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권이 그간 착실히 군비를 갖춰온 것은 아버지의 원수인 황조를 정벌하고자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오부인의 건강이 무척 나빠졌던 것이다. 오부인은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아들 손권과 주유, 장소를 불러들였다.
“나는 본래 오나라 사람으로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동생 오경과 함께 월 땅으로 가서 살았다. 뒤에 손가(孫家)로 시집을 가서 모두 아이를 다섯 낳았지. 맏이 책을 낳았을 때 나는 달을 품는 꿈을 꾸었다. 둘째인 권을 낳을 때는 해를 품는 꿈을 꾸었다. 점치는 이가 말하기를 두 아이가 모두 귀인이 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책은 일찍 죽고 말아 권이 강동의 대업을 이어받았다. 공들은 마음을 같이 하여 권을 도와주도록 하라. 그렇게 되면 죽는들 무슨 후회가 있겠는가.”
오부인은 숨을 고르고 손권에게 말했다.
“너는 자포(=장소)와 공근(=주유)을 스승의 예로써 섬겨야 한다. 네 이모는 아다시피 나와 함께 네 아버지한테 시집을 왔으니 나를 보듯이 해라. 내가 죽은 뒤에는 나와 상의한다고 생각하고 이모와 상의하거라. 네 누이동생도 잘 보살핀 뒤에 좋은 집안을 골라 시집을 보내주어라.”
말을 마친 뒤에 숨을 거두었다. 건안 12년(207년) 10월의 일이었다. 손권은 성대한 장례를 치르고 다음 해 봄에 다시 황조 토벌의 건을 중신들과 의논했다. 장소가 말했다.
“상을 당해 아직 기년(期年)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병사를 움직이는 것은 불가합니다.”
주유가 말했다.
“부모의 원수를 갚고자 출병하는 것인데 기년이 지나는 것을 어찌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두 사람의 의견이 완전히 다르자 손권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때 북평도위(北平都尉) 여몽이 들어왔다.
“황조의 부장 감녕(甘寧)이 항복해 왔습니다.”
“감녕? 어떤 인물인가?”
“감녕은 자를 흥패(興覇)라고 하며 파군 임강 사람입니다. 글에도 능하고 힘도 세서 유협의 무리와 어울려다녔다고 합니다. 이들 무리는 허리에 구리방울을 달고 다녀 그 소리만 들리면 사람들은 그들이 나타난 줄 알았답니다. 감녕은 일찌감치 강호를 마음대로 누비면서 관청을 터는 등 해적짓을 일삼았습니다. 서천에서 나는 비단으로 배의 돛을 만들고 부하들도 자주빛 옷을 입혀 호화스럽게 차리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비단 돛의 도적이라는 뜻의 금범적(錦帆賊)이라고 불렀습니다. 감녕은 이십여년간 해적질을 하다가 제자백가를 읽으면서 반성을 하고 다시는 도적질을 하지 않았습니다. 유표에게 나아가 임용되기를 원했지만 유표는 그의 과거를 들어 기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황조에게 가서 몸을 의지하게 된 것입니다.”
“황조는 그를 잘 대접해 주었는가?”
“지난 번 저희가 황조를 공격했을 때 감녕이 있어서 하구(夏口)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감녕은 아주 박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도독 소비(蘇飛)가 보다 못해 한마디 했지만 황조는 ‘감녕은 수적(水賊)에 불과하다. 중용할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감녕은 이 말을 전해듣고 원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비가 그것을 알고 감녕을 불러 술을 마시면서 ‘내가 그동안 여러차례 공을 추천했지만 주공이 공을 중용하지 않는구려. 해와 달은 뜨고 지지만 인생이란 한번 뿐이니 뭔가 계책을 세워햐 할 것이오. 내가 공을 주현의 장(長)으로 보내겠으니 스스로 앞길을 개척해 나가도록 하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감녕은 하구를 벗어나게 되자 곧 우리에게 투항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전의 싸움에서 황조를 구하려다가 우리 장수 능조를 활로 쏘아 죽인 바가 있어서 망설였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주공께서는 어진이를 구하기를 목말라 하고 있으며 결코 옛날의 원한을 되새기는 분이 아닌데 자신의 주인을 위해 한 일을 탓하겠는가라고 말해주어 감연히 자신의 무리들을 이끌고 장강을 건너 주공을 뵙고자 찾아왔습니다. 감녕을 받아줄 것인지 하교해 주십시오.”
손권은 크게 기뻐했다.
“흥패가 내게 왔으니 황조는 이제 끝장이 나겠구나!”
