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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칙 「찬미받으소서」Ⅰ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올바른 이해 1
사회교리의 연장선인 최초의 생태 회칙
“이번 총회에 지구와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다. 협약이 타결되면 미래세대에 평화를 보장하고 난민 숫자도 줄어들 것이다.”
앞에 인용한 말은 지난 11월 30일부터 12월 11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의 개회사에서 주최국인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이 한 말이다. 생태계 파괴가 지구와 인류의 생존을 좌우할 상황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총회는 지구의 온도 상승 폭을 2도시(C) 이내로 제한하고자 회원국들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협의의 자리였다. 선진국과 개도국이 의견 차이를 보이며 진행된 이번 회의는 생태 문제의 본질을 보여주었다.
196개 당사국 대표와 국제기구를 비롯한 산업계와 시민사회 대표 등 4만여 명이 참석한 규모가 보여주듯, 생태 문제는 특정 독립 분야의 문제나 한 국가와 대륙의 문제가 아니며, 한 세대만의 문제도 아니다. 생태 문제는 많은 세대에 걸친 영향이 축적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가치관, 생활양식이 총망라되는 집약점이며, 인류 발전이라는 화살의 화살촉에 해당한다. 환경과 관련한 정책이나 사업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보면 사회, 정치, 경제 정책의 오늘과 내일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2011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7위를 차지하며 매우 낮은 대체에너지 비율을 갖는 우리나라는 전 국민과 교회의 반성과 변화의 요구에 직면해 있다.
회칙 「찬미받으소서」 연재를 시작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6월 18일 ‘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에 관한 회칙’이라는 부제를 단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반포하였다.
분명히 이번 회칙은 생태 문제를 중심으로 교회 밖의 사람들의 동참을 호소하고 모든 분야의 개선과 인식 전환을 통한 변화를 찾는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그리스 정교회 존 지지울라스 대주교 뿐 아니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세계 지도자들이 지지성명을 발표하였고, 유수한 환경 관련 기구들이 환영하였다.
선진국 내 보수적인 단체들과 관련 업계의 반발도 있었지만,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인간의 전 영역을 아우르는 자세의 반성과 전 세계의 연대를 통해 해결하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극히 일부에서 이번 회칙의 일부 구절만 강조하거나 인용하며 회칙이 이전까지 발표된 사회교리 문헌과 큰 차이나 구별이 되는 주장이 있는 것처럼 잘못 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하기에 「찬미받으소서」가 생태 문제를 다룬 최초의 회칙이지만 교회의 사회교리나 환경 관련 문헌들과 비교할 때 분명히 연속성 안에 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연대성’과 ‘공동선’ 그리고 ‘보조성의 원리’를 주축으로 전개되는 사회교리의 연장선에 있으며, 지금까지 환경과 관련하여 보여준 방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속성과 함께 회칙의 전체적 이해를 통해 세부 항목에 접근한다면 더욱 풍부하고 실천적인 이해와 행동이 가능할 것이다.
이에 따라 교회와 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회칙의 전체적 구성을 개괄적으로 조망하고 다달이 한 부분씩 그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학문적이라기보다 실천적인 차원에서, 구체적인 삶과 사목의 지평에서 접근하여 ‘사회교리’와 ‘회심’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래서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를 정리하려고 한다. 아울러, 세계 각 교회와 우리나라 교구들의 회칙 관련 활동도 부분적으로 소개하려고 한다.
회칙의 출발점과 구성
교황청이 밝힌 것처럼, 회칙의 밑바탕에 깔린 근본적인 질문은 “우리 후손들, 지금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까?”이다. 이 질문은 결코 부분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 또한 환경만을 따로 떼어놓고 던질 수 있는 질문도 아니다.
이러한 질문 자체가 우리가 어떤 목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지, 세상에 온 목적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지에 관한 고민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 전체와 개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의미, 그리고 가치에 관한 고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 안의 우리 뿐 아니라 전 세계인을 그 물음과 방향전환의 자리에 초대하고 있다.
