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4일
오늘의 탄생화는
"흰색 국화(Chrysanthemum)" 입니다.
꽃말은 '진실'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 다년생 초본식물로 중국이 원산지 입니다.
국(菊)·구화라고도 한다.
국화는 관상용으로 널리 재배하며, 많은 원예 품종이 있습니다.
높이 1m 정도로 줄기 밑부분이 목질화하며, 잎은 어긋나고 깃꼴로 갈라집니다.
꽃은 두상화로 줄기 끝에 피는데 가운데는 관상화, 주변부는 설상화 입니다.
설상화는 암술만 가진 단성화이고 관상화는 암·수술을 모두 가진 양성화 입니다.
꽃은 노란색·흰색·빨간색·보라색 등 품종에 따라 다양하고 크기나 모양도 품종에 따라 다르다.
꽃의 지름에 따라 18cm 이상인 것을 대륜, 9cm 이상인 것을 중륜, 그 이하인 것을 소륜이라 하며 꽃잎의 형태에 따라 품종을 분류하기도 합니다.
꽃을 말린 것을 베개 속에 넣으면 두통에 효과가 있으며.. 이불솜에 넣으면 그윽한 향기를 즐길 수 있고... 국화술[延命酒]을 빚어 마시기도 합니다.
국화는 매화·난초·대나무와 함께 일찍부터 사군자의 하나로 지칭되어 왔습니다.
뭇 꽃들이 다투어 피는 봄·여름에는 꽃이 피지않고 날씨가 차가워진 가을에 서리를 맞으면서 홀로 피는 국화의 모습이 우리의 선인들은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의 모습과 같다하여 많은 사랑을 받는 꽃입니다.
그래서 국화를 일컬어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도연명(陶淵明)이 국화를 가장 사랑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주무숙(周茂叔)은<애련설 愛蓮說> 에서 “국화지은일자야(菊花之隱逸者也)”라고 하였습니다.
그 뜻은 국화는 군자 가운데서도 은둔하는 선비의 이미지와 잘 부합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국화가 언제 우리 나라에 전래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세종 때 강희안(姜希顔)이 지은 ≪양화소록 養花小錄≫에는 고려 충숙왕 때 중국의 천자가 보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음력 9월 9일, 곧 중양절에 국화주를 가지고 등고(登高)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우리도 9월 9일에 민간에서 국화주를 담가 먹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고려가요<동동 動動>9월령에 “9월 9일애 아으 약이라 먹논 황화(黃花)고지 안해 드니 새셔가만 얘라 아으동동다리” 라고 하였으니, 중양절에 국화주를 담가 먹었고 그것을 약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또한 고려시대에 이미 우리 나라에도 국화가 있었음도 알 수 있습니다.
청양 지방의<각설이타령>에도 “9월이라 9일날에/국화주가 좋을시고” 라는 구절이 있고, 경상북도 성주지방의 민요에도 “뒷동산 쳐다보니/국화꽃이 피었고나/아금자금 꺾어내여/술을 하여 돌아보니/친구하나 썩 나서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속담에는 ‘짚신에 국화 그리기’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격에 맞지 않는 짓을 하거나 주가 되는 것이 천해서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 당치 않을 때 이를 비유하는 것입니다.
"춘란(春蘭), 추국(秋菊),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다"
봄 난초와 가을 국화는 모두 꽃의 모양과 향기가 뛰어나 도저히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중국의 전설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밤마다 늦게 딸의 방을 드나드는 남자의 정체가 궁금한 어머니가 남자의 뒤를 밟았습니다.
남자는 냇물속으로 들어가 "그 아가씨가 국화주를 마시지 않는다면 내아이를 잉태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깜짝 놀란 어머니가 딸에게 국화주를 마시게 했더니 이내 죽은 뱀새끼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옛부터 국화에는 마성을 물리치는 신비함이 있다고 믿어져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