여몽에게 감녕을 즉시 데려오라고 명했다. 감녕이 들어와 인사를 올렸다. 손권이 보니 감녕은 40대 초반으로 얼굴이 햇빛에 그을려 늠름한 구리빛을 띠고 있었다.
“장군을 만나니 바로 내 마음을 앗아가는 듯 하오. 전의 일은 따지지 않을 것이니 의심하지 마시오. 원컨대 황조를 잡을 수 있는 계책을 말해 주시오.”
“지금 한실은 위기에 처해 있으니 조조가 반드시 찬탈을 하고자 할 것입니다. 조조는 머지 않아 형주를 침공하겠지만 유표는 앞을 내다볼 줄 모르고 그 자식들도 모두 어리석으니 형주를 지키지 못할 것입니다. 조조가 형주를 치기 전에 주공께서 먼저 움직이셔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황조를 물리쳐야 합니다. 황조는 이미 늙어서 혼미한 상태가 되어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물리고, 자기의 부귀와 사치밖에는 챙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백성이건 관리건 모두 원망하고 있습니다. 무기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군대에는 법도가 서지 않은 상태입니다. 주공께서 치기만 한다면 바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손권은 황조가 몰락하고 있다는 말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감녕의 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황조를 격파하고 나면 북을 울리며 서쪽으로 진군합니다. 형주를 차지하고 파촉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패업이 어디로 갈지 정해질 것입니다.”
감녕은 손권의 뜻이 작지 않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손권은 비슷한 이야기를 노숙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손권은 열 아홉이었다. 그로부터 근 십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꿈은 손권의 마음 속에서 사라진 적이 없었다. 감녕의 말은 그 거대한 꿈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금과 옥같은 가르침이오!”
손권은 즉시 주유를 대도독에 임명한 뒤, 여봉을 선봉으로, 동습과 감녕을 부장으로 삼아 친히 십만 대군을 거느리고 하구를 공격했다.
황조는 손권이 공격하는 것을 알고 대비를 하기 시작했다. 먼저 소비를 대장으로 삼은 뒤 진취(陳就)와 등룡(鄧龍)을 선봉으로 삼아 손권을 막도록 내보냈다. 강하성 역시 강하의 전 병사를 동원해 방어체제를 갖췄다.
진취와 등룡은 전함인 몽충(蒙沖)을 옆으로 늘어세워 한수를 막아버렸다. 배와 배 사이는 종려나무 껍질로 꼬은 새끼줄로 묶었다. 몽충은 선체가 좁고 길며 소가죽으로 둘러싸인 배다. 적선을 뒤집어버리는 습격선으로 적선들 사이로 뛰어들어 창과 노(弩)로 적선을 공격하는 최고의 공격용 배이면서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에도 적합했다. 진취와 등룡은 갑판에 천개가 넘는 노를 배치했다. 마치 강물 위에 뜬 요새처럼 손권군의 진로를 막아섰다.
손권군의 배가 다가가자 화살이 빗발치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도저히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감녕이 동습에게 말했다.
“내가 나서겠소!”
감녕은 크지만 둔한 누선을 버리고 빠른 주가(走舸)에 올랐다. 주가는 쾌속선으로 긴급한 사태에 부딪쳤을 때 가장 효과가 큰 배다. 감녕은 주가 백척에 각기 오십 명의 군사를 태웠다. 이중 20명은 노를 젓는 수부(水夫)였고 30명은 백병전을 펼칠 병사들이었다. 본래 주가는 수부가 병사보다 많은 배였지만 감녕은 공격할 병사들을 더 많이 태운 것이다.
감녕은 병사들에게 갑옷을 두겹으로 입힌 뒤에 방패를 들어 화살을 막으며 몽충 사이로 파고 들어가 몽충을 묶고 있는 밧줄을 직접 끊어버렸다. 가로로 세워져 있던 몽충은 강물의 흐름 때문에 이리저리 흩어지고 말았다.
