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스탕 왕국은 네팔의 오래된 자치왕국이며 수도는 로만탕이다. 로만탕은 성으로 둘러싸인 성벽의 도시(walled city)이다. 14세기에 건축된 성벽 안에 180개의 가옥이 모여살고 있다. 성안의 중심부에는 왕궁이 있고 주변에는 오래된 사원들이 자리 잡고 있다. 성안의 도랑에는 물이 굽이쳐 흐르고 있고 길은 미로로 얽혀 있다.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한참을 찾고 헤매야 한다. 성안에는 염소와 양, 소와 말들도 같이 어울려 살아간다. 아침이면 그들은 목초지를 찾아 밖으로 나갔다가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온다. 길게 가슴을 찢는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면 중앙광장에서 법회가 시작된다. 멋지게 생긴 노인이 구성진 소리로 붓다의 생애와 사원들의 역사에 관해서 설명을 한다. 그 옆에서 한 노인은 마니차를 돌리면서 기도를 드린다. 앞에 앉아 있는 여인들과 남정네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옴마니밧메훔을 부른다. 남자들은 멋진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었다. 여자들은 전통염색으로 직조한 치마를 걸치고 얼굴은 구리 빛으로 빛이 난다. 아이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코를 흘리고 있고 처녀들은 수줍어서 고개를 들지 못한다. 주변은 설산이 둘러쳐져 있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천혜의 도시이다. 이것이 낭만의 성벽도시 로만탕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 왕을 알현하기로 한다. 마침 우리가 머무는 로만탕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왕의 조카이다. 그가 특별히 왕에게 요청을 해서 왕과의 만남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79세의 무스탕왕은 귀가 크고 덕이 있는 얼굴을 한 평범한 노인이었다. 우리는 조심조심 실크 스카프를 손에 받쳐 들고 앞으로 나아가 왕 앞에 선다. 왕은 그 스카프를 받아 우리의 목에 걸어준다. 이곳에 온 것을 환영하며 여행의 장도에 복을 빌어주는 의식이다. 비서실장이 가져온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한다. 건강을 기원하며 사진을 찍는다. 왕비는 보이지 않고 비서실장이 모든 것을 보좌한다. 오래된 왕궁은 흙과 나무로 지어져 있고 높은 계단으로 설치되어있다. 여기저기 퇴락해서 흙이 부스러져 내린다. 다만 장대 위에 높이 달린 깃발만이 왕궁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다. 로만탕의 아침은 사람들의 코라 순례로 시작된다. 아침마다 사람들은 염주를 굴리고 성벽을 돌며 기도를 드린다. 나도 그들을 따라 성벽을 돌며 기도를 드린다.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미래를 창조해갈 것인가? 성벽을 따라 한 바퀴 도는데 이십 여분이 걸린다. 사람들은 하루에 세 번씩 돌며 기도와 명상을 한다. 왕도 매일 코라 순례를 한다고 한다. 어제는 카트만두에서 헬기를 타고 온 왕자도 왕과 함께 순례를 했다. 사람들의 왕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다. 왕은 네팔정부와 씨름을 하며 이 무스탕왕국을 지키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있다. 권위와 신비가 사라져가는 시대에 옛날의 지혜와 위엄을 간직하고 지켜야할 필요가 있다. 오래된 성벽의 도시 로만탕은 찾는 사람이 없어 한산하다. 상인들은 귀한 장신구들을 헐값으로라도 팔아 현금을 만들려고 한다. 부드럽고 섬세한 야크 울 카페트가 싼 값에 거래된다. 오래된 지혜와 전통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세상은 최신 문명의 이기와 무기들이 판을 치고 있다. 지혜보다 폭력이 앞서는 시대이다. 젊은이들은 새것을 찾아 스피드를 누리며 옛것을 무시하고 있다. 오래된 지혜를 모르는 젊은이들이 주도하는 미래는 어찌될 것인가?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레19;32) 오래된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는 자들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