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윅 “정체성” 에 대한 견해
중학교 도덕 시간에 청소년기는 주변인이라는 말을 배움과 동시에 그 시기에는 자신의 자아정체성이 조금씩 성립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말도 함께 배웠었다. 그렇다면 그 시기가 지나가면 자연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고 삶의 과정이 뚜렷하게 설정되는 것일까? 어린 시절 책에 적힌 막연한 단어들은 나에게 이런 의문을 던져 주었고 그 물음은 조금 있으면 사회로 나아가는 이십대에 이른 지금에도 풀리지 않고 같은 물음을 내게 던지고 있다. 다만 나이를 먹으며 조금 더 생각하게 된 것은 정체성이란 나 자신의 성격이나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나에 대한 생각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라는 것은 희미하게나마 느껴진다. 나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대충 이런 식의 질문으로 조금은 변하게 되었고 그 답은 아직 어린 나로서는 찾지 못하였다 아니 어쩌면 나이를 조금 더 먹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라 할지라도 여전히 해답을 찾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헤드윅'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나에게 많은 공감대를 갖게 하였다. 영화에서 보면 주인공인 헤드윅은 이런저런 이유로 많이 혼란스러워 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하나의 관객으로서 멀찌감치 떨어져서가 아니라 가끔은 그의 모습이 되어보기도 하고 영화가 끝날 때 까지 시종일관 같이 호흡하면서 어쩌면 지금 순간이 아니면 함께 하지 못할 점들을 공감하며 재미있고 의미 있는 관람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렇다면 정체성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그 단어의 의미를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라는 뜻으로 배웠다.
헤드윅은 이 말대로 자신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여 방황한다. 동서독으로 나뉜 매우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태어나 자신에게 불온전한 행동을 하다 쫓겨난 아버지의 영향으로 성에 대한 혼란을 갖게 되었고, 모든 것이 통제되는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꿈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며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중 자신의 꿈과 사랑을 모두 이루게 해줄 것 같은 사람을 만나 그를 통해 자신의 본연의 모습과 행복을 찾고 싶어 하지만 그 바람은 오래가지 못하고 장벽의 붕괴와 함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 수술 실패로 인해 남겨진 상처 등으로 그 자신마저 붕괴되고 만다. 그로부터 혼란스러운 삶이 시작되고 그것이 노래가사가 되어서 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꺼리가 된다.
헤드윅이 혼란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가장 큰 계기가 되는 첫 번째 사건을 흔히들 성전환 수술의 실패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사와의 사랑이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해도 그의 삶이 혼란스러웠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상사가 떠나던 날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에서 헤드윅의 표정은 삶의 전부를 잃은 듯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어쩌면 모든 것을 믿고 의지했던 상사가 떠나는 그 순간부터 그의 혼란이 시작 되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헤드윅에게 수술실패가 가져다준 충격은 말로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커다란 것이었겠지만 그의 옆에는 항상 상사가 있어주었고 그를 통해서 자신을 한명의 여자로서 인식하여 행복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떠나자 모든 혼란들이 일순간에 밀려오며 자신의 존재자체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신화의 이상향만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되어 버린다. 그는 상사에게 버림받은 그 후부터 자신의 수술실패와 장벽의 붕괴 후 생긴 허탈한 상실감으로부터 벗어나 예전의 행복한 모습을 찾기 위해서는 진정한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만이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완전한 존재로서 느껴지게 되고 그것을 통해서만 자신이 행복해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후 시간이 흘러 그는 토미를 만나게 되었고 자신의 꿈이었던 노래를 마음껏 부르며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된다. 토미와의 대화 중에 자신은 영원한 사랑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아니 믿고 싶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은연중에 토미에게 자신을 영원히 사랑해 달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의 진심이 느껴졌고 지금 이대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 받으면서 영원히 살고 싶은 그의 간절한 소망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런 행복한 시간도 토미가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함에 따라 끝나게 된다.
이 사건으로 헤드윅은 더 큰 상처를 받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받는 사랑의 상처이기 때문에 조금 덜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는 영원하길 바라던 사람과의 이별과 그로 인해 다시 한번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없었고, 뿐만 아니라 사랑에 대한 믿음 역시 미움의 형태로 바뀌어 사랑 없는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헤드윅이 진정으로 미워하고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었을까? 진정한 여자가 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그는 미워하고 싶었지만 애써 부정하며 여자보다 더 여자답기를 원했고 상처를 받을수록 그를 더 치장했던 것이다.
이츠학과의 만남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사랑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서로 아껴주고 부부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본심에는 경쟁심과 함께 짙은 부러움이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이츠학과의 만남은 사랑이 아닌 일종의 대리만족심리. 바로 그것이었다. 여성으로서 완벽한 모습과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인식하고 있던 이츠학. 헤드윅이 그토록 바라던 모습을 하고 있는 이츠학에게 그는 커다란 부러움을 느끼고 있었고, 그의 모습이 드러나지 못하도록 구속하고 억눌렀던 것이다. 이런 이츠학 그와 함께한다면 자신에게 없는 모습들을 발견하고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의 바람이 담겨져 있는 관계였던 것이다.
헤드윅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꿈을 갈망했고 자신의 존재를 찾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겪는 동안 그는 진정으로 행복하지 못하였고 자신의 모습 역시 찾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핵심적인 문제는 자기 자신에게 있었다고 생각한다. 헤드윅은 항상 자신의 존재를 다른 사람에게서 찾으려고 하였다. 그리고 한동안은 실제로 찾은 것처럼 느끼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행복은 진정한 것이 아니었고 그 모습 역시 자기 본연의 모습이 아니었다.
영화 마지막 장면을 보면 처음 나왔던 ‘사랑의 기원’ 노래처럼 나뉘어져 있던 헤드윅의 문신이 합쳐져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모양이 헤드윅이 찾아낸 해답이자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인 것이다. 자신의 진정한 가치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 것이고 누구고 그것을 대신해 주거나 다른 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을 알게 되는데 까지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고 헤드윅은 말해주는 것 같다. 토미와의 사랑이 끝이 났을 때 그는 이미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미워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여자가 될 수 없는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던 나머지 토미를 미워하는 대상으로 삼고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이츠학과의 관계를 지속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가 선행되어야 하는가.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용기!
바로 여기서 정체성을 찾는 문제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직 어리고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나의 존재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헤드윅처럼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보며 느낀 가장 큰 점은 앞으로 나의 자세가 아닐까 한다. 헤드윅이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였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는 것처럼 나 역시도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 알 수가 없다. 힘든 일이 있으면 쉽게 포기하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기만 하는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니라 나를 진정으로 믿고 나 자신을 사랑하며 어떤 상황에 처해지던 잘 해쳐나갈 수 있는 그런 모습으로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존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자아 정체성이라는 단어도 어떤 말인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겠다!
- 끝 -
⟦참고 사이트⟧
- 정체성 개념 네이버 지식검색.
( www.naver.com )
-헤드윅 공식 카페.
(http://hedwig.cyworld.com)
⟦참고 문헌⟧
이길우,『자아,윤리,그리고 철학 』,고려대학교출판부, 2006,
p.3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