회칙은 6개의 장으로 나누어 전개된다. 우리의 환경파괴 현실을 파악하고(1장), 유다-그리스도교 전통과 성경을 분석하며 피조물에 대한 인류의 책임을 돌아보도록 한다(2장).
또한 기술 관료제가 가진 문제의 뿌리를 살펴보고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우리의 자세를 분석한다(3장). 회칙은 통합적 생태론을 대안으로 제시하며(4장), 실제적인 접근법과 행동양식을 제안한다(5장).
마지막으로 교황은 우리 모두를 회심의 자리로 초대한다(6장). 구체적인 교육과 훈련의 장에서 어떻게 우리 삶의 습관과 행동을 개선해 갈 수 있는지를 모색하는 것이다.
이처럼 회칙은 문제의 진단, 신학적 성찰, 대안과 방법의 제시로 구성된다.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회칙
회칙을 자세히 분석하면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타원과 같은 구조가 감지된다. 현재의 위기가 해결되는 실질적 변화를 희망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불러일으키려 한다. 교회는 생태문제의 진단이나 신학적 성찰을 진행하면서 지금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가치관을 버리고, 전일적인 생태계에 입각한 가치관으로 전향할 것을 촉구한다. 여기서 두 개의 축이 나타난다.
첫 번째 축은 우리가 당연하고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며 행동하는 가치관의 비판이다. 회칙의 비판은 지금 현재의 상황이 우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의 결과적 집약물이라는 판단 아래 놓인다.
회칙에 따르면, 정의와 자연 모두를 무시하며 더 이상의 번영을 꿈꾼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시점에 다다랐다. 또한 현대인들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도덕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이성적이지도 않은 모습이다. 가치관의 반성과 재정립을 통해 당면한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안하는 가운데 전 세계의 동참과 논의, 곧 변화의 행동을 요청하는 것이 이번 회칙의 궁극적 목표라고 볼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회칙에서 근대가 미신처럼 빠져드는 진보와 기술 관료적인 패러다임을 되돌아보기를 요청한다. 더불어 우리가 비판적인 사고 없이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치들을 되돌아보라고 촉구한다. 교황이 가장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기술 만능주의와 자유시장에 대한 긍정적인 환상이다.
회칙에 따르면, 이러한 허상적인 신념이 모두 작용한 결과, 우리는 내 앞에 놓인 무언가가 나의 사용을 위해 존재하는 가운데 현재의 구조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기대를 지닌 채,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발전과 번영, 자유와 행복의 원천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회칙은 이러한 가치관들로부터 돌아설 것을 제안하며 촉구한다. 그 대안이 통합적 생태관이다. 이는 창조로부터 서로에 대한 연대성과 책임감을 강조하며 과학과 기술이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게 되는 가치체계이다.
이 지점이 두 번째 축인, 지구까지로 확대된 상호 연결성과 이에 따른 상호 책임성이 놓이는 지점이다. 회칙의 첫 항목에서부터 프란치스코 성인의 말을 인용하며 이를 명시한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이 아름다운 찬가에서 우리의 공동의 집이 우리와 함께 삶을 나누는 누이이며 두 팔 벌려 우리를 품어주는 아름다운 어머니와 같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저의 주님, 찬미받으소서. 누이이며 어머니인 대지로 찬미받으소서. 저희를 돌보며 지켜주는 대지는 온갖 과일과 색색의 꽃과 풀들을 자라게 하나이다’”(1항).
회칙이 제시하는 상호 연결성과 책임성의 뿌리는 ‘창조’와 하느님의 모상을 지닌 ‘인간의 존엄성’이다. 그런데 연결성과 책임성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환경과 인간이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이지 않는다. 곧 ‘환경이냐, 인간이냐?’ 하는 선택 자체를 없애는 데에서 모든 논의가 출발한다.
