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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그늘 아래로
이 문 열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어지러운 꿈속을 헤매다 가까스로 눈을 떴다. 악몽이라 할 수는 없지만 왠지 사람을 맥 빠지고 우울하게 만드는 꿈들이었다. 마치 죽음을 앞둔 자가 일생의 어리석음을 한꺼번에 더듬어 보는 듯 그때껏 있어 왔던 온갖 부끄럽고 한스럽게 기억되는 모든 일이 뒤죽박죽으로 밤새껏 꿈속을 오락가락했기 때문이었다.
아주 어렸을 적 그는 아무런 생각 없이 병아리를 잡아 물독 속에 집어넣고 뚜껑을 닫아 버린 적이 있었다. 그래 놓고는 어린애답게 잊어버려 집 안에 작은 소동이 벌어졌는데, 그는 너무 어려 혐의를 벗고 애매한 형이 누명을 쓰고 매를 맞게 되었다. 성난 어머니의 매서운 회초리 앞에 종아리를 걷고 서서 눈물을 뚝뚝 흘리던 형을 구경만 해야 했던 그 속수무책의 심경. ― 꿈의 시작은 아마도 그것이었을 것이다.
이 한살이에서 그 같은 속수무책의 상황을 얼마나 자주 겪어야했던가 겁 많음, 게으름, 숫됨 혹은 어리석음으로 자복과 참회의 기회조차 놓쳐 버리고 기억 속에 묻혀 버린 부끄럽고 참담한 일들. 그 중에서 어떤 것은 교활이나 영악합의 혐의조차 결 수 있는 일도 있다. 명분에 비해 실리의 균형이 현저하게 기울 때 어리석음 혹은 게으름의 핑계 뒤로 슬그머니 숨어든 것은 또 몇 번이나 되던가.
그는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 꿈의 갈피를 뒤지며 새삼스러운 자책과 한탄에 젖었다. 그러나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 담배를 붙여 물 때까지도 그 새벽의 어지러운 꿈이나 그 아침의 그 같은 정조(情調)가 어디서 연유된 것인지를 짐작하지 못했다.
담배를 붙여 물고 시계를 보니 여섯 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특별히 과음이라도 하지 않은 날이면 어김없이 눈을 뜨게 되는 시간이었다. 재떨이를 찾아 책상 위를 더듬는데 펼쳐져 있던 편지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간밤 외출에서 늦게 돌아와 살피던 우편물 더미 곁이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면서 그 편지를 다시 집어 들었다. 간밤의 긴장이 다시 팽팽하게 살아났다.
제 번하옵고.
20년째 선생님의 글을 아끼며 읽어 온 독자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20년에 의지해 감히 이런 외람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선생님의 글을 처음 읽은 것은 아직도 그때 짊어지게 된 불구에서 놓여나지 못한 병상에서였습니다. 그때 저는 막 30대에 접어들었으나 대학도 군대도 가지 않은 탓에 직장 생활을 벌써 여러 해째 한 생활인이었는데 뜻 아니한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고비를 넘기고 회복기로 집어들 무렵, 누군가가 선생님의 처녀작을 제게 가져다준 것입니다.
처음 선생님의 작품을 대했을 때 저는 솔직히 새롭고 눈부신 세계를 대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 20년 신간 출간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저는 어린애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선생님의 책을 읽어 왔습니다. 선생님은 스스로 설교자도 해결사도 예언자도 거부하셨지만 제가 선생님의 작품에서 보아 온 것은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함께 얘기해 보자, 혹은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는데 당신은 어떤가, 하는 식이었지만 그 책 갈피갈피에서 느껴지는 그 성실하고 깊은 사고와 겸허한 제안은 암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제게는 그 어떤 설교나 예언 이상의 힘으로 세계와 인생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근년 들어 저는 조금씩 선생님의 글에서 어떤 회의를 느낍니다. 말투는 예전보다 더 주저없고 유창해지셨지만 제게 남겨지는 메아리는 왠지 공허한 느낌이 들며 문체도 틀림없이 안정되고 미끈해지셨지만 사색의 무게는 전 같지가 못합니다. 특히 이번에 펴내신 역사물은 왜 이런 작품을 지금 와서 발표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든 정도였습니다. 좀 심하게 말한다면 턱없이 짙은 지분 냄새와 엉덩이짓만 남은 늙은 작부를 대할 때의 처참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바로 그것이었다. 간밤 그의 꿈자리를 그토록 어지럽힌 것은. 그는 새삼스러운 섬뜩함으로 그 편지의 나머지를 읽어 갔다.
