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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와의 대담
들뢰즈의 프랑스 공영 TV와의 인터뷰 기록입니다.
들뢰즈가 세상을 뜨기 직전 메스컴에 남긴 유일한 대담 프로로, 그 한마디 한마디가 들뢰즈 평생 과업의 순도 높은
결정체이며 노 대가의 사상과 삶이 한데 어우러져 녹아내린,한마디로 들뢰즈 철학의 엣센스와도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
니다.
문득문득 상상의 한계를 박차고 솟아오르는 언어의 힘에 전율을 느낍니다
<문화의 위기에 대하여>
들뢰즈:
문화적 노력의 목적은 매복(기다림)이다.
기다림의 목적은 만남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이며 만난다는 것은 철학을 통해서 철학으로 부터 벗어나는
방법이다.
패러독스 하게도 이것이 철학하는 행위이다.
어느 한 시기(90년대)의 문화를 진단할때 빈곤한 시기이긴 하지만 그리 극단화 시킬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항시 빈곤한 시기 다음에는 풍요한 시기가 오기 때문이다. (순환논리)
참을 수 없는 것은 이런 시기에 설쳐대는 파렴치하고 경박한 행위이다.
-문학의 3가지 위기-
1.신문기자 계급들이 책의 형식을 완전히 정벌했다.
기자이자 작가인 그들의 '책의 질'이란 것은 기사와 대동소이하다.
2.그들은 글쓰기를 너무나 진부하게 만들었다.
개인의 사소한 일에 지나지않는 ( 누구나 쓸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이런 방식의 글은 진정한 소설이 될 수 없다.
3.책과 독자의 관계를 변질 시켰다.
진짜 고객은 책 배급자 들이지 독자가 아니다.
결국 책은 책 배급자들에 의해 '마케팅'되는 것이다.
사막길을 횡단하는 것 자체는 대수로운게 아니다. 끔찍한것은 사막 안에서 나고 자란다는 것이다.
빈곤한 시기에 끔찍한 것은 무언가가 사라져 간다는것보다 사람들이 사라져감 자체를 의식하지 못한다 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탈린 시절하의 러시아 문학과 회화가 완전 소멸 되었을 당시 러시아 시민들이 이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정리는 될 것이다.
빈곤한 시기 뒤에는 풍요한 시기가 오는 법이니까...
니체는 말했다.
누군가 화살을 쏘아 어느 공간에 던지면 결국 떨어질 것이고 누군가 주워 담을 것이다.
들뢰즈는 이렇게 문화의 위기를 낙관적 으로 관망하고있다.
<욕망>
들뢰즈:
지금까지 사람들은 욕망을 이야기 할때 추상적 욕망의 대상에서 바로 나의 욕망의 대상을 끌어내려 했는데 욕망하는
행위 자체는 총체속에서 욕망하는 것이며 욕망한다는 것은 '장치'를 구축하는 것이다.
(기존 정신분석학과 앙띠 오이디푸스 주장이 대립하는 3가지 핵심요소)
1.무의식이란 연극이 아니라 공장의 기계이다. 욕망은 생산을 한다.
2.착란이란 정신 분석학하고는 관련이 없다.
가족사가 아닌 우주적 착란과 연관되어 있다.즉 부모에 입각해서 욕망하는게 아니라 세계 전체에 대해서 욕망한다.
3.정신분석학은 항시 단일한 요소, 즉 한 요인으로 욕망의 문제를 몰고 가지만 앙띠 오이디푸스는 욕망을 복수적 요인
'장치'로 분석한다.결국 정신분석학과는 거리가 멀다.
1968년에는 욕망에 대한 많은 오해가있었다.
그러나 중요한것은 욕망이란 거대한 장치 속으로 들어 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자에 적합한 장치들을 실험하는 자체가 중요하다.요컨데 이러한 장치에는 네가지 구성성분이 있다.
첫째로 사물의 상태와 연관하여 각자가 자기 자신에 적합한 사물의 상태를 발견해야한다.
둘째로 발화의 스타일을 말하는 방식으로 하여,
셋째로 각자의영토를 선택한다.
네째로 영토와 관련 되지만 영토의 운동이란 각자 영토로부터 벗어 나가는방식으로 결국, 탈영토적 운동과 관련된다.
질문:앙띠 오이디푸스는 젊은이 들에게 마약등,퇴폐적이고 아나키스트적 인간을 선동하는 것이 아닌가?
들뢰즈:
전혀 그렇지 않다.
항시 젊은이들이 폐인의 경지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 노력해 왔다.
그러나 중요한것은 그들이 술이나 마약하는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충분히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를 원했다.
앙띠 오이디푸스의 주요 슬로건은 완전히 폐인이 되지 않도록 그 상태를 피하라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 가져야 할 전략,
전술을 이야기 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정신분열증 초기 환자를 억압하지 말라는 것이다.정말 끔찍한 것은 정신병동에서 오히려 환자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고.
이에 저항해야만 한다.
요약하자면 앙띠 오이디푸스의 진정한 취지는 '반 정신의학'적인것으로 저항력을 잃지말라는 것과 정신병자를 만들어
내지 말라는것이다.
질문:앙띠 오이디푸스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가?
들뢰즈:
그렇다.
이유는 정신분석학에서의 특수한욕망의 개념들을 앙띠 오이디푸스에서 더욱 폭넓게 확장시켰으며 개인사에서 사회사로
욕망 자체를 더욱 구체적으로 열어 갔기때문이다.
<좌파>
들뢰즈:
본인은 지금까지 전혀 공산당에 가입해 본 적이 없다.
아마도 내성적이고 치밀한 성격 때문일 것이다.
모든 혁명들 중, 이세상에서 성공한 것이 있느냐?
볼셰비키보다 더 끔찍한 미국 혁명은 레이건을 탄생시켰으며
프랑스 혁명은 나폴레옹을,영국 혁명은 크롬웰을 탄생시켰다.
혁명과 혁명의 미래는 항상 달랐다.
흔히 역사가들은 혁명의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인간사란 바로 폭정과 압제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의 미래와 현재의'사람되기'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유일한 출구란 '혁명적으로 되기'인데 그밖에 더이상의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 아프리카의 흑인과 바리사이인들은 '혁명가 되기'의 한 복판에 있다.
그러나 만약 혁명이 성공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같은 사람, 같은 문제였을지라도 혁명 후에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상황에맞게 새로운 사람, 새로운 문제로 변해야하기
때문이다.
인권 문제에 있어서도 인권 존중이란 추상적 개념에 불과한 것이다.
인권이란 아주 빈곤한 시기에 느슨한 사유로부터 나온다.
중요한 것은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판례'의 문제이다.
인권선언은 판례의설정이 되어야하며 판례를 계속 설정하고 계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즉 인권 자체가 중요한게아니라 구체적으로 자기영역에서 '판례'를 위해 싸우는것이 필요하다.
이또한 '혁명적으로 되기'인 것이다.
결국 '좌파 정부'란 존재하지않는다.
'좌파'란 '정부'의문제가 아니라 '지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마치 편지의 겉봉 쓰기 처럼 좌파에 속하지않는 사람들의 지각은 '자기'로부터출발하여 '도시' '국가'의 순서로 즉 작은
단위에서 큰 단위로 나아간다.
