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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G-15 조종사 노금석 소위 귀순
역사상 최초로 제트 전투기의 공중전이 벌어진 것은 6.25 사변 당시 한반도 상공 에서 였다.
압도적인 항공전력으로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던 미 공군은 1950년말 갑자기 나타난 훨씬 속도가 빠르고 날렵한 후퇴익을 가진 은빛 제트기로 부터 공격을 받게 되는데, 당시 한국 주둔 미 공군 주력기 F-51 Mustang, F-80 등은 이 전투기를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소련이 개발한 비밀무기 최신예 MIG-15였다.
MIG-15의 등장은 미 공군과 연합군에게 큰 충격을 주었는데 지금은 '미그'라고 불지만 그당시는 '엠아지'라고 불렀다.
유엔과 미국은 미그기와 함께 망명하는 조종사에게 10만불의 현상금을 걸고 광고를 하기까지 했는데, 휴전협정으로 어정쩡하게 전쟁이 끝난 얼마후 북괴의 노금석 소위가 MIG-15기를 몰고 자유의 품으로 귀순한것이다.
이 활주로를 덮은 구멍이 뚫린 철판을 한국이름은 없으니 일어로'아나방[穴版]이라고 부르는데 땅을 고른 후에 깔면 활주로가 된다.
김천의 감천냇가에다가 이 혈판으로 감천내를 건너는 다리를 놓았는데 한개를 훔쳐가니 다리가끊어진 상태이어서 사용불능이 되는데 나중에는 모두 훔쳐가 버렸다.
***그가 몰고온 것은 2057번이고 이것은 70109이다.
내가 덜레스 우주항공 박물관에서 직접 담았는데 MIG-17형도 이곳에 있다. 뒤쪽지붕은 항공기를 천정에 매달수가 있는 쇠로된 돔형 건물이다 ***
북한의 삼팔선을 넘지 않은 MIG-15기,
오른쪽 날개위에 붉은 별 마크가 간신히 보인다.
혼자서 엔진위에 타는 셈인데 저쟁 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엠아이지 제트기는 드럼통을 굴리는 소리가 난다고 하셨다.(후퇴익 설계와 후익이 높은것을 현제 모든 여객기에 사용한다. 앞바퀴는 디자인이 잘되어 좋은 쿠션을 가질것 같다, 내생각임)
미코얀과 그로비치 두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Mikoyan Gurevich MiG-15 나토에서페겉[Fagot]이라고 부르는 이재트기의 최고 속도는 후퇴익이어서 시속1075km이고 미국산 세이버기는 직선익이어서 시속 965km이어서 속도가 약간 느렸지만 나중에는 후퇴익으로 고안 현재는 모든 항공기에 적용 성능이 더 좋아졌다.
자유를 찾아 귀순하려 오래전부터 마음을 굳힌 21세의 MIG-15 조종사 노금석소위에게 1953년 9월 21일 아침, 초계비행 명령이 하달되었다.
기체 No, 2057의 MIG-15 조종석에 올라 비행전 점검사항을 재빨리 마친 그는 그동안 주도면밀히 익혀 두었던 김포 공군기지를 목표로 MIG-15를 발진시켰다.
조준경 밑에는
"양키의 엉덩이에 분노의 총알을 남김없이 쏟아버리자 !"
라고 빨간 글씨로 씌어 있었다.
대형에서 갑자기 이탈한 그는 550마일에 달하는 최고 속도를 유지하며 자유를 향한 비행을 감행하였다.
서울은 DMZ에서 50마일 밖에 되지 않았고, 군사 분계선을 넘는데는 불과 4분이면 되었다.
김포 기지를 발견, 정상적인 착륙방법을 무시하고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또한, 착륙하기에는 너무 빠른 속도 역시 무시한채 내려 꽂히듯 착륙하였다.
이륙중인 비행기가 있었다면 충돌하여 폭발했을 것이지만 그는 해냈던 것이다.
이어서 비행기를 활주로에서 빼내고 엔진을 끈 후, 조종석에 서서 두 팔을 들어 올려 귀순의사를 밝히던 그는
미그기를 세이버로 착각해 부근에서 손을 흔드는 지상 근무자를 보고 무척 당황했다.
기지 저쪽편에 있던 십여명의 조종사와 승무원들이 미그기를 정확히 알아보고 좀 더 자세히 보기위해 Jeep와 트럭을 타고 달려 왔다.
사람들은 역사의 순간을 잡고자 카메라를 가지고 왔다.
김포 공군기지 관제소는 이미 대응에 들어가 전체 비행중대를 차례로 발진시켜 기지에 놓인 미그기를 소련이나 북괴기가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한편, 기지를 방어하기 위해 광범위한 전투 초계비행에 들어갔다.
