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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살며 생각하며,
나이 50을 넘어서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든 작든 회한(悔恨)이 있다. 공자가 말한 지천명(知天命)도 사실은 그 말이다. 공교롭게도 그 즈음에 건강을 잃었을 때, 그 파장은 실체(實體) 이상으로 확대되어 엄습해 온다. 전쟁에서도 사기를 잃으면 패하듯이 어느 싸움이든 지레 겁을 먹으면 지게 된다.
“천지창조(天地創造)는 내가 태어난 날 이루어졌다.”
어디에선가 읽은 글이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세상에 대하여 ‘느끼고 반응하는 주체’가 나 자신이기에 아주 엉뚱한 말은 아니다. 바로 그 ‘주체’인 내가 불치병(不治病)에 걸렸다는 판정을 받았을 때의 반응은 병명(病名)과 관계없이 누구나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충격과 당혹감, 막연한 분노와 불안감, 인생에 대한 좌절감이나 후회, 차츰 쌓여가는 소외감(疏外感)...
불치병이란 약이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그 병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는 병원에서 6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고 퇴원을 한 말기 암 환자가 멀쩡해진 경우도 있다. 소위 말하는 기적(奇蹟)을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투병기(鬪病記)나 신앙간증은 필자의 내면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중요하다. 진리는 연구소의 실험실에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관찰에서 얻어지는 것이기에 그 속에 진리가 있다.
기적(奇蹟)이란 초자연현상(超自然現象)을 말한다. 과학으로는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당대에서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최상의 한 방법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수 많은 과학이론들이 후일에 번복된 것을 보면 그렇다. 기적을 체험한 이들은 자연을 초월(超越)한 게 아니라 오히려 최대한 자연으로 돌아 갔기에 병을 이길 수 있었다. 그게 창조주의 섭리(攝理)이다.
오늘은 3막에 새로 시작한 문인화를 배우기 위해 꼬박 두 시간 동안 서서 쉬지 않고 열심히 붓을 움직였다. 그리고 남들은 칼국수 먹으러 가는데 난 갈수가 없어 차에서 있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산에 갔다. 남들이 보면 미련 맞을 수 있는 이것들이 내게는 도파민이기에 도전한다.
어느 분이 올린 글이다. 투병생활에서 정신세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즐기면서 몰두(沒頭)할 수 있으며 또한 생산적인 것을 찾았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병의 반은 이긴 것이다.
몰입(沒入)의 경지가 무아지경(無我之境)이니 그게 바로 명상의 원리이다. 무아지경에서는 엔도르핀(Endorphin)의 수천 배에 해당하는 다이노르핀(Dynorphin)이 생성 된다고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도파민 정도가 아니라 병이 치유된다. 문인화(文人畵)는 옛날 선비들이 정신수양의 한 방편이었다. 그런 선택을 한 그 환우의 지혜가 불원간에 병을 딛고 일어 설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왜 칼국수를 먹으러 함께 가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혼자 차에 남아 있는 모습이 상상되어 지금도 마음이 짠하다. 내가 건강할 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 모습도 그렇게 비춰질 것이다. 때문에 너무 주위에 대하여 위축이 될 필요는 없다.
불치병(不治病)이니 당연히 비싼 약도 의미 없는 일이다. 실제로 기적을 체험한 이들의 투병기를 보면 (통증을 견뎌야 하니) 진통제를 제외한 모든 약들을 버리고 산에 들어 갔던 사람들이다. 그 원리를 알아서가 아니라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를 하니 그간의 약에 대한 배신감과 경제적인 한계에서 오는 막다른 선택에서 생(生)에 대한 집착을 버린 것이 오히려 환경을 바꾸게 했고 또 마음을 비우게 한 것이다.
통증(痛症)을 참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아플 때 무의식적으로 신음을 내는 것이나 흑인영가(黑人靈歌)나 농요(農謠)를 통하여 노동의 고통을 덜 수 있다는 것도 체험에서 얻은 지혜이다. 그래서 투병생활에서 시(詩)나 음악을 빼 놓을 수가 없다.