감녕은 재빠르게 대장선 위로 뛰어올라갔다. 감녕의 번개같은 기습으로 당황하고 있던 등룡은 감녕의 칼 한두 번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이미 대세가 기울어졌다고 느낀 진취는 배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여몽도 주가에 올라 배마다 불을 놓기 시작했다. 진취는 여몽이 쫓아오자 누선으로는 주가를 따돌릴 수 없음을 잘 아는지라 배를 버리고 뭍으로 도망쳤다. 여몽은 뭍으로 쫓아 올라가 진취를 따라잡았다. 그러나 누선 쪽이 군사가 훨씬 많기 때문에 여몽은 오히려 적에게 포위를 당하고 말았다. 여몽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적병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여몽의 앞을 막는 사람은 모두 피보라를 일으키며 쓰러지는 처지였다. 진취는 여몽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두려움에 질려 뒤로 돌아 달아나려고 했다. 그러나 어느 틈에 다가온 여몽의 칼이 등을 뚫고 가슴으로 나와버렸다. 진취가 쓰러지자 나머지 군사들은 대항할 의지를 잃어버리고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손권은 전군을 휘몰아 소비가 있는 적진에 상륙했다. 소비가 병사들을 독려하여 내몰았으나 이미 전선이 모두 불타버리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한 병사들이 잘 싸울 리가 없었다. 일격에 대패하고말자 소비도 꽁지가 빠져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반장은 소비의 뒤를 쫓아갔다. 반장을 따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안 소비는 말의 속도를 순간적으로 늦췄다가 한 칼을 내리쳤다. 하마터면 반장의 목이 날아갈 뻔 했다. 반장은 얼른 자세를 잡고 뒤이어 떨어지는 소비의 칼을 막았다. 이미 한번 기세를 빼앗긴 탓에 반장은 수세에 몰려 소비의 공격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소비의 마음은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 하구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어서 결정적인 한방을 먹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자 소비는 점점 더 초조해지고, 반장은 더욱 안정적이 되었다. 소비는 한 칼을 세게 휘두르고 말머리를 홱 잡아챘다. 더 이상 실랑이를 하지 않고 달아날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뒷덜미를 반장이 낚아채 땅바닥으로 패대기쳐버렸다. 반장은 소비가 말머리를 돌리리라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장이 소비를 결박지어 손권에게 데리고 갔다.
“잘했다. 이 놈은 황조를 잡은 뒤에 같이 목을 베어주겠다.”
손권은 반장을 칭찬한 뒤에 소비를 배 안에 가둬놓게 했다. 이어 쉴 틈도 없이 바로 하구를 공격하여 하구 역시 일전만에 함락시켰다.
강하성의 백성들은 대장 소비가 일전에 대패하고 진취와 등룡은 죽고 소비마저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하나 둘 달아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백성들이, 그 다음에는 병사들이, 끝내는 장교들마저 달아나기 시작했다. 황조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형주의 유표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성을 빠져나왔다.
깊은 밤 삼경을 기해 동문을 살짝 빠져나와 형주로 가려는데 미처 몇 리를 가지도 못해 느닷없이 사방에서 횃불이 올라왔다. 매복이 있었구나하고 황조가 고개를 떨구었다.
“황조는 얌전히 포박을 받아라!”
이 목소리는 귀에 익었다. 황조가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말 위에 늠름하게 앉아있는 장수는 감녕이었다. 갑자기 울화가 치밀어올랐다.
“내가 널 박대한 적이 없거늘 왜 날 이리 괴롭히는 거냐!”
“뭐야? 내가 널 위해 공을 수없이 세웠지만 넌 날 수적이라고 깔봤다. 이제 와서야 아쉬운 생각이 드느냐?”
황조는 뭔가 더 말할 것처럼 웅얼거리다가 말을 돌려 달아났다. 감녕도 놓칠세라 뒤를 쫓았다. 황조는 성으로 돌아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무작정 길을 따라 말을 달려나갔다. 그러나 그의 운명이 여기까지였는지 앞에 또 다른 적군이 다가오고 있었다.
황조만큼 놀란 사람은 감녕이었다. 앞에 벌어진 전투 중에서 제일 큰 공은 적의 대장 소비를 잡은 반장에게 돌아갔다. 자신은 손권에게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얼마 전까지 손권 군과 싸우던 입장이었다. 이번 전쟁에서 확실한 공을 세워 놓아야 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앞에 나타난 아군이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이 높았다.
감녕은 활을 들어 황조를 겨눴다. 손권은 황조를 사로잡기를 원했지만 지금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신중하게 겨눈 활시위를 놓자 화살은 빨려들 듯이 황조의 등으로 날아가 박혀버렸다. 황조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말에서 떨어졌다. 감녕은 나는 듯이 달려가 황조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때서야 앞을 가로막았던 손권군의 장수가 다가왔다. 손견 시절부터 손가를 섬겨온 정보였다.
감녕은 정보와 함께 손권에게 돌아가 황조의 목을 올렸다. 손권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즉시 감녕에게 도위의 벼슬을 내리고 강하의 수비를 맡겼다. 이때 장소가 나와서 말했다.
