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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망형가(祭亡兄歌)
오 종 락
운명(殞命)은 인생살이 나그넷길의 종착역이던가. 그 종착역에는 우렁찬 기적소리의 울림도 함께할 승객도 없었다. 지장보살을 부르는 독경소리만이 울려 퍼지며 고인의 영혼을 달래주고 있었다. 며칠 전 맏형은 석양길 나그네 인생길을 끝마치고 홀연히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 요즘 연세로 그렇게 많지 않은 78세를 일기로 운명하셨다. 아직 5-10년 정도는 더 사셔도 될 연세다. 우리 형제 모두에게는 크나큰 슬픔이었다. 오래전 부모님이 떠나실 때와는 또 다른 슬픔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윗대 어른이시고 연세가 많아서 돌아가셨다지만 형제간인 맏형이 떠나간다는 사실은 놀랍고 더 가슴 아픈 색다른 이별이고 슬픔이었다.
폐질환으로 수술받은 후 약 3년 만에 세상과 하직한 셈이다. 더 가슴 아픈 일는 체력이 따라 주지 않아 재활치료도 제대로 해 보시지 못하고 떠나셨다는 사실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주어진 수명이 그것뿐인가 싶기도 했다. 공기 좋은 숲 속 요양원에 가셔서 재활을 해보시라고 수차례에 걸쳐 설득해 보았지만 따라주지 않았다. 집에서의 재활운동도 몹시 부족했다. 너무나 안타깝고 애가 탔다. 자식이 셋이나 있지만 바쁘다 보니 아버지에 대한 작은 정성도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 일연의 과정을 보니 형은 인생 나그넷길의 종착역이 가까워짐을 느끼는 듯 이승의 옷을 빨리 벗어 버리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승의 나그네로 몇 년 더 머무를 수도 있음에도 그것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지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시던 고종형은 문상을 와서 위로의 말로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다. 좋은 곳으로 갔다.”라고 하시며 나도 “지병으로 생이 장벽에 부딪쳐보니 몸에 좋다는 것은 무엇이라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 하셨다. “아직 좀 더 살아야겠다는 마음도 저절로 생겨나는 법인데! 이것저것 좋은 것을 실천하다 보면 어느 정도 회복이 될 수도 있고 수명도 연장할 수 있을 텐데!” 하시며 안타까워하셨다.
형수는 그런 형을 원망하는 어투로 “저 세상이 그리도 좋은가. 그렇게도 빨리 서둘러 가시게” “아직 여행을 다니며 즐겁게 살 나이인데! 참, 기가찬다”며 한탄하셨다. 형수도 몸이 불편하시고 환자이고 보니 형을 지키는 것도 버거운 형편이었다. 가정에 환자가 있을 때는 간절히 건강을 지켜주려는 보호자 한 사람만 있어도 그 기운이 전달되어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을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 25여 년 전 장인어른이 뇌종양수술을 받고 대구 D종합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일이다. 어느 날 상태가 악화되어 장인어른은 서서히 눈을 감기 시작했다. 장모님은 환자를 흔들어 깨우며 간호하다 지쳐 잠깐 졸았다고 하셨다. 그때 꿈에서 선몽(先夢)하기를 어는 약국에 가면 신비의 명약을 줄 것이니 그 약을 복용하면 기사회생(起死回生)하여 나을 수 있다는 꿈을 꾸었다고 하셨다. 참, 꿈도 이상하다 싶어 꿈에서 알려 준 약국을 찾아 갔더니 “우황청심원”을 권하더라고 하셨다. 그 약을 가져와 몹시 고민에 고민을 한 뒤 병원 의료진 몰래 한알씩 갈아서 총 21알을 복용시켰다는 것이다. 한 달가량 지난 후 장인어른은 신기하게도 서서히 회복되셨다. 그 후 퇴원하여 20여 년간을 활동하시다가 돌아 가셨다. 어린 자식들을 생각하여 장인어른을 꼭 살려내겠다는 장모님의 일념이 하늘을 감동시킨 결과가 아닌가 한다. 의료진도 가망이 없다는 목숨을 살려낸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장모님의 지극한 정성과 간절한 마음이었다.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던 환자 보호자들도 몹시 놀라더라고 하셨다.