그리고 이러한 특권을 고수하는것이 그들의 중요한 핵심이된다.
그러나 '좌파'는 이와 역으로 큰 지평으로부터 출발 하는것이다.
예를 들어 수억의 인간들이 굶어죽는 것을 간과할수는 없다는 의식에서 출발하여 그를위한 범 세계적 장치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좌파'의 지각 패턴이다.
이와같이 '좌파'란 '정부'의차원이 아닌 '지각'의 차원이며 또한 '좌파가 된다'는 것은 항시 부단하게 자기가 '소수'가되려는 의지인 것이다.
'다수'란 늘 전형을 설정하며(예컨데 '남자 성인') 이'전형'이란 공허한 것이다.반면 모든 '되기'란 '소수'이며
'좌파'란 '소수 되기의 총체 과정'이다.
들뢰즈:
많은 사람들은 철학사를 추상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철학사를 회화에 비교해 볼때 철학사란 마치 '초상화의 영혼'과 같다.
고호와 고갱은 색에 대해 공포를 느꼈다.
왜냐하면 '색'이란 거의 광기' '착란'으로 까지 이들을 몰고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기를 가지고 '색'에 들어가기까지 수년간 고통스러운 '예비 작업'을 해야만 했다.
철학도 마찬가지로 '철학적 칼라(개념)'를 쟁취하기 전에 오랫동안 '소묘 작업'을 해야만한다.
철학사란 바로 이와같이 오래고 완만한 소묘작업의 겸손함이다.
그러므로 철학사란 단순한 준비 과정이 아니며 그 자체로 완벽한 가치가 있다.
철학사는 철학자의 '정신적 초상'과 같다.
철학사는 '초상화의 영혼'이다.(......ㅠ.ㅠ)
이러한 철학사는 우리에게 철학을 접근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철학사를 통해서만 사람들은 철학을 이해할 수 있다.
철학자는 단순한 '명상자'나 '반성자'가 아닌 '개념의 창조자' 들이다.
플라톤이 '이데아'의 개념을 만들어 낸것은 당시 그리스 사회에 '소피스트'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와같이 모든 개념의 창조는 '문제'와 연관되어있다
그 많은 소피스트들 중에서 어떻게 제대로된, 진실된'주장자'를 찾아낼 것인가 하는 것이 플라톤으로 하여금 '이데아'를
만들어 내게 한 '문제'였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문제의 틀'을 발견하는데 철학사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우리가 개념속에 숨겨진 문제를 파악 못하면 개념이란 항상 추상적으로 보여질 수 밖에 없으며 이와같은 문제들을 재
발견 하는데 있어서 철학사를 통하지않고는 모든 개념들이 추상성에 머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의 틀'은 역사를 따라 변화한다.
그러므로 항상 우리에 맞게 '문제화'하면서 유효한 개념들을 취했을 때 진정한 '무슨 무슨 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도 '끊임없이 되기'는 중요하다.
예를들어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는 칸트에 이르러 '시간' 개념이 첨가되고 이렇게 변화,형성되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되기'가이루어지는 것이다.
결국 철학은 '참''거짓'을 구분하는 일과 관련이 없으며 진리를 탐구 한다는 자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문제 틀'만들기, 즉'의미'의 문제인데 철학은 바로 '의미있는 문제 틀'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하는것'은 우리를 이해의 방향으로, 문제의 해결 쪽으로 유도하는 개념을 창조해내는데 있다.
<이데아>
질문:왜 이데아가 모든 걸 주재하는가?
들뢰즈:
이데아는 모든 창조적 행위를 관통한다.
창조는 하나의 이데아를 같지만 그러나 3가지 요소로 발현된다.
1.철학에서 이데아는 '개념'의 형식으로 등장한다.
철학의 개념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내는 것'이다.
2.예술에 있어서의 이데아는 지각소(감각적 대상들,예를 들어 보여지는 것, 들려지는 것, 만져지는 것...)의 형태로 나타난다.
예술가는 이와같은 지각소(감각의 대상들)를 창조해낸다.
지각소(감각의 대상들)는 일종의 총체적인 지각과 느낌,체험 후에도 계속 살아남는, 철저하게 개인의 경험 차원을 넘어서
복합적인 느낌들에 영원성을 부여하는 그 무엇이다.
회화란 이와같이 지각소에 항속성을 부여하여 우리의 지각으로부터 지각소들을 추출해낸다.
인상주의자들은 지각소들을 발견해냈다. 그리고 세잔은 인상주의의 이와같은 발견을 지속적으로 만들 필요성을 느꼈다.
(인상주의화가들은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대상의 순간적 양상을 표현하려 하였으며 세잔은 이러한 인상주의자들의 발견을 받아들이되 어수선하고 가벼운 단점을 보완하고 질서와 견고함을 더하려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인 후기인상파 화가이다 :김)
3.이데아의 또다른 형태는 감정소(느낌: 타인으로 하여금 느껴지게 하는 것)이다.
감정소(느낌)란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과잉적으로 남는 그 무엇이다.스피노자, 니체는 감정소를 건져주는 사람이다.
감정소 간에는 일종의 음악이 존재한는데, 음악은 또한 신비한 것을 보여준다.때로는 색깔같은 것들을...(칸딘스키는
1912년에 발간한 그의저서,'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것에 대하여'에서 인간의 영혼을 피아노에,색채를 피아노 건반에 비유
하고 화가는 영혼에 진동을 주기 위해 건반을 두드리며 연주하는 손이라고 표현하고있다.:김)
이와같이 '개념', '지각소', '감정소'의 3요소들은 서로 순환하고 조화를 꿈꾸며 끊임없이 서로 다른 영역에서 상호 침투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
질문: 당신의 저서나 일상 생활을 보면 문학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철학 보다 문학을 통해 새로운 개념들을 끌어
내고 창조하는게 아닌가?
들뢰즈:
나는 항시 위대한 소설들을 읽고 있으며 갈수록 점점 더 많이 읽게된다. 이유는 철학 작업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들에게 빚이 크다.
철학적 개념들은 홀로 존재하는게 아니다.
개념들은 추구함과 동시에 보여준다.
그래서 개념과 지각소(감각의 대상)는 항시 만나게되고,
결국 개념과 지각소 간에는 소통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문학에서나 철학에서나 '스타일(style)'의 문제는 동일하다.
소설에서의 '등장 인물'은 철학적으로 다른 '사상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문학 작품은 '지각소' 뿐만 아니라 '개념'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철학과는 달리 불연속적으로 분산,산재 되어
있으며 체계적이지 않은 '사유의 씨앗'으로서의 '개념')
위대한 소설에 있어서 '등장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철학에 있어서 '개념'을 창조해 내는 것 만큼 어려운 작업이다.
역으로 철학이 만들어 내는 개념은 소설의 등장 인물과 비슷하다고 할수 있다.
그리고 위대한 철학과 문학은 공통적으로 '生' 자체에 대한 중요한 '증언'을 하고있다.그것은 '神'에 대한 증언이기도 하다.