그러나 결코 인간 중심을 포기하거나 ‘청지기’로서의 인간 이해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또한 회칙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우선적 배려’라는 원칙을, 이전의 사회교리들을 통해 언급한 것과 같이, 환경파괴로 말미암아 가난한 자들에게 가중되는 피해와 가장 약하고 가난한 형제로서 환경을 바라보는 점에서 적용한다. 이처럼 회칙은 사회교리의 견고한 축 위에 생태계 파괴의 진원과 해결을 위한 대안을 찾고, 논의를 전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생태문제를 주제로 다룬 역사상 첫 회칙인 「찬미받으소서」의 구성과 출발점, 그리고 그 축을 살펴보았다. 앞으로 다달이 각 장의 내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이처럼 전체적인 구도를 먼저 바라보고 파악하는 것은, 각 장의 내용을 다루는 가운데 전체 그림을 놓칠 수 있는 실수를 피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또한 이번 글을 포함해 앞으로 연재할 글이 회칙의 신학적 깊이와 선구자적인 실천 행동의 제안, 그리고 영성적 깊이가 많은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생태문제에 대한 성찰과 환경운동의 성숙에 기여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올바른 이해 2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파리 기후협약 회의의 폐막을 지켜보며
지난해 12월 12일, 예정보다 하루 늦은 날에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가 최종 합의문을 채택하고 막을 내렸다. 이 합의문에서는, 지구 온도의 상승을 새 기후 변화의 체제에 대한 장기 목표로, 지구 평균 온도의 산업화 이전 대비 상승 폭을 2℃보다 훨씬 작게 제한하며 1.5℃를 넘지 않기로 했다.
합의문에 구체적인 온도가 제시될 만큼 지구 온난화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 것은 그만큼 상황이 심각한 수준에 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지구의 온도는 산업화 이전에 비해 1℃ 상승한 수준이지만, 현재 상황을 그대로 두면 2100년에 4℃가량 상승하고 미국 뉴욕과 중국 상하이 등이 모두 수중 도시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사실 이상기온 현상과 기후 변화는 지난해 성탄의 기온을 생각해 보면 곧바로 실감하게 될 것이다. 지난해의 극심한 가뭄이 농민의 마음을 바짝 태웠고, 미국 뉴욕은 23℃의 성탄 전야를 경험했으며, 우리나라도 예년에 비해 많이 포근한 가운데 성탄을 지냈다.
2020년부터 발효될 이번 협약에서는 195개국 모두가 감축 의무를 지며, 선진국이 개도국에게 해마다 1천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것이 구속력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회의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구를 구할 최선의 기회’이며 역사적 전환점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지구 온난화는 인류와 모든 생명체의 존폐가 걸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문제임이 분명하다.
회칙 1장의 전개 구조
이번 글에서 살펴볼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제1장은 파리 기후협약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환경 파괴의 실상을 주로 다루는 제1장의 도입 부분에서 회칙은 이렇게 밝히며 시작한다. “오늘날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과학적 연구 결과를 활용하여 그러한 결과가 우리 마음 깊이 다가오게 하고, 이에 따른 윤리적 영적 여정을 위한 구체적 기초를 마련해 주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15항).
이 1장은 이어지는 장들의 논의 전개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다. 곧, 오염과 기후 · 식수 · 생물의 다양성을 중심으로 생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1-3장),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구조적이며 생활윤리적인 면에서 개략적인 반성의 틀을 놓고 있다(4-7장).
생태 파괴의 현실(I-III)
1장에서 다루는 생태 파괴의 실상 진단은 오염과 기후 변화, 식수 문제, 그리고 생물 다양성의 감소이다. 회칙은 이러한 파괴의 근본 원인에 소비 중심적 생활방식과 즉각적인 이익에만 눈이 먼 기술과 금융에 휘둘리는 정치가 있다고 연결시킨다. 또한 파괴의 피해가 무엇보다도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집중된다는 점도 분명히 밝힌다.