연보를 보니 생년월일이 저와 비슷해 아마도 쉰을 한두 해 앞두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세월의 무게라는 게 있다면 지금쯤은 선생님의 글에서도 그걸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요즘의 선생님 글에서는 억지로 지은 노성(老成)한 목소리는 있어도 성숙한 사유는 읽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영원한 젊음을 운위할 열정과 패기가 느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범용하게 늙고 사위어 가는 지성을 대하는 느낌에 더욱 쓸쓸해지는 것입니다.
물론 작가도 나름의 일생을 가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태어나고 자라고 성숙하고 늙어 가는 존재이며 때로는 피로에 빠지고 고갈에 직면하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그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시대에 휘몰리어 생각보다 빨리 시들고 몰락해 가는 작가의 모습은 참으로 보기에 딱합니다. 차라리 몇 년이고 기다리더라도 한때 빛났던 정신에 어울리는 장엄한 작가의 황혼을 우리는 보고 싶은 것입니다.
준비도 충분하지 못하고 성의와 열정을 다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떼밀리어 하는 연재는 이제 그만두십시오. 젊은이들과 시류(時流)를 곁눈질하며 졸속으로 늘려 가는 창작 목록도 경계하십시오. 이런저런 고려로 절실하지도 않은 시대의 현안을 규격화하여 의무적으로 띄워 올리는 중단편도 재고하셔야 합니다. 더욱 묵히고 익히시어 숙성된 지성의 향내를 피워 올리셔야 합니다. 우리에게 젊어서는 사랑했고 늙어서는 존경할 수 있는 작가를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거기까지 읽어 가자 갑자기 눈앞이 흐려 와 더 읽을 수가 없었다. 간밤 처음 그 편지를 읽을 때는 시건방진 딜레탕트도 있구나, 싶은 기분이 있었는데 그 아침에는 왠지 아득한 슬픔의 정조가 앞섰다. 아아,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이렇게 민망히 여기는 눈들이 쓸쓸함까지 담아 나를 살피고 있는 동안에도 무슨 미망에 사로잡혀 이렇게 허덕이며 달려온 것일까.
그는 이제 정중한 사죄와 함께 인사말로 넘어가는 그 편지를 그대로 내려놓고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때 아내가 찻잔을 받쳐들고 서재로 들어왔다.
“아유 이 연기. 식전 담배가 제일 나쁘다는데 벌써 몇 대째예요?”
찻잔을 내려놓은 아내는 습관처럼 그렇게 핀잔을 주며 창문부터 열어젖혔다. 차단되어 있던 창밖의 소음들이 일시에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행상들의 마이크 소리, 이른 출근길의 수런거림, 자동차의 경적……. 그날따라 못 견디게 그의 신경을 건드리는 소리들이었다.
“이건 약속이 다르잖아요? 접때 병원에서 돌아올 때 무어라고 하셨어요? 그래 놓구선 뭐 하나 달라진 게 있어야지. 약을 구해 오니 제대로 챙기나, 등산 간답시고 나서더니 난데없이 고주망태가 되어 돌아오지 않나……. 당신 요새 무슨 고민 있어요?”
온몸에 기운이 싹 빠져 버린 듯한 느낌에 말없이 앉아 있는 그를 보고 아내가 물었다.
“아니.”
“그렇잖은 것 같은데, 말해 봐요. 무슨 일이에요?”
20년을 넘게 함께 살아온 사람답게 아내가 무언가 심상찮은 낌새를 느끼고 다시 물어 왔다. 그는 들키기 싫은 치부를 가리는 심정으로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편지를 집어 서류철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아내에게 뚜렷한 암시를 준 듯했다.
“아, 그 편지. 그 때문에 새벽부터 이러시는 거예요?”
“그럼 당신도 봤어?”
그는 그 편지가 처음부터 열려 있었다는 것도 잊고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하두 두툼하길래, 뭔가 싶어서…….”
아내가 조금 기 죽은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실은 아내가 그 앞으로 온 편지를 뜯어보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숨길 수 없는 역정을 드러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야? 당신 언제부터 내 검열관이 됐어? 왜 남의 편지를 뜯어보고 난리야?”
“뭘 그렇게 화를 내고 그러세요? 무슨 급한 일인가 싶어 뜯어볼 수도 있는 일 아녜요?”
“이 여자 정말 보자 보자 하니 형편없네. 사신(私信)은 헌법도 보호한다는 거 몰라? 당신 뭔데 남의 편지를 함부로 뜯어봐?”
그가 더욱 목청을 높이자 아내도 발끈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이내 그가 화를 내고 있는 것이 단순히 그 편지를 먼저 뜯어본 까닭만은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쳤는지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편지를 뜯어본 건 미안해요. 그렇지만 뭘 그리 마음 상해하세요? 잘난 척하는 독자가 글 솜씨 한번 부려 본 것 같던데…….”
“그렇게 쉽게 말할 문제가 아니야.”
아내가 숙어 들자 그도 더는 화를 내지 못하고 목소리를 낮췄다. 아내가 완연히 위로조가 되어 받았다.
