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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 1963년 11월 26일 오늘 존슨 대통령과 회담-박의장, 어제 워싱턴 착
박정희 의장은 케네디 미국대통령 영결식에 참석하기 위해 25일 상오 0시 35분(한국시간 =25일 하오 2시 35분) 이곳에 도착했다. 시카고에서 동승한 김용식 외무부장관과 김정열 주미대사와 함께 달라스 국제공항에 도착한 박의장은 조지 볼 국무차관, 로저힐주맨 극동문제담당 국무차관보, 마샬글린씨 등의 영접을 받았다.
수많은 외국대표들의 조속한 도착을 위해 외교사절들의 묵계에 따라 도착성명은 발표되지 않았다. 이러한 절차의 간소화는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처음 시작한 것으로 그는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참석한 것이므로 도착성명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 후부터 신문기자들이 도착성명을 요구해도 각국 수뇌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박의장도 이 의례를 따른 것이다.
박의장은 25일 성 마태성당에서 비롯할 고인의 영결식에 참석했다.
25일 정오 보스턴 교구의 쿠싱 대주교에 의한 연미사에 이어 장례행렬은 도보로 계속되었다.
혁명 6개월 후인 바로 2년전 11월에 케네디 대통령을 방문했던 박의장은 그 당시 민주적 방법으로 선출된 민간 정부에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는 1963년 8월내에 이를 실현하겠다고 케네디 대통령과 미국민에게 약속했으며 미국 신문인 클럽에서는 전세계의 언론인들에게 민정이양 후에는 자기와 혁명동지들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국방을 담당하겠다고 엄숙히 선언했었다.
이제 그 케네디 대통령은 갔고 박의장은 근소한 표차로 당선된데 대해 야당의 법정투쟁에 직면하고 있다. 박의장에게 위약을 일깨워 줄 케네디 대통령은 가고 박의장의 귀에 아직 울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메아리뿐일 것이다.
그러나 케네디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역사에 길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여하튼 존슨 대통령이 모든 미국대사들의 유임을 요청한데서도 드러난 것처럼 미국의 대외정책은 존속될 것이다. 존슨 대통령은 26일 각국 수뇌들을 위한 초대연회를 국무성에서 가질 예정이며 몇몇 수뇌들과 개별적 접촉도 하게 된다. 박의장도 이에 참석하게 될 것이다.
정치/외교 1963년 11월 27일 박의장 존슨 대통령과 회담
한국의 대통령 당선자 박정희씨는 25일 밤 케네디 대통령 장례식에 참가한 외국원수를 위한 리셉션에서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과 개별적인 회담을 했다. 박의장과 존슨 대통령의 회담은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1961년 박장군이 미국을 방문하여 케네디 대통령과 고위회담을 했을 때 당시 부통령이던 존슨씨를 만났었고 그 회담에서 미국은 한국민을 지원하겠다고 확약했던 것이다.
김용식 외무장관과 김정열 대사를 대동한 박의장은 이날 존슨 대통령과 양국의 이런 문제를 논의했는데 소식통들은 미국위 대한정책 등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전하였다.
양국수뇌의 2차 회담은 있을 것 같지 않다.
중대한 국회의원 선거가 진행중이며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내각구성도 해결되기 때문에 박의장은 26일 귀국의 길에 오른다.
박, 존슨 회담
박정희 대통령 권한대행이 26일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식이 끝난 뒤 존슨 미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김용식 외무장관과 힐즈맨 국무차관보도 동석하였다.
정치/외교 1964년 11월 06일 박대통령 축전-존슨 대통령 당선에
박정희 대통령은 5일 하오 린든 B 존슨 미국대통령에게 당선을 축하하는 요지 다음과 같은 축전을 보냈다.
본인은 귀하의 위해한 영도하에 새로운 시대가 이룩되어 자유세계의 결속이 한층 공고히 되며 현재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을 보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정치/외교 1965년 05월 18일 박/존슨 일차회담 도착인사
'본인은 지금 태평양을 지척간으로 맺어 놓은 우의와 신의의 가교를 건너 여기에 도착했다.
본인은 이번 방문을 통하여 한미 양국 국민간의 전통적인 우의를 더욱 굳게 하고 또 귀국의 여러 지도자들과 만나, 공동으로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에 관해서 협의하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하는 바이다.
이미 우리들은 한국 반도의 휴전선에서 또 최근에는 월남의 정글 속에서 본인의 국민이나 여러분들이 똑같이 아끼며 사랑하는 아들과 남편들이 한 막사와 참호에서 공산침략자들을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새로운 전쟁도발자 공산주의자들의 침략행위로부터 자유세계의 담장을 지켜야만 한다는 동체적 공동의무의 수행이다.
본인은 이번 방문을 통하여 이같이 일치된 과제를 수행하는데 부수되는 정치, 경제 군사상
의 제 문제를 격의 없이 의논하고 보다 긴밀하고 호혜적인 협력관계가 맺어질 것을 기대하는 바이다.
미국의 친우 여러분!
한국이 확고부동한 바닥 위에서 급속히 성장하고 있으며 여러분들의 부담이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보다 가장 영화롭게 결실을 맺어가고 있음을 자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본인은 한미협조의 기초 위에 무한한 젊음의 자원과 자조의 노력으로 이룩되어 가는 튼튼하고 바른 오늘의 한국을 한 마디로 활기에 찬 새 나라라고 불러 다시 소개하는 바이다
오늘날 모든 한국 국민이 적어도 아세아에 있어서 끝끝내 여러분과 일치해서 자유를 위한 방파제가 되며 정의의 편에 서겠다는 결의와 신의를 가졌음을 본인은 명백히 여러분 앞에 단언할 수 있다.
