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야구팀
▲ 15일 수원야구장에서 벌어진 프로야구 한화와 현대의 경기에서 풍운아 한화 조성민이 7회말 무사 1루에서 등판, 역전승을 얻어낸 후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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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야구를 못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야구는 정말하고 싶었다 - 갑자기 그라운드로 돌아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선수생활을 이런 식으로 접을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 때문이었다. 일본에서 성공해서 당당히 돌아오고 싶었는데 끝이 너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늦었지만 마무리를 제대로 하고 싶었다.
- 그래도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야구를 다시 하겠다는 꿈도 꿀 수 없는 처지였다. 주변 여건이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수록 더 야구가 하고 싶었다. 조성민이라는 이름 석자는 결국 야구선수였기 때문에 알려진 것 아닌가.
-드래프트를 신청해 두번이나 거부당했는데.
▶첫번째 지명받지 못했을 때는 견딜만 했다. 하지만 지난해 2차에서도 지명받지 못했을 때는 "이제 야구는 쳐다 보지도 않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때 이후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져 폐인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친구고 가족이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없었다.
-당시 구단들에게 섭섭한 감정도 있지 않나.
▶섭섭함이라기 보다 아쉬움이 남는다. 솔직히 그때 불러줬으면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다.
-올초 해설자로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왔다.
▶선수에 대한 미련은 버렸지만 야구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기 때문이다.
-해설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정말 답답했다. 내가 알고 있는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대부분은 모르는 선수들이었다. 얼굴과 등번호를 일일이 대조해가며 외워도 막상 카메라에 비치면 누구인지 헷갈리기 일쑤였다.
-해설자에서 선수로 복귀했는데.
▶김인식 감독님의 준비된 시나리오였다. 4월 초 문학경기장에서 시범경기가 취소되고 한화 덕아웃을 찾아가니 김인식 감독님께서 대뜸 "너 거기서 뭐해? 야구해야지"라고 했다. 처음에는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며칠 뒤 다시 "곧 부를테니 준비하고 있어, 방송사와도 빨리 애기를 끝내"라고 하시길래 정말이구나는 생각을 했다.
-곧바로 승락했나.
▶야구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던 내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당연히 OK 사인을 냈다.
-그런데 계약할 때까지 한달이 넘게 걸렸다.
▶솔직히 한동안 결론없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불안했다. 김 감독님께서도 2~3 주동안 고위층과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며 기다리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그 때 이번에도 안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심 포기했었다.
-최종 결정은 언제 났나?
▶그러다가 4월 말에 김 감독님이 전화로 "결제 떨어졌어"라고 하셨다. 그 순간 정말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설레였고, 흥분됐다. 이제는 정말 야구를 할 수 없을거라 생각했었는데….
-데뷔전에서 승리투수까지 됐다.
▶정말 운이 좋았다. 컨디션 조절 차원에서 들어갔는데 막상 역전시키고 나니까 욕심이 생겼다. 그러니까 여지 없이 무너졌다. 많은 것을 배웠다. 솔직히 올해 운이 많이 따라주는 것 같다. 복귀도 그렇고 처음으로 실전등판했던 2군경기에서도 1이닝 던지고 승리투수가 됐다. 예감이 좋다.
일본야구에 대한 추억 그리고 악몽
-요미우리 입단 초기만해도 촉망받는 유망주였는데.
▶그때만 해도 한국인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야구를 했다. 일본 도쿄돔에 처음으로 애국가를 울려퍼지게 했고, 내가 타석에 들어설 때도 테마송이 애국가였다. 일본의 야구 상징으로 불리는 요미우리에서 최고가 돼 일본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싶었다.
-일본에서 갑자기 선수생활을 그만뒀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문화와 납득할 수 없는 행태들 때문에 선수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에 그만 둔 것이 아니라 미국으로 진출하려고 했는데 계약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됐다.
-이해할 수 없는 문화는 무엇이었나.
▶한국인 선수에 대한 차별이다. 일본에서 같은 외국인 선수라도 한국말을 하는 것과 영어를 쓴다는 것은 천지차이다. 예를 들어 감독이나 코치들에게 내가 먼저 인사를 하지만 영어권 선수들에게는 감독이나 코치들이 '하이'를 연발하며 먼저 인사하는 식이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차별이 주는 아픔을 모른다.
-투수로서 이해하지 못 한 부분은.
▶당시 2군에서 잘 던져 1군에 올라갔다. 원정 4연전이었는데 단 한번도 기회를 주지 않더니 다시 2군으로 가라고 했다. 일언반구의 설명도 없었다. 어떤 때는 선발로 등판해 6이닝 동안 1실점하고 내려왔는데 다음 등판일정을 알려주지도 않다가 갑자기 중간계투로 나가라는 식이다.
-항의를 하지 않았나.
▶하도 열이 받아 구단 책임자에게 이런 식이라면 다시 수술을 하겠다고 했다. 99년 수술 당시 뼛조각을 깎지 못했다. 아주 간단한 수술이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당시 상황을 극복하고 싶었다.
언론? 아직은 친구가 아니다. 하지만 야구선수 조성민으로 봐준다면 OK다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솔직히 아직까지 방송이든 신문이든 언론 매체를 만난다는 것이 부담스럽다.
-몇년전 전 부인과 불미스런 일이 생겼을 때 느꼈던 감정인가.
▶그럴 수도 있다. 사실 당시 둘이서 조용히 끝 낼 수 있었던 문제였는데 여러 매체에서 사실이 아닌 것들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일이 크게 번진 측면도 있다.
-당시 보도된 내용의 상당부문은 진실이 아니었다는 얘기인가.
▶내가 생각할 때 90%는 사실과 달랐다.
-프로로 돌아와 다시 언론과 만나게 됐다.
▶뉴스메이커로서 조성민이 아니라 야구 선수 조성민으로 봐 준다면 피할 이유가 없다. 나는 연예인도 아니고 스타도 아니다. 야구선수로 돌아왔고, 그에 맞는 평가라면 칭찬이든 비난이든 상관없다.
-프로라면 당연히 받아들어야 할 현실 아닌가.
▶인정한다. 하지만 선수는 컨디션에 따라 잘 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들을 충분히 이해해 달라는 말이다. 그리고 야구 선수 조성민으로만 봐준다면 너무 고맙겠다. 정말 어렵게 야구인으로 다시 태어난 만큼 최선을 다하고 싶다.
출처■☞ http://www.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