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22,19-23; 로마 11,33-36; 마태 16,13-20
+ 오소서, 성령님
지난 한 주간 안녕하셨어요? 그간 주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으셨고, 지난 주에는 이방 여인인 가나안 여인의 딸을 치유해주셨습니다. 오늘은 이 예수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한 중요한 고백이 수제자의 입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이르셨습니다. ‘카이사리아’는 로마 황제 카이사르를 기리는 이름이고, ‘필리피’는 헤로데의 아들 필리포스의 이름에서 왔습니다. 이곳에는 그리스 신화에서 목축을 관장하던 신인 ‘판’을 숭배하던 신전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권력과 이방 종교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는 이곳에서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제자들은 대답합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난 것으로, 또는 승천한 엘리야가 다시 오신 것으로 생각하였고, 유다와 성전의 멸망을 예언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지속적으로 고난을 받았던 예레미야 예언자가 다시 온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당신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이 무슨 의미일까요? ‘스스로 살아 계시며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 하느님’이시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그리스 신화의 신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고, 로마 권력이나 헤로데의 아들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다스리고 계시며, 예수님은 그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시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바르요나’는 ‘요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고, 예수님은 베드로를 “요나의 아들”이라 부르십니다.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베드로는 돌,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아람어로는 ‘케파’라고 하는데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아마도 “너는 케파이다. 이 케파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이셨을 것입니다.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 다윗 집안의 열쇠를 ‘힐키야의 아들 엘야킴’에게 주셨듯,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열쇠를 ‘요나의 아들 시몬 베드로’에게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매고 푸는 권한은, 첫째 신앙을 가르치고, 둘째 신앙 공동체에 사람을 받아들이거나 내보내며, 셋째 죄를 용서하는 영적 권한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 위에 가톨릭교회가 서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베드로 사도를 첫 번째 교황으로 모시고, 그 후계자들을 통하여 사도적 계승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 교회입니다. 그러한 믿음의 근거는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주님께서 베드로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셨으며, 그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교회의 기초를 이룬다고 믿습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424항, 881항) 하지만, 어떤 이들은 예수님께서 베드로 개인이 아니라, 베드로가 고백한 신앙 위에 교회를 세우신 것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자칫, 누구든 새롭게 신앙을 고백하면, 주님께서 그 사람 위에도 새로운 교회를 세우신다고 이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당신께서 믿음을 극찬하신 백인대장이나, 가나안 여인 위에 교회를 세우지 않으셨을까요? 그들의 믿음 위에도 교회를 세우셔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직 베드로 사도에게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제자단의 대표였고, 예수님께서 붙잡히셨을 때 도망친 다른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을 따라갔으며,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지만 “네가 돌아오거든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다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베드로에게 나타나시어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사랑한다는 고백을 세 번 들으실 때마다 말씀하십니다.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이 말씀에 따라 베드로 사도는 사도단의 수장으로 초대 교회를 이끌었고, 예수님의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니케아 신경을 바치며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보편되며’라는 단어가 라틴어로 ‘가톨릭’입니다.
‘가톨릭’이라는 말은 ‘모든 사람을 향해 열려 있고, 온 세상에 퍼져 있으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간직한 보편 교회’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교회’라는 말은 세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요, 첫째는 전례를 하려고 모인 하느님 백성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우리 본당과 같이 특정한 지역의 신자 공동체를 의미하고, 셋째는 세계 신자 공동체 전체를 의미합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752항)
두 번째 의미인 우리 노은동 천주교회는 세 번째 의미인 보편 교회, 곧 전세계 가톨릭교회와 연결되어 있는 교회입니다.
제가 3년 전에 이 말씀을 드렸었는데, 못 들으신 분들도 계셔서 다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대전 지하철역 종점이 어디일까요? 반석역입니다. 반석 위는 어디일까요? 지족, 그리고 노은입니다. 그러면 반석 위에 세운 교회는 어디일까요? 바로 노은동 천주교회입니다.
모든 본당 공동체는 보편 교회의 수장인 교황님과 연결되어 있고, 또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님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미사 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온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교회를 생각하시어
교황 레오와
저희 주교 아우구스티노와 스테파노와
모든 성직자와 더불어 사랑의 교회를 이루게 하소서.”
이는 우리가 특별히 이 미사를 통하여 보편 교회와 연결되어 있고, 주교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이 교회는 평신도, 수도자, 사제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점들을 묵상하며 오늘 말씀을 되뇌면 너무나 은혜롭지 않은가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교회는 수많은 어려움과 위기 속에서도 복음에 충실하기 위해 끊임없이 쇄신해왔으며, 이 모두는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쏟으신 물과 피의 은혜이고 우리를 이끌고 계신 성령의 은총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주님의 교회인 우리도 주님에게서 나와, 주님을 통하여 주님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교우가 없으면 교회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제가 한 교회임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성모님과 우리가, 한국 순교성인들과 우리가, 그리고 전세계의 모든 성인들과 우리가 한 교회이고, 14억 가톨릭 신자들과 우리가 한 교회임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우리를 가톨릭교회로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 주님의 몸인 교회, 우리 어머니이신 교회가 여러분께도 자랑이고 기쁨이고 뿌듯함이시기를, 내가 그 교회의 일원이라는 것 역시 자랑이고 기쁨이고 뿌듯함이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삐에뜨로 뻬루지노, 하늘 나라의 열쇠, 1481년
출처: Delivery of the Keys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