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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一圓)은 우주 만유의 본원이며, 제불 제성의 심인이며, 일체 중생의 본성이며, 대소 유무(大小有無)에 분별이 없는 자리며, 생멸 거래에 변함이 없는 자리며, 선악 업보가 끊어진 자리며, 언어 명상(言語名相)이 돈공(頓空)한 자리로서 공적 영지(空寂靈知)의 광명을 따라 대소 유무에 분별이 나타나서 선악 업보에 차별이 생겨나며, 언어 명상이 완연하여 시방 삼계(十方三界)가 장중(掌中)에 한 구슬같이 드러나고, 진공 묘유의 조화는 우주 만유를 통하여 무시광겁(無始曠劫)에 은현 자재(隱顯自在)하는 것이 곧 일원상의 진리니라. |
[제2 교의편]
반갑습니다. 원불교 정전은 3편ㅡ제1 총서편, 제2 교의편, 제3 수행편ㅡ으로 구성돼있습니다. 지난 시간까지 정전의 제1 총서편을 다루었습니다. 제1 총서편에는 개교의 동기와 교법의 총설이 있었지요.
오늘부터는 제2 교의편을 다룹니다.
* 교(敎) : 종교교(宗敎), 가르칠교(訓迪), 도덕교(道德) 교의편 : 일정한 종지(宗旨)아래 만들어진 주축이 되는 종교의 모든 교리를 모아놓은 편. |
교의편에서 ‘교(敎)’는 종교를 의미하고, ‘의(意)’는 ‘뜻 의’입니다. ‘편(編)’은 한 부분으로 기록했다는 의미입니다. 즉, ‘교의편’은 원불교라는 종교 교리의 핵심을 다루는 부분입니다.
교의편은 제1장 일원상, 제2장 사은, 제3장 사요, 제4장 삼학, 제5장 팔조, 제6장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 제7장 사대강령으로 구성됩니다.
교리도를 생각해보시지요. (i)일원상이 가장 위에 있고, 중앙 위에 “일원은 법신불이니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이요, 일체중생의 본성이다”라고 나오고, 아래에 게송이 나오지요. 여기까지가 교의편의 제1장 일원상입니다. (ii)교리도 좌측에 ‘인과보응의 신앙문’으로 사은과 사요가 나옵니다. 이것이 교의편의 제2장 사은, 제3장 사요입니다. (iii)교리도 우측에 ‘진공묘유의 수행문’으로 삼학과 팔조가 나옵니다. 이것이 교의편 제4장, 제5장 팔조입니다. (iv)신앙문은 인생의 요도이고, 수행문은 공부의 요도입니다. 둘의 관계를 설명한 것이 제6장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입니다. (v)교리도의 네 모서리에 나오는 강령이 제7장 사대강령입니다. 사대강령은 교단의 목표를 교도가 아닌 일반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강령으로 내놓으신 것입니다.
원불교 정전은 이처럼 체계적으로 구성돼있습니다.
[원불교 교헌 ① 전문]
교의편을 열면서, <원불교 교헌>의 핵심 내용을 잠시 소개하고 싶습니다.
원불교 교헌(圓佛敎 敎憲) 전문(前文) 일원세계 건설의 기연에 응하여 원기 원년 4월 28일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으로 개교한 원불교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아래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를 종지로 하여 신앙과 수행을 병진하고 영과 육을 쌍전하며 이와 사를 병행함으로써 광대무량한 낙원세계 건설을 지향한다. 우리는 교조께서 구인제자와 더불어 저축조합을 설립하고 영산방언과 법인성사로 교단창립의 기본을 다져준 정신을 이어받아 교화·교육·자선의 삼대사업을 계승 발전시켜 제생의세의 사명 완수에 매진한다. 이에 재가·출가 전교도가 다 같이 주인이 되어 일원주의 사상에 입각하여 공화제도의 체제와 십인일단의 교화로 참 문명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원기 33년 4월 26일에 제정한 원불교 교헌을 4차 개정에 이어 원기 84년 11월 8일에 다시 개정한다. |
원불교는 1916년 4월 28일 대종사님께서 대각을 하시며 시작하게 됩니다. 개교표어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입니다. 원불교의 종지(종교의 핵심 교지)는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입니다.
원불교는 대종사님과 구인제자의 창립정신을 이어받습니다. 원불교 사업은 교화 · 교육 · 자선사업의 세 가지 사업을 합니다. 원불교의 사명은 제생. 의세입니다제생의세(濟生醫世)는 ‘살아 있는 생명들을 건지고, 가난 · 무지 · 질병 등 이 세상의 모든 병을 치료하자’는 뜻이지요.
원불교는 재가 · 출가가 다 같이 주인이 되는 종교입니다. 원불교 사상은 일원주의 사상입니다. 원불교의 체제는 공화주의입니다. 일종의 민주주의라 보시면 됩니다.것도 교화의 제도는 십인일단입니다. 단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여러분들께서, 법문을 영상으로 보는 좋지만, 각 교당에 출석해서 법회보고 단장 중앙과 함께 단회를 보는 것이 더욱 좋습니다. 원불교 교화는 단에서 이루어지니까요. 원불교의 목적은 참 문명세계, 즉 낙원세계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원불교 교헌 ② 종지와 목적]
제1장 총강(總綱) 제1절 종지(宗旨)와 목적 제1조(종지) 원불교(이하 본교라 칭한다)는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이며 일체중생의 본성인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를 종지로 한다. 제2조(목적) 본교는 전조의 종지 아래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일체중생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함을 목적으로 한다 |
[원불교 교헌 ③ 교의]
제2절 교의(敎儀) 제3조(신앙의 대상) 본교는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한다. 제4조(연원불) 본교는 석가모니불을 연원불로 한다. 제5조(교조) 본교의 교조는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이다. 제6조(법계) ①법계는 소태산 대종사로부터 비롯된다. 제7조(의식) ①본교의 의식은 진리와 사실에 근거한다. |
법신불 일원상은 신앙의 대상이면서 수행의 표본입니다. 원불교의 연원은 서가모니 부처님입니다. 원불교의 교조는 대종사님입니다. 원불교는 단전(單傳)이 아니라 공전(公傳)입니다.