친애하는 미국 국민 여러분!
여러분의 귀한 자제와 남편이 본인의 나라에서 본인의 사랑하는 병사들과 더불어 건실하게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전해 드리며, 여러분의 따뜻한 영접에 다시금 감사드리는 바이다.
출발인사
나는 존슨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여러 지도자들과 만나 회담함에 있어서 아주 지역에 있어서의 폭악무도한 공산침략 행위를 저지시킬 문제에 관해 유익한 의견을 교환할 것이다. 또한 극동에서 갖은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자유수호에 임하고 있는 우리의 위기를 밝히고 유엔 정신의 결품이라 할 대한민국의 계속적 안전보장과 필연적으로 그에 따르는 극동의 정치 경제 군사상의 제 문제들에 관해 격의 없이 의논할 작정이다.
그리고 한미간의 여러 현안, 특히 공산지역과 접한 한국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도달하여야 할 적정수준에 이르기까지의 필요불가결한 지원문제와 호혜적인 협력 관계 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협의코자 한다.
나는 이 기회에 공산침략의 저지투쟁에 막중한 부담을 지불하고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자립경제의 건설을 위해 참기 어려운 고난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의 입장과 그러면서도 결코 지치지 않고 성장을 이룩해 가는 한국 국민의 새 모습을 미국과 자유세계 앞에 보일 것이다. 우리는 주체의식을 가다듬으면 안 된다. 그리고 세계 속의 한국과 그 앞날을 바르게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하겠다.
우리는 자립을 위한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 진통을 참지 못하거나 또 감정적 충동으로 말미암아 혼란과 후퇴를 되풀이 말도록 해야 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60년대에 꼭 성취시켜야 하겠다는 사명과 책임을 통감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온갖 노력을 여기에 다할 것을 다시 다짐해 두는 바이다.
안보 경제 등 주의제로- 월남파병의 정치적 보상도 논의?
박정희 대통령은 17일 하오 5시 백악관에서 존슨 미대통령과의 제 1차 정사회담을 가져
(1)한국의 안전보장을 위한 미군의 철수와 한국군장비의 현대화 (2)SA 및 DLF 원조의 액수 (3)한국군 월남파병에 대한 정치적 보상 (4)그 밖의 정치적 문제 등 네 가지 현안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토의하게 되었다.
이같은 네 가지 의제는 18일 하오 한미공동성명에서 밝히기 위해 그 동안 양국 실무자급에서 협의가 진행되어 왔으나 결국 합의를 못보고 장부총리 김국방장과 이 청와대 비서실장, 문외무부차관 김현철 주미대사 등이 배석하는 정상회담으로 넘겨진 것이다.
월남파병 문제에 대해 박대통령 측근 소식통은 17일 '월남에서 새로운 파병요청이 있은 것은 사실' 이라고 밝히고 '그러나 그에 앞서 한국의 안전보장이 확보되어야 하지 않갰느냐' 고 말함으로써 이 문제의 심각성을 설명했다.
한국의 안전보장 문제에 있어서 한국측은 국군장비의 현대화와 아울러 국군병력을 '현재의 수준에서 계속 유지'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미측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상등한 수준에서 유지' 할 것을 내세우고 있으며, 경원문제에서는 한국측이 SA와 DLF (개발 및 원자재 차관 포함) 액수를 1억 5천만불로 공동성명에 명시할 것을 요구한데 반해 미측은 한국 비료에 대한 정부의 결정을 이유로 그 액수를 줄일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미합의점의 해결 가능성 및 2차 회담 때까지의 전망에 대해 이후락 청와대비서실장은 '박대통령은 한국의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아세아의 지도자로서 만난 것이므로 공동성명에서 밝혀지지 않을 양자간의 합의사항이 더 많을 것' 이며 '한미양국은 어떤 사전 언질을 가지고 접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보장이 최선의 보장이라고 내다보았다.
정치/외교 1965년 05월 19일 박/존슨 공동성명 발표
박정희 대통령과 존슨 미대통령은 17일 하오 5시 5분부터 약 1시간 40분 동안 회담, 이중 25분 동안은 이례적인 단독 회담을 가졌다. 박/존슨 두 대통령은 18일 하오 5시 제 2차 정상회담을 가진 다음 공동성명을 발표, 토의된 문제 및 합의사항을 밝힐 예정인데 두 대통령이 각각 직접 낭독할 가능성이 보인다 두 대통령은 이 공동성명에서 '월남공화국을 지원하는데 긴밀한 협조를 계속 하려는 그들의 의도를 재확인' 하고 존슨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내의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시킬 것이며 한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미군과 제휴, 한국군을 충분한 수준에서 지원할 것'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존슨 대통령은 '한국에 군사 및 경제원조를 제공한다는 미국 정부의 기본 정책이 한일국교정상화 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확약을 재확인' 한 것이 확실하며 '한국 정부가 제안하고 미국정부가 동의한 프로그램과 사업을 위해 앞으로 수년간에 걸쳐 1억 5천만불의 개발차관 자금을 특별히 한국을 위해서 제공' 할 것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동성명이 한미간의 현안인 행정협정 체결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밝혀지지 않았다. 박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은 17일 하오 5시 5분 백악관 내 캐비닛 룸에서 한국의 장 부총리, 문 외무차관, 김 국방, 홍 공보장관, 이 청와대비서실장, 김 주미대사와 미측의 러스크 국무장관, 맥나마라 국방장관, 맥조지 버디 대통령 보좌관, 윌리엄 번디 국무성 극동담당 부차관보 등이 배석한 가운데 약 50분 동안 회담, 한미공동 관심사에 관해 협의했다.