“당신이 내 남편이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말이야 바른말이지, 당신보다 더 성실하게 쓰는 이가 얼마나 있다구 그래요. 맘 편하게 구경하며 하는 소리 일일이 다 들을 거 없어요. 아무리 20년 독자라지만 그거 너무 무례하지 않아요? 그렇게 잘 알면 자기가 써 보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들으니까 그런 사람들이 있대요. 예전의 문학 지망생이었으나 결국 등단은 못 하고 문학에 한만 기른 사람들 중에는 잘나가는 작가나 시인들에게 그 잘난 글 솜씨로 아픈 소리만 골라 편지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사석에서 한마디 슬몃 으스댄다더군요. 아무개가 요즘 너무 헤매는 거 같아 내 따끔하게 한마디 해 줬지, 하는 식으로. 그걸로 수십 년 자신의 문학적인 불우함을 한꺼번에 앙갚음하는 거죠.”
“잘도 아는군. 그렇지만 그 위로는 사양하겠소. 나는 오히려 이 편지를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이겠소.”
그가 그렇게 무뚝뚝하게 말하자 아내의 얼굴에는 완연히 근심의 빚이 어렸다. 그녀는 그의 일탈에 대해 본능적인 공포를 품고 있었다. 젊었을 때에는 그가 며칠만 사라져도 영원히 떠나 버린 게 아닌가 안절부절못하다 맥없이 드러눕곤 했다. 어쩌면 그가 오히려 남보다 더 충실하게 가정과 아내 곁을 지켜 온 데는 그런 아내에 대한 애처로운 감정이 작용해서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아내는 그의 안주(安住)를 믿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날은 좀 달랐다. 아내의 근심 어린 표정을 보자 그는 느닷없는 짜증을 느꼈다. 바로 저것에 사로잡혀 안주를 배우고 타협을 배우고 하찮은 탐닉에 젖어 들었다. 20년 독자가 보다 못해 따가운 질책을 던져 올 정도로. ― 그런 생각이 들자 슬며시 역정까지 일었다. 그리고 그 역정은 이내 심술궂은 물음으로 나타났다. 그 무렵에는 그 자신조차 까맣게 잊고 지냈던 아내와의 옛일이었다.
“그런데 말이오, 당신 그 약속 기억하오?”
“무슨 약속 말예요?”
그렇게 느껴선지 아내의 얼굴에 갑자기 긴장이 떠올랐다. 되묻고는 있어도 그가 말하는 약속이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20년이 넘는 결혼 생활에서 생겨난 미묘한 심리의 공명(共鳴) 탓일 터였다.
“우리가 결혼 전에 했던 약속 말이오.”
“약속이 어디 한두 개였어요?”
아내는 그래도 어떻게든 피해 보려고 딴청을 부렸다. 그런 아내를 뒤쫓아 잡아채듯 그가 말했다.
“우리 큰아이가 법률적 성년이 되는 해면 나는 숲으로 가도 되게 되어 있었지. 나무 그늘 아래로.”
못 들을 말을 들은 사람처럼 몸을 가볍게 떨던 아내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받았다.
“나무 그늘 아래로 가서 뭐하시게요?”
“잊었소? 생육과 봉사의 의무를 마친 나는 그제야 참다운 나를 찾아 나서는 것이오. 일상의 번잡함 속에 가려져 있던 삶의 본질을 알아보는 것이오.”
“덜떨어진 문학청년의 발상 같기는 한데 나는 영 그런 약속을 한 기억이 없네요.”
아내는 이제 무언가를 억지로 참는다는 듯 숨결까지 쌔근거리며 그렇게 시치미를 뗐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아내의 심사를 못 알아본 척 할 말을 다했다.
“아마 결혼을 한 달쯤 앞둔 날인데 그때 틀림없이 당신은 동의했소. 그런데 정말로 기억하지 못하는 거요? 기억하기 싫은 거요?”
“정말 알고 싶으세요?”
갑자기 아내가 거의 표독스러운 눈빛까지 내뿜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어찌 보면 한 마리 연약한 짐승이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와도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는 그제야 아차, 싶었으나 이미 내친김이었다.
“아무래도 당신이 억지를 쓰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럼 바로 말할게요. 실은 결혼 후 입때껏 한 번도 그 약속을 잊은 적이 없어요. 무엇 때문인지 아세요? 당신의 그 지독한 이기심 때문이에요.”
아내가 드디어 그렇게 앙칼지게 받았다. 이기심이란, 자신의 의도와는 얼른 연결이 잘 안 되는 낱말에 그가 초금 어리둥절해하며 받았다.
“이유가 좀 뜻밖이군.”