대개 위대한 작가들이 허약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들은 너무나 큰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거의 '예견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작품의 '지각소'는 '지탱의 한계점'에서 보여주는 것,
'사유의 극한' 에서 나오는 '개념'들이다.
다시말해 소설에서의 위대한 등장 인물의 창조는 철학에서의 위대한 개념의 창조와 거의 동일하다고 말 할 수 있다.
<저항>
질문: 철학은 '개념'을 창조한다. 그러나 한 번 창조되면 사람들은 거기에 '저항'한다.
철학자(그리고 문학가, 영화 감독,과학자, 등등...)들은 무엇에 '저항'하는가? 그리고 과학도 개념을 창조해내는가?
들뢰즈:
우선, 과학자들은 개념을 창조한다기 보다 오히려 '기능' 을 창조한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기능' 의 창조는 철학자의 '개념' 창조와 비슷하다.
'저항'에 관해 이야기하자면,물론 과학자들도 자신들의 고유한 믿음을 지키려 노력하며 여론의 부추김에 저항한다.
그러나 과학은 보다 모호한 입장을 가지고있다(계속 자본에 종속해야하는...)
그러나 그 누구도 예술가들을 밀어 부치거나 변화시킬 수는 없다.
예술의 동기중 하나는 '인간임에 대한 수치심'에서 비롯된다.
(인간임에 대한 수치심이란 예를 들어 2차 대전 당시 나찌들의 행각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예술의 기저에는 이와같이 인간임에 대한 수치심이 깔려있다.
그래서 예술이 지향하는 바는 인간들이 끊임없이 생명을 해방하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는 '생을 해방하는 자'이다.
개인을 넘어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삶을 해방하는 작업을 하는 자 들이다.
소설의 등장 인물은 사실에서 차용한 인물이 아닌 환상적인 삶의 엄청난 힘을 가진 일종의 '거인'이다.
이는 생에 비교하면 '과장'일지 모르나,예술에 있어서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예술에 있어서 '과장됨'의 생산은 '과장의 실존'이며 '저항'이다
이때 '저항한다'는 것은 '생을 해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에 관한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은 '사의 찬미자'가 될 수 없다.
철학은 '어리석음' '조악함'에 저항한다.
결국 '창조하는 행위'는 '저항하는 행위'이다.
예술 없이 인간이 존재할 수 있을까?
아니다. 지금 살고 있는 세계는 예술없이는 이렇게 존재할 수 없다.
철학의 죽음은 존재 하는가?
자연적인 죽음은 존재하지않는다.오직 '살해'만이 존재한다.
철학은 인간의 기능이므로 절대로 죽을 수 없다.
철학은 인간이 갖고 있는 어리석음에 저항하는 고유한 기능이지 '지식'과 '철학 그 자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철학의 기능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존재한다. 철학의 죽음이란 있을 수 없다.
'철학에 자연사는 없다.'
정리: 김숙경
우리는 소통불능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별로 할 말이 없는데도 의견을 발표하게 만드는 온갖 압박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것이지요.
여행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말하러 다른 곳으로 갔다가 또 무엇인가를 말하러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뜻합니다.
돌아오지 않거나, 그곳에 오두막집을 짓는다면 또 얘기가 다르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별로 여행을 하려 들지 않습니다.
생성되는 것들의 기를 꺾지 않기 위해서는 너무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토인비의 한 구절을 읽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
유랑자들이란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사라져 버리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유랑자가 되는 것이다"라는 구절입니다.
당신이 문헌-전기라는 척도를 나에게 적용하고 싶어하니 얘기를 해보자면, 나의 첫번째 책은 상당히 일찍 씌어진 것입
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 8년동안 아무것도 안썼지요.
하지만 무엇을 했었는지,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는 압니다. 단
지 추상적으로 알기는 하지만. 마치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내가 믿기는 하지만 가지고 있지는 못한 추억들을 얘기해주고
있는 것과 같이 말이지요.
그것은 내 생애에서 하나의 공백, 8년간의 공백과 같은 것입니다.
삶에서 흥미있는 것은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삶이 내표하는 공백들, 균열들, 때로는 극적이고 때로는 그렇지도 못한 공백들 말입니다.
대부분의 삶이 여러 해에 걸친 강직증(catalepsies) 혹은 몽유병 같은 것을 내표하고 있습니다.
움직임이 이루어지는 것은 바로 이 공백들 속에서 입니다.
왜냐하면 문제는 어떻게 움직임을 만들어내는가, 어떻게 벽을 뚫어 머리를 그만 부딪히게 만드는가하는 것이니까요,
아마도 너무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너무 말 많이 하지 않음으로써, 허위적 움직임을 피함으로써, 기억이라곤 없는 곳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그렇게 될 수 있겠지요.
피츠제랄드의 아주 아름다운 소설이 하나 있습니다.
10년간의 공백을 지닌 사람이 도시를 배회하는 이야기입니다. 반대되는 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공백 대신 잉여적 추억들이 과도하게 떠돌아 어디에 놓아야 할지, 어디에 위치시켜야 할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 여분의 추억들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그런 상태입니다.
내 생에서 흥미있는 것이라고는 이 두가지, 건망증과 기억증진뿐입니다.
지식인과 권력 : 푸꼬와 들뢰즈의 대화
푸 꼬:
어떤 모택동주의자가 한번은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우리와 함께 활동하는 데에 있어서 사르트르의 의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의 목표와 정치에의 참여에 대해 이해합니다. 당신의 경우 당신은 항상 감금(confinement)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에 당신의 입장을 부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들뢰즈는 하나의 수수께끼입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꽤 놀랐는데 왜냐하면 나에게는 항상 당신의 입장은 명확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들뢰즈:
아마도 우리는 이론과 실천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경험하고 있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한때 실천은 이론의 적용으로서, 그 결과로서 이해되었습니다.
한때는, 실천은 이와는 반대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며, 오히려 실천은 이론을 고무시키는 것 혹은 미래의 이론적인
형태들의 창조에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두 경우 모두에게 있어 이론과 실천간의 관계는 총체화(totalization)의 과정으로 이해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를 보다 다른 각도에서 보고자 합니다.
이론과 실천과의 관계는 보다 부분적이고 파편적인 것입니다.
한편으로 보면 하나의 이론은 언제나 특정한 대상에 대한 것이며(local) 제한된 분야에 관련되어 있죠.
또한 이론은 다소간 그와 거리가 있는 어떤 다른 영역에 적용됩니다.
한 이론의 적용시에 보존되어 있는 그 관계는 결코 유사성의 그것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이론이 자신의 영역을 떠나 움직이기 시작할 때부터 그것은 장애물이나 벽, 방해 - 다른 유형의
언설에 역할을 맡도록 요구하는 - 를 만나기 시작합니다
(이론이 어떤 다른 영역으로 옮겨왔다 해도 이는 이 다른 언설(言說)을 통과해서입니다.)
실천은 하나의 이론적인 점(点)에서 다른 점(点)으로 옮겨가는 일련의 매개이고, 이론은 하나의 실천에서 다른 실천
으로 넘어가는 하나의 연계입니다.