이 회담이 끝난 후, 박/ 존슨 두 대통령은 백악관 내 존슨 대통령의 서재에서 약 25분 동안 통역을 맡은 조상호 비서관과 클레인 박사만을 배석시켜 양쪽의 단독회담을 가진 것이다. 이례적인 이 단독회담의 내용은 공식으로 밝혀지지 않았으나 한일 국교 정상화에 따르는 문제와 월남 문제 등 주요 국제문제가 협의되었을 것이라고 유력한 소식통이 관측했다.
정상회담 후 박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나 '한미간의 공동관심사에 관해 광범하게 의견을 교환했다' 고 말하고 '한국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월남을 공산진영에 넘겨서는 안된다는 결심을 갖고 있다' 고 강조했다.
존슨 대통령은 회담 후 '나는 박대통령과 1시간 이상 아주 유익하고 훌륭한 회담을 가졌다' 고 말했는데 그는 국무위원실에 다시 들어왔을 때 번디 차관보에게 '우리는 충분히 예기했으므로 실무자들이 보고를 내면 검토하겠다' 고 말했다.
이 회담에서 성공 여부에 대한 어떤 결말이 내려졌을 것 같지는 않고 서로 만나 한 두 가지 그 같은 중요 문제만을 토의하였으며 이 보다는 18일 하오 5시부터 재개되는 박 존슨 제 2차 정상회담이 더 중요한 것으로 이곳에서 알려졌다.
당초 한미정상회담에서는
(1)한국의 안전보장을 위한 미군의 불철수와 한국군 장비의 현대화
(2)SA 및 DLF 원조의 액수
(3)한국군 월남 파병에 대한 정치적 보상
(4)그 밖의 정치적 문제(행정협정이 아님) 등 네 가지 현안을 거론키로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독 회담이 끝난 뒤 존슨 대통령은 박대통령을 백악관의 남쪽 장미정원으로 안내, 약 25분 동안 산책하면서 띄엄띄엄 회담을 계속했다.
존슨 대통령은 약 50명의 내외신문기자, 카메라맨이 앞뒤에서 쫒는 것을 충분히 의식하면서 이 장민정원을 소개했고, 한때는 약 5분 동안 화씨 85도의 뜨거운 햇볕을 쬐면서 정원에 마련된 의자에 걸터앉아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정치/외교 1965년 05월 19일 박/존슨 공동성명 전문
박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은 18일 하오 5시 제 2차 회담을 마친 후 다음과 같은 공동성명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공동성명은 그간 한미양국 실무자들이 마련한 최종 초안인데 마지막 단계에서 행정협정에 대한 언급을 비롯해 일부 수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1. 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10일간의 미국공식 방문 차 1965년 5월 17일 워싱턴에 도착하여 5월 17일과 18일에 존슨 대통령과 회담하고 현 국제 정세 및 양국의 공동관심사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동회담에는 장기영 부총리, 문덕조 외무장관 대리, 김성은 국방부장관, 딘 러스크 국무장관, 로버트 S. 맥나마라 국방장관 및 양국정부의 기타 고위관리들이 공동회담에 참석했다.
2. 박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은 대한민국과 미국 사이에 전통적으로 존재해 온 강력한 우호유대와 만민에 대한 자유 정의 및 번영에 입각한 안전하고 항구적인 평화라는 양국의 공동목표를 추구함에 있어 가장 긴밀한 협조를 유지하려는 양국의 굳은 결의를 재확인했다.
3. 양 대통령은 극동 및 동남아세아의 현 정세를 검토하였으며 동 지역제국의 자유 및 독립보전의 필요성에 합의했다.
양 대통령은 자유국가들이 자유 속의 평화와 진보를 증진하기 위해 그들의 단결과 협조를 더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4. 존슨 대통령은 월남방위를 위한 대한민국의 기여에 특히 깊은 사의를 표명했다. 양 대통령은 월남공화국을 지원하는데 긴밀한 협조를 계속하려는 그들의 의사를 재확인했다.
5. 양 대통령은 대한민국과 미국의 상호 방위유대의 지대한 중요성을 검토했다.
존슨 대통령은 1953년의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규정된 대로 미국이 대한민국에 대한 무력공격에 의해 발생하는 공동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무력행사를 포함한 모든 가능한 원조를 즉각, 그리고 효과적으로 제공하려는 미국의 결의와 용의를 재천명했다.
존슨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미국은 한국 내의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시킬 것이며 한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미군과 제휴, 한국군을 충분한 수준에서 유지하는데 지원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한국군의 능률성을 보존하기 위한 군사지원은 그 적용법률과 세출액의 한도 내에서 계속 제공될 것이며 미국의 지원에 의해서 생기는 원화의 대부분이 한국의 방위노력에 계속 이용될 것이다.
