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역사를 담다. 시간의 역사학에서 공간의 역사학으로
시간 우위 역사관에 의한 왜곡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간적 변화'와 더불어 '공간'이라는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간은 시간과 함께 인간 생존의 근본조건으로 인류에게 삶의 터전이자 역사의 무대를 제공했다. 이러한 공간은 인류 역사의 전개와 더불어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롭게 재생산되었다.
실제 거의 모든 창조신화는 가장 먼저 하늘과 땅이 열리며 공간이 생성되는 것을 묘사했다. 그런 다음에 빛과 바람, 생명체 등이 탄생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전근대 사람들도 세계나 역사를 인식할 때 '시간'보다 '공간'을 더 우선시했다.
중국의 화이관은 천하라는 공간을 중화와 이적으로 구분한 이분법적 세계관이다. 고구려인들도 자신의 영토와 주변 지역을 공간적으로 구별하는 방식으로 자국 중심의 천하관을 확립했다.
시간 우위 역사관의 기준은 서구가 이룩한 근대문명이었다. 서구인들은 '자신들의 근대'를 기준으로 세계 각지의 역사와 문화를 시간적으로 서열화하고, 심지어 미개와 문명으로 구별하면서 자신들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았다.
'공간' 개념을 역사 연구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개념과 이론을 조금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공간'은 위치와 마찬가지로 절대 공간과 상대 공간으로 구분한다. 절대 공간이 균질적이고 고정 불변적인 물리적 공간을 일컫는다면, 상대 공간은 공간을 인간 활동에 의해 새롭게 창조되거나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상정하는 개념이다. 상대 공간 개념에서는 공간을 자연적으로 주어진 물리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 활동과의 관련 속에서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