병의 치유(治癒)에서 기적이나 비결(秘訣)은 없다. 다만 원칙(原則)이 있을 뿐이다. 그 원칙이란 모든 생물체에 존재하는 종(種)의 보존기능이다. 우리 인체에 있는 그것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 원칙으로 가는 것이다. 그 원리에 대하여 우선 자신을 설득하고, 막연한 게 아니라 구체적이어야 하며 또 극기(克己)가 아니라 그 원칙에 의한 변화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아래 첨부한 동영상은 당뇨병 합병증으로 온 피부괴사환자의 구더기 치료장면이다. 수술로서는 구더기만큼 썩은 살만 떼어 낼 수가 없기에 채택된 치료법으로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았다. 당뇨병은 걷기만 열심히 하면 낫는 병인데 약만 의지하니 불치병이라고 세뇌가 된 것이다.
그게 대체의학이다. 어느 여자분이 대체의학을 하는 사람은 돌팔이라고 했던데 참 불쌍한 사람이다. 제약회사의 주장을 카피하여 식자(識者)행세를 해 봤자 결국은 자기 손해이다. 그런 증상은 열등감 환자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약은 양약이나 한약 모두 장복을 하게 되면 장기(臟器)에 손상을 준다. 양약은 복합이 용이하고 다량생산의 이점이 있다는 차이점일 뿐, 약은 둘 다 같다. 신부전증(腎不全症) 환자는 100% 가 다 약을 장복했던 사람들이다.
대체의학이란 현대의학이 해결을 못하는 것을 말 그대로 ‘대체(代替)’한다는 말이다. 현대의학으로 치료가 되는 것은 굳이 번거로운 대체의학으로 갈 이유가 없다. 러시아는 대체의학용(신경통치료용) 거머리의 연간 수출량이 수 억 불($)이 된다.
파킨슨병, 만만한 병은 아니다. 그러나 중풍보다는 쉬운 병이다.
통증이 문제이다. 손이 닿는 데는 틈만 있으면 주물러 주는 게 도움이 많이 된다. 3년 병구완에 효자 없다고 했다. 본인 스스로 하게 되면 운동도 되니 더 좋다. 좋아하는 음악을 MP3에 녹음하여 운동을 할 때 들으면 좋다. 운동이라 해서 특별할 것도 없다. 막 춤도 좋고, 관광버스 춤이라도 좋다. 몸만 흔들면 그게 운동이다.
파킨슨병 환자들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게 또 다른 특징이다. Reading Therapy라는 게 있다. 독서치료법이다. 독서가 익숙하지 않은 분은 무협지라도 좋다. 우선 독서의 습관이 붙으면 차츰 다른 장르로 가면 된다.
돈이 안 드는 것이라면 좋다는 것은 다 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자칭 똑똑한 양반들이 ‘그게 되네 안 되네’를 쉽게 주장하지만 그건 그 사람들 이야기이고 본인이 해 봐서 다소라도 몸이 유연해지면 그로 족한 일이다.
파킨슨병은 긴 여정(旅程: Your Long Journey)을 떠나는 것과 같다. 그만큼 큰 각오와 인내와 준비가 필요하다. 희망은 내가 그것을 놓지 않는 한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는 것도 잊지는 말자. 동시에 내가 능동적이지 않으면 그 어느 것도 성취할 수 없다는 것도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God Bless All of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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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음의 양식과 ,바른길로 인도 하심에 감사 드림니다.
내가 놓지 않으면 절대 먼저 떠나지 않는 희망에게 감사하며 지천명의 나이도 지났으니 뭔가 좀 깨달음이 있어야 않겠나 싶군요 나 자신을 들여다 보면서 스스로에게 격려도 하고 몰두하는 그시간이 저는 치 맞는 시간입니다 내 자신이 뭔가 병을 퇴치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이라고해야하나 고통을 참아내면 뭔가 보상이 되어 나에게 부메랑이 되어서 조금씩이라도 나아진다라고 의식을 한답니다 소풍가는 기분으로 가죠
신부전증(腎不全症) 환자는 100% 가 다 약을 장복했던 사람들이다......................
약 조심해야 겠어요
틈만 있으면 주물러 주는게 좋다.
하루에 한가지씩 배우겠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주물러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