6. 양 대통령은 한국 국민의 통한에 대한 열망을 인식하였으며 공산주의자들이 이미 확립된 유엔감시하의 자유선거를 통한 한국 통일원칙을 수락하기를 줄 곧 거부해 왔고 따라서 인위적인 한국의 분단을 장기화하고 있는 사실을 개탄하였다. 양 대통령은 한국에 관한 유엔결의에 천명된 유엔의 목적과 원칙에 따라 통일된 자유민주주의 대한을 이룩하기 위해 그들이 최대의 노력을 계속할 것을 재확인하였다.
7. 박대통령은 한국과 일본간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교섭에서 합의, 대강이 이미 가조인되었고 현재 조약문이 작성 중에 있음을 설명하였다.
존슨 대통령은 이 성과를 찬양하고 이 협정이 완결되면 직접 관련된 양국의 상호이익을 증진시킴과 동시에 아세아의 자유제국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표명하였다.
8. 박대통령은 한국경제의 현황과 전망을 설명하였다. 존슨 대통령은 박대통령에게 한국경제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한국정부와 국민들이 이룩한 발전을 찬양하였다.
존슨 대통령은 한국에서 수출, 공업 및 농업생산이 현저히 증가하고 사회발전 제 계획에 있어서의 투자가 증가했음에 유의하였다.
박대통령은 국민소득을 증가시키고 국민을 도와 자립경제라는 장기목표를 달성키 위해 대
한민국정부가 식량자급자족, 수출증대, 공업화의 촉진, 국민저축 증자 및 재정안정의 유지등 제 목적을 추구하고 있는 정부의 경제개발계획을 설명하였다.
9. 존슨 대통령은 앞서 러스크 국무장관과 기타 미국관리들이 다짐한 바 한국에 군사 및 경제원조를 지공한다는 미국정부의 기본 정책은 한일국교정상화 후에도 계속 될 것이라는 확약을 재확인했다.
그는 한국의 안전과 독립유지를 목적으로 한 원조와 더불어 미국이 한국으로 하여금, 자립경제 균형있는 경제발전 및 재정안정을 촉진할 수 있도록 원조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적용되는 관계법과 의회의 지출 승인 및 국제개발처 (AID)의 정책에 따라 다음과 같은 방법에 의하여 안정된 경제성장을 달성하려는 한국의 노력을 도우려는 것이 미국정부의 의도임을 천명했다.
가. 한국의 경제안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합의되는 제반계획과 관련하여 한국에게 반드시 필요한 물자수입을 위한 자금조달을 돕는데에 적절한 지원원조를 계속한다.
나. 한국정부가 제안하고 미국정부가 동의한 계획 프로그램과 사업을 위해 향후 수년간에 걸쳐 1억 5천만불의 개발차관 자금을 특별히 한국을 위해 제공한다. 이 자금사용 후에도 계속 개발차관 자금이 제공될 것으로 예상된다. 존슨 대통령은 이들 저리에 의한 장기차관 계획이 한국경제의 투자증대 필요성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발차관은 장차의 회의에 의한 수입계획과 전력자원 및 사회간접자복을 증대시키고 농업 및 어업의 능률과 결과적으로 생산고를 증대시키며 중소기업 및 대기업을 망라한 기술 산업개발을 증진시킴으로써 모든 국민에게 혜택을 주고 균형있는 결제성장을 촉진시킬 사업에 대한 융자로 사용될 것이다.
다. 기술원조 및 훈련을 계속한다.
라. 평화식량계획에 의해 농산물, 특히 원면과 양곡 등 상당한 규모의 원조를 계속하며 개
발사업과 실업 및 빈곤구제를 위해 평화식량의 공여를 계속한다.
10. 양 대통령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이 장기경제원조가 한국 자체의 노력 및 기타 자금재원으로부터 기대되는 자원과 더불어 한국 국민에게 경제발전과 세계경제관계에의 유익한 참여를 위한 기회를 더욱 더 증대시키게 되리라는 점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11. 박대통령은 또한 한국의 자립경제 달성이 대외 무역을 더욱 확장할 수 있는 능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한국제품과 상품의 수출을 확장하고 미국 원조계획을 통하여 제공되는 자금에 의한 구매에 한국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증대하는 데에 미국이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존슨 대통령은 한국에 있어서의 수출확장의 중요성에 관하여 이해를 표명하고 미국은 한국의 대외무역에 있어서의 입장을 개선하려는 노력에 있어 한국과의 협조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12. 박대통령은 존슨 대통령에게 편리한 가장 이른 시일 내에 한국을 방문해 주도록 정중하게 초청했다.
존슨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희망을 표명했다. 양 대통령은 자유와 평화를 증진하는데 봉사하기 위하여 긴밀한 개인 접촉을 유지하고자 하는 희망을 표명했다.
정치/외교 1965년 05월 19일 존슨의 월남정책 찬양
박정희 대통령은 18일 낮 12시 15분 내셔널 프레스 클럽이 주최한 오찬회에 참석 '한미양국은 아세아에 있어서 공산주의 판도의 이 이상 확대를 막아야 하는 새로운 역사적 사명에 서게되었다' 고 전제하고 '본인은 동남아 지역에서의 공산 침략 저지와 집단 안전보장 문제 그리고 이 지역의 발전을 위한 상호 협조의 관계를 긴밀히 하는데 적극 이바지하겠다' 고 말하였다.
박대통령은 3백 여명의 외국 기자들이 참석한 이 오찬회에서 20분간의 연설을 통해 '공산주의자들이 폭력혁명에 의한 세계지배를 포기할 때까지 힘의 입장에 의한 자유 수호에서 일보도 후퇴할 수 없다' 고 단언하고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믿는 정의를 이 지구상에서 구현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힘과 힘의 행사가 필요한 것' 이라고 주장하였다.