“강하는 한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습니다. 이곳은 육지임에도 우리가 방어하고자 하면 섬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황조를 잡아죽인 것을 알면 유표가 군사를 거느리고 와 복수를 하고자 할 것입니다. 차라리 강동으로 물러나 있다가 유표가 멀리 원정을 하느라 지쳤을 때 그를 일전에 패배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공격한다면 형주를 어렵지않게 차지할 수 있습니다.”
장소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손권은 황조의 목을 나무상자에 넣어 보관시키고 각 장병에게 후한 상을 내린 뒤에 강하를 포기하고 강동으로 돌아갔다.
강동에 도착한 손권은 황조의 목을 아버지의 영전에 바치고 소비를 끌어내 그의 목을 베고자 했다. 감녕이 뛰쳐나와 엎드린 뒤에 머리를 땅에 연신 부딪쳐 절을 올린 뒤에 말했다. 이마가 터져 선혈이 흘러내려 차마 눈뜨고 볼 형상이 아니었다.
“지난날 제가 소비를 만나지 못했다면 저는 이미 죽어 이 자리에 없었을 것입니다. 소비의 죄는 비록 죽어 마땅하지만 저는 소비가 지난 날 제게 베풀어준 은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게 내리신 벼슬과 직위를 모두 내놓을 것이니 부디 소비를 살려주십시오.”
손권이 말했다.
“소비가 장군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면 나도 소비를 용서할 수 있소. 하지만 소비가 달아나버리면 어쩔 것이오?”
“소비가 죽음에서 살아난다면 그 은혜가 한량이 없을 것입니다. 감히 도망칠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만일 소비가 달아난다면 제 목을 대신 바치겠습니다.”
감녕이 결연히 말하자 손권도 감탄하고 말았다. 소비를 풀어주고 황조의 목만 제물로 올려 아버지의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마친 후에 손권은 휘하의 문무백관을 불러들여 이번 승전을 자축하는 연회를 베풀었다.
승전의 뒷 잔치라 분위기가 자못 달아올라 연신 웃음소리들이 터져나왔다. 그런데 한쪽에서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 그쪽을 바라보았다.
“이놈, 감녕! 내 칼을 받아라!”
울던 사내가 난데없이 칼을 뽑아들고 감녕에게 달려들었다. 감녕도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칼을 뽑아 상대의 칼을 막아냈다.
“넌 대체 누구냐?”
“네 놈과 불구대천의 원수인 능통이다!”
감녕도 그때서야 이 사내가 누구인지 알았다. 오년 전에 있었던 강하 전투에서 선봉으로 돌격해 들어오다가 자신의 활에 맞아죽은 능조의 아들이라는 것을. 그때 적진 한 가운데로 달려들어 능조의 시체를 구해서 돌아가던 소년의 모습은 감녕의 뇌리에도 생생했다. 그때의 소년이 스무 살의 청년으로 돌아온 것이다.
“공정(=능통), 이게 무슨 짓이냐! 당장 칼을 거둬라!”
손권의 노한 목소리에 능통이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손권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자신 역시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절치부심해 온 것이니, 능통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흥패(=감녕)가 네 부친을 죽인 것은 황조의 수하로 있을 때 어쩔 수 없이 한 일이 아니냐? 주군을 위해서 애를 썼을 뿐이다. 이제 한 집안이 되었는데 옛날의 원한을 떠올리면 어쩔 것이냐? 내 얼굴을 보아 참도록 해라.”
“불구대천의 원수를 어찌 복수하지 못하게 하십니까?”
주위의 다른 장수들도 모두 능통을 만류했으나 능통은 잡아먹을듯한 눈빛으로 감녕을 노려볼 뿐이었다. 같이 강동에 있다가는 결국 칼부림이 날 것이 분명했다. 손권은 감녕에게 군사 오천과 배 1천척을 주어 하구로 보냈다. 능통에게서 감녕을 떼어놓고자 한 것이다.
능통에게는 따로 승렬도위(丞烈都尉)의 직위를 내려 그의 마음을 위로했다. 능통의 마음이 그렇게 풀릴 수는 없지만 주군이 애를 써주는 심정은 이해해야만 했다. 능통은 손권 앞에서는 더 이상 불편함을 내비치지 않았다.
손권은 유표가 쳐들어 올 것을 대비하여 전선을 건조하고 강안의 경비를 강화했다. 강동은 손정에게 군사를 주어 방어하게 하고 자신은 시상(柴桑)으로 나가 군사들을 훈련시켰다. 주유는 파양호에 주둔하여 수군을 조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