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경제포커스
[경제포커스] 애니콜 생산직원 4000명의 ‘대단한 노동’
조선일보
이인열 산업부장
입력 2023.04.13. 03:00업데이트 2023.04.13. 07:54
https://www.chosun.com/opinion/economic_focus/2023/04/13/YWRINCQZHBD7PGQZCJ6PQK3UHA/
※ 상기 주소를 클릭하면 조선일보 링크되어 화면을 살짝 올리면 상단 오른쪽에 마이크 표시가 있는데 클릭하면 음성으로 읽어줍니다.
읽어주는 칼럼은 별도 재생기가 있습니다.
삼성전자 적자 면하게 한 주력
생산라인 곳곳에 촘촘히 박힌
수백개의 혁신을 기록한 간판들
여기서 세계 1위가 시작됐다
경북 구미시 1공단로 244번지. 대한민국 최초의 ‘진짜 세계 1위’의 탄생지다. 지금은 갤럭시, 이전엔 애니콜로 불리던 삼성전자의 휴대폰은 여기서 시작됐다. 텅스텐도 팔고. 가발도 팔았던 나라지만, 우리 손으로 글로벌 최고급 소비자들조차 갖고 싶어 안달하는 공산품을 만든 것은 애니콜이 처음일 것이다. 이후 옆에 있는 3공단 3로 302번지 2공장으로 옮겨 생산을 이어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20년 3월 3일 경상북도 구미시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을 방문, 생산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삼성전자
1988년 첫 번째 모델인 SH-100A를 생산한 이후 지금까지 9억대 정도 1, 2공장에서 만들었다. 이제는 베트남, 인도, 브라질 등 해외 공장에서도 만들어 연산 1600만대 정도지만 여전히 최고의 생산 기술을 전파해주는 ‘기술 사관학교’ 역할을 한다. 이름도 ‘글로벌 스마트폰 마더(mother) 공장’.
이곳을 19년 전인 2004년 11월 생산 라인 내부까지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외부인으로는 고 노무현 대통령만 보고 갔다고 할 정도로 보안 구역이었다. 160개 라인이 있었는데, 생산직 직원을 ‘프로’라고 부르고 있었다.
기자가 가장 큰 감동을 받은 것은 라인 내부의 로봇 사이로 곳곳에 서 있는 수많은 아주 작은 간판이었다. 현장 직원들의 아이디어로 이뤄낸 혁신 성과를 보여주는 기록이었다.
“이 라인의 기울기를 5도에서 5.5도로 하면 휠씬 더 움직이기 편하다” “여기 길이는 5㎝만 줄이면 생산을 더 많이 할 수 있다” 등 현장에서 일해보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아이디어였다.
공장 관계자는 “4000여 직원이 삼삼오오 모여 만든 분임조 활동이 있는데, 여기서 나와 현장에 접목된 혁신만도 1000개가 넘고, 이것들이 세계 1등 공장을 만든 비결”이라고 말했다. 당시 구미공장에는 450개 분임조 활동이 있었다. 그 결과는 불량률 0.3%. 당시로선 단연 세계 최고의 공장이었다.
취재수첩에 적힌 현장에서 만난 프로들의 인터뷰 내용은 이랬다.
“이형 장비를 돌리다 보면 하루 24시간 중 52분 정도가 정지했다. 분임조 활동을 통해 이를 47분 줄여 딱 5분만 정지하게 했다”(이ΟΟ, 당시 25세)
“지난해에만 4건을 개선했다. 내가 이 회사를 떠날 때 정말 열심히 하다 갔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한ΟΟ, 당시 28세)
어느 ‘프로’에게 “그렇다고 더 많은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근무시간 마치고까지 하는가?”라고 물었더니 “스스로 자부심 때문이고, 일할 때 스스로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19년 전 취재수첩을 소환한 것은 “노동이란 착취의 대상만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실현해 보람을 느끼게 하는 방법”이라는 교과서적인 말을 이렇게 절절히 체험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구미공장 취재 당시 대학 진학률은 81%였다. 대부분 ‘프로’들은 고졸 사원들이었다. 그들이 우리의 어떤 엘리트들도 못 해내고 있던 세계 1위의 꿈을 실현해냈다. 애니콜 신화에는 이건희, 이기태, 김종호 등 빼어난 리더들과 수많은 디자이너, 기술자들이 배경에 있다. 동시에 4000여명 생산직 직원들의 ‘노동’ 역시 잊어선 안된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이 분기에 4조원에 이르는 적자를 내고 25년 만에 감산을 하는데도 그마나 전체 적자를 면한 데는 스마트폰 사업부가 톡톡히 역할을 했다고 한다.
꿈은 좋은 머리로 꿀 수 있지만 그 꿈을 실현하는 것은 노동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착취당하지 않겠다고 난리치는 시대에, 또 누군가는 ‘노동이 더이상 필요 없다’는 또다른 시대로 가는 길목에서, ‘대단한 노동’을 반추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