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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서 우리를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이는 그의 사랑하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6)
우리는 죄 사함과 더불어 우리를 받아주시는 은혜와 함께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본문은 이를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원문인 ‘에카리스토센 헤마스’를 직역하면 ‘우리와 영합하셨다’ 또는 ‘우리를 이끄사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총애와 받아들이심 속으로 들어오게 하셨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곧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본문에서 우리가 누리도록 지불된 공로의 근거가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의 사랑하시는 자’는 물론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믿는 자들은 그분을 통해 하나님의 은택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부분은 믿는 자들에게 특권을 주시는 목적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특권을 주심으로 그분의 은혜가 찬송 가운데 영화롭게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받아 주시는 하나님의 행사는 풍성한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상고하고 감탄하며 그 광대하심을 높이는 일은 이 은혜를 받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하나님의 특별한 호의와 받아들이심을 얻어내셨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2:13). ‘가까워졌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실만 하도록 사랑스럽고 소중하게 보이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위하여 신자들을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계1:5-6). 곧 하나님의 고귀한 사랑을 받을 만한 자들로 그들을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갈2:6).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긍휼의 자비로 사람들을 받으십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호의롭게 신자들의 인격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의가 신자들에게 전가됨으로써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받아들이려고 하신다면, 그는 먼저 반드시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여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받으신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하나님께 알현시켰다는 것을 함축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자들로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준비하셨음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신자들을 영화롭게 하시고 존귀케 하시는 여러 사랑스럽고 영예로운 호칭들을 부여하십니다. 신자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권속(엡2:19), 하나님의 벗(약2:23),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엡5:1),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벧전2:9), 아름다운 면류관과 왕관(사62:3),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시147:11) 등으로 일컫습니다. 백성들을 향한 사랑스러운 호칭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이 담대하게 당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오도록 허락하십니다. 이것 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안에 있는 자들임을 말하여 주는 것입니다.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4:6). 이는 하나님께서 아이들이 사랑하는 자기의 아버지를 편하고 익숙한 어구로 부르는 것처럼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을 부르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정말 크신 하나님의 놀라운 겸손입니다.
하나님은 자유롭게 구하도록, 또 그 구함을 기꺼이 들으신다는 것은 믿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호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자들의 소망에 언제라도 응답하실 마음을 가지십니다(마7:7). 그 은혜의 문은 기도의 열쇠로 열 수 있습니다(요15:7).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지는 이 특권은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의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은혜와 사랑으로 기꺼이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는 드리고 싶어하는 여러분의 작은 의지마저도 훌륭한 선물이 됩니다(고후8:11). “여호와께서 내 부친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왕상8:18).
신자들이 누리는 하나님의 특권은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의 피로 얻어내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공의를 그 피로 만족시켜 하나님께 그 모든 은택을 확보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육체의 장막을 통해 거룩하게 구별된 자들만을 받아들여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호의는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합을 통해서만 베풀어집니다. 그 신비로운 연합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 곧 그분의 살과 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엡5:30).
그리스도는 신자들의 거룩한 제단이 되십니다. 신자들의 모든 것은 그 제단 위에 올려져 하나님께 드려집니다. 거룩한 제단이 우리의 제물을 거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의 기도는 그리스도의 금제단 위에서 그리스도의 공로의 향기와 함께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갑니다(계8:3-4).
세상 것들에 대한 결핍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 자신의 대적들에게까지 관대함을 베푸신 그분께서 하물며 친구이며 자녀인 여러분에게 좋은 것을 아끼려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베푸는 호의에는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베푸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이십니다(시84:11).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필요를 아십니다. 그리고 그 필요에 대해 공급하실 분입니다.
신자인 여러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특별한 사랑으로 이 땅의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은혜를 받은 여러분이,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을 슬프게 하다니요.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지금 이 시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나는 그리스도를 내주어 사탄의 손에서 너를 건져 내었다. 나는 너의 수백 만 가지의 죄를 용서하지 않았느냐. 너에게 풍성한 긍휼과 호의를 베풀지 아니하였느냐. 너에게 이러한 모든 것들이 너무 적은 것이었느냐?’
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하늘에 빚진 자들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내어 주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입니다(골1:13).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의 피에 빚을 진 자들인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18장 값 주고 사신 자유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8:36).
요한복음 8:30-36에서 그리스도는 말씀을 듣는 자들의 심령에 미치는 감화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믿는 이들이 믿음 안에 계속 거할 것을 격려하시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의 위대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곧 죄의 종들은 결단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과,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연합하는 특권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만이 그 집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가정과 결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새 언약입니다. 믿는 자들은 새 언약의 자녀인 것입니다. 그 영광스러운 자유는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영원한 자유입니다(롬8:21).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자유를 율법, 즉 도덕법으로부터의 이탈로 이해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입어 언약적으로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율법은 여전히 우리의 삶을 지도하는 규칙입니다. 아니 우리에게는 여전히, 더더욱 율법의 규범을 따라 살아가야 마땅한 의무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엡6:2).
