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제목이 짧아지지만 이건 뭐 넘어가죠
지금 자야하는데..ㅜㅜ
아까 날카로운 예측을 하신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그 예측이 맞습니다..
'덴마크 최후의 날'

1941년 1월
프랑스 지도부는 덴마크군의 의외의 활약으로 분산된 독일군을 격퇴해 내고 있엇다.
독일군은 1차대전 당시의 악몽을 떠올리며 프랑스의 방어선을 뜷으려고 노력했으나 마지노선과 프랑스 북부 방어선은 건재했다. 프랑스군은 유령사단을 이용해 규모를 늘리는 전략을 썻다.

한편 덴마크 정부는 개인화기의 대량생산 방식을 연구했으나 이미 석유와 보급품, 자금이 모두 떨어진 상태.
이 상태로는 보급과 증원조차도 힘든 상황이었다.

덴마크군이 의외의 선전을 벌이는 동안, 독일과의 동맹에 가입한 이탈리아는 프랑스 남부의 국경수비대들에게 이탈리아 북부를 거의 점령당한다.

그러나 덴마크군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영토내로 독일군은 슬금슬금 진군하며 영토를 잠식해내고 있었다.
또한 마지노선의 3분지 1이 점령당하였고 파리는 최전방 도시가 되었다.

한편, 노르웨이와 영국은 덴마크가 독일 북부에서 홀로 외로이 싸우는 것을 알았으나 보급품은 커녕 석유조차도 지원하지 않았다. 단지 수많은 사단을 원정보냈을 뿐인데 이는 보급품의 과도한 소모와 인력소모에 큰 영향을 주었다.
덴마크의 재정은 여전히 적자를 기록했으며, 에너지, 철강, 희귀자원 보유량 또한 내리막길을 걷고 있엇다.

41년 7월,
덴마크 육군은 산업화를 위해 늦춰두었던 교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들로서는 새로운 대전쟁의 발발년도가 45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리연구를 산업연구 이후에 하려 했다.
그러나 막상 전쟁의 불길이 닥치자 대국을 대하는 소국의 입장에서 산업화의 여부는 그야말로 개미가 초소형 소총 든 격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앗던 것이다..

그 와중에도 덴마크군과 원정군으로 이루어진 총 25개의 사단은 여전히 독일군의 마수에서 코펜하겐을 방어하고 있엇다.
덴마크군은 제 3차 뤼베크 역공작전을 벌이나 모두 패배한다.

41년 7월 9일.
뜻밖의 반가운 소식이 들어왔다.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무상원조를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대영제국이라 자칭하며 전쟁의 참화에서 빗겨나있는 영국은 전혀 덴마크를 돕지 않았다.

41년 7월 20일,
대참사가 벌어졋다! 프랑스의 무상원조로 보급품이 상당히 부족해진 남부사단들의 활약이 늦춰진 순간, 독일군은 전격전 특유의 스피드로 불과 몇일만에 단숨에 파리와 비시까지 진격했다! 마지노선의 방어사단들이 보급로 차단의 위기에 놓여 후퇴를 결정했고 이는 거대한 패착의 요인이 되었다!

7월 22일. 프랑스 지휘부는 항복을 결정했다.
독일군은 '파리와 비시에 대한 일체의 파괴행위를 금지한다' 라는 내용의 전문을 각 사단으로 보냈다.
프랑스 남부에 세워진 괴뢰정권 비시는 중립국으로 행세하여 연합을 외면했고 자유 프랑스의 정부는 모두 아프리카로 망명했다.

그러나 유럽에서와는 달리, 아프리카에서는 영국이 맹활약을 보이고 있엇다. 보급품 지원은 이 때문에 늦춰진 것이었으나 이는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후에 밝혀진다.영국은 이탈리아의 식민지엿던 리비아를 해안지역을 따라 진격하여 단숨에 점령해버렷다. 이탈리아의 사단들은 후퇴, 재편후 이스라엘 지역과 시리아 지역에 상륙했다.
후방교란을 노린 것이었으나 수송력 부족으로 시리아의 이탈리아 사단들은 그다지 활약하지 못했다.