어떤 이론도 결국 하나의 벽(wall)을 만나지 않고서는 전진할 수가 없으며 이 벽을 부수기 위해서는 실천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당신의 작업은 감금의 맥락에 대한 이론적인 분석으로부터, 특히 19세기 자본주의 사회내의 정신병자 병원
(psychiatric asylum)에 관련해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당신은 감금된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 말해야 할, 하나의 연합을 만들어 내야 할 (반면 당신의 기능이 이미
그들과의 관련에 있어서의 연합의 기능이었던 것이 가능하다) 필요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집단은 감옥 내에서 발견됩니다 - 이 개인들은 갇혀 있습니다.
당신이 G.I.P1), 즉 수감자들이 스스로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조건들을 창조해 내는 곳을 조직한 것도 이러한 기반 위
에서입니다.
이러한 실천으로 옮김에 있어 당신이 마오이스트가 한 것처럼 당신의 이론을 적용시키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전혀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적용(application)이 아니었습니다.
또 개혁을 개시하는 기획도 전통적 의미에 있어서의 탐구(enquiry)도 아니었습니다.
이 강조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보다 큰 영역 내에서의, 동시에 이론적이면서 실천적이기도 한 부분들의 복수성내(複數城內)에서의 연합들의 체계.
우리에게 있어 이론화하는 지식인은 이제 더 이상 주체가 대변하는 대표적 의식이 아닙니다.
행위하고 투쟁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한 집단에 의해서도, 그들의 의식을 대변해 줄 권리를 가진 회합(union)에 의해
서도 대변되지 않습니다.
누가 행위하고 말하는가?
그것은 언제나 하나의 복수성(複數性)입니다. 말하고 행위하는 사람들 내부에 있어서조차도 우리 모두는 「groupu
sclues」(group와 corpuscle을 합친 글자인 듯-주(註))입니다.2)
대변(표상; representation)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행위만이 존재할 뿐입니다-연합을 구성하고 선을 형성
하는 이론적 행위와 실천적 행위.
푸 꼬:
내가 보기에는 지식인들의 정치참여가 전통적으로 그의 활동이 가지는 두가지 다른 측면들의 산물(産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부르주와사회(社會)에 있어서의 자본주의적 생산체계 내에서의 그리고 그것이 생산해 내는 혹은 강요하는 이데올로기 내에서의 지식인으로서의 그의 위치(그의 착취, 빈곤, 거부, 박해, 파괴적인 활동에의 고소와 비난, 불멸성 등).
특수한 진리를 드러내고 예기치 못했던 장소에서 정치적인 관계들을 벗겨내는 그의 고유한 언설(言說). 정치화(polit
icization)의 이 두가지 형태는 서로를 배척하지는 않았지만, 서로 다른 질서였기 때문에 서로 일치하지도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추방된 사람들’로 분류되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사회주의자(社會主義)들’로 분류되었습니다.
권위들의 부분에 가하는 폭력적인 반격의 순간에는, 이 두입장이 서로 융화되었죠.:
1848년 후(後), 꼼뮨후(後), 1940년 후(後). 지식인들은 사실(事實)들을 논쟁할 여지가 없을 때, 황제는 벌거숭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금지되었을 때 즉각적으로 거부되고 박해받았습니다.
지식인은 아직도 그것을 보아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말하는 것이 금지된 사람의 이름으로 진리를 말했습니다.: 그는 의식(意識)이었고, 양심(良心)이었고, 웅변이었습니다.
최근의 사태에서,3) 지식인들은 대중들이 지식(知識)을 얻기 위해 더 이상 자신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어떠한 환상도 없이, 완전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식인들보다도 더 잘 알고 있고, 자신들을 확실히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知)와 언설(言說)을
막아버리고 방해하고 무효로 만드는 권력, 검열이라는 명확한 권위 속에서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선을 깊이 그리고
미묘하게 뚫고 나가는 하나의 권력체계가 존재합니다.
지식인들 자신은 이 권력체계의 대변자들(agents)입니다 - ‘의식’에 대한 그리고 언설에 대한 그들의 책임성이라는
개념이 그 체계의 부분을 형성합니다.
지식인의 역할은 객관성의 꽈 막힌 진리를 표현하기 위해 더 이상 스스로를 ‘어느 정도 앞선 그리고 평균과는 다른
자리에 위치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오늘날 지식인의 역할은 그를 ’지(知)‘, ’진리‘, ’의식‘ 그리고 ’언설‘의 영역에 있어서의 권력의 대상과 도구로
변환시키려는 권력의 여러 형태들과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론은 실천을 적용하기 위해 표현하거나 옮기거나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말했듯이 국소(局所)적이고 부분적(部分的)인 것입니다.
그것은 전체(全體)화하지(totalizing) 않습니다.
이것은 권력에 저항하는 투쟁입니다.
가장 비가시적이고 교활할 때 권력을 드러내고 밑바닥을 갉아내기를 추구하는 투쟁. 우리가 투쟁하는 것은 ‘의식을
일깨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중들은 계속 의식은 지식의 한 형태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리고 주체성의 기반으로
서의 의식은 부르주와적 특권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권력을 패퇴시키고 그를 취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이는 권력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옆을 따라 인도된 행위이이지 안전한 거리로부터의 그들의 (빛의) 비추어줌이
아닌 것이죠. 하나의 ‘이론’은 이러한 투쟁의 지역적(regional) 체계인 것입니다.
들뢰즈:
분명 그렇습니다.
하나의 이론은 연장들을 넣은 상자와 꼭 같습니다. 그것은 시니피앙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유용해야 합니다.
그것은 기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능은 그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론가 자신으로부터 시작해, 아무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이때 그는 이론가이기를 그칩니다),
그 이론이 무가치한 것이거나 혹은 그 순간이 적절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이론을 수정하지 않습니다. 단지 새로운 것들을 구성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다른 것들을 만들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이를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표현한 것이 프루스트(Marcel Proust) - 순수한 지식인으로 생각되어 온 - 라는 사실은
묘합니다.:
나의 책들을 바깥을 향하고 있는 안경으로 간주해 주시오, 그것이 당신에게 맞지 않으면, 다른 것을 찾으시오.
나는 당신이 당신 자신의 도구를 찾도록 - 가만히 두겠습니다.
이론은 전체(全體)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복수(複數)화의 도구이며 또한 스스로를 복수화시킵니다.
전체화하고자 하는 것은 권력의 본성이고, 이론은 본질상 권력에 대립된다는 것이 당신의, 내가 전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입니다.
하나의 이론이 어떤 특정한 관점에서 포착되자마자, 우리는 그것이 전혀 다른 어떤 분야에서 깨나오지 않는 한
그것은 약간의 실천적 중요성조차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수정(reform)의 개념은 어리석고 위선적인 것입니다. 수정은 대표자임을 주장하는 사람들(다른
사람들을 위해 말한다고 선언하는)에 의대 도안되며, 그들은 결국 권력의 분리로, 결과적으로 이중의 억압에 의해
증가된 이 새로운 권력의 분배로 귀결하는 것입니다.
혹은 그들은 관련된 사람들의 불평이나 요구로부터 생기는 것이죠.
