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한 발언과 행동으로 최고스타로 군림했던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가 1965년에 또다시 엉뚱하고도 익살스러운 일을 저질렀다. 스스로 천재라고 자화자찬한 ‘천재의 일기’라는 자서전을 출간하고 그 책 속에서 천재미술가 10명을 선정해 천재성의 점수를 매겨 도표로 만든 것이다. 최고 점수인 20점으로 대상의
영예를 안은 미술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라파엘로,벨라스케스와 베르메르,피카소였다. 달리는 19점을 얻어 당당하게 6등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천재들의 명단에 여성의 이름은 발견되지 않는다. 마빈 아이젠슈테트라는 미국의 심리학자도 1978년에 천재들의
순위를 매겼는데 역시 눈을 씻고 살펴도 10위
안에 든 여성은 없다. 오직 남성만이 행운의 별을 안고 천재로 태어나는 것인가?<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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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미국의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이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들이 존재하지 않았는가’라는 혁명적인 논문을 발표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이런 기현상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페미니즘 시각에서 최초로 미술사에 정면으로 도전한 이 논문에서 린다 노클린은 여성 천재 미술가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여성이 열등하고 예술적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백인 남성주의자들이 철저하게 미술사를 왜곡시켰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여성의 능력을
경계한 남성들이 고의적으로 천재 여성미술가를 사료에서 누락시켰고 중대한 역사적 증거마저도 조작해 미술사를 집필했다고 비난한 것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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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전통적인 미술사에 엄연한 성차별이 존재했음을 생생한 사례를 들어 증명하고,여성 천재 미술가가 탄생할 수 없었던 좀더 근원적인 원인을 여성이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는 사회환경과 교육제도로
돌렸다. 예를 들면 르네상스 시대부터 19세기 말까지는 장엄하고 웅대한 역사화를 그려야만 위대한 화가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역사화에 등장한 인물들을 그리기 위해서는 엄격한 누드 실기훈련이 필수적인데 여성에게는 누드 데생이 금지되어 대가의 반열에 오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런던의 로열 아카데미는 1893년쯤에 이르러서야 겨우
여성들에게 누드 실물 드로잉을 허용했고,그것도 천으로 모델의 치부를 가린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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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2년 조파니가 그린 로열 아카데미 회원들의 집단 초상화를 보면
여성미술가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대접을 받았는가를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유일한 홍일점인 앙젤리카 카우프만은 누드 수업이 금지돼
초상화를 대신 벽에 걸어 출석 처리를 했다. 이런 야만적인 풍토 때문에 여성화가들은 자연히 역사화보다 월등히 낮은 취급을 받은 정물화나 공예에 재능을 쏟을 수밖에 없어 천재성을 낭비하고 말았던 것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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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가혹한 조건에서도 결코 붓을 꺾지 않고 예술의 꽃을 피운 여성미술가들이 존재한다. 편협하고 왜곡된 역사의 그늘 아래 묻혀있던 이 생소한 이름들을 양지로 끌어내 천재의 월계관을 씌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