오염과 기후 변화를 다루면서 회칙은 관계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기술과 생산과 소비문화의 변화를 연결한다. 회칙에 따르면, 오염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더 가난한 이들의 건강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현실은 자연 생태계의 순환과정을 깊이 인식하지 않는 ‘버리는 문화’로 말미암아 더욱 악화된다.
이에 맞서 재생 불가능한 자원 사용을 최소화하고 소비를 절제하며 효율을 극대화하는 가운데, 재사용과 재활용을 증진시키는 것으로 ‘한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회칙이 ‘한정적인 효과’로 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가치관의 대대적인 전환과 사회와 경제 구조의 변화가 병행되지 않는 한, 현재의 파국이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염과 기후 변화
기후를 ‘모든 이의, 모든 이를 위한 공공재’로 규정하는 회칙에서 기상이변 현상은 조심스럽게 온난화와 연결된다. 이는 현재의 기상이변을 지구 온도의 주기적인 변화설이나 지구 자체의 활동(화산, 궤도와 축의 변화 등)과 관련시켜서 해석하는 과학자들의 주장을 고려한 것으로 짐작된다.
회칙은 이어서 온난화를 악화시키는 근원을 온실가스로 규정하고, 화석연료의 사용과 열대림의 파괴를 구체적인 원인으로 제시하는 가운데 생산과 소비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구체적으로 에너지와 원료를 적게 사용하는 생산수단에 대한 투자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한 건물의 건축과 개조 등이 보편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먼워치 연구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기후 변화의 대응 지수를 평가했을 때 한국이 58개국 중에서 54위로 나타났다. 2012년 기준으로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6억 9천만 톤으로 세계 7위를 기록하고 있다. 석탄 수입을 보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으며, 이렇게 수입하는 석탄의 많은 부분이 화력발전소에 들어가고 있다.
여기에 산업체에 대한 전기료 지원정책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의 생산 방식은 저효율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정부가 2030년 배출 전망치 대비 37% 감소 이행을 제시했지만 전문가들은 이대로 이행되어도 지구의 온도는 3-4℃ 상승할 것이라며 더욱 강화된 에너지 정책의 개선을 요구하는 현실이다.
물의 문제
한편, 세계 물 부족 국가에 포함된 우리나라에서도 물 부족은 곧 경험하게 될 심각한 문제이다. 회칙에 따르면 물 문제는 교육과 문화의 문제이다(31항). 이와 관련하여 회칙은 물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며, 다른 인권을 행사하는 전제 조건이라고 천명한다. 이는 물을 시장논리에 지배되는 상품으로 유입시키는 민영화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며, 물을 마실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의 생명권을 고려한 주장이다.
생물 다양성의 감소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은 오래전부터 생태학자들이 주장했지만, 지구가 경험하고 있는 생물 멸종의 속도는, 세계자연보호연맹(IUCN)에 따르면, 공룡의 멸종 시기인 6500만 년 전 이후 가장 빠른 속도에 해당한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2200년이면 양서류의 41%, 조류의 13%, 포유류의 25%가 멸종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부 과학자는 인류를 포함한 지구 생물의 75% 이상이 사라지는 ‘여섯 번째 대멸종’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지적하는 생물 멸종의 주범은 서식지 파괴와 기후 변화 등 급격한 환경 변화와 관련이 있다. 해수면이 올라가면서 해안가 주변의 주요 동식물 서식지가 사라지며 멸종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회칙에 따르면, 생물종들은 중요한 미래 자원이며, 다양성은 환경 문제의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진 점에서 그 가치가 있다. 그러나 사라지는 생물종들을 위한 인간의 개입에 대해서 회칙의 입장은 환경 전문가들과 차별성을 지닌다. 회칙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간의 개입이 종종 기업의 이익과 소비주의를 위한 것이기에, 그 결과는 지구를 더 빈곤하고 추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기 때문이다.