이 후자의 경우는 더 이상 수정이 아니라 권력의 총체성과 그를 지탱해주는 위계질서를 의문시하는 (그의 부분성의
충분한 힘을 표현하는) 혁명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이는 감옥에 있어 매우 명백합니다.:
재소자의 가장 조그마한 사소한 요구들도 플레븐의 사이비개혁을 뒤흔들어 놓을 것입니다.4)
유치원에서의 어린이들의 저항이 경청된다면, 그들의 물음들이 주목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교육체계는 분쇄될
것입니다.
우리의 사회체계가 총체적으로 인내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것은 모든 측면에 있어서의 그 극단적인 허약함과 억압의 총체적 형태에 대한 요구를 설명해 줍니다.
내 생각으로는, 당신이 당신의 책과 실천적 영역에 있어서,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근원적인 어떤 것을 가르쳐 준 첫
번째 사람입니다.:
타자(他者)를 위해 말하는 것의 경솔함, 우리는 표상(表象)을 내던졌고 그것은 끝났다고 말했지만 이 ‘이론적인’
전복의 결과들을 그리는 데에 실패했습니다 - 결국 직접 관련된 사람들만이 스스로를 위해 실천적인 방식으로 말할
수 있다는 이론적인 사실을 깨닫게 됨으로써.
푸 꼬:
그리고 수감자들이 말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감옥에 대한, 형벌체계에 대한 그리고 정의(正義)에 대한 수인(囚人)
적인 이론을 소유했던 것이지요.
궁극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형태의 언설, 권력에 반하는 언설, 재소자들의 반언설(counter-discourse)고
범법자라 불리우는 사람들입니다 - 범법에 대한 이론이 아는 것입니다.
감옥의 문제는 국소적이고 지역(地域)적입니다. (일반적으로 - 註) 한 해에 많아야 100,000명의 사람이 감옥을 거칩
니다.
프랑스에서는 현재 300,000명내지 400,000의 사람들이 감옥을 거쳤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주변적인 문제는 모든 사람들을 흔들어 놓는 것 같습니다. 나는 감옥에 가보지 않았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감옥의 문제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에 놀랐고 또 수용자들의 언설을 결코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형벌체계가 권력으로서 가장 명백하게 드러나는 형태이기
때문일까요?
어떤 사람을 감옥에 집어넣는 다는 것, 살고 또 사랑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아 버리는 것 - 이것이야 말로 분명 상상
가능한 권력의 가장 광폭한 현시일 것입니다.
어느 날엔가 나는 감옥에 갇혀 있는 한 부인과 대화를 가졌는데 그녀는 말하기를, “상상해 보세요, 나이 40되서 나는
비쩍 마른 빵부스러기를 받곤 한답니다."
이 이야기에서 놀라운 것은 권력행사의 유아성이 아니라 케케묵은 어린아이같은 미숙한 방식으로 행사되는 권력의
통제방식에 있어서의 조소주의(嘲笑主義 Cynicism)입니다.
어린이들로서 우리는 빵과 풀로 (음식이) 축소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워왔습니다.
감옥은 그 과잉적인 형태에 있어 권력이 그 벌거벗은 모습으로 드러나는 그리고 그것이 도덕적 힘(force)으로서
정당화되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당신은 강도짓하고 살인하는 것이 죄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당신에게 벌주는 것은 나의 권리내에 속하는 것입니다.....“ 감옥에 대해 흥미로운 것 하나는 이따금씩
권력은 자신을 전혀 숨기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권력은 스스로를 가장 미세한 세부까지 추적해 들어간 참주(tyranny)로 드러납니다.
권력은 조소적이고 동시에 순수하며 완전히 ‘정당화 되는’ 바, 왜냐하면 그의 실천은 도덕성의 기틀(framework) 속
에서 완전히 수립될(formulated)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권력의 잔혹한 지배는 악에 대한 선의, 무질서에 대한 질서의 진지한 지배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들뢰즈: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역도 참입니다.
수감자들이 어린이들처럼 취급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은 수감자들처럼 취급됩니다.
어린이들은 그들에게는 낯선 소아화(infatilization)에 복속됩니다.
이러한 근거에 입각해, 학교는 감옥을 닮고 있고, 공장 또한 그에 매우 가깝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르노공장(Renault plant)의 입구 혹은 이와 유사한 경우의 어떤 곳이라도 보십시오.“
낮에 목욕실에 가는데 세 장의 표가 필요합니다. 당신은 18세기 텍스트에서 제레미 벤탐(Jeremy Bentham)의 감옥
개혁을 찾아냈죠.
고양된 개혁의 이름으로 그는 개선된 감옥이 그 모델이 되어 준 그리고 그곳에서 개인은 학교에서 공장으로, 공장
에서 감옥으로 또는 그 역으로 지각불능일 정도로 조용히 통과해 가는 하나의 순환체계(a circular system)를 수립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개혁의 추진력과 개선된 표상(언설과 거의 비슷한 의미임 - 註)의 본질인 것입니다.
반면에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해 말하고 행동하기 시작할 때, 그들은 자신들의 표상을 타인의 그것에 (하나의 발전으
로서 조차도) 대립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권력의 그릇된 표상성을 대립시키지 않습니다. 예컨대 정의에 반하는 대중적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당신의 말이 생각납니다. 벌은 다른 수준에서 일어납니다.
푸 꼬:
내 생각으로는 법적인 체계, 재판관, 법정, 감옥 등에 대한 대중의 혐오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단순히 정의의 더
나은 그리고 보다 평등한 형태가 아니라 - 이는 별도로 하고 또 무엇보다도 이전에 - 권력은 언제나 민중을 희생시
킴으로써 행사된다는 사실에 대한 단일한 지각인 것입니다.
반법치적 투쟁은 권력에 대한 투쟁이며 나는 그것이 불의(不義)에 대한 법체제의 불의에 대한 혹은 그 제도들의
효율성을 개선시키기 위한 투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놀라운 것은 전복의 소요상태나 치안을 무너뜨리는 봉기에 있어 재정구조, 군대 그리고 다른 많은 권력들처럼
법체제는 하나의 필수적인 목표가 되었던 것입니다.
나의 가설은 - 이는 단지 가설일 따름입니다 - 대혁명의 시기에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대중적인 법정(popular courts)은 중하(中下)계급 - 법체제에 대한 투쟁에 있어서의 초기봉기를(initiatire) 노예화시키고 포획하고자 했던 - 을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이를 성취하기 위해, 그들은 평등한 정의 - 한사람의 재판관이 하나의 정당한 판결을 제시하는 - 의 가능성 위에 기초한 법정체계를 제안했습니다.
법과 법정의 동일화가 가능한 형태는 정의에 대한 부르주와 이데올로기에 속하는 것입니다.
들뢰즈:
우리의 현실적인 상황에 근거해 권력은 전체적 또는 총체적 안목(vision)을 중점적으로 개발해냅니다.
즉 억압의 모든 현존하는 형태들(이민 온 노동자들에 대한 민족주의적 억압, 공장에 있어서의, 교육체계에 있어서의
억압, 청년들에 대한 일반적 억압)은 권력의 관점으로부터 쉽게 전체화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형태들의 통합을 68년 5월 항쟁에서 찾아야 할 뿐만 아니라 보다 바람직하게는 가까운 미래에 대한
집중적인 준비와 조직화에서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프랑스의 자본주의는 지금 비고용의 ‘떡고물’(margin)에 의지하고 있으며 완전고용을 약속했던 자유주의적이고 간섭
주의적인 외관을 벗어버렸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억압의 형태들의 통일성을 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주자들에 대한 억압, 가장 궁상맞고 더러운 일들은 모두 그들에게 돌아간다.