원불교에서 1대는 3회로 구성됩니다. 1회는 12년씩입니다. 3회로 1대가 되면 36년이지요. 지금 원기 102년이니까, 원불교 3대 3회에 해당하지요. 원불교 인사이동이나 종법사 선거도 1대, 1회와 맞추다보니, 6년 단위로 이루어집니다.
[원불교 교헌 ③ 교헌]
제3절 교화(敎化) 제8조(교전) 본교는 정전과 대종경을 교전으로 하고 그 밖의 교서를 편정(編定)하여 이를 전수(專修)하게 한다. 제9조(교역자) 본교는 출가 · 재가의 남녀 교역자를 양성하여 교화와 사업을 담당하게 한다. 제10조(교당) 본교는 대중교화의 장소로써 교도와 인구의 집중지에 교당을 설치하고 교도의 일상 생활에 응하도록 한다. 제11조(훈련) 본교는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으로 훈련을 실시한다. 제12조(교화단) 본교는 십인일단의 교화단을 조직하여 교화와 통치의 원활을 기한다. 제13조(영육쌍전) 본교는 교도로 하여금 신앙과 수행을 병진하고 직업에 근실하여 영과 육을 쌍전하게 한다. |
원불교의 훈련은 정기훈련과 상시훈련을 병행하는 것입니다. 원불교 교화단은 십인일단으로 조직하여 교화와 통치의 원활을 기합니다. 즉, 교화단은 교화를 하는 단이면서 통치를 위한 단이기도 합니다. 종법사님이 전체 단의 단장이고, 그 아래로 수위단이 있습니다. 수위단원들 아래에 단이 또 있지요. 한 지도인(종법사)으로부터 아래로 통치가 이루어질 수 있고, 아래에서는 종법사님에 이르기까지 의견이 올라갈 수 있는 구조로 단이 조직되어 있습니다. 안암교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도님들 여러분들에게 각각 단장이 있는데, 단장들로 구성된 단회에서 단장은 주임교무입니다. 교무들 사이의 출가단 단회에서 지구장님이 단장입니다. 지구장님들로 구성된 단회에서는 교구장님이 단장입니다. 교구장님이 수위단원이면, 수위단회에서 단장은 종법사님인 것이지요. 원불교 조직이 이처럼 기가 막힌 짜임새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불교 교법은 전무후무한 법]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정산종사법어 기연편 11장 내용을 소개합니다.
정산종사법어 제1 기연편 제11장 |
말씀하시기를 |
정산종사님께서 원불교의 법은 전무후무하다고 하셨습니다. 과거에 이런 교법이 나온 적 없고, 앞으로도 이런 교법이 나오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원불교 교법이 전무후무한 까닭에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신앙과 수행이 맞물리게 하신 것입니다. 신앙 따로 수행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나도 일원상 신앙의 대상이고, 내가 만나는 대상 모두가 일원상 신앙의 대상이며, 일원상 그 자체가 수행의 모델입니다. 과거의 종교 중에 신앙과 수행을 원리적으로 합쳐 놓은 것이 없지요. 그래서 원불교 교법이 전무후무합니다.
둘째, 사은을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대종사님께서 주세불이라고 불리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과 우주 사이의 윤리를 뚫어주신 게 사은 신앙입니다. 과거에는 보이지 않는 하늘에 계신 존재만 신앙하고, 하늘에 계신 분에게 죄복을 주는 위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원불교 사은 신앙은 나와 우주만유의 관계가 둘이 아니면서 신앙의 대상이라는 것을 밝혔습니다. 내가 만나는 모든 대상이 죄복을 주는 위력이 있는 당처입니다. 내 눈 앞에 있는 그 사람이 신앙의 대상이고 불공의 대상입니다. 내 눈 앞의 그 사람에게 불공을 하면 나에게 복이 오고, 그 사람을 화 나게 만들면 보복이 옵니다. 신앙의 대상을 따로 구할 것이 아니라, 내 눈 앞의 대상이 신앙의 대상인 것입니다. 자연까지도 그렇습니다. 서양의 종교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 탐험의 대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은 신앙에서 보기에는, 없어서는 살 수 없는 은혜를 주는 것이 자연이고, 그 자연에 내가 불공을 하면 그 자연에서 복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주자연에 대해서 함부로 대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을 할 대상이고 정성스럽게 보은하고 불공할 대상이지요. 과거 종교에서는 절에 가서 불상 앞에 가서 공손히 인사해놓고는, 막상 절 밖에 나와서 진짜 부처님에게 화내는 경우가 있었지요. 그러나 대종사께서는 사은 신앙으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우주 사이의 윤리를 다 터주셨습니다. 역대 성자 중에 이렇게 다 터 주신 분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종사께서 전무후무한 주세불이신 것이지요.