박대통령은 특히 '월남 문제는 월남 지역에 국한된 분쟁이 아니다' 라고 못박고 이를 위해 자유진영이 취해야 할 행동은 '지난 한국동란에서 미국과 자유 진영이 보였던 그 뚜렷한 결의와 행동을 다시 한 번 결행하는 길밖에 없다고 확신하며 존슨 대통령의 월남 사태에 대응한 그 확고한 결의와 행동에 대하여 높은 경의를 표하는 바' 라고 말하였다.
연설 후 박대통령은 기자들의 몇 가지 질문에 대답했는데 연설의 요지는 별항과 같다.
18일 하오 내셔날 프레스 클럽에서 연설을 마친 뒤 박대통령은 질문에 답변하면서 '현재로서는 동북아 군사문제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고 말하고 또 '동남아 외상회담은 전부터 구상하고 있었으나 아직 실현할 단계에는 도달하지 않았다' 고 말했다.
타스 통신 보도- 박대통령 방미논평 없이
소련의 타스 통신은 17일 박정희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을 보도했다. 타스 통신은 존슨 미대통령의 환영 연설을 아무런 논평 없이 보도했으며 미국 언론기관들을 인용하여 박대통령은 지난 달 존슨 대통령 특사인 헨리 캐보트 로지 씨에게 한국은 2개보병대대를 월남으로 파귀할 용의가 있다고 보도했다.
케네디 묘에 헌화- 잣나무 기념식수
박대통령은 이 두 회담이 끝난 후 하오 3시 앨링턴 국립묘지를 방문, 고 케네디 대통령 묘와 무명용사 묘에 화환을 증정하고 잣나무로 기념식수를 하였다.
박대통령은 이어 풀브라이트 상원외교 위원장이 동위원회실에서 개최한 티 파티에 참석했다.
정치/외교 1965년 06월 26일 존슨 대통령 한일타결 축하 전문
박정희 대통령은 25일 린든 B 존슨 미대통령으로부터 한일회담 타결의 축하 전문을 받고 곧 회전을 보냈다. 존슨 대통령은 이 축전에서 '한일간의 외교관계가 새로운 토대 위에 수립되어 양국의 상호이익을 약속해 준다는 사실 외에도 본인은 이 협정이 아세아와 자유 세계의 강화에 큰 공헌을 하게될 것을 확신한다'고 찬양했다.
비치대장 초대 박정희 대통령은 24일 저녁 7시 청와대로 주한 유엔군사령관 비치 대장을 초대 만찬회를 베풀었다.
한일수뇌 교환 방문 아직 계획된 바 없다.
신범식 청와대 대변인은 24일 상오 박대통령의 명춘 방일이나 좌등 일본수상의 금추 방문
계획은 '아직은 세워진 것이 없다' 고 일부 보도를 부인하였다.
정치/외교 1966년 09월 28일 존슨과 단독회담도
박정희 대통령은 마닐라에서 열리는 월남참전 7개국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기회에 그곳에서 존슨 미국대통령과 따로 만나 유엔에서의 한국 문제를 비롯한 한미 공동 관심사에 관해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외무부고위 소식통은 27일 이같이 밝히고 박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호주, 뉴질랜드, 월남 등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대표단은 아직까지 확정되지 않았으나 이동원 외무부장곤, 김성은 국방부장관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이 수행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
정치/외교 1966년 10월 25일 박-존슨 예비회담
박정희 대통령은 월남참전 7개국 정상회담의 개막에 앞서 23일 저녁 8시 존슨미국 대통령과 약 시간 동안 회담했다.
존슨 미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박대통령의 숙소인 마닐라 호텔 5백 66호실에서 열린 이회담에는 한국측에서 이동원 외무부장관,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 및 유양주 필리핀 대사, 그리고 미국측에선 러스크 국무장관, 윌리엄 P. 번디 국무성 극동담당차관보 및 로스토우 박사가 참석했다.
신범식 청와대 대변인은 박-존슨 회담 내용에 대해 '월남 문제에 대해 광범한 의견을 교환했으며 이번 회담의 의의가 참전 7개국의 단결을 표시하는데 있는 것으로 의견을 같이했다' 고만 말했다.
그러나 이곳의 외교 옵서버들은 정상회담의 전야임에도 불구하고 참가각국의 각기 다른 국내 사정 때문에 의제 및 의사진행 등에 완전한 합의를 얻지 못했던 사실을 지적하면서 박-존슨 회담에서 이와 같은 문제가 논의된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
또 박-존슨 회담이 존슨 대통령의 요청으로 마련된 것이기 때문에 박대통령에게 어떤 협력을 요청한 것이라고도 관측되고 있다.
박대통령은 이 회담에서
(1)월남전의 명예롭고도 평화적인 해결에 대한 협상에는 언제나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2)월남 문제 해결에 있어서 월남인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참전국이 참가한 협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월남전에 대해서 공산측이 협상에 응하지 않는다면 힘을 통해 승리를 얻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박대통령은 오후 5시 30분 그를 방문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과도 약 30분간 회의, 정상회담 진행에 관해 서로 협의했다.
공침저지 방안 마련 확신
박정희 대통령은 23일 오후 4시 30분 마닐라에 도착, '마닐라 정상회담에서 월남에 진정한 평화가 회복되고 공산주의자들의 계속적인 침략과 파괴 행위를 저지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이 강구될 것을 확신하다' 고 도착 성명을 발표했다.