공장에 있어서의 억압, 프랑스인들은 점차 증가하는 힘들 일에 대한 ‘취향’을 다시 얻어야 한다.
청년들에 대한 투쟁과 교육체계의 억압. 경찰의 억압은 청소년들을 필요로 하는 자리가 보다 적을 때 드세어 집니다.
여러 중류의 전문가들(선생들, 정신병의사들, 모든 종류의 교육자 등)은 전통적으로 경찰에 속해 있던 기능들을 수행
하도록 요구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오래전에 예언했던 것이며 그 당시에는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되었죠.
감금의 모든 구조들의 재강화, 권력의 이 전체적인 정책에 대항하여, 우리는 국소적인 반격, 여러 충돌들, 활동적이고
가끔은 예방적인 방어를 시작합니다. 권력의 측면에서 계속 전체화 되는 것을 우리가 전체화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방향으로 움직인다면(were to), 이는 중심주의의 대표적인 형태들과 위계적인 구조를 복위시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우리는 측면적인 친화와 선의 전체계 그리고 대중적인 기반들을 구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는 특별히 어려운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더 이상 실재(reality)를 권력의 경쟁과 분배에 대한 전통적인
의미에 있어서의 정치학의 계속으로서 소위 공산당(Communist Party)이나 노동연맹(General Workers Union)의
대변자들을 통해, 정의하지 않을 것입니다.5)
실재(實在)란 결국 공장, 학교, 바라크, 감옥, 경찰서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realite를 현실이라 번역해야 할 것이다. - 註) 그리고 이 행위는 진술에서 발견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정보의 유형을 가져옵니다. (이는 『Agence de Press Liberation』에 의해 수행되는 유형의 정보를 설명해 준다.)6)
푸 꼬:
투쟁의 적절한 형태를 찾는데 있어서의 이 어려움은 우리가 계속 권력의 문제를 무시해 온 결과가 아닐까요?
결국 우리는 착취의 본성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데에 19세기까지 기다려야 했고 권력의 본성을 충분히 이해하는 데에
오늘날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우리가 권력이라고 부르는 동시에 보이면서 보이지 않는, 현존해 있으면서 은폐해 있는 편재적인 이 수수께끼같은
존재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마르크스(Karl Marx)와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 같습
니다.
정부에 대한 이 글들과 그의 메카니즘에 대한 전통적인 분석들은 분명 권력이 행사되고 그것이 기능하는 모든 장소를
찾아내지는 못합니다.
권력에의 물음은 총체적인 수수께끼로 남습니다.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가? 어떤 영역에서 행사되는가?
우리는 이제 누가 타인들을 착취하는지 누가 이들을 받는지 어떤 사람들이 연루되는지를 충분한 확신을 가지고 알게
되었으며 이 기금들이 재투자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권력에 대해서 ... 우리는 그것이 통치하는 자들의 손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론 ‘지배계급’이라는 관념이 적절한 공식화를 얻어본 적은 없으며, ‘지배하다’, ‘규제하다’, ‘통치하다’ 등의
용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말들은 지나치게 유동적이며 분석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또한 권력의 행사에 부과되는 제한들도 탐구해야 합니다 - 그를 통해 권력이 작동하는 연계들과 위계의 종종
무의미한 측면들에 가하는 그 영향의 정도 그리고 통제, 감시, 금지, 제약의 여러 형태를 권력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그것은 행사되고 있습니다.
엄격히 말하면, 아무도 권력에 대한 공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특정한 방향에 있어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에 한편으로는 저 사람들에 과해집니다.
어떤 사람이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지 정확히 말하는 것은 종종 어렵지만, 어떤 사람이 권력을 결여하고 있나를 보는
것은 쉽습니다.
당신의 책들(『니체와 철학』에서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2권:『반오이디푸스』와 『그토록 수많은 마루들』-註)에 이르기까지)7)을 읽는 것이 나를 위해 본질적인 것이었다면, 그것은 이러한 문제들을 철저히 탐구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의미에 대한,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에 대한, 기타에 대한 오래된 테마 아래에서 당신은 권력에 대한, 권력의 불평등과
그들의 투쟁에 대한 물음을 개발했던 것입니다.
각각의 투쟁은 권력의 어떤 특정한 원천을 둘러싸고 벌어집니다. (셀 수 없는 조그만 원천들 = 잠시 동안의 대장 boss, 'H.L.M‘8)의 경영자, 교습소 관리인, 판관, 회합의 대표자, 신문의 편집국장) 그리고 만일 이러한 원천들을 지적하는
것 - 규탄하고 터놓고 논하는 것 - 이 투쟁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라면, 이는 그들이 이전에 알려지지 않았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차라리 그것은 이 주제에 대해 말한다는 것, 제도화된 정보선으로 하여금 듣도록 만다는 것, 이름을 생산하는 것,
탄핵대상을 확실히 지적하는 것, 목표물을 찾아내는 것은 권력전복의 첫 번째 단계이며 권력의 현존형태에 대한 새로운 투쟁의 시작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재소자나 감옥의 의사가 행하는 언설이 투쟁의 한 형태를 형성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적어도 잠정적으로 권력으로 하여금 감옥의 조건들 - 현재로는 감옥행정관의 배타적인 성질과 개혁집단에서의 그들의 동조자들 - 에 대해 말하도록 끌어내기 때문입니다.
투쟁의 언설은 무의식에 대립되는 것입니다.
크게 그렇게 생각되지는 않겠죠. 그러나 우리가 기대했던 것 이상이라는 것이 판명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일련의 전체적인 오해가 ’숨겨져 있는‘ ’억압되어 있는‘ 그리고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연결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투쟁의 고유한 대상들에 대한 값싼 ’정신분석‘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무의식을 끄집어 내기 보다는 비밀을 끄집어 내는 것이 아마 훨씬 어려울 것입니다.
두 테제는 최초에 자주 만났던 것들입니다. “글쓰기는 억압된 요소들을 일으켜 세운다”는 것과 “글쓰기는 필연적
으로 타도하는 활동이다”라는 두 테제는 진지하게 탄핵할 만한 일련의 조작들을 무심코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들뢰즈:
당신이 제기한 문제에 관해서인데 착취하는 자, 이들을 얻는 자, 통치하는 자가 누구인지는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하고 권력은 보다 흐릿한 어떤 것으로 남습니다.
나는 감히 다음의 가설을 내놓고자 합니다. 맑시즘의 비판은 문제를 본질적으로 이익(interests)의 개념을 통해 정의
하는 것이었습니다.
(권력은 그의 이해를 통해 정의된 바 대로의 지배계급에 의해 행사된다).
즉각적으로 물음이 제기됩니다. 자신의 이해가 보호받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행위의 한 조각을 요구함으로써 기존의
권력구조를 강하게 지지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아마도 이는 투자(investments)로 인해서일 것입니다.
