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미스리틀선샤인(Little Miss Sunshine>(2006) 영화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요, (참고글: 바뀐 건 없다 단지) 그 글을 쓰고 그 뒤로도 다섯번 넘게 영화를 봤습니다. 처음 볼 때는 '참 독특한데 재밌네' 였다면, 볼수록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지난번에 못다한, <미스리틀선샤인>의 이야기를 더 이어가보려 합니다.
(이미지출처: 네이버 영화)
누가 루저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영화 보신 분 있으신가요? 지난 번 영화소개에서 말씀드렸지만, 이 영화는 루저들의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이 하나같이 정상인의 틀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영화를 자꾸 보다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대체 이들이 뭘 실패했는가? 대체 누가 이들을 루저라고 말하는가?'
'성취'관점에서만 보면, 이들은 루저일 수 있습니다. 딱히 뭘 이루지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성과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외모가 훌륭하거나, 돈이 많거나, 재능이 뛰어나거나 강철같은 의지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성공이라는 잣대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뭐 하나 뛰어날 것 없는 이들의 이야기인데, 왜 이렇게 따뜻하게 다가올까? 대단할 것도 없는 이 이야기가 왜 나 마음을 이렇게 파고드는가? 보는 내내 되물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결국 그 답을 찾았습니다.
이 영화는 여섯살짜리 딸 '올리브'가 미인대회에 참가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로 구성되는데요. 정작 미인대회에 참가하는 어린 올리브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좀 있어 보입니다. 배 나온 통통한 몸매에, 안경쓴 얼굴도 귀엽긴 하지만 인형처럼 예쁜 얼굴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특출난 장기도 없고요. 그래서 처음엔 올리브의 꿈을 밀어주던 가족들도 막판에 가서는 딸이 무대에 서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괜히 나섰다가 다른 사람들의 조롱을 받을까 염려한거죠.
미인대회에 출전한 딸 '올리브' (이미지출처: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역시나, 미인대회에 출전한 올리브의 무대는 가관이었습니다. 할아버지에게 배운 스트립쇼를 그대로 추는데요, (아주 귀엽긴 했지만) 춤솜씨도 엉망이고 성인스트립쇼를 모방한 듯한 몸짓에 관객과 심사위원 모두 경악합니다. 사회자는 당장 딸의 춤을 멈추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지켜보던 가족이 무대로 난입해 그를 막아섭니다. 딸이 상처받을까봐 딸과 함께 춤추며 그들만의 무대를 만들죠.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가족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가족이 무대에 난입해 다같이 춤추는 장면 (이미지출처:21세기폭스코리아)
딸이 조롱받을까봐 그 조롱을 엄마, 아빠, 오빠, 삼촌이 다 같이 나누는 장면이 무척 뭉클해서 수십번을 돌려봤습니다. 이런 가족이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힘들든, 어떻든 괜찮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힘든 순간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는데, 대체 누가 이들을 루저라고, 실패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나요?
실패는 없었다
사실 올리브는 충분히 매력적인 소녀입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미의 기준과 자질을 충족시키지 않았을 뿐입니다. 성공과 실패로 갈리는 사회에서는 기준이 명확합니다. 그 기준을 충족하면 승자가 되고 그렇지 못하면 패자가 됩니다. 미인대회는 그런 사회의 속성을 잘 반영합니다.
이 영화를 수십번 돌려보면서 '실패'를 다시 바라보게 됐습니다. 나 또한 그런 사회의 잣대에 빠져있었던 건 아닐까? 사회의 기준에 미달할까봐 전전긍긍대지는 않았나? 돌아보게 되더군요. 미인대회참가를 앞둔 올리브가 패배자가 될까 두렵다고 하자, 할아버지가 이런 말을 해줍니다.
"너 패배자가 무슨 뜻인지 알아? 진짜 패배자는 지는 게 두려워서 도전조차 안하는 사람이야. 넌 노력하잖아, 안그래? 그럼 패배자가 아니야. 남들이 뭐라든 신경쓸 것 없다"
(이미지출처: 네이버)
할아버지의 말에 이 영화의 주제가 들어가 있습니다. 성공을 조장하는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사회의 잣대에 휘둘리지 말고, 무엇이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도전하고 경험해보라는 것. 그 결과가 어떻든 말입니다.
이걸 보다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또 하나 있습니다. 책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을 쓴 강은경 작가입니다. 이 작가의 이야기는 이전 칼럼에서 한번 다룬 적이 있는데요. 그녀는 소설을 쓰려고 했지만 30년째 실패하고, 결혼생활도 실패로 끝나고, 자신의 삶 자체가 실패라는 생각을 안고 아이슬란드로 마지막 여행을 떠납니다. 하루는 길에서 만난 현지 할머니와 이야기하다 자신의 삶을 더듬더듬 늘어놓습니다. 결혼도 실패하고 꿈도 실패하고 사랑도 실패했노라고. 그러자 할머니가 이렇게 되묻죠.
"당신, 인생 실패한 사람 맞아요? 당신은 쓰고 싶은 글 쓰며 살았잖아요. 그랬으면 됐지, 왜 실패자라는 거죠? 난 당신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당신에겐 사는 게 뭐죠?"
70여일간의 아이슬란드 여행을 끝나고나서 강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일상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지만 단 하나 사라진 게 있었다. '인생 실패자'라는 생각이 사라져버렸"노라고.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은 사라졌지만 다시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제는 무언가를 꿈꾸거나 미래를 계획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됐다고 말입니다.
미스리틀선샤인을 보면서 든 생각도 그랬습니다.
'실패도 괜찮고 성공도 괜찮다. 그를 가르는 건 사회의 기준일 뿐, 어차피 둘 다 존재하지 않으니까. 난 그냥 내 할바를 하면 된다.'
누구도 내게 '성공이다 실패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기준을 사회나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다면요. 삶이 팍팍할 때, 내가 너무 성공에 휘둘린다는 생각이 들 때 <미스리틀선샤인>을 한번 보기를 권합니다. '실패할까봐 전전긍긍하던, 성공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