코펜하겐의 정예사단들은 제 5차, 6차 뤼베크 진격작전을 벌엿다. 현실적으로 오덴세 수복작전은 크릭스리마네의 방해로 불가하다는 것이 그 이유엿으나 사실 코펜하겐 주둔군들은 그냥 코펜하겐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 더 나을 만큼 이는 소모적인 작전이었다.
이런 무모한 작전들을 덴마크 참모들이 펼친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다만 그때문에 석유와 보급품이 바닥을 드러냇다는 것은 큰 골칫거리가 되었다. 또한 증원가능한 인력 역시 현저히 줄어들어, 덴마크 정부에 크나큰 위기가 찾아왔다.

서기 1941년 8월 17일. 정오
프랑스 항복 이후 1개월이 지난 지금 프랑스 진공작전에 투입된 사단들 중 해안방어용 사단을 제외하고, 공세용 사단들은 모두 뤼베크와 오덴세로 재배치되어 왔고 코펜하겐 진공작전을 개시했다.
병사들 사이에서는 영국의 스핏파이어 전투기도 격추시키는 독일군의 막강한 전투기나 슈투카 급강하 폭격기가 투입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고, 독일군의 티거 전차에 맞서 영국의 전차들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는 낭설조차 돌고 있엇다.
이는 덴마크군 사기저하의 커다란 요인이 되었으며 이 중 몇 가지는 현실로 다가왔다.

덴마크군은 부족한 보급에도 불구하고 요새, 해안요새, 도하 등을 이용해 열심히 싸웟으나 압도적인 병력차와 조직력의 차이는 극복하기 힘들어 보엿다.

