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분분하던 눈발이 아주 살짝 잦아들었습니다. 잿빛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눈을 좋아하고, 좋아하는만큼 기다리기도 했지만 이런 날씨는 그닥이군요. 이젠 그만.
No thank you. Nada mas(no more)!
Brunch 스토리에 올린 글 하나 더 게재합니다.
소소한 일상이 신앙이 되는 삶을 그리며.
알렐루~~야…!
————————
1.
겨울이 다 가도록 눈 한 번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고 겨우 내내 툴툴대었더니 지난 달 서울의 동갑내기 친우 하나가 달래 듯 전해왔었다.
”동편 마을엔 눈이라면 춘삼월이라잖여“
충북 옥천을 고향으로 둔 그이의 말대로 지난 주에 한바탕 대설이 내리더니만 그제밤 늦으막부터 습설이 또 한 번 제대로 내려앉았다. 잿빛 여명에 창밖을 내다 보니 항구가 은세계로 변해있었다. 비로 시작하더니만 자정 무렵부터 거센 눈보라로 변해 이후 밤새 흩뿌렸던 모양이다. 이른 아침까지도 비가 섞인 눈은 그칠 줄 모른다. 우수도 경칩도 벌써 지난 것은 물론이고 내일 모레면 춘분이다.
덕분에 바닷가살이 중인 이몸을 봄맞이 응원차 내려오겠다는 옥천 김 서방(?)과 다른 세 명의 서울 옛동네 천주쟁이 형님들, 아우의 내방을 뒷날로 미루었다. 이런 악천후에 재를 넘다 무슨 일이라도 생길 양이면 낭패도 그런 낭패는 없을 터이다. 아우들은 그렇다치더라도(?) 8순인 양반과 7순을 목전에 둔 장년의 형님께 행여 누를 끼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잖아도 이번 주 상경할 일이 있으니 일단 이로써 아쉬움을 달랠 방도를 찾아볼 요량이다.
어제.
2.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로 온 나라가 난리다. ‘오애순’, ‘양관식’의 선풍이 대한민국 언론을 도배하고 소셜 미디어 속 세상을 장악했다. 드라마 속 명언, 명대사가 타임 라인에서 경쟁적으로 오르내린다. 오애순의 시와 애순의 엄마 전광례(염혜란)의 대사, 그녀가 부르는 자장가 등은 눈물 없인 못 듣거나 못 본다. 화제성이 <오징어게임>에 뒤지지 않는다. 이런 흥행몰이라면 반도 남쪽은 물론이고 최소한 감성이 비슷한 아시아 OTT시장은 쓸고도 남음이 있겠다. 배우나 감독, 또는 작가의 힘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냥 총체적 의미로서의 컨텐츠의 힘, 완성도 높은 작품성이라고 하면 충분하겠다.
episode1 ‘호로록 봄’, <폭싹 속았수다>, 넷플릭스
OST나 삽입곡도 매우 빼어나고 두드러진다. 곽진언과 최백호(그나마 아는 게 이들이다. 나머지 뮤지션들은 잘 모르겠다.)의 OST도 좋지만 그중 귀에 콱 박히는 삽입곡 하나에 주목한다. 오프닝 곡 <봄>. 1화(episode 1) '호로록 봄' 부터 시작과 함께 동시에 흘러나온다. 부르는 이는 김.정.미..어제 늦은 오후, 지인(한지수 대표)이 알려줘 비로소 알게된 뮤지션이다. 1953년 생. 70년 대 김추자, 펄시스터즈와 더불어 신중현 사단의 일원. 몽환적 분위기의 사이키델릭 락 보컬리스트의 창법은 김추자와 빼박이다. 유투브와 자료를 서치해보니 신중현의 가르침을 두 사람이 함께 받았다고 한다. 그녀의 앨범 <NOW>(1973)는 신중현의 3대 앨범으로 꼽히는 명반이라고.
김정미 앨범 <NOW>
김정미의 <봄>가사는 이렇다.
