리 30-31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이들의 대부분은 현대 의학으로도 고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의로 찾아왔든지 타의로 찾아왔던지 간에 자신을 찾아와 고쳐달라고 간구하는 모든 사람들의 병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다 고쳐주셨습니다. 이런 에수님의 치료의 역사가 예수님에게서 끝난 것이 아니라 베드로 사도에게서도 일어났고, 스데반 집사에게서도 일어났고, 빌립집사가 사마리아에 갔을 때도 일어났고, 사도 바울이 선교 여행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할 때도 역시 일어났고, 사도 시대 이후의 많은 나라에서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곳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함께 계심을 증거하시는 역사로 인해 일어났습니다.
다만 그 역사가 언제나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필요를 느끼시는 곳에서 필요를 느끼실 때 그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 지역에도 하나님이 그 필요를 느끼실까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일을 원하시지 않으신다면 영혼을 구원하시는 일만 하실 것이며, 그에 맞는 다른 일들을 통해서 영혼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교회들마다, 또 각 시대에 맞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어떤 곳에서는 그런 치료의 역사를 일으키시고 어떤 곳에서는 일으키지 않으실까요? 첫 번째로 그 지역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하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사렛이나 거라사 지역에서는 예수님께서 극히 적은 능력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지역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게네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대대적으로 환영하면서 예수님을 맞이했고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사랑하는 모든 병자들을 데리고 와서 고쳐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런 그들을 보신 예수님은 그들이 데리고 온 모든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고쳐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지역,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시기를 기뻐하시는 지역이 바로 그런 지역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이 어떤 곳에서는 치료의 역사를 일으키시고, 어떤 곳에서는 일으키지 않으시는 이유는 그곳에서 받으시고자 하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사로가 죽어갈 때 예수님을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나사로가 죽은 후에야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것도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서야 보내셨습니다. 그 의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사람들로 믿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를 통해 아들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는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자 하시는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자 하시는 곳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과 치료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가서는 놀라운 치료의 권능을 일으키시는 도구로 쓰임받는 목사님들도 우리 나라로 돌아오면 그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간증하는 말들을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능력이 그 목사님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목사님들을 일군으로 사용하셔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리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복음의 역사는 그 사람이 처해있는 영적인 상태에 따라 다르게 반응을 합니다. 마치 물에 빠져 있는 사람은 물에서 건져 내는 것이 구원이고, 병든 사람은 병을 치료해주는 것이 구원이고, 굶어 죽게 생긴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주는 것이 구원인 것처럼 복음도 역시 그 지역의 영과 혼과 육신의 필요를 채우심으로 인해 구원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촘촘한 그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지역에 필요한 촘촘한 구원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까? 그것을 알려달라고 구하고 계십니까? 우리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셔야 할때가 이때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을 이루고 계십니다.
그러면 그렇게 영혼을 구원하시는 역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에 있습니다. 우리 31절 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예수님이 모든 병자들을 치료하시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놀랍게 여겨 예수님을 칭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런 일들이 예수님의 사역 내내 일어났습니다. 사도들이 행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행전 4장 21절을 보면 사도들을 통해 성전 문앞에 앉아 있었던 나이가 거의 40세가 된 하반신 장애인에게 일어난 일을 보고 백성들이 어떻게 했는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모든 사람들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로인해 사도들을 처벌하려고 붙잡아 갔던 관리들이 더 이상 어떻게 하지 못하고 그들을 풀어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권능을 나타내십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하면 병이 나았어도 지옥에 갈 수밖에 없고, 영혼이 구원받지 못하면 귀신이 나갔던 사람도 지옥에 가서 귀신들과 함께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영혼구원이 중요합니다. 영혼 구원은 영생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 사랑이신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삽니다. 그러나 영혼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별별 놀라운 경험을 다했어도 결국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영혼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여러분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교회는 하나님께서 많은 다양한 일들을 하실 수 있다는 사실에 문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며 또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가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제석교회가 바로 그 일을 위해 세워졌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혼 구원을 위해 온전히 쓰임받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치유의 결과는 쓰임받은 교회나 고침받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