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태도
-요한복음 18장을 중심으로-
후쿠시마 아츠시 (福島 穆)
・저는 TV로 스포츠 관람을 자주 합니다. 요즘은 심판(judge)이 내린 판정결과가 틀리지 않았는지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확인해 보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진단이 틀릴 수도 있었던 예전의 아날로그적 상황이 더 인간미가 있어 그립지만,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카메라 영상을 재생하여 보게 된 것입니다. 야구나 럭비 세계선수권, 축구, 배구 등 많은 경기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사실을 사실로 판단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이 사실을 사실이라 주장하는 일을 보면서, 저는 일찍이 오츠카 히사오(大塚久雄) 선생이 야나이하라 다다오(矢内原忠雄) 1주년 기념강연회에서 하셨던 ‘진리에의 외경(畏敬)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오츠카(大塚久雄) 선생은 요한복음 18장을 중심으로 빌라도가 취한 태도에 대해 말씀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에게서 잘못을 찾을 수 없었다. 거기에 점점 두려움을 느꼈고, 예수를 용서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 사실을 깨달았고, 예수를 용서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였으나, 주위 사람들의 압박에 용서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예수를 유대인에게 넘겨주었고, 이윽고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이르도록 한 것이다.”
“나는 진리를 증거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다(요 18:37).”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요 8:2).”
“나는 길이요, 진리다(요 14:6).”
뒤이어 빌라도는 그 진리 자체인 분에게, 진리란 무엇인가?‘라고 물어서, 세계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빌라도 안에는 주체적 진실, 즉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고 옳은 것은 끝까지 옳다고 주장하는 이 주체적 진실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강연을 들었던 당시나지금이나 이 일의 중요함을 잘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웃 나라 한국의 친구들이 오셨습니다. 두 나라의 역사에는 이 사실 인식에 대해 큰 차이가 양국 관계에 크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좋은 상호 이해를 위해서는 먼저 사실을 사실로 서로 확인하는 일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최근의 일본 정부나 도쿄에서는 불편한 일에는 눈을 감아 버리고,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강하여 저로서는 크게 유감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그 일례로, 100년 전 발생했던 관동대지진에 대해 살펴보기로 합시다. (최근의 이 일이 아무래도 자주 입에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관방장관의 발언을 보면, “어디를 찾아보아도 조선인 살상사건의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또 도쿄도지사는, 예전부터 항상 기념추도회에서 조선인의 살상에 대한 메시지를 내곤 했었는데, 최근에는 그것마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타가야구(世田谷区)에는 ‘평화자료관’이라는 박물관이 있어, 9월에 ‘관동대지진의 기록’이라는 전시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저도 견학을 하였습니다. 거기서 받은 자료에 의하면, 공공기관 기록에 의한 살상사건 피해자의 수라는 표가 있었습니다. 전제 578명인데, 거의 다 조선인이었습니다. 공식 기록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훨씬 더 많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 매우 구체적으로 개개 사건의 기록도 있었습니다.
・세타가야(世田谷)구청장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 혼란 중에 유언비어(데마)가 유포되어, 당시 자경단에 의한 한반도 출신 사람들을 향한 습격과 살해사건이 일어난 일을 잊고 싶지 않다.”
세타가야구가 인정하는 일을 관방장관과 도쿄도지사는 부정만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실을 사실로써 무시하는 태도는 오해와 몰이해를 불러와 민주주의 기본인 대화를 거부하는 것과 연결됩니다. 오늘날 일본을 봅니다. 수많은 모순, 사실을 은폐하는 일부 정당이 바라는 대로 적절한 심의나 대화 없이 직진하는 태도는 참으로 우려스럽습니다. 그 결과 부정의가 통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아쉽지만 특효약은 없습니다. 오츠카 선생은 아래와 같이 제안하고 있습니다.
○ 진리를 아는 사람들이 무엇보다 진리 그 자체를 계속하는 것.
○ 진리를 아는 사람들이 그 진리를 전하기보다 스스로 땅의 소금으로 기꺼이 밟히며, 세상의 부패를 막는 역할을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해가는 것.
○ 하루하루 새로운 결심으로 노력을 계속해 가는 것.
・참으로 당연한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허락된 범위에서 가능한 한 실천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첫댓글 방문했던 교도성서집회의 리더이신 후쿠시마 아츠시 선생께서 우리를 위해 특별히 준비해주신 말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