장인어른에 비하면 형은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돌아가시기 하루 전 문병 때 발바닥을 간지려 봐도 전날과는 달리 반응속도가 몹시 미약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을 보니 참으로 힘들어 보였고 내 숨결도 덩달아 힘들었다. 이승에서 마지막 날의 숨결처럼 느껴졌다. 형이 가끔씩 눈을 뜰 때 보이는 눈빛은 이승을 떠나 명부(冥府)를 향하고 있는 듯했다. 이제 보내 드려야 할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음을 느꼈다. 오늘 밤이 걱정이다 싶어 형댁에 가서 거처하시던 방의 벽에 걸린 사진을 내려 깨끗이 청소해 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혹시 밤새 운명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준비를 했다. 자정을 넘긴 이른 새벽에 아버지께서 유명을 달리했다는 조카의 연락이 왔다. 기분이 참으로 묘하고 허전했다. 형의 석양길 나그네 인생길도 인생고해의 질병의 고통도 모두 그렇게 막을 내렸다. 운명 후 3일째 되는 날 육신은 고향 선산 자락 만년유택에 고이 잠들었다. 영혼은 49일 동안 극락조가 구슬프게 우는 고향 인근 사찰의 지장전(地藏殿)으로 모셔졌다. 지정전 뒤뜰의 곱게 물든 단풍은 영가(靈駕)를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듯이 형형색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살아 생전 정성을 다해 간호해주지도 못했음에도 떠나시고 나니, 왜! 이다지도 가슴이 먹먹한지! 아마 한번 가시면 다시 못 오시는 길이며 나그네 인생에서 영가 신분으로 변했기 때문이리라. 내가 그동안 어린 적 형제들의 추억담을 적어 놓은 글월 마저도 형에게 읽어 드리지 못하고 떠나보낸 게 못내 아쉬워 눈시울이 적셔온다.
형제들의 마음을 모아 이승 나그네에서 저승 영가가 되신 형님의 영전에 “제망형가”를 지어 올리며 영혼을 달래 드린다.
육신의 병이 깊어 영가의 몸이 되신 형이시여!
육신은 떠났지만 영가의 영혼은 영원할 진데
명년 가을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드는 날
고향집 안채 뒤뜰 은행나무 밑으로 오소서.
은행나무 큰 가지에 까치들이 날아와 울 때면
극락정토에서 형의 영혼이 오신 걸로 알겠소.
그날 우리 형제들 어릴 적처럼 모두 모여 앉아
이승에 못다 한 얘기 나누며 회포나 풀어보세.
그동안 형의 영가를 위해 적어 놓은 글월을
영가 전에 올리며 극락왕생을 발원하나이다.
(2015.11.02. 二齋日)
첫댓글 한가지에 나서도 가는곳을 모르다는 월명선사의 제망매가가 생각납니다. 형님께선 극락왕생 하실것 같습니다.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따뜻한 위로의 말씀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웰빙이라는 말과 함께 웰 다잉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는 요즘입니다. 그러나 너무 빠른 이별이 애석합니다. 각별한 우애와 기원으로 좋은 곳으로 가셨으리라 믿습니다.
따뜻한 위로의 말씀으로 격려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인생은 나그네라는 말을 되새겨보게 합니다. 우리들은 잠시 이승에 머물다 거는 나그네인지도 모릅니다. 살아생전 아둥바둥 다투며 살아가는 모습을 대하며, 형제간에 다스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글에 감동을 받게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따뜻한 격려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이승의 소풍이 끝나는 것을 마주하다 보니
아주 쓸쓸함으로 다가 왔습니다.
월명선사의 위 제망매가 ㅡ 먼저간 누이를 생각하며 저승에서 만날 날을 위해 도 딲으며 기다리겠다던 월명대사의 심정으로 오교수께서는 떠나신 형을 위해 기도하셨네요. 참으로 육친의 정을 생각하고 계시는 님이십니다. 형님께서는 극락왕생생 하시리라 생각됩니다. 떠나신 형님에 대한 애틋한 육친의 정을 잘 표현 하셨습니다.
따뜻한 격려의 말씀으로 극락왕생을 기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형제로서 죄인된 마음에 제망형가를 두서없이 쓰게 되었습니다.
형제의 깊은 우의에 경의를 드립니다. 祭亡歌를 들으시고 極樂往生하시리라 믿습니다. 최상순드림
단장님, 따뜻한 위로의 말씀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부족함이 많았던 아우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회한이 남는 것 같습니다. 일교차 심한 날씨에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