회칙은 생태계 보호를 위해 앞을 멀리 내다보고 쉽고 빠른 금전적 이익만을 얻으려 하지 않기를 촉구한다. 특히, 경작을 위해 열대림을 불태우거나, 단일 작물의 재배를 위한 처녀림 파괴 문제를 강력히 비난한다. 해양 생태계와 관련해서는 특정 어류의 남획과 산호초의 멸종을 경고하면서, 사랑과 존경으로 모든 피조물을 대하고 멸종 위기에 놓인 생물종을 가족처럼 보살피자고 촉구한다.
삶의 질 저하와 사회 붕괴, 세계적 불평등
회칙은 생태 파괴가 사회를 파괴시키며 그 원인과 결과의 영향의 측면에서 세계적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먼저, 회칙은 환경 파괴의 원인으로 앞서 지적했던 개발, 생산, 소비의 방식이 도시 집중에 따른 지나친 에너지와 물 낭비로 이어진다고 언급한다. 이어서 사회적 화합과 통합이 와해되는 현실을 최근 두 세기 동안의 급작스러운 발전이 보여준 병폐로 진단한다. 또한 자기 성찰과 대화, 참된 만남을 통한 지혜가 결여되어 가는 삶의 방식도 문제로 지적한다. 이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우울하고 외로운 감정들이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관심을 기울일 것도 요청한다.
회칙은 1장의 마지막 부분을 이렇게 ‘세계적 불평등’에 할애하면서, 환경과 사회의 파괴가 미치는 영향이 지구상의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집중되는 점을 분명히 짚고 있다. 동시에, 원인 제공의 입장에서 남반구와 북반구 간의 상업적 불균형이 식량과 자원의 소비 불균형을 초래하며, 북반구에 거점을 두는 다국적 기업들의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사업진행 과정에서 남반구의 수많은 피해가 발생하는 점을 자세히 지적한다.
윤리와 삶의 방식이 변해야
파리 기후협약이 약소국들의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자 강대국들의 지원금 지급을 의결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 문제는 회칙이 정확히 분석하고 제안하듯, 생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삶의 기반인 사회, 정치, 경제 구조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따라서 인간의 내면적 성찰, 곧 윤리와 삶의 방식이 변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지평에서 회칙은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윤리가 어떻게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이어지는 부분들에서 자세하고 꼼꼼하게 전개한다.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올바른 이해 3
제2장은 회칙 전체의 교두보
제1장에서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의 파괴 실상을 다룬 회칙은 이제 제2장을 통해 유다-그리스도교에서 나오는 원칙을 성찰하면서 인류에게 주어진 엄청난 책임감을 규명한다(90항 참조). 이로써 자연과 하느님에 대한 의무와 피조물 안에서의 책임이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그에 따른 생태적 의무를 더 잘 깨닫게 하려 한다. 이러한 성찰은 ‘상호 연결성’과 ‘책임감’이라는 회칙 전체의 축을 세우는 주요 대목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입각한 세계와의 대화
그리스도교 신자뿐 아니라 무신론자를 포함한 전 세계 선의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말하고 싶다고 분명하게 밝힌 회칙(3항 참조)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다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회칙은이 질문에 응답하며 제2장을 시작한다.
먼저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우리가 파괴한 모든 것을 바로잡는 생태론을 발전시키고자 종교와 그 고유 언어를 포함하는 모든 학문 분야와 지혜가 배제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63항 참조). 여기서 말하는 모든 학문 가운데 철학과 과학, 그중에서도 과학의 비중은 매우 크다. 회칙은 과학과 종교가 각자의 고유한 현실 접근방식으로 생산적이고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상정하며, 제2장 전체를 통해 다른 종교들과 과학적 세계관과의 깊은 대화를 시도한다.