박대통령은 또 '필리핀이 6.25때 지원해 준데 대해 깊이 감사하고 그 은공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 이라고 말하고 '이 기회에 한국 땅에 묻힌 젊은 영령들의 명복을 빌고 그 유가족에게 조의와 위로의 뜻을 표한다' 고 말했다.
홍콩에서 전세기 편으로 마닐라에 도착한 박대통령은 공항에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 내외와 필리핀 정부각료 및 주필리핀 외교사절들의 영접을 받았다.
박대통령은 유양주 주필리핀 대사의 안내로 숙소인 마닐라 호텔로 향하는 도중 리잘 공단에 들러 필리핀 독립운동의 선구자 리잘의 동상에 헌화했다.
정치/외교 1967년 01월 06일 존슨 신년 메시지
박대통령에게
존슨 미국대통령은 1일 박정희 대통령에게 신년메시지를 보내왔다. 존슨 대통령은 메시지에서 「새해에는 마닐라에서 선언한 자유의 목표가 태평양 전역에 성취될 수 있도록 전진해나가는 것을 확신하며 박대통령이 지역적 협동과 영원한 평화를 위해 각별한 공헌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말했다.
정치/외교 1967년 12월 22일 존슨. 티우. 홀리요크 등과 박대통령 연쇄회담
북괴 공작 대책 등을 토의
박-존슨 공동 성명…월남 지원 다짐
방호 중인 박정희 대통령은 21일 존슨 미국대통령을 비롯한 3명의 월남참전국수반들과 일련의 연쇄개별회담을 갖고 월남전의 계속적인 수행을 다짐했다.
박-존슨회담
박대통령은 이날정오 (한국시간) 존슨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캔버라 렉스 호텔에서 오찬을 겸한 비공식 한미정상회담을 가졌다. 한국 측에서 최규하 외무부장관,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 이동환 주호대사가, 미국 측에서 번디 국무성 국무차관보, 로스토우 특별보좌관, 클라크 주호대사가 각각 배석한 이날 회담은 공동성명을 통해 월남의 독립과 월남국민의 자결을 돕기 위한 참전국의 공동결의를 다짐했다. 공동성명은 『한미 양국은
①북괴의 대남 공작을 철저히 봉쇄하기 위해 공동 노력하고
②경제협력을 계속할 것에 합의했으며
③박대통령은 호남지방의 한해 민에 대한 미국의 긴급식량원조에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내년 뉴질랜드 방문요청 박-홀리요크 회담
박대통령은 5시10분부터 20분간 홀리요크 뉴질랜드 수상과 양국간의 경제협력문제를 협의했으며, 홀리요크 수상으로부터 뉴질랜드 방문초청을 받고 『가능하면 내년 가을게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박-티우 회담
박대통령은 5시30분부터 30분간 티우 월남 대통령과도 만나 『월남전세는 착실히 우리에게 유리하게 진전되고 있으며, 한국은 월남에 진정한 평화가 올 때까지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국방 1968년 01월 30일 존슨, 군사지원 약속 서한 박대통령에 보내
존슨 미국대통령은 지난주 박정희 대통령에게 미국이 한국에 대한 군사지원을 약속한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고위 소식통은 29일『 박대통령이 지난 24일 청와대를 방문한 포터 미국대사에게 미국의 대한군사원조 공약의 실행이 부진했음을 밝혔다』고 말했다.
정치/외교 1968년 02월 13일 박대통령 존슨에 친전
박정희 대통령은 지난 9일 포터 미대사를 통해 존슨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음이 12일 신범식 청와대 대변인에 의해 확인됐다.
친서내용은 발표되지 않았으나 박대통령은 존슨 미국대통령의 친서에 대한 회답 형식으로 이를 보냈으며 북괴무장공비 침입사건과 푸에볼로호 납북사건 등으로 빚어진 긴장상태에 관련, 한국의 안보에 관한 정부의 입장과 견해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외교 1968년 04월 05일 박-존슨 단독 회담
8일(한국시간) 호놀룰루서 한국안보문제 토의 월남협상안도 제시
대통령은 존슨 미국대통령의 초청을 받고, 8일(한국시간) 한국문제를 비롯한 동남아 여러 문제에 관해 협의하기 위해 7일 오전 7시 하와이 호놀룰루로 출발할 예정이다.
신범식 청와대 대변인은 4일밤 11시『박대통령이 존슨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호놀룰루로 비행, 8일 하루동안 한국문제를 비롯한 동남아 문제에 관해 광범하게 의견을 교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박대통령과 존슨대통령의 호놀룰루 회담은 월남 참전 7개국 정상회담과는 완전히 별개로 열리는 단독회담으로 알려졌으며, 존슨대통령의 3·31선언이후 벌어진 월남협상에 대해 사전협의를 하기 위한 회담으로 풀이되고 있다.
존슨대통령은 박대통령과 회담하기 위해 5일(한국시간) 호놀룰루로 비행할 예정이며, 박-존슨 회담에 앞서 주월미군 지도자들과 자체전략회담을 갖는다.