셋째, 인도상 요법으로 주체를 삼으신 것입니다. 과거에는 어두운 시대였기 때문에 종교가에서 방편으로 장엄이나 미신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대종사께서는 인도상 요법을 주체로 삼으셨습니다. 우주만유 중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존재는 사람입니다. 우주만유가 다 소중한 부처님이지만 그 중 가장 최령한 게 사람이거든요. 사람이 들어서 자연도 보호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대종사께서는 인도상 요법으로 주체 삼아 합리적이고 사실적이면서 진리적인 교법을 사람들이 공부하게 함으로써 일체생령이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일원상’의 뜻]
이제 본문을 보겠습니다. 제2 교의편 제1장 일원상입니다. ‘일원상’ 용어의 뜻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제1장 일원상(一圓相)
* 일(一) : 하나일, 순일할일, 오로지일, 전부일, 같을일. 절대유일(絶對唯一), 온전할 일 원(圓) : 둥글원, 원만할원, 둘레원, 온전원. 상(相) : 바탕상(質), 서로상(共也), 볼상(視也. 마음의 형상, 모양), 무형지상(無形之相) 일원(一圓) :우주 만유의 궁극적 진리, 일원상(一圓相), 원상(圓相)등으로 표현하기도 함. 일원상(一圓相): 대종사님께서 대각하신 지혜로 보신 진리의 사진모습. 대종사님께서 보신 진리의 모습을 형상으로 표시(상징)한 심볼(symbol).
* 이명(異名) : 법신불(法身佛), 진여(眞如), 여래(如來), 하나님(둘이 아니라 하나), 무극(無極), 상제(上帝), 법왕(法王), 심군(心君), 본심(本心), 천지모(天地母).... |
일원상에서 ‘일(一)’은 ‘하나 일’자죠. 여기서 하나는 전체, 전부, ‘같다’, ‘온전하다’, ‘순일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숫자 1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유일을 의미합니다. 전체가 하나라는 의미의 1입니다.
일원상에서 ‘원(圓)’은 ‘둥글 원’이라 해석할 수도 있지만 ‘원만할 원’이라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원만구족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원만구족 중 원만의 형태는 심대광심이고, 내용은 진공(眞空)입니다. 원만구족 중 구족은 묘유이고 지혜이며, 불가에서 말하는 ‘연기(緣起)’입니다. 원만구족은 텅 빈 가운데 꽉 차서 순간순간 기막히게 생생약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없는 가운데 있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제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원 자리가 듣고 있거든요. 지금 제 이야기를 듣고 아는 것 자체가 진공이면서 묘유입니다. ‘무엇이 있어서 듣느냐’라고 찾자면, ‘듣고 있는 무엇’이란 게 없지만, 훤히 듣고 아시잖아요. 신기하게도요. 이것이 ‘원’입니다.
일원상에서 ‘상(相)’은 ‘바탕 상’, ‘모양 상’이라 해석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상’은 형상 없는 가운데 형상을 의미합니다. ‘무형지상’이라 하지요.
대종사께서 깨친 그 자리를 딱 사진 찍듯이 찍으면 일원상이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원만구족 지공무사해서 빠진 것이 없습니다.
원기 4년(1919년) 8월 김제 금산사에서 일원상을 그림으로 그려보신 첫 구상의 표현 조선 최대의 등상불 미륵불을 수호하는 노전에서 대종사는 우주 만유의 본원을 체득한 심경을 일원상으로 그려 보였다. 재래 불교 신자들과 조선 토속 신앙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증산교도들이 우러러 받들어 마지않는 미륵대불을 지키는 노전 송대에서 (거처하시던 별채 문미(門楣)에) 대종사가 부처님의 성품인 심불 일원상을 그려 보인 것은 등상불 신앙과 기복 불공으로 굳어버린 재래 불교의 신앙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새로운 진리적 종교의 탄생 - 심불 일원상을 알린 것이라 할 수 있다. |
대종사께서 깨치셨을 때 일원상을 보셨지만, 그리신 것은 원기 4년의 일입니다. 그후 익산에 오신 뒤,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 수행의 표본으로 모시게 되었죠.
일원상의 표기 (교의품 6장) 저 원상은 참 일원을 알리기 위한 한 표본이라, 비하건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킴에 손가락이 참 달은 아닌 것과 같나니라. |
일원상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습니다. 손가락이 참은 아니지만 손가락이 있지 않으면 그 달이 어디 있는지 모르죠. 참 일원자리를 알려주기 위해서 표시해놓은 사진과 같은 것이 바로 일원상입니다.
[대산종사의 설명]
대산종사님 설명을 보겠습니다.
대산 3집 – 제2편 교법 – 5. 일원상은 종교의 통합체 |
대산 3집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이 법신불 일원상〔○〕이다. 이 원상(圓相)은 모든 종교의 통합체이다. 이 원상의 진리를 깨달아서 실천에 옮기면 바로 생불이요 하나님이다. 일념미생전 (一念未生前)을 발굴해서 활용하면 부처가 된다. 그 자리는 진여(眞如)요, 하나님이요, 무극(無極)이요, 심불(心佛)이다. 또한 제불제성의 정전심인(正傳心印)이요, 우주만유의 어머니시다. 마음의 고향이요, 만물의 고향이며 무궁한 묘리, 무궁조화, 무궁한 보물이 가득 갊아 있는 곳으로, 삼라만상을 냈다 들였다 하는 원동력이나, 이는 깬 사람의 보물이요 지키는 사람의 물건이며 잘 쓰는 사람이 주인이다.
그러므로 이 원상의 진리는 끝까지 구하면 얻어 지고, 진심으로 원하면 이루어 지고, 정성껏 노력하면 되어진다.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진리도 양보하고 맡긴다.』 |
원상은 ‘신앙의 대상’이면서 ‘수행의 표본’이라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일원상을 볼 때 신앙의 대상으로 보기도 하셔야 하지만, 수행의 표본으로 보기도 하셔야 합니다. 저는 설법 전에 일원상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을 합니다. ‘법신불 사은님, 제가 오늘 정성으로 설법하겠습니다’라고 생각하고, ‘제가 오늘 일원상의 마음으로 하겠습니다’라고 생각하며 각오를 다집니다. 여러분께서도 집에 일원상 봉안하셨을텐데, 기도할 때는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야하지만, 외출하기 전 일원상을 보면서는 ‘오늘 내가 일원상의 마음으로 쓰겠습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일원상입니다’라고 다짐하는 생각을 하셔야합니다.
