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생을 사는 것은 인격 高揚 고양이 목적이다. 살아생전의 인격이 죽은 후의 나의 신격이 되나니, 어떻게 사느냐가 죽은 뒤 자신의 격이 된다.
2. 인생을 가진 자의 존재 양식은 죽은 후에도 계속된다. 사람이 되느냐, 신이 되느냐, 아니면 사람이 아닌 또 다른 존재가 되느냐는 살아서 나의 인격으로 결정된다.
3. 다음 생의 내가 처할 환경은 철저하게 현생의 인과응보와 연결된다. 세상은 주고받음이 철저하게 하나이다. 준 만큼 받고, 받은 만큼 주게 되어 있다.//修道수도, 修養 수양의 시작은 조건 없는 보시, 기부, 봉사로 시작한다. 내 것을 남에게 주는 행위가 자연스럽게 아무런 이유 없이 하게 되었을 때, 道가 높아지게 된다. 세상 것에 대한 이기적 욕망을 놓지 않는 한 聖스러운 만남 즉 頓悟돈오나 見性견성의 환희심은 맛볼 수가 없다.
4. 남과 대비하지 말고 자신의 양심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돌아보면 인격 고양의 척도가 된다. 그러니 세상 것에 자기 영혼을 팔지 말고 내면의 영혼, 마음을 反照반조하는 습관을 기르는 훈련에 충실해야 한다. 달리 표현하면 자기 수양, 심성 수양, 마음을 닦아 자기안에서 고요한 침묵의 시간을 맞이해야 한다.
5. 자기 내면이 절대적 침묵에 도달하면 우리 모두에게 내재된 神性신성, 佛性불성, 本性본성을 맞이한다. 그 순간에 우리는 사랑의 화신이 되고, 지혜와 원력의 무한한 힘을 맞이한다. 그 순간 새로운 인격자가 될 수 있는 이유가 생긴다. 원수를 7번씩 77번 용서해야 할 이유를 갖게 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이유를 갖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바로 하나인 존재임을 절실하게 체험하기에 그러하다.
6. 사물, 사건, 사실에 대해 옳고 그름/ 좋고 나쁨에 대한 감정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앞에 있는 사람이다. 사람이 먼저이다. 자기감정보다 옳고 그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앞의 사람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이해해야 하고, 용서해야 하고 사랑해야 한다. 더 나아가 어떤 상황 속에서라도 자기와 똑같이 존중해야 할 존재임을 명심하고 실천해야 한다.
7. 지금 내 주변의 가족, 친지 등은 과거 전생에 마땅히 이해, 용서, 사랑했어야 함에 불과하고 그렇게 하지 못한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어쩔 수 없이 이해 해야 하고, 용서해야 하며,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들은 다 전생의 원수들이다. 그러니 너무 집착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며, 현생에 또다시 전생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아니된다. 지금 내 앞의 사람에 대해 분노하고 있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면 내생에도 만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8. 그러니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리해서 원수가 원수가 아니되고, 그냥 평범한 다른 관계인처럼 무덤덤해질 때까지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9. 매일 하는 이웃을 위한 기도에 원수도 포함하여 기도를 시작해서, 내가 속한 사회, 국가, 지구촌 인류와 생명들의 평안함과 영혼의 고양을 위한 기도를 생활화하여 기도하는 행위가 나의 인격이 될 수 있도록 반복 또 반복하자.
10. 왜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지금부터 밝혀 본다.
여러 번 경험한 죽음에 대한 근사체험을 두 종류로 구분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나도 모르게 죽은 경우이다.
절벽 끝에 길이 있다고 믿고, 그냥 허공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의 나의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였다.
영혼은 허공에 떠 있고, 육체는 절벽 아래 바윗덩어리로 떨어지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영혼은 육체에 대해 말하기를 ‘저놈 죽었네’ 하곤 영혼의 길로 나아갔다.
육체를 벗어난 나의 영혼은 자기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를 먼저 자각시켜주었다. 엄청난 허공의 크기가 바로 나임을 자각시켜주었고, 허공의 역사, 즉 우주의 역사를 바로 알려주었다. 그리고 육체를 가졌을 때의 행위를 자잘한 것부터 시작해 죽는 순간까지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내가 한 정신적 육체적 행위 모두가 영혼의 등급을 결정하는 바로미터였다. 문제는 죽은 나는 살아생전의 나와 분명히 연결된 연속 선상의 존재였지만 분명하게 달랐다. 우주의 기원을 다 알 수 있었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정확히 읽을 수 있었고,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들 수 있었다. 그러한 밝은 지성력으로 어리석게 살아온 생전의 나를 평가했을 때 밀려오는 부끄러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었다. 그 부끄러움으로 말미암아 ‘다시 죽어 당신 앞에 섰을 때 결코 이런 부끄러운 영혼을 되지 않겠노라’라고 부르짖었다.