김포는 벌집을 쑤셔 놓은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조종석에서 두팔을 올린채 엉거주춤 서있던 노소위는 누구에게 항복을 해야 할지 몹시 초조했다.
한발 늦게 도착한 헌병들이 주변을 차단하고 그를 데리고 갔으며, 미그기는 가까운 격납고로 이동 시켜 숨겼다.
수 많은 카메라가 그 광경을 잡았으나 헌병들은 필름을 모두 압수했다.
노금석 소위가 몰고 온 미그기는 베일에 쌓여 있던 MIG-15를 분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실로 엄청난 가치를 지닌 것이다.
연료를 가득 싣고 있었고 기관포엔 탄약이 그대로 장전된채... 호박이 덩굴채로 굴러 들어온 횡재였던 셈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MIG-15는 수송기에 실려 오키나와의 미 공군기지로 옮겨졌다.
이미, 미 공군기로 도색이 바뀐 MIG-15.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다. 메뚜기점퍼를 입고 외출모를 쓴 이 병사가 콜트45구경 권총과 소지한 개머리판이 없는 이 총은 돌격용[assault] SMG[Suv Machine Gun]인데 가눔자가 없으니 어림짐작으로 난사를 하기위함이다,
30발탄창, 내가 한국군에서 소지를 한적이 있다.
MIG-15의 성능, 비행 특성 등을 F-86과 비교해 가며 세세한 사항을 파악, 분석하기 위하여 최고기량을 가진 시험비행 조종사 두명을 차출했는데 H.E.Tom Collins대위와 6년전 음속의 벽을 최초로 돌파한 Chuck Yeager소령이 선발 되었다.
MIG의 시험비행은 Collins대위가 먼저, Yeager소령이 두번째로 실시 되었다.
몇 달 동안, 다양한 고도에서 연료 소비량, 하중, 기관포 발사속도, 사거리 확인 등의 성능 실험이 이루어져 많은 자료가 수집 되었으며 분석을 끝낸 자료는 신속히 전투단들에게 전달 되었으나 더욱 세밀한 자료를 얻기 위해서 53년 12월에 라이트 패터슨 공군기지 (Wright-Patterson Air Force Base)로 극비리에 옮겨져서 볼트, 케이블 등 작은 부분까지 모든 부품을 세밀히 분석한 자료를 전 세계의 미군 조종사들과 F-100, F-102, F-104를 제작하는 항공업체들도 공유할 수 있도록 배포하였다.
MIG-15는 미국의 최신예 전투기인 F-86과 거의 모든 면에서 동등한 성능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기동과 가속력은 더욱 성능이 앞선 전투기로 판명되었던 것이다.
다만, 최고 속도는 F-86에 조금 못 미치므로 미군 조종사들은 두가지 전투기의 서로 다른 성능이 어떤 잇점으로 이용되는지 결정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
MIG기는 높은 고도에서 급강하할 때 조종석 캐노피에 수증기가 서려 밖이 보이지 않게 되므로 MIG-15의 두번째 시험비행에 나섰던 Yeager소령은 급강하할 때 조종능력을 상실하여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
그 때문에 (높은 고도와 추운 지역에서 MIG기와 조우 했을시, 이탈할 수 밖에 없다면 급강하하여 이탈해라)라는 말이 미군 조종사들 사이에 입소문으로 퍼져 나갔다.
미국의 기술자들과 시험요원들은 단 한 대의 비행기로 성능과 시스템을 추정해야 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지만. 반면에 다양한 모델들에서 근접한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소련이 붕괴된 후, MIG기를 포함한 각종 무기를 공공연히 사들일 수 있게 되어 MIG가 지니고 있던 여러가지 결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노소위가 몰고 온 MIG-15는 조종석의 히터와 환경 시스템이 고장인채로 완전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Chuck Yeager 소령은 오키나와 시험비행 몇년 후, 소련의 미그 기술자와 만나 급강하 때의 문제점에 대해 토의를 한적이 있는데 그 소련 기술자는 척 예거가 급강하 할 때의 위기를 전투기의 조종력을 회복시키고 살아 났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설계상의 기본적인 결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점은 그후 MIG-17 과 MIG-19의 개발과정에서 개선이 되었다.
그는 현상금 10만불[2020년기준으로 967,000불]이 걸려있는 줄도 몰랐었는데 그는 도미하여 대학을 다닌후 Kenneth Rowe라고 개명 항 후 시민권을 획득했고 결혼 후 2명의 자녀를 두었고 플로뤼다에 거주한단다.
또한, 많은 자료에서 당시 노소위의 계급을 대위로 표시하고 있는데 소위가 맞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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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가 태어나기 전 이야기
흥미 진진하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