대산종사께서 ‘이 원상의 진리는 끝까지 구하면 얻어지고, 진심으로 원하면 이루어지고, 정성껏 노력하면 되어진다.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진리도 양보하고 맡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산종사께서 ‘’끝까지 구하면 얻진다‘는 말씀을 왜 하셨을까 생각해보니 사람들이 참 끝까지 잘 안해서인 것 같아요. 시작할 때는 끝까지 하겠다 말해놓고는 중간에 핑계가 나오거든요. 그러나 일원상 진리를 얻은 사람들은 끝까지 한 사람들이에요. 일원상 진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핑계대며 중간에 그만 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이런저런 핑계댈 때마다, 저는 ‘자기 혼자에게만 그런 사유가 있나’ 싶어요 ‘대종사님은 밥도 안 먹고 살았고 처자식도 없었나’ 싶거든요. 물론 어려운 상황이 오면 잠깐 멈출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아예 그만둘 이유는 없거든요.
대산종사께서 ‘진심으로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서원을 세운 뒤 반조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서원은 계속 반조해야하거든요. 서원이 없는 사람이 서원을 세우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서원을 세운 뒤 계속 반조하고 또 반조하는 것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서운 힘이 나옵니다.
대산종사께서 ‘정성껏 노력하면 되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성은 간단이 없는 것입니다. 끊어짐이 없는 것이지요.
대산종사께서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진리도 양보하고 맡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산종사께서 ‘견성은 꾸어서라도 해라’고 말씀하셨어요.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하려고 하는 사람은 예쁘지요. 진리도 같습니다. 하려고 하면 진리도 도와줍니다.
여러분께서 ‘이 원상의 진리를 진심으로 원하는가, 정성을 들이는가, 끝까지 구하려고 다짐하는가’ 반조해보십시오. 이 원상의 진리를 구하려다가 그만두는 사람은 자기합리화를 하며 핑계를 대거나, ‘진리를 얻은 사람은 나와 다르다. 저 사람 나보다 머리가 좋다. 저 사람은 나보다 건강하다’ 등 핑계를 대지요.
[일원상과 대소유무]
정산종사법어 제6경의편 제36장 |
..[성인은 반드시 우주의 진리를 응하여 인간의 법도를 제정하시나니, 우리 법으로 말씀하면 일원상의 종지는 대자리를 응하여 건설된 법이요, 사은의 내역들은 소자리를 응하여 건설된 법이요, 인과와 계율 등 모든 법은 유무자리를 응하여 건설된 법인 바, 성인의 법은 어느 법이나 이치에 위반됨이 없이 시비이해가 분명하게 짜여 지나니라. 또는 이를 개인 공부에 운용하는 방법으로는 항상 일원의 체성을 체받아서 일심 즉 선(禪)을 잘 닦으라 하신 것은 대를 운용하는 법이요, 사사 처처에 보은 불공하는 도를 잘 알아 행하라 하신 것은 소를 운용하는 법이요, 유무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유무를 따라 마음을 활용하며 변천의 도를 알아 미리 준비하여 사업을 성공하게 하신 것은 유무를 운용하는 법이니라.] |
일원상을 대소유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나타난 바가 대/소/유무입니다. 일원상의 종지는 대 자리입니다. 사은은 소 자리입니다. 대의 나타남, 대의 실재이지요. 유무 자리는 없어졌다 있어졌다하며 변화하는 것인데, 인과나 계율이 유무 자리에 따라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할 때는 대 자리에 합일합니다. 사은 당처에 불공하는 것은 소를 운용하는 것입니다. 변화를 알아 미리 준비하거나 기다리는 것이 변/불변의 유무 자리를 운용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사진]
정산종사님 말씀 보시지요.
정산종사법어 제5원리편 제6장 |
말씀하시기를 [사람도 보지 못한 사람을 이름으로만 있다고 일러주면 허허해서 알기가 어려우나 사진으로 보여 주면 더 절실히 알게 되는 것 같이 대종사께서는 일원상으로 진리 그 당체의 사진을 직접 보여 주셨으므로 학인들이 그 지경을 더우잡기가 훨씬 편리하게 되었나니라. 일원상은 곧 진리 전체의 사진이니, 이 진리의 사진으로써 연구의 대상을 삼고 정성을 쌓으면 누구나 참 진리 자리를 쉽게 터득할지라, 대종사께서 "과거 회상은 일여래 천보살 시대였으나 앞으로는 천여래 만보살이 출현하리라"하셨나니라.] |
대종사님께서는 진리가 있다고 말씀만 하신 게 아니라, 진리가 이렇다고 사진으로 보여주신 것이 일원상입니다. 과거에는 신앙의 대상이 진리 당처가 아니었지만, 이제 원불교에서는 진리 사진 자체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으로 표본으로 모셨습니다. 과거 불교에서는 서가모니 부처님 한 분만 부처님인 일여래 천보살 시대였지만, 이제는 천여래 만보살, 즉 여래가 몇 천 명이고 보살이 몇 만 명인 시대입니다. 시대가 밝아졌고, 대종사께서 바뀐 시대에 맞게 교법을 제대로 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진리]
* 진(眞) : 참진(僞之反), 진설로진(實也), 바를진(正也), 근본진(原質), 신령진(神也), 정할진(精也), 하늘진(天眞), 순박할진(淳也), 리(理) : 이치리(理致), 성품리(性也), 도리리(道也), 바를리(正也) |
일원상의 진리에서 진리(眞理0는 ‘참 진’, ‘이치 리’입니다. ‘참 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참인 것입니다. 진리는 고금을 통하여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100년 전에는 진리였는데 100년 후에는 진리가 아니라고 친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지요. 천 년 전에도 만 년 후에도 진리여야, 진리이지요. ‘이치 리’는 성품이고, 도리이고, 바른 것입니다.