경제적인 것은 무의식적인 것이든 이해는 마지막 대답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해가 묘사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넓게 기능하는 욕구의 투자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이해에 반해서 욕구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욕구가 그를 대치할 그 곳에 이해는 항상 따라 나오며 스스로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라이히(Wilhelm Reich)의 외침을 묵살할 수가 없습니다.
대중은 속지 않았습니다.
어떤 특정한 시기에 그들은 실제 파시스트적 통치를 원했던 것입니다.
권력을 모양지우고 분배하는 그것을 총리의 성질일 뿐만 아니라 경찰의 성질이도록 하는 욕구의 투자(investments of
desire)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총리가 휘두르는 권력이나 경찰이 휘두르는 그것이나 질적인 차이가 없는 것이죠.
사회집단에 있어서의 이러한 욕구투자의 본성은 왜 정치적 정당들이나 연합들 - 계급이해의 이름으로 혁명적인 투자를 소유하는 또는 소유해야 하는 - 이 그렇게 자주 욕구의 수준에 있어 개혁으로 정향(定向)되어 있거나 절대적으로 반동적인가를 설명해 줍니다.
푸 꼬:
당신이 말하듯이 욕구, 권력, 이해간의 상호관계는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그리고 권력의 집행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권력에의 욕구는 권력과 이해 사이의 단일한 관계를 수립합니다.
대중들이 파시스트적 시기 동안에 어떤 사람들 - 이 개인들이 대중에 반해서 그리고 대중을 희생시키면서 그들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희생, 대학살을 야기시키면서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그들과 자신들을 동일화할 수가 없는 사람들 - 이 권력을 쥐기를 욕구했으리라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특정한 권력을 욕구합니다. 그들은 그것이 행사되기를 원합니다. 욕구, 권력, 그리고 이해의 이 유희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착취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오래 전입니다.
그리고 욕구는 오랜 역사를 가졌었고 계속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투쟁과 이 투쟁들로부터 유도되는 그리고 그들과는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는 국소적인, 지역적인, 불연속적인 이론들이 권력이 행사되는 방식에 대한 우리의 발견의 문턱에 존재하리라는 것은 가능합니다.
들뢰즈: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그 문제로 돌아가야 합니다: 현금의 혁명적인 운동은 많은 중심들을 창조해냈습니다.
그리고 이는 약함이나 비충분성의 결과로서는 아니죠. 왜냐하면 어떤 종류의 재화가 권력과 반동의 힘에 속하기 때문
입니다.
(예컨대 베트남은 국지화된 대항전술 localized counter-tactics의 한 인상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혹은 단일한 한 나라 안에서 이러한 행위와 불연속적인 점들 사이의 횡단
적인 연결들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푸 꼬:
당신이 제기하는 지리학적 불연속성의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하겠지요.:
우리가 착취에 대해 투쟁을 하는 즉시 프롤레타리아는 투쟁을 지도할 뿐만이 아니라 그의 목표와 방법, 대치를 위한
장소와 도구를 정의합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프롤레타리아와 연결시키려는 것은 그의 입장과 그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그의 투쟁동기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는 총체적 동일화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싸움이 권력에 대항해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들의 이해에 이르기까지 권력이 가해지는 모든 사람들, 그것이
참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발견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영역에서 그리고 자신의 활동성(또는 수동성)에 기반해서
투쟁을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 자신의 이해가 관련된, 그 목적을 그들이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고 그 방법을 그들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는 투쟁에 참여함으로써 그들은 혁명적인 가정 속에 들어가는 것이죠.
그들은 자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와의 연계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권력은 자본주의적 착취가 유지되는 방식으로 행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억압되어 있는 장소들에서 싸움으로써 진정으로 프롤레타리아의 원인(cause)에 봉사하는 것입
니다.
여성, 재소자들, 징집된 군인들, 병실의 환자들, 호모섹스하는 사람들은 이제 그들에게 가해지는 특정화(particularized) 권력, 제약, 통제에 대항하여 특수한(specific) 투쟁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한 투쟁들은 그들이 급진적이고 비타협적이며 비수정주의자들인 한에서 그리고 기껏해야 윗대가리들을 갈아치움
으로써 어떤 권력의 새로운 배치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을 거부하는 한에서 실제 혁명적인 운동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
니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은 그들이 똑같은 권력체계에 봉사하는 통제와 제약에 대항하여 싸우는 정도까지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운동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투쟁에 의해 제시된 전반적인 그림은 분명 당신이 일찍이 지적했던 총체화의 그것, ‘진리’의 인도 아래에서의 이론적인 총체화가 아닙니다.
투쟁의 일반성은 혹시 권력 자체의 체계로부터 권력이 행사되고 적용되는 모든 형태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들뢰즈: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필연적으로 - 가장 사소한 요구에 근거해서 - 그것을 완전히 분쇄하고자 하는 욕구로 이끌려지기 위해서, 그의 (권력의 - 註) 확산적인 (diffuse) 특성을 드러내지 않고서는 그의 적용의 어떤 것에도 접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혁명적인 공격과 방어는 아무리 부분적일지라도 이러한 방식으로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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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rouype d'information de prisons」: 푸꼬의 최초의 두 저작들은 『I. Pierre Riviere』와 『surveriller et
punir』의 연합으로부터 나왔다.
2) cf. M. Foucault, 「Theatram phiolosophicum」, 들뢰즈의 『Logigue du Sens』와 『Difference et repetition』
3) 1968년 5월. 일반적으로 「5월사태」라 불리움
4) Rene Pleven은 1950년 대의 프랑스 국무총리
5) 「Confederation Generale de Travailleurs」
6) Liberation News Agency
7) 『Nitzsche et la philosphlie』(Paris: PUF 1962)와 ≪Capitalisme et schizophrenie≫ I, 『L'Anti-Oedipe』(Guattari와 공저), Paris, Edition de Minuit 1972 참조
8) 『Habitations a loyer modere』: moderate rental housing.
IT 혁명을 통한 디지털 컨버전스(융합) 시대다. 요즘은 디지털기기뿐만 아니라 지식ㆍ문화ㆍ예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다양한 컨버전스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 8일부터 13일까지 서울무역전시장(SETEC)에서 열렸던 ‘2010 코리아 투모로우’는 컨버전스 예술의 미래를 한 눈에
보는 자리였다.
컨버전스 예술 분야 세계적인 석학인 존 라이크만(Rajchman)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미술사)는 “한국 예술계의 컨버전스적 시도는 지식과 예술, 문화의 커넥션이라고도 할 수 있어 주목할만 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철학자이며 미술사학자인 들뢰즈의 ‘다른 것과 연결·융합하는 확장개념’ 연구와 철학자 미셀 푸코의 ‘지적 연결’ 철학
연구의 권위자이기도 하다.
사고와 철학, 예술의 ‘커넥션’을 통해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 ‘사고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라이크만 교수와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인 김영환 의원(민주당)이 지난 11일 대담을 가졌다.
현대 예술의 나아갈 방향과 한국 문화와 지식인의 컨버전스적 발전 가능성에 대한 폭넓은 의견들이 교환됐다.
다음은 대담 전문.