외교옵서버블은 호놀룰루 정상회담에서 존슨대통령은 월남전 해결을 위한 미국정부의 복안을 설명하고 제2의 참전국인 한국의 협조와 양해를 요청할 것이며 박대통령은 월남에 있어서「명예로운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정부의 입장과 북괴의 예상되는 도발행위에 대처하기 위한 한미간의 강력한 협조문제를 설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월남협상에 관한 한국정부의 입장은 협상의 원칙은 66년 11월 마닐라 선언에 따라, 월남공화국 정부와 국민이 주체가 되고 참전국이 동등한 자격으로 협상에 참여해야 한다. 영-소의 중재와 같은 제네바방식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베트콩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어떠한 월남임정수립도 반대한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엔 월맹의 침략중지가 완전히 보장되어야 한다. 협상회담의 장기화를 피해야 하며, 협상에 진전이 없으면 연합국은 북폭을 강
화해야 한다는 것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행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최영희 국방부장관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 ▲신범식 청와대 대변인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 ▲김동조 주미대사 ▲임충식 합동참모 본부의장 ▲이범석 외무부 의전실장 ▲조상호 청와대 의전비서관 ▲윤하정 외무부 구미국장 ▲지홍창 대통령 주치의 ▲최병직 비서실장 보좌관
매우 격동 속의 재회(해설) 염원…명예로운 평화
「제1협의자」로 한국부각
월남전의 협상을 위한 예비접촉이 미국과 월맹사이에 진행되고 있다는 보도 속에, 박정희 대통령은 존슨 미국대통령의 초청을 받고『한국문제를 포함한 동남아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7일 하와이 호놀룰루로 출발한다.
여덟 번째의 외유이며, 네 번째의 방미인 박대통령의 돌연한 여정은 과거 어느 때의 외유보다 외교-국방상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것은 월남 축전과 대통령 불출마를 선언한 존슨대통령의 3·31발표 이후 월남 협상을 둘러싼 국제정세와 제2의 월남파병국인 한국과의 관계에서 볼 때 더욱 그러하다.
다른 참전국의 원수보다 우선적인 박-존슨단독회담의 윤곽은 월남협상문제와 한국의 안전보장문제로 집약 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존슨대통령은 월맹과의 협상을 위한 미국정부의 복안을 설명, 한국정부의 협조와 양해를 구할 것이 확실시된다. 이에 대해 박대통령은 월맹과의 협상이「명예로운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마지막의 시도일 것을 다짐받고, 마닐라선언에 의한 협상이 진행될 것을 희망하는 한국정부의 입장을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월남공화국의 정부와 국민이 주체가 되고 참전국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는 협상이 바로 그것이다. 박대통령은 특히 판문점 휴전방식과 같이, 공산침략자들이 협상기간을 전력회복기간으로 악용하는 전례를 경고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월남전의 양상변화에 따라, 예상되는 북괴의 도발행위에 대한 한미양국의 공동 대응책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괴는 무장공비를 남파시켜 한국을「제2전선」으로 만들려는 획책을 계속할 것이며, 이러한 음모는 월남전이 협상무드로 인해 소강상태에 들어간다면 더욱 치열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괴침략에 대한 공동 보복조치 문제 등 반스 특사 방한 때 미진했던 방위대책이 근본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존슨 단독회담은 한국이 한국을 제1의 협의자로 보고 있으며, 한국의 우선적인 참여 없이는 실질적인 동남아 문제의 논의가 어렵다는 증좌로 보여지며, 한국의 국제적 지위향상을 다시 한 번 과시한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치/외교 1968년 04월 07일 박-존슨회담 무기연기 미국내 사태로…일자 다시 결정
오는 8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릴 예정이던 박정희 대통령과 존슨 미국대통령과의 단독회담은 흑인폭동으로 인한 미국내 사정으로 무기연기 되었다. 신범식 청와대 대변인은 6일『박대통령과 존슨 미국대통령과의 호놀룰루 회담은 존슨대통령의 사정에 의해 부득이 연기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에 앞서 포터 미국대사는 이날 오전 박대통령을 방문, 미국정부의 형편을 설명하고 박-존슨회담 연기에 따르는 여러 가지 문제를 협의했다.
신범식 대변인은 박-존슨 회담의 연기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으나 마틴 루터 킹박사의 암살사건으로 격화된 폭동들을 먼저 수습하려는 존슨미국 대통령의 사정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박-존슨 회담은 지난번 반스 특사가 내한했을 때 제의됐으며 그후 한-미 양국정부간에 합의 됐던 일』이라고 설명하면서『미국내 사태로 미루어 보아 상당한 기간, 때에 따라서는 1개월 이상 연기될지도 모르지만 결코 취소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박-존슨회담은 8일 호놀룰루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며 윤하정 외무부 구미국장을 비롯한 선발대 일행은 이미 5일 현지로 떠났다.
【워싱턴=AFP합동】존슨미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의 호놀룰루 회담은 흑인민권 운동지도자 킹박사의 암살사건 때문에 무기연기 되었다고 5일 백악관이 발표했다.