[일원=법신불]
* 법신불(法身佛) :진리 부처님. 법신불은 인격불이 아니고 진리불의 의미이다. 불교에서는 법신을 체성적인 의미로 보나, 원불교에서는 체성적인 의미와 작용적인 의미까지도 포함한다. |
일원은 법신불입니다. ‘법신불(法身佛)’은 ‘법의 몸인 부처님’이지요. 인격 부처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도 불교가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법신/보신/화신ㅡ삼신불 사상이 생겨났습니다. 청정법신불, 원만보신불, 백억화신불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원은 법신불이니’라 할 때의 법신불은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을 포함한 의미의 법신불을 의미합니다.
[대산종사의 일원상에 대한 설명]
대산종사께서 일원상에 대해 설명하신 내용을 보겠습니다.
대산 - 정전대의 사은의 본원(四恩之本源) = 우주 만유의 본원(本源) 여래의 불성(如來之佛性) = 제불제성의심인(心印), 일체중생의본성(本性)=제불조사 범부중생의 성품 o 무생법인(無生法印) o 삼세제불의 도본(圖本), 천만경전의 근원 o 대적광전(大寂光殿) = 공적영지의 광명(空寂靈知光明) o 무진장의 보고(無盡藏寶庫) o 복혜의 원천(福慧源泉) o 일념미생전 소식(一念未生前消息) 부모출생전 소식(父母出生前消息) 천지미분전 소식(天地未分前消息) o 불여만법위려자(不與萬法爲侶者) o 법신불(法身佛) = 공(空) 보신불(報身佛) = 원(圓) 화신불(化身佛) = 정(正) * 심불(心佛), 대소유무(大小有無), 원만구족 지공무사(圓滿具足 至公無私) |
일원상을 ‘무생법인(無生法印)’이라 하셨습니다. ‘법인(法印)’ㅡ법의 도장이, ‘무생(無生)’ㅡ생긴 바 없다는 뜻, 즉, 생긴 바 없는 불생불멸의 법인 자리를 의미합니다. 법인 자리는 곧 심인 자리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아침에 기분 좋았다가 낮에는 화났다가 하며 마음이 막 생겨지는 것은 유생입니다. 그러나 생겨나는 온갖 마음의 바탕에는 성품이라는 무생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일원상을 ‘삼세제불의 도본’이라 하셨습니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진리를 그린다면 일원상으로 그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원불교만 일원상을 그린 게 아니에요. 과거 불가에서도 일원상을 그리신 스승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원상은 ‘천만경전의 근원’이라 하셨습니다. 천만 경전이 일원상에서 나왔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자리도 일원상이고, 부처님의 천만 법문이 나온 곳이 일원상입니다.
일원상은 ‘대적광전(大寂光殿)’이라 하셨습니다. ‘대’는 ‘크다’는 의미라기보다는, 큰 것을 넘어서서 ‘전체’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적’은 고요함인데, 사가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광’은 연기이고 묘유입니다. ‘적광’은 고요한 가운데 아는 것, 즉 공적영지입니다. 적광 중에서 대적광이 일원상 자리입니다. 법위등급에서 보자면, 여래위는 대적광이고, 출가위는 중적광이고, 항마위는 소적광 정도이지요. 항마위가 안 된 사람들은 유생 자리에서만 사는 것이지요. 그러나 불보살들은 적광의 심법으로 살아갑니다. 그 자리가 일원상 자리입니다.
일원상을 ‘무진장의 보고’라 하였습니다. 내 안에 있는 무진장의 보고를 찾아서 쓰면 됩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무진장의 보고를 가진 줄을 모르고, 밖으로만 보물을 찾아다녀요.
일원상을 ‘복혜의 원천’이라 하셨습니다. 복과 혜가 일원상에서 나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복과 혜가 참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일원상을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 소식’이라 하셨습니다. ‘한 생각 이전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대적광에서 ‘광’은 훤히 아는 것을 의미하는데, ‘적’을 떠나지 않고 환한 것이 ‘적광’이지요. ‘묵조선’ 용어로 보자면, ‘묵’은 ‘적’이고, ‘조’는 ‘광’입니다. ‘일념미생전 소식’ 대신 ‘부모출생전 소식’, ‘천지미분전 소식’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일원상은 ‘불여만법위려자(不如萬法爲慮者)’라 하셨습니다.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중생은 만법과 더불어 짝하고 살아요. 흑과 백, 선과 악, 진급과 강급, 좋음과 나쁨, 빈과 부 ㅡ 상대의 세계에서 살지요. 그런 상대의 세계를 포함하면서도 그 상대의 자리에 더 들어가보니,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자리가 있다는 것이지요. 참 마음 자리에는 ‘이것’이다 할 게 없습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어야 하니까요. ‘이것’이다 할 수 없는 자리가 있는 것이지요. 그것이 한 생각 이전 자리(일념미생전), 부모로부터 몸 받기 이전 자리(부모출생전), 천지가 생기기도 전의 자리(천지미분전)입니다.
일원상을 ‘심불(心佛0’이라 하셨습니다. ‘마음 부처님’이라는 뜻이지요. 일원상을 ‘대소유무’라고 하셨고, ‘원만구족 지공무사’라 하셨습니다.
[신앙의 대상 – 수행의 표본]
일원상은 외적으로 천지/부모/동포/법률의 위력이 있습니다. 내적으로 공/원/정의 속성이 있습니다. 아래 표에 대해서 이미 설명한 바 있는데, 다시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원불교는 이처럼 진리 신앙과 사실 수행이 맞물려 있지요.