생태계 파괴의 주역이란 비판에 대한 방어
환경문제를 다루는 입장은 기술 중심주의, 인간 중심주의, 생태 중심주의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의 관건은 ‘누가’, ‘왜’, ‘어떻게’ 생태문제 해결의 책임을 맡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관한 답변이 그리스도교 신앙인에게 조심스러운 이유는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요 성서학자인 린 화이트(Lynn White Jr.)가 1967년 ‘생태 위기의 역사적 근원’이라는 논문을 통해 환경파괴의 원인이 유다-그리스도교의 인간 중심적 가치관, 곧 땅을 다스리라고 하는 성경 말씀에 담겨있다고 비판했기 때문이다.
린 화이트는 하느님께서 첫 인간에게 생물을 다스리는 권한과 이름을 붙이는 권한을 주심으로써, 인간이 다른 피조물보다 우위를 가지는 것을 정당화했다고 비판했다. 하느님의 명령을 담은 성경 구절이 인간의 목적 실현을 위한 자연의 착취를 합법화시켰다는 점이 그리스도교를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한 근거였다. 회칙은 이러한 비판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가운데 적극적이고 치밀하게 반박하며 같은 구절을 근거로 다음과 같은 생태적 의무의 기초를 구축한다.
“사람들은 인간이 땅을 ‘지배’(창세 1,28)하게 했다는 말이 창세기에 나온다는 것을 근거로, 인간을 본성적으로 지배적이고 파괴적인 존재로 묘사하면서 유다-그리스도교 사상이 무분별한 자연착취를 조장하였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교회가 이해한 바른 성경 해석이 아닙니다. …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고 우리에게 이 땅에 대한 지배가 부여되었다는 사실이 다른 피조물에 대한 절대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강력하게 부인해야 합니다.
… ‘일구다’라는 말은 밭을 경작하고 갈거나 밭일을 한다는 뜻이고, ‘돌보다’라는 말은 보살피고 보호하며, 감독하고 보존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인간과 자연이 서로 책임을 지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모든 공동체는 생존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풍요로운 땅에서 얻을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이 땅을 보호하고 후손들을 위하여 이 땅이 계속해서 풍요로운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해야 하는 의무도 있습니다. …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절대적 소유에 대한 인간의 청구를 모두 거절하십니다”(67항).
“하느님께 속한 땅에 대한 책임은, 지성을 지닌 인간이 자연법과 이 세상의 피조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정교한 균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68항).
분명한 인간 중심주의 위에 세운 생태적 책임
회칙은 인간 중심주의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 중심주의를 분명히 드러내면서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근거로 피조물이 지닌 고유한 선과 완전성이라는 가치를 존중하는 인간의 생태적 책임을 강조한다. 회칙이 말하는 책임감은 창조의 지평에서 인간의 삶과 자연이 맺은 관계를 올바로 돌보는 형제애, 정의, 다른 이에 대한 충실함과 연결된다(70항 참조).
인간 중심주의를 견지함으로써 자연 안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주장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고, 자연이 지닌 가치와 취약함을 동시에 인식하는 가운데(78항 참조), 인간에게 주신 고유한 능력과 책임을 정교하게 정리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 중심주의를 탈피하여 피조물의 고유한 가치를 중시하는 생태 중심주의의 경우, 인간 고유의 가치가 상실되거나 지구를 신격화함으로써 지구와 더불어 그 취약점을 돌보는 인간의 소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논리적 오류를 완벽하게 방어하는 것이다(89항 참조).
한편, 성경에 나타난 노아의 방주와 안식년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회칙이 제시하려는 원칙은, 땅과 맺은 관계에 균형과 공정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땅이 주는 모든 것이 모든 이에게 속해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회칙이 구원과 창조의 하느님 분리가 빚어낸 신학적 오류들을 바로잡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해방시키시며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면서 그 권능에 대한 신뢰로 하느님을 찬미하며,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해 가야 한다(73항 참조).
진화론과의 대화
창조와 구원의 이분법적 구도를 극복하려는 회칙은 과학과의 대화를 통해 진화론적 지평을 수용하는 동시에 창조를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로 이해하고, 피조물 안에서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한다.