1941년 8월 18일 16시.
정확히 하루 하고도 4시간만에 코펜하겐이 함락되었다. 총 25사단으로 이루어진 코펜하겐 방어사단들은 64사단이라는 막강한 독일사단들 앞에 아무 힘도 쓰지 못하고 괴멸되었으며 크릭스리마네의 해양봉쇄로 살아나간 군인은 단 한명도 없엇다.
대영제국 로얄네이비들이 덩케르크 호위작전에서 보여주었던 그 위용은 좁은 덴마크 해역에서 발휘되지 못했다.
추축군의 마수에 맞서 홀로 외로이 싸우던 북부유럽의 희망 덴마크는 이로서 독일군의 손에 들어갔다.
이는 단순히 요새9,해안요새 9라는 전술적 의미뿐만 아니라 독일 본토에 대한 직접적 타격은 상륙을 이용해서만 가능하다는 전략적 문제도 포함하고 있엇다.
(여기서부터는 스웨덴으로 옵저버 플레이 내용.)
처칠은 덴마크가 붕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하여 쓰러졋으며 노르웨이는 더 적극적인 지원을 보내지 못한 것을 한탄하였으나 크릭스리마네의 호위와 함께 독일군 사단들은 노르웨이에 상륙, 이로서 스칸디나비아 또한 폴란드의 운명과 같이 독일과 소련의 손에 갈라졋다.
단 하나 차이점이 있다면 중립국 스웨덴이었고 친독국가엿던 스웨덴은 추축에 가담하진 않앗으나 끝까지 독일을 지원하는 국가 중 하나엿다.
독일군은 42년 1월, 신년과 함께 바르바로사 진격을 시작했다. 소련군은 일순 당황했으나 겨울전쟁과 소련통합전쟁에서 새로이 경험을 쌓은 사령관들을 투입, 키예프 방어선에서 독일의 진격을 막아섯다.
독일군은 43년까지 키예프 라인-소련군 총사령관의 이름을 따 일명 주코프 라인-에서 교착상태에 빠져들었고, 구데리안의 돌파로 43년부터 모스크바를 향한 진격을 시작하게 된다.
(여기부터 소설~)
독일군이 소련을 향해 진격하는 동안 독일의 동맹 일본은 괌 폭격과 함께 태평양전쟁을 시작했다.
괌에 주둔중이던 1개사단이 괴멸되었고 이 소식을 들은 미국인들은 분노, 즉시 파시스트를 향한 응징을 가할 것을 결의했다.
43년 8월. 소련군이 쿠르스크에서 대승하고 스탈린그라드 부근에서 반격을 시작하는 동안 미군은 해병과 공수사단을 이용해 '오퍼레이션 오버로드'를 실행, 노르망디에 상륙한다.
44년 2월 프랑스를 수복한 미군은 소련방면에서 귀환한 독일군의 방어에 직면, 전선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 북부 독일에 새로이 상륙할 것을 생각한다.
이는 구 덴마크 지역이었던 알보그. 알보그에서 시작된 미군의 상륙은 일명 '오퍼레이션 코펜하겐'이었는데 작전명에 속은 독일군 첩보부의 보고로, 그들이 코펜하겐의 주둔군을 늘리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졋다.
북부 독일을 완전히 장악한 미군은 코펜하겐에 대한 해상봉쇄를 감행. 해병을 이용해 상륙하고 마침내 코펜하겐은 해방된다.
마지막엔 소설로 뜷리긴 했지만...3일만에 끝난 보고서입니다...으아 바르샤바와는 달리 코펜하겐은 베리이지로도 막기가 힘드네요.
역시 초반에 건축기술을 안올리고 딴걸 올린 대가랑, 사령부가 없엇고, 삽질작전, 교리 미연구의 타격이 컷는가요..
흐아....나중에 다시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뭐 그래도 9개월 가량 버텻지 않습니까? 헣핳헣헣허
첫댓글 크릭스마리네 아닌가요?
맞긴 한데 쓰다 보니 깨달았습니다. 고치기 귀찮으니 내비두죠(...)
중간에 보니까 뤼베크로 역공을 가하신건가요? 가만히 있으셔도 막기 힘드실텐데 역공을 ;;
솔직히 책보면서 하고있는데, 자꾸 삐 삐 거리는 소리가 들리드라구요. 알고보니까 키보드를 책이 누르고 있는데 그것때문에 키가 눌려서 뤼베크로 공격을 가하더라구요 ㅜㅜㅜㅜㅜㅜㅜㅜ. 그것 말고도 프랑스가 위기에 쳐했길레 병력분산을 위해 뤼베크를 건들여준적은 있습니다.
오오 ㅇ_ㅇb 훌륭한 실험이었음. 코펜하겐이 바르샤바보다 어려운 게, 일단 폴란드와 덴마크 국력차가 상당히 납니다. 공업력도 그렇고, 특히 병력. 36년 폴란드면 제대로 된 보병사단만 40개에 사령부까지 하나 있지요. 그래도 상당히 선전하셨네요.
폴란드야 뭐 시작시 주는 병력부터가 사기급이니까 ㄲㄲ
맘먹고..연구해서하면 잘하면..종전까지살아남을수있을듯요ㅎ 정말 재밌게 잘봤습니다ㅋ평지지형에서 강을끼고있긴하지만..정말힘드신일 잘하셧음ㅎ
군대가 너무 많아서 보급에 오히려 지장을 준듯 ㅋㅋㅋ
64개사단 앜ㅋㅋㅋㅋㅋ
포we섬멸 당하는 파스타 / ...지연전을 이제 와서; / 벨기에령 오를레앙
교리연구 늦은게 크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64개사단포위
차라리 천조국에게 지원요청을 했으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더 오래 버틸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조직력낭비가 원인인 듯.
에... 지금 42년 여름인데요... 독일이 코펜하겐은 공격할 생각도 안하네요.
오덴세에 짱박혀 있었으면 좋았을지도.
ㅎㄷㄷ.. 이건 뭐 정말 대단한 기적?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