터널 속으로 빨려가고 있을 때, 터널 끝 밝은 빛 너머에는 축생의 삶이 보였다. 너무나도 억울한 마음에 왜 내가 축생을 가야 하느냐고 태양보다 천배 더 밝은 빛에게 물었을 때, 그 빛은 레이저로 내 영혼 위에 새겨주었다. ‘진리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라고.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을 때, 3살 먹은 딸의 외침이 들려왔다. 딸애의 간절한 마음이 나를 다시 딸아이 앞으로 내 영혼이 왔다. 아이의 미래를 보게 되었고, 기적 같은 일이 발생했다. 죽음 직전 1초 전으로 돌아왔다. 머리가 바위에 부딪히기 바로 직전 팔을 절벽에 가는 행동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되었고, 머리는 바위에 부딪혔지만, 처음처럼 완전히 깨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피가 뜨거웠다는 기억이 난다.
두 번째 경우는 과로사하였을 때였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손가락을 움직이려 해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좀 지나니 누워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방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것을 포함해 주위의 일어나는 상황이 모두 감지되었다. 해가 서쪽으로 지기 전까지 내 영혼은 방 천정위에서 나를 포함해 주변 상황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때가 되었음을 알고 서쪽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지발가락에 온기가 발생하였고, 한참 서쪽으로 가고 있던 영혼이 다시 몸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위의 사건 말고도 절벽에 매달려 하룻밤을 지내면서 영혼이 빠져나간 경우와 산에서 수행하다 체온이 떨어져 영혼이 빠져나간 경우 등 여러 번 근사체험하였다. 할 때마다 느낀 것은 몸속의 영혼도 나의 영혼이지만 내 몸 밖의 무한한 허공 역시 나의 영혼이었다는 것이다. 근사체험을 할 때마다 남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더해졌고, 남을 용서하려는 마음이 더해졌으며, 더 나아가 사랑하려야 사랑할 수 없는 원수들조차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더 해졌다.
“ 나는 하느님 안에 있고, 내 안에 하느님이 거하신다.” 살아생전 이해하지 못한 이 말의 뜻을 절감한 것이 나의 근사체험이었다.
*** 살아생전의 반드시 해야 할 일// 숨이 끊어지기 전에.
1. 살아서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나의 육신이다. 나의 보고 들음, 나의 이성적 감성적 판단이 죽고 나면 바로 무너진다. 살아생전에 내가 무조건 옳다는 확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나의 이기적 판단으로 인해 상대와 주변인들이 얼마나 어려움에 처해 있었는가 역지사지의 입장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늙어 노인이 되면 죽어도 자기 경우가 바르고 옳다는 확신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질 못한다.
2. 그래서 자신을 돌아보는 연습, 수행해야 한다. 살아온 과거 모두를 1~10살 단위나 아니면 초등입학 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사회생활 등등 자기만의 기간설정을 해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기를 한다. 돌아보면서 자기가 살아온 과거 인생에 대해 용서할 것을 용서하고, 본인이 용서받을 것을 참회하고 회개하며 그 모든 기억을 하느님, 또는 부처님께 다 회향한다.
3. 태어나서 지금 순간까지 반복해서 6번 이상 하게 되면 지금 기억하지 못한 무의식의 경험이 나온다. 그때 진정 내가 바르고 옳다는 기억 속의 행위가 어리석고 무지했음을 깨닫게 된다.
4. 하느님께, 부처님께, 관세음보살님께 돌려드리기를 7일 밤낮을 하다 보면 자신에 대한 집착, 죄의식, 간절한 소망 등등 자기에 대한 모든 것이 타인처럼 느껴질 때, 영혼의 자유성이 나오게 되고,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인격의 도약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이렇게 죽어야 염라대왕 앞에 서지 않고 스스로 하느님이 되어 자기 영혼의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 다음에는 이러이러한 존재로 태어나 하늘 아래 모든 존재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보살, 천사 더 나아가 성인이 된다.
2026.1.31. 청도 수행토굴에서 혜문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