잘 알다시피, 진화론은 생물학적 이론으로서의 영향력에서 그치지 않는다. 물질과 정신의 경계, 그리고 인간의 특별한 지위를 정초할 근간이 사라진다는 점이 진화론이 함축하는 가장 큰 도전이다. ‘무질서로부터 질서가 저절로 나온다.’(카오스 이론)는 논리의 연장에서 정신과 인간의 출현을 설명하고, 모든 행동과 심리, 그리고 윤리를 같은 창을 통해 해석하기 때문이다.
회칙은 시편의 구절 “그분께서 명령하시자 저들이 창조되었다.”(148,5)를 인용하며, 혼돈으로부터 질서가 저절로 나타나는 과정으로 생명과 정신, 인간의 출현을 설명하는 카오스 이론과의 거리 유지로 시작한다. ‘혼돈이나 우연의 산물이 아닌 하느님의 사랑의 결단으로 만들어진 세계’임을 강조하고 있다(77항 참조).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야 하는 당위성과 자연 그 자체가 신성을 가지지 않음을 동시에 규정함으로써(78항 참조) 자연 안에서의 인간의 지위와 책임의 자리를 마련한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된 세계 안에서 모든 피조물은 자율성을 가지며, 하느님께서는 피조물들의 그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으시면서 모든 존재의 가장 깊은 내면에 현존하시어 현세 사물의 합당한 자율성을 가져온다고 밝힌다. 하느님의 현존이 모든 존재의 생존과 성장을 보장하며 창조 사업을 이어간다는 말로, 진화론의 핵심을 수용하는 면모를 분명히 드러낸다.
모든 존재의 진보는 인간을 통하여 인간과 더불어 하느님의 초월적 충만 안에서 앞으로 나아간다. 지성과 사랑이 부여된 유일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그리스도의 충만으로 이끌려 모든 피조물은 그들의 창조주께 인도하라는 부르심을 받는다고 명확하게 선포하는 것이다(81항 참조).
창조된 세계 안에서의 인간의 생태적 임무
회칙은, 하느님의 현존이 머무르며(88항 참조) 다양성과 차별성을 지닌 자연과(86항 참조) 하느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기반으로 피조물을 보호할 책임을 부여받은 인간의 자리를(90항 참조) 명확하게 규정한다.
여기서 우리에게 맡겨진 피조물에 대한 책임은 결코 자연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에 대한 참된 사랑과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과 연결된다(91항 참조). 평화와 정의를 피조물 보호와 연결하여 생태적 임무를 재화의 보편적 목적을 온전히 실현하는 일로 귀결시키는 것이다.
회칙은 분명한 태도로 사유재산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고, 재화가 소수를 위한 사용이 아닌 하느님의 보편적 목적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천명한다. 특히 자연환경은 인류의 유산이며 공공재로서 사유화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바라본다.
회칙 제2장은 매우 섬세하고 치밀한 논리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기술 중심주의와 인간 중심주의 그리고 생태 중심주의의 비판으로부터 지켜낸다. 자연이 지닌 자기 조직적이며 창발적인 속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사랑이 모든 존재의 근원임을 밝힌 것이다. 또한 창조의 지평에서 자연과 인간의 형제적 관계를 규정할 뿐 아니라, 인간의 지위와 임무를 생태적 약자인 자연과 사회적 약자에게 적용하는 가운데 생태적 정의와 사회적 정의의 공통적 요소를 드러냈다.
이로써 그리스도교 신앙의 창조, 구원, 완성의 구도가 자연과 인간의 형제적 관계 안에서 이분법을 드러내지 않는 구도로 완결된다. 이어지는 장들은 이처럼 탄탄한 기반 위에서, 기술 중심주의의 여러 면모를 비판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에 입각한 생태론과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를 밝히는 회심으로 전개된다.
이런 의미에서 제2장은 회칙의 교두보이자 도약대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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