신앙의 대상 | 수행의 표본(標本) | ||||||||||||||||||
사은(우주만유)의 본원 = 리(理致) 인과보응 = 음양상승(陰陽相勝) 타력(他力) = 외적 위력(4가지)
체(體) : 사은(四恩) 용(用) : 사요(四要) | 여래의 불성, 제불조사 범부중생의 성품=성(體性) 불생불멸 = 진공묘유(眞空妙有) 자력(自力) = 내적 속성(체성)(3가지)
체(體) : 삼학(三學) 용(用) : 팔조(八條) | ||||||||||||||||||
진리 신앙 | 사실 수행(훈련) | ||||||||||||||||||
처처불상, 사사불공 | 무시선 무처선 | ||||||||||||||||||
원심력 | 구심력 | ||||||||||||||||||
정답게 | 법있게 | ||||||||||||||||||
지공무사 | 원만구족 | ||||||||||||||||||
인생의 요도 (약재) | 공부의 요도 (의술) | ||||||||||||||||||
대타 불공 (위하고) | 자기인격 관리 (가꾸고) | ||||||||||||||||||
은혜 | 진급 | ||||||||||||||||||
위력을 얻고 | 체성에 합일 | ||||||||||||||||||
덕(德) = 공(公) | 도(道) = 공(空) | ||||||||||||||||||
빈부- 행복(幸福)·복락 | 귀천- 지혜(智慧) |
[불상과 일원상 숭배의 관계 – 형체와 심체]
대종경 제2교의품 10장 |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
불상 숭배와 일원상 숭배의 차이를 보지요. 사은님, 즉 내가 만나는 대상 모두가 나와 죄를 주고 받는다는 것을 신앙하는 것이 일원상 숭배입니다. 불상 숭배는 형체를 신앙하는 것이지요.
[서가모니 부처님과의 관계]
일원상과 서가모니 부처님 사이의 관계를 보겠습니다.
대종경 제2교의품 11장 |
또 여쭙기를 [일원상과 서가모니 불과의 관계는 어떠하오니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일원은 곧 모든 진리의 근원이요, 서가모니 불은 이 진리를 깨치사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스승님이시니, 비록 이 세상에 아무리 좋은 진리가 있다 할지라도 그를 발견하여 가르쳐 주시는 분이 없다면 그 진리가 우리에게 활용되지 못할 것이요, 비록 서가모니 불이 이 세상에 나오셨다 할지라도 이 세상에 일원상의 진리가 없었다면 서가모니 불이 되실 수도 없고, 또는 사십 구년 동안 설법하실 자료도 없었을지라, 그러므로 우리는 법신불 일원상을 진리의 상징으로 하고 서가모니 불을 본사로 하여 법신 여래(法身如來)와 색신 여래(色身如來)를 같이 숭배하노라. 그러나, 이것은 일원상과 서가모니 불을 구별하여 보는 자리에서 하는 말이요 만일 구별 없는 진리 자리에서 본다면 일원상과 서가모니 불이 둘이 아님을 또한 알아야 하리라.] |
서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일원상 진리를 깨치셨고 일원상 진리를 설법하신 분입니다. 법신의 진리를 숭배하는 신앙과 서가모니 부처님이라는 색신여래를 숭배하는 신앙은 사실 둘이 아니지만, 원불교는 법신을 주로 모신 것이고, 불교는 색신을 주로 모신 것이지요.
[불상 숭배와 일원상 숭배]
대종경 제2교의품 12장 |
한 제자 여쭙기를 [불상 숭배와 일원상 숭배의 다른 점은 어떠하옵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불상 숭배는 부처님의 인격에 국한하여 후래 제자로서 그 부처님을 추모 존숭하는 데에 뜻이 있을 뿐이나, 일원상 숭배는 그 뜻이 실로 넓고 크나니, 부처님의 인격만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는 것보다 우주 만유 전체를 다 부처님으로 모시고 신앙하여 모든 죄복과 고락의 근본을 우주 만유 전체 가운데에 구하게 되며, 또는 이를 직접 수행의 표본으로 하여 일원상과 같이 원만한 인격을 양성하자는 것이니, 그 다른 점이 대개 이러하나니라.] |
[법신불 일원상을 모시기로 한 이유]
원불교에서 일원상을 모시기로 한 이유를 보겠습니다.
대종경 제2교의품 13장 |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불상을 숭배하는 것이 교화 발전에 혹 필요가 있기도 하였으나 현재로부터 미래를 생각하면 그렇지 못할 것이 사실이니, 사람들이 저 불상을 수 천년이나 모셔 보았으므로 이제는 점차 그 위력에 대한 각성이 생겨날 것이요, 각성이 생겨난다면 무상 대도의 이치는 알지 못하고 다만 그 한 방편만 허무하다 하여 믿지 않게 될 것이라 어찌 발전에 장해가 없을 것이며, 또는 존엄하신 불상을 한갓 각자의 생활 도모하는 수단으로 모시는 사람도 적지 아니할 것이니 어찌 유감스럽지 아니하리요. 그러므로, 우리는 법신불 일원상을 모시기로 한 것이니라.] |
이제 인지가 밝아져서 법신불 사은으로부터 위력이 온다는 각성이 생겨났으므로, 진리 당처를 심체로 모셔도 될 때가 되었습니다.
[법신불 조성 및 불단]
예전에 나오는 법신불을 조성하고 가정에서 불단을 설치하는 방법에 관한 내용을 보겠습니다.