백악관은 존슨 대통령이 호놀룰루행을 일단 취소했다고 발표하고 존슨대통령 및 윌리엄 웨스트모얼랜드 주월미군 총사련관과 언제 어디서 회담할 것인가를 다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외교 1968년 04월 08일 박대통령 존슨에 곧 친서 한국안보·월남전 입장 천명
정부는 호놀룰루의 박·존슨 회담이 무기연기됨에 따라 한국안보를 비롯한 동남아의 안보와 대월남전에 관한 정부입장을 밝히는 박대통령의 친서를 존슨대통령에게 보낼 계획이다. 8일 정통한 소식통은『금주내로 박·존슨 회담이 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고, 이에 따라『정부입장을 밝히는 한미현안문제에 관한 박대통령의 친서를 보내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친서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북괴 도발행위에 대한 한미 공동보복 조치등 한국안보에 관한 정부입장과 월남전협상에의 한국의 참여, 연정수립 반대등 대월기본입장이 수록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날 알려진 친서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안보= 『1ㆍ21』무장공비남침 사건과 같은 북괴의 도발행위에 대해서는『즉각협상』아닌 『즉각보복』할 수 있도록 하는 보장 즉각적으로 공동보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침략의 유형과 이에 대한 보복의 유형을 확정 이 같은 보장을 위해 합의 의사록이나 방위각서 형식으로 방위조약을 보완한다.
▲동남아안보= 북괴, 중공등 공산국가의 증대되는 침략행위에 대처 위한 실질적인 자유 아시아의 결속이 필요하다
이 같은 도발에 대처키 위한 방안으로 마닐라 정상회담 정신을 아시아 및 태평양지역의 공동방위체제로 전환한다.
▲월남문제=명예로운 협상 목표에는 동조하나 월맹이 성실성을 보일때까지 북폭을 완화치 말 것 베트공을 협상 대상에서 제외할 것
▲푸에볼로호 사건=영해침범시인, 사과는 안되며 가급적 교섭을 빨리 끝낼 것
정치/외교 1969년 01월 08일 존슨, 박대통 진서
박정희 대통령은 지난 해 12월 31일 존슨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푸에블로 호 승무원 석방을 위해 노력해준 데 대해 감사하다는 내용의 친서를 받았다고 청와대 당국자가 7일 말했다.
포터 주한미국 대사에 의해 전달된 이 친서는 신년 메시지를 겸해 한국이 경제 사회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룬데 대해 경의를 표하고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을 빌며 공산주의 위협에 대비하여 한미 양국간의 보다 긴밀한 협조를 다짐했다고 이 당국자는 전했다.
정치/외교 1969년 01월 21일 박ㆍ존슨 양대통령 메시지 교환 존슨 대통령에게
【각하께서 오늘 대통령직을 떠나시게 되는 이 마당에 본인은 각하께 재임하시는 동안 한국 국민과 본인에게 보내주신 아낌없는 지원과 협력에 대해 본인 자신과 한국 국민의 애심으로부터의 사의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돌이켜보건데 우리들은 지난 몇 해 동안 우리들의 공동 목표 성취를 위해 협동해 오면서 고난을 같이 나누고, 무엇인가를 이룩하였다는 자부심도 같이 느껴보았던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들은 긴밀한 접촉을 통해 친우로서의 우정을 느끼게 되었으며, 우리 두 나라 국민간에 존재하고 있는 우호와 협력의 기틀을 더욱 더 굳건히 하였던 것입니다. 다난했던 재임기간 중 미국과 자유 세계를 영도하는 데 있어서 각하께서 보여주신 인내와 지혜, 용기와 결의, 그리고 탁월한 지도력에 경의를 표하는 동시, 각하의 성공적이고 복된 앞날을 축원합니다.】
박대통령에게
【공직을 떠나게 되는 이 마당에 본인은 지난 5년 동안 각하께서 보내주신 전폭적인 협력과 강력한 지원에 대해 충심으로 사의를 표합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들은 한국과 월남에서 공산 침략으로 인해 야기된 곤란한 문제에 당면해 왔습니다.
우리 양국간의 우호 관계에 암영을 던지려는 북괴의 흉계는 수포로 돌아갔으며, 우리들은 50년 이후 줄곧 그러했던 것처럼 지금도 귀국의 독립 수호를 위해 확고부동하게 단결되어 있습니다.
본인은 어느 누구보다도 이같은 중대한 도발 행위에 대처함에 있어서 각하께서 보여주었던 이해와 냉정한 판단력을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제 월남에서 가까운 장래에 영예로운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으며, 자유를 기반으로 하는 평화를 위해 각하와 국민들이 파견한 용감한 한국군은 크게 공헌한 바 있는 것입니다. 본인은 월남에 있어서의 자유 수호를 위해서 각하와 한국 국민이 보내 주신 지원을 감사히 여기고 있으며, 미국 국민 역시 그러한 것입니다.
평화를 위한 우리들의 공동 노력은 우리들 사이를 거리적으로 더욱 더 가깝게 해주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더 한층 중요성을 띠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무엇보다도 여실히 입증하고 있는 것은 최근의 달 궤도 비행시 촬영된 사진인 것이며, 이 사진을 동봉해 드리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가까운 이웃으로서 우리들은 생존을 위해 같이 살고 같이 일해야 되다는 것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 두 나라는 몇 년 동안 바로 이 일을 같이 해 왔습니다.
본인은 우리 두 나라가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것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것으로 알고 있으며, 우리들은 많은 다른 나라들과 같이 협력해서 우리 모두가 우주의 승객처럼 살고 있는 이 작은 혹성의 평화적인 발전을 위해 일해나갈 수 있게 될 것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되었으나 대한민국에 대한 관심과 우정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내외가 아름답고 활기에 찬 귀국을 방문했을 때 각하를 비롯하여 한국 국민들이 보여주었던 친절과 후대의 기억을 되살 릴 때마다 한국에 대한 우정과 관심은 더욱 더 강화될 것입니다.
본인은 아내와 더불어 각하와 한국 국민의 평화롭고 번영된 앞날을 축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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