“빨갛게 꽃이 피는 곳/봄바람 불어서 오면
노랑나비 훨훨 날아서/그곳에 나래접누나
새파란 나무가지가/호수에 비추어지면
노랑새도 노래부르며/물가에 놀고 있구나
나도 같이 떠가는 내 몸이여/저 산 넘어 넘어서 간다네
꽃밭을 헤치며 양떼가 뛰노네/나도 달려 보네
저 산을 넘어서/흰 구름 떠가네 파란 바닷가에
높이 떠올라서 멀어져 돌아온다네/생각에 잠겨 있구나
봄바람이 불어 불어오누나/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봄
봄 봄 봄 봄이여“(<봄> 일부)
철권 군사정부 하에서 표현의 자유가 여의롭지 않았던 시절이다. 당시 대중가요는 자연히 사랑타령 일색으로 흘렀으나 <봄>은 의외로 사랑과는 무관한, 목가적이고 심지어 평화롭기까지 한 '봄타령'이다. 신중현의 의도로 보인다. 퇴폐의 굴레에 씌어 그의 많은 작품이 금지곡으로 묶였기 때문. 신중현은 김정미가 김추자에 비해 파워는 떨어지지만 음역대나 보컬의 매력은 한 수 위라고 평가했다. 김정미 스스로는 “저만의 노래다운 특징을 찾아내려고 많이 연구했어요. 춤도 환각적이고 전위적인 율동으로 사이키델릭에 맞추어 연습하고 있어요.”라고 했단다.(2019년 경향신문 특집기사 재인용) 기사에 의하면 김정미는 이내 미국으로 도미, 고국의 가요계와는 연을 끊고 평범한 교민으로만 살고 있다. 별 일 없다면 이미 칠십 중반의 시니어다.
https://youtu.be/ffvJqu4nPZw
(<봄>, 노래 김정미, 작사/작곡 신중현)
3.
엊그제 주말, EBS FM에서 우연히 듣게된 또하나의 봄노래. 흘러나오는 멜로디가 매우 익숙하다. 설거지를 하는 중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보니 <봄이 오는 길>이다. 70년 대 포크송 레전드 박인희가 부른 바로 그것. 라디오 속에서 부르고 있는 이는 최여원. 2024년 TV조선 제1회 대학가요제 파이널 TOP3에 오른 실력파 MZ 뮤지션이다. 70년 대의 클래식을 50년 후의 감성으로 부른다. 맑고 청량한 음색의 대명사 박인희와는 약간 다른 톤의 참이슬 보이스를 지녔다. 묘한 매력의 허스키함으로 박인희의 정서는 그대로 유지한 채 노래한다.
박인희는 1945년 생이다. 조신하게 대학(숙명여대)을 졸업한 단정한 엘리트 가수 박인희에 비해 고등학교 시절(1972년) 신중현에 의해 픽업된 김정미는 당시에는 그야말로 앙팡테리블이었을 것이다. 같은 봄을 노래하더라도 감각은 완연히 다르다. 나이차를 감안하더라도 색깔 차이가 뚜렷하다. 2024년의 청년 최여원의 정서나 감각은 논할 여지도 없다.
퇴폐(?)와 정숙.
저이들 중에 누구의 봄에 제일 꽂히느냐구?
닐러 무삼하리오. 그 때 그 때 다르다. 기분에 따라 다르고 앞에 술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도 다르다.
김.정.미.라는 존재를 새롭게 알게된 것이 기쁠 뿐이다.
<폭싹 속았수다> 만세.
https://youtu.be/L_PINAcw9bI
(<봄이 오는 길>, 최여원, TV조선 제1회 대학가요제)
4.
雪紛浪怒高(설분낭노고)(말 되나?)
이 시각, 연 이틀 째 눈(雪)은 여전히 분분히 날리고 눈(目) 앞의 항구는 더 진한 잿빛으로 가리워져 몇 척 여객선 외에는 분간할 길이 없다. 파도는 보이지 않으나 안 봐도 비디오다. 어제와 같이 여전히 노한 듯 높고 사나울 것이다.
TV를 켜고 뉴스를 살피니 서울에 나리는 눈도 만만치 않다. 채널을 돌리니 난장판, 정치판 소식이 전해진다. 이 넘들이나 저 넘들이나 춘삼월 눈발이 난무하는 대로(大路)만큼이나 개판이다. 그래, 너 넘들이 몽땅 다 해 묵으라.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은 왔으되 여전히 우리는 동장군 그늘 아래 있다.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몸이 오랑캐 땅에 있고 없고 간에.
봉포항 인근. 어제.
영금정. 어제.
속초(동명)항. 오늘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