율법(도덕법)이 거듭나지 못한 이들에게만 구속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방종주의를 쫓는 사람들의 헛된 주장입니다. 그들은 율법이 부과하는 형벌로부터의 자유를 구실로 방종을 합리화하는 자들입니다. 신자들이 더 이상 율법의 저주 아래 있지 않지만 여전히 율법의 통치 아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의롭다 하심을 위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하시며 다시 율법으로 보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을 얻기 위해 율법을 지키려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일입니다. 율법을 완전히 지킴으로 스스로 구원에 이를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놀랍지 않으십니까?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자들을 먼저 값없이 의롭다 하심으로 그들을 더욱 율법을 지킬 자들로 삼으신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을 지키는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는 자유에 대해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자유가 ‘사탄의 유혹과 공격’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영혼을 완전히 장악하는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난 자들입니다. 하지만 사탄의 훼방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롬16:20)고 말씀하고 있지만 사탄은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상하게 하고 괴롭게 할 능력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자입니다(고후12:7). 그러나 사탄은 우리를 다시 영원한 사망으로 끌어내리지는 못합니다. 시험의 불화살을 끊임없이 쏘아 대면서 신자들을 위협하지만 말입니다. 그 위협은 성도들이 하늘에 안전하게 도착하기 전까지 중지되지 않을 것입니다.
신자들 가운데 ‘내주하는 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의 내면에 여전히 남아 있는 ‘옛 사람’의 잔재는 성도들을 괴롭히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입니다(롬7:21, 23-24). 내면에 남아 있는 부패함은 옛 이스라엘 사람들을 끊임없이 괴롭게 했던 가나안 족속들처럼 우리 눈엣 가시로, 우리 옆구리를 찌르는 막대기로 작용합니다. 저는 죄의 활동에서 거의 자유하게 되었다며 자랑하는 이들을 보면 그들이야말로 아직 죄의 지배 아래 있다는 의심을 가집니다. 그리스도인된 자들 중 사도처럼 고백하지 않아도 될 사람은 없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죄로 인한 영혼의 괴로움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신자들을 깊은 정죄감 가운데 내버려 두시기도 합니다. 욥과 다윗이 그러하였습니다(욥7:19-20, 시88:14-16, 38:1-11).
여러분,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자유를 세상의 모든 고통으로부터의 면제로 이해하지 마십시오. 사도는 오히려 세상이 주는 고통을 그리스도의 종된 자들의 표지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곧 징계를 받는 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함축합니다(히12:7). 고통을 면제 받는 것만이 복이 아닙니다. 죽음으로부터의 자유 역시 그러합니다. 신자들의 영혼은 분명 죄의 삯인 영원한 사망의 타격으로부터는 자유함을 입지만 육신은 다른 이들과 같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롬8:10, 히9:27).
이상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자유를 얻었음에도 이 땅에서 자유롭지 못한 범주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저에게 이렇게 묻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를 얻은 신자들의 유익이 무엇이란 말인가?’
모든 신자들은 엄격한 율법의 저주로부터 자유를 얻습니다. 따라서 모든 신자들은 정죄로부터 자유롭게 된 자들입니다. 물론 죄는 신자에게 큰 고통을 가합니다. 하지만 그 죄가 신자들을 정죄할 수는 없습니다(롬8:33). 우리를 단죄할 모든 증좌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도말되었기 때문입니다(골2:14). 인(印)쳐진 증서가 파기되는 순간 채무자가 빚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는 것과 같습니다. 신자들은 모든 일에도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행13:39). 신자들은 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요5:24). 이보다 복된 자유가 무엇입니까?
신자들은 또한 죄의 지배로부터의 자유를 얻습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6:14). 따라서 신자들의 영혼에 죄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권세를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잠시 잠드는 것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피를 쏟으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벧전1:18). 여러분은 어떠한 기쁨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바벨론으로부터의 해방은 우리 영혼의 구원을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시126:1-2). 바벨론으로부터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느끼는 기쁨과 놀라움을 생각해 보십시오. 긍휼을 입은 영혼이 기뻐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닙니까?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자유 안에서 기꺼운 마음의 자세를 가지십시오. 하나님을 위해서 여러분들이 하는 모든 일을 기쁨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설령 그것이 고통스러운 것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 하였느니라”(행21:13).
복음이 가진 가장 주요한 요점은 영혼이 사탄의 권세로부터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영혼을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도록 권고하는 일,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이 감당할 몫입니다. 그러나 시기가 가득한 군주인 사탄이 그들의 사역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핍박은 복음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그리스도를 통해 자유를 얻게 된 여러분은 이제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 놓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께서 주인이시며, 그리스도께서 입법자이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나아가야 할 기준을 제시하시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복음의 부르심에 여러분의 마음을 여십시오. 여러분은 진실한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