예전 - 제3교례편 - 제2장 봉불 - 2. 법신불 조성 및 불단 |
1. 법신불 일원상은 제재(製材)·척법·색채 등을 법(敎規)에 맞도록 신성하게 조성할 것이요 2. 법신불 일원상을 봉안하는 법당(法堂)은 [대각전]이라 하며, 개인 가정의 봉안 처소는 다만 [불단]이라고 통칭할 것이요 3. 대각전은 될 수 있는대로 구내의 가장 신성한 위치에 있어서 일상 거소와 서로 혼잡됨이 없게 하며, 초창기의 교당에서 따로 건축을 못하는 경우에는 혹 임시로 통용할 수도 있으나 항상 정결과 정숙에 주의 할 것이요 4. 개인 가정의 불단은 가옥안의 제일 정결한 곳에 설치하되, 가옥을 신축할 때에는 될 수 있는대로 불단을 미리 설계에 넣어 할 것이요 5. 대각전이나 개인 가정을 막론하고 불단은 그 실내의 정면 중앙에 위치 하도록 할 것이니라. |
[일원상의 활용]
우리가 일원상을 왜 모셔야할까요.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대한다면, 일원상을 볼 때마다 마음이 챙겨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원상은 아래 세 가지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대종경 제2교의품 8장 |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현묘한 진리를 깨치려 하는 것은 그 진리를 실생활에 활용하고자 함이니 만일 활용하지 못하고 그대로 둔다면 이는 쓸 데 없는 일이라, 이제 법신불 일원상을 실생활에 부합시켜 말해 주리라. 첫째는 일원상을 대할 때마다 견성 성불하는 화두(話頭)를 삼을 것이요, 둘째는 일상 생활에 일원상과 같이 원만하게 수행하여 나아가는 표본을 삼을 것이며, 세째는 이 우주 만유 전체가 죄복을 직접 내려주는 사실적 권능이 있는 것을 알아서 진리 적으로 믿어 나아가는 대상을 삼을 것이니, 이러한 진리를 아는 사람은 일원상을 대할 때마다 마치 부모의 사진 같이 숭배될 것이니라.] |
[일원상이 없다면]
정산종사법어 제2예도편 3장 |
또 묻기를 [모든 의식이 매양 일원상을 대상으로 하여 거행되는데, 만일 일원상을 봉안하지 못한 장소에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오리까.] 답하시기를 [예를 행하는 이의 마음에 일원상을 대상으로 하면 유상(有相) 무상(無相)이 다 일원상의 진리이며 상하 팔방이 다 법신불의 전신이 되므로 그 마음을 따라 감응하지 않는 곳이 없나니라.] |
[봉불의 의미]
* 봉불(奉佛)의 의의 (심불봉안 心佛奉安) 봉불은 곧 시불(侍佛)이니 시불을 하는 것은 생불(生佛)이 되자는 것이며, 생불은 다시 활불(活佛)이 되자는 것이다. |
일원상을 모신 것의 의미는 첫째 시불(侍佛)입니다. 가장 큰 어른을 집에 모셨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른을 안 모시면 영혼이 매해지거든요. 일원상이 가장 큰 어른입니다. 어른을 모셔서, 둘째, 내가 생불이 되자는 것입니다. 생불이 되어서, 셋째, 활불로 써먹자는 것이지요. 일원상을 모시는 이유느, 신앙의 대상으로서 시불을 하면서, 수행의 표본으로서 생불이 되고 활불이 되자는 의미입니다.
[견성하자는 뜻]
견성하자는 뜻을 참고하십시오.
진여(眞如) - 계합(契合) | 무극(無極) - 복귀(復歸) |
여래(如來) - 응현(應現) | 진리(眞理) - 생존(生存) |
일원(一圓) - 합일(合一) | 생사(해-海) - 초월(超越) |
법신(法身-淸淨) - 반환(返還) (본성반환, 주인공 상면) | 인과(승-繩) - 해결(解結) |
사생동체(四生同體) - 시방오가(十方吾家) 오가(吾家)의 소유로 만들자는 것이다. |
[일원의 주소]
이제 ‘일원상의 진리’ 본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일원(一圓)은 우주 만유의 본원이며, 제불 제성의 심인이며, 일체 중생의 본성이며, |
일원은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제불제성의 심인’이며 ‘일체중생의 본성’이라 하셨는데, 이 세 가지는 일원의 주소이고, 고향이고, 내역입니다. 세 가지가 같은 것인데, 우주 측면에서 ‘본원(本源0’이라 표현하고, 심성 측면에서는 ‘심인’과 ‘본성’이라 달리 표현한 것입니다.
[일원의 주소 ① 우주만유의 본원]
* 宇:천지사방우(天地四方). 宙:고금주(往古來今). 萬:많을만. 有:있을유 우주만유 : 우주안에 있는 온갖 사물, 우주 만물·삼라만상·유정·무정, 동물·식물·광물 등 일체 우주만유 = 법신불 일원상= 천지만물 허공법계 = 사은 = 처처불상 = 견성(見性)
* 본원(本源): 근본본. 근원원. 근원, 시초(始初), 고향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 현상, 이치의 근원이며 실재·전체. (同氣連契) * 진리와 우리와의 관계를 알 수 있다.(위력과 인과에 대한 信仰의 필요) |
‘우주만유의 본원’ 중 ‘우주(宇宙)’에서 ‘우’는 공간을 의미하고, ‘주’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만유(萬有0’에서 ‘만’은 ‘일만 만’이라기 보다는 ‘많을 만’이라 해석하면 됩니다. ‘우주만유’는 우주에 가득 차있는 온간 사물들을 의미하지요.
대종사님이 일원상 진리에 대한 답을 이미 주셨어요. 일원은 법신불이라고요. 일원은 곧 우주만유입니다. 우주만유를 둘로 나누면 천지만물/허공법계입니다. 넷으로 나누면 천지/부모/동포/다 법률입니다. 결국, 유형, 무형 전체가 다 일원이라는 말입니다. 진리 아님이 없습니다.
과거에는 ‘진리’라고 말하면 보이지 않는 저 위의 세계를 상상했습니다. 그게 아니라, 나도 진리이고, 여러분도 진리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전부에게 위력이 있어요. 아무리 하찮아 보여도 화가 나면 무섭습니다. 함부로 대할 대상은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모두가 부처인 것입니다.