▲김영환 의원=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라이크만 교수님은 몇 년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한국 지성인들과 아티스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미셀 푸코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연구와 들뢰즈 커넥션에 대한 이론으로 유명하신데, 잠시 들뢰즈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라이크만 교수=들뢰즈는 프랑스의 철학자인데, 그의 사상을 미술과 건축, 공공 미술 등 세상을 보는 데 적용하는 것이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1960~1968년 사이의 프랑스는 예술과 건축 면에서 매우 창조적인 시기를 보내게 되는데, 그 움직임 속에 들뢰즈 역시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을 보였습니다.
국제적으로도 들뢰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저도 컬럼비아대학에서 그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됐고, 해외를 돌며 관련된
여러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김 의원=한국에는 들뢰즈보다는 푸코의 이론이 많이 알려진 편입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커넥션(Connection)과 요즘 많이 대두되는 컨버전스(Convergence)라는 개념이 어떻게 다른지요?
제 생각으로는 커넥션은 단순히 여러 분야나 학문이 연결되는 의미이고 컨버전스는 소통 내지는 인터랙션(Interaction)의
의미가 강한 것 같습니다만.
▲라이크만 교수=들뢰즈나 푸코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하고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푸코의 사망 이후에는 ‘디스포지티브’ 라는 개념에 대한 에세이를 쓰기도 했습니다.
‘디스포지티브(Dispositive)’는 짧게 설명하기에는 힘든 개념인데, 제가 오는 16일 백남준 기념센터에서 그 주제에 대한
강연을 합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에게 설명을 드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커넥션은 여러 영향이 모여 새로운 것이 창조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로 예술과 과학의 커넥션에 대한 논의가 많습니다.
이에 반해 최근에 대두되는 컨버전스에는 문화나 정치면에서 동양과 서양의 만남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창조에 관한
현대적 개념이 추가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 의원=인류의 역사를 보면, 우선 뉴턴의 이론이 지배하던 시대에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에너지 파장이 그 혁명을
이끌었습니다.
그 다음엔 정보 혁명이 있었지요.
디지털(Digital)로 대표되는 빛의 속도 혹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비트(bit)가 새로운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정보통신망과 컴퓨터의 개발, 인터넷의 발명, 인공위성의 개발 등의 발전으로 가능해진 것입니다.
최근엔 이 다음으로 찾아올 변화에 대한 궁금증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론 앞으로는 ‘창조적 상상력
(Creative Imagination)’이 또 다른 혁명을 주도하게 되고, 따라서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지는 콘텐츠의 시대가 열리지
않을까 합니다.
▲라이크만 교수=정보 혁명이 인류에 가져온 변화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도 관심이 많습니다.
부친이 최초의 디지털 컴퓨터에 들어가는 메모리의 발명에도 직접 관여하셨고, 저 자신도 이를 바탕으로 시작된 정보화
혁명의 초기 단계를 그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메모리의 발명이 가져온 엄청난 변화의 정도와 속도에 대해서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정보화 이후 도래할 사회에 대한 김 의원의 견해가 정확한 예견이기를 저도 바랍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인문학과 철학이 새로운 방향으로 연구, 발전돼야 합니다.
그래야만 ‘창조적 상상력’이 가능해집니다.
지금까지 많은 기술이 군사적인 목적에서 개발되었다면 앞으로는 지성인과 아티스트들이 새 기술의 등장에 영감을 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김 의원=약간 방향을 바꿔 다음 주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코리아 투모로우’ 전시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의 예술과 문화가 매우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중국, 일본 등과도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데요.
중국이나 일본의 현대미술과 비교해 한국 미술이 보이는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이크만 교수=이번 전시에는 젊은 작가들의 비전이 많이 엿보였습니다.
동북아 지역 내에서 한국 미술이 독특한 위치를 다져 나가는 모습이라고 생각됩니다.
2차대전 이후 서구 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일본 현대미술이 아시아 아트를 대변하면서 급성장했다면, 중국 현대미술은
마오쩌뚱의 죽음 이후 독특한 현실을 배경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중국의 현대미술에는 스케일의 의미가 크게 작용합니다.
최근 한국 현대미술과 문화는 동북아에서 독특한 위치를 다져 나가고 있으며, 저도 그 가능성을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
하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 미술의 실험들은 국내외적으로 ‘창조적 상상력’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도 전통적인 회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물론 신기술과의 접합을 통한 실험적인 작품들이 나오지 않았습
니까? 긍정적인 모습으로 보입니다.
▲김 의원=최근 세계적으로 정치적 민주화나 언론의 자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위키리크스’ 관련해서도 어산지가 체포되고 구금됐죠.
또 중국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의 출국이 금지되고 수상식 참여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현대미술은 정치ㆍ사회적인 환경과 따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각국의 정치적 환경과 현대미술을 같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중국처럼 정치적으로 경직된 환경이라던가, 미국처럼 민주주의의 대표이면서도 여러 면에서 한계를 보이는 그런 환경
들이 미술에 미치는 영향이 흥미롭습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대륙문화와 일본의 해양문화가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한국의 환경은 오랜 기간 융합의 역사를 실현해오면서 컨버전스가 문화의 한 속성으로 자리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래서 더욱 최근 컨버전스를 바탕으로 한 기술과 문화의 개발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인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백남준의 작품을 두고 생각하더라도 비디오 기술과 비주얼 아트를 융합한 그의 작품 세계가 오랜 기간 컨버전스의 역사를 거친 한국에서 나온 것에 주목하게 됩니다.
▲라이크만 교수=흥미로운 해석입니다.
보통 정치적인 상황만 생각하기 쉬운데 역사라던가 다른 방향에서 컨버전스의 모습을 보신 것 같습니다.
한국이 앞으로 힘의 관계를 이해하고 풀어나가는 데 어떻게 역사로부터의 배움과 컨버전스를 사용할지 지켜보고 싶습니다.
▲김 의원=10년전쯤 한국에선 일본 문화를 개방해야 하는가에 대한 찬반양론이 크게 일었습니다.
일본의 만화, 드라마, 가요 등이 한국 대중문화를 압도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지요.
그렇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아시아에서 한국 대중문화가 가지는 위치를 보면 우려와는 달리 한국 문화가 꿋꿋하게 성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류’는 극동아시아는 물론 동남아시아와 중동지역까지 한국 문화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힘의 원천은 바로 컨버전스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창조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중국, 일본, 러시아 각국의 외침을 견뎌냈고, 지금도 사실은 휴전 상태에 있는 한국은, 그 오랜 동안에 겪은 혼란과 고통을 오히려 창조력의 에너지로 전환시켰던 것 같습니다.
가까운 미래에는 북한과의 분단과 대치조차 새로운 예술적 영감으로 승화시키는 가능성을 제시하게 될 것 같습니다.
▲라이크만 교수=아주 흥미로운 시각입니다.
저도 앞으로 북한과의 구도에서 나오는 상상력을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겠습니다.
창조적 상상력이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가를 연구하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동북아시아의 역사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만,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 앞으로 관심을 갖고 연구하겠습니다.
특히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대치된 상황이 새로운 문화와 예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무척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입니다.
▲김 의원=오랫동안 진지한 토론을 해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라이크만 교수=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