‘우주만유의 본원’ 중 ‘본원’은 ‘근본 본’, ‘근본 원’입니다. ‘본원(本源)’은 근원이고, 시초이며, 고향입니다. 그런데 ‘우주만유의 본원’이라고 말하면, ‘우주만유’가 따로 있고 ‘우주만유의 본원’이 따로 있다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둘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우주만유가 곧 본원입니다. 근원이 곧 실재입니다. 우주만유를 압축해서 표현하자니 ‘본원’이라 표현하였을 뿐입니다.
‘우주만유의 본원’을 알 것 같으면 나와 우주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나도 우주만유의 본원이고 내가 만나는 천지만물 허공법계 모든 대상도 우주만유의 본원입니다. 즉, 일원상입니다. 나도 신앙의 대상이 되고, 다른 모든 대상도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이지요.
‘신앙(信仰0’이라 말하면, 눈에 안 보이는 대상, 법당에 있는 부처가 신앙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나는 모든 대상, 우주만유가 곧 일원상이거든요. 신앙의 대상에 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지요. 일원상 신앙이 쉬운 것은 아니지요.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 대해 신앙하기는 쉬어도, 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게 신앙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만 신앙하는 것은 진짜 신앙이 아닙니다. 예쁘고 착하고 곱고 맑은 것만 신앙의 대상이 아니거든요. 똥도 부처님입니다. 예쁘게 핀 꽃만 부처가 아닙니다. 꽃이 피기 전 새싹이 나오는 것도 부처요, 목련이 추하게 진 모습도 부처입니다.
[일원의 주소 ② 제불제성의 심인]
* 제불(諸佛):모든제. 깨달을불. =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 제성(諸聖):모든제. 성인성 = 시방삼세의 모든 성인 * 심인(心印):마음심, 불심. 찍을인,인가 또는 인증. 모든 부처님과 성자들이 마음으로 전하는 공통된 깨달음의 경지. 깨달은 자리. 비고(空) ·밝고(圓), 조화로운(正) 마음. (同源道理, UR) * 스승의 서원과 신심 수행, 구도심 등 심법과 언행 대한 믿음과 불공 필요 |
‘제불제성(諸佛諸聖)’은 ‘모든 부처님과 모든 성자들’을 의미합니다. ‘심인(心印0’에서 ‘인’은 ‘찍을 인’이라고 설명드렸지요. ‘심인’은 마음을 찍은 자리를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마음을 보자면, 좋은 사람 보면 미소가 나오지만, 마음에 안 드는 사람 보면 얼굴 굳어버리잖아요. 그런 건 ‘심인’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도장처럼 ‘공(空0/원(圓)/정(正)’의 마음이 찍혀 나올 때 ‘심인’이라 부르지요. 제불제성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제불제성은 심인 자리의 마음으로 울 자리엔 울고, 웃을 자리엔 웃지요. 중생의 마음은 변덕스럽지만, 제불제성의 마음은 변덕이 없지요. 깨달은 마음으로서 밝으면서도 조화로운 심인 자리입니다. 모든 성자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예수님, 공자님, 서가모니 부처님도요. 성자의 그 마음을 신앙하자는 것이고, 나도 그 마음을 깨닫고 써먹자는 것이지요.
과거에는 성자의 마음을 중생들이 모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공자님이 노나라를 떠나서 그렇게나 많은 곳을 돌아다녔는데, 사람들이 공자님을 못 알아봤지요. 하지만 이제는 알아본단 말입니다. 세상이 그런 때가 되었습니다.
대산종사님이 말씀하신 ‘부처님 되는 세 가지 공부’ 소개합니다.
대산 1집. 부처님 되는 세 가지 공부 1. 내 마음이 법신불과 합일(合一)하는 공부 2. 천지만물을 부처님으로 보는 공부 3. 천지만물을 부처님으로 섬기는 공부 이상 세 가지 공부만 잘 하면 곧 부처를 이루리라. |
[일원의 주소 ③ 일체중생의 본성]
* 체(切): 모두체. 중(衆): 무리중 일체중생 : 이 우주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 · 생명, 깨치지 못한 범부중생. * 본성(本性)근본본. 성품성 : 본디의 성질, 타고난 성질, 천성, 본래 마음. 성품, 자성, 진성, 불성 등으로도 표현함. * 서로 평등하며, 본자구족(本自具足), 본래고향, 본래면목, 본래청정-오욕에 도둑맞음 참 나를 믿고(신분의성), 본래 성품을 깨쳐서 회복단련하서 잘 쓰면 누구나 부처. |
일원은 ‘일체중생의 본성’이라는 말을 들으면 희망이 느껴집니다. 일체중생이 본래는 부처의 성품을 갖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아무리 중한 죄를 저지른 사람도 본래는 부처님입니다. 그래서 사형제도 두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보면 악인이 완전히 깨쳐서 성인이 된 경우가 있거든요. 중한 죄를 저지른 사람을 감옥에 넣되, 개과천선할 여지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악인이라도 마음을 바꾸면 변할 수 있으니까요.
‘일원은 일체중생의 본성’이라는 말은 ‘나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원불교 믿음의 첫째가 이것입니다. 원불교 신앙은 ‘나는 중생이지만 수행해서 부처님 성품을 만들어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본래 부처인데 욕심에 가려있으니 욕심을 떼내어 본래 자리를 보자’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큰 실수를 했어도 나를 믿어야 하고, 상대가 아무리 큰 잘못을 했어도 믿어주어야 합니다. 본래는 부처라는 것을,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을요.
원불교 만나도 ‘이 생에 안될 것 같다.’ 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 말은 ‘일원은 일체중생의 본성’이라는 말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원불교 신앙을 잘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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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와~ 감사해요! 성해, 지원, 밀운 교우님! 읽기 쉽게 잘 정리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