“당신 그때 뭐라고 한지 아세요? ‘큰아이가 법률적인 성년이 되면 아비로서 최소한의 양육 의무는 다한 게 되겠지. 나머지는 당신에게 맡기고 나는 나의 길을 가겠소. 나도 내가 무엇인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지금 여기는 어떤 시간이며 공간인지에 대해서 알아봐야 하지 않겠소…….’ 아무리 철이 덜 나고 거룩함의 환상을 털어 버리지 못한 문청(文靑)이라지만 내일 같이 결혼을 앞둔 자기 여자에게 그런 소리를 멀쩡하게 할 수 있어요? 그것도 다짐까지 받아 가며.”
“그래도 그때 당신은 선선히 응낙한 것 같은데.”
“당신의 그 지독한 이기심에 하도 기가 막혀 그랬어요. 그럼 나는 뭐죠? 당신의 어질러 놓은 속세의 꿈자리를 맡아 뒤치다꺼리나 해 달라는 거 아네요? 당신은 거룩하게 나무 밑으로 들어가 구도의 길을 가고……. 참 기가 막혀서. 기분 같아서는 파혼을 하는 쪽이 더 옳았겠지만 그래도 참은 것은 그게 당신이 그저 제멋에 겨워 한번 해 본 소리 정도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어요. 그것도 그때로 봐서는 까마득한 세월 뒤의 일이고.”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말했고 그 뒤로도 몇 번인가 당신에게도 주지시켰소.”
듣던 중 새로운 소리여서 그는 아내의 다음 말을 끌어내려고 다시 그렇게 상기시켜 보았다.
“결혼 초기의 일이긴 하지만 몇 번 들었고, 나도 되풀이 다짐을 주었죠. 하지만 그때는 당신이 설령 진심으로 하는 소리더라도 내게는 이미 나대로의 대책이 서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번에는 아내가 평소와 달리 야무진 표정까지 지어 보이며 말했다. 실은 나중에 그 약속을 입 밖에 내지 않게 된 그도 그게 궁금했었다.
“대책?”
“그래요. 당신이 떠날 때는 나도 같이 떠나리라구요. 생명을 이 세상에 불러낸 책임이라면 당신이나 나나 같지 않겠어요? 법률적인 성년이 되는 결로 당신의 책임이 끝난다면 내 책임도 마찬가지로 끝나겠죠. 그렇다면 나라고 언제까지나 자식 일로 속 썩고 속세의 근심 걱정에 아등바등하며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겠죠. 그때는 나도 같이 떠난다. ― 이렇게 마음 먹고 나니 약 올라 할 것도 없더군요. 그런데 이 중간에 들어와서는 그런 소리를 전혀 안 하시길래 이제 제대로 나이를 먹어 가나 보다 했죠. 그래, 어쩌시겠어요? 한 두 해 늦어지기는 했지만 이제라도 나무 그늘 아래로 돌아가시겠어요? 그런 생각이시라면 나도 준비를 시작하고…….”
아내의 말투는 어느새 공세로 전환되어 있었다. 원래 그가 그 약속을 꺼낸 것은 이제 와서 정말 그대로 실행하겠다는 뜻에서가 아니었다. 그걸 상기함으로써 나날이 속화되어 가는 삶과 그 질펀한 일상의 진창에 안주해 버린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다잡기 위함이었다. 그 과정에서 일종의 투정으로 아내와의 옛 약속을 건드려 본 것인데 뜻밖의 반격을 당한 셈이었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란 게 묘해서 몰린다 싶으면 더 억지를 써 보고 싶어진다. 그도 얘기가 거기쯤 왔을 때는 바로 그런 심사에 빠져있었다. 그는 다시 은근한 부아까지 올라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댔다.
“떠나는 건 난데 당신이 준비는 무슨 준비야? 그건 우리 약속에 없는 거잖아?”
“계약 요건에서 중요한 것이 빠지면 그 계약은 원천적으로 무효예요. 그 약속은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말장난이었고, 이제는 시효도 지났어요. 남은 것은 당신의 출가 결심인데, 그러면 나도 함께 출가하겠다는 게 뭐 틀렸어요? 그리고 집을 흩고 떠나는 마당에 왜 준비가 없겠어요? 더구나 둘째는 아직 미성년이니 특별한 고려도 필요하고…….”
아내는 눈도 깜짝 않고 그렇게 받더니 제법 사무적인 말투까지 흉내냈다.
“아이들 둘이 지내기에는 이 집이 너무 크고 관리도 힘들 테니 집부터 부동산에 내놓아야 하지 않겠어요? 조금 있는 땅도 그대로 넘겨주려면 증여세를 물어야 할 테니 처분해야 될 게고……. 당분간은 아이들 재산 관리를 맡아 줄 후견인도 정해야 할 게고, 믿음직한 신탁 기관도 알아봐야 하고. 갈 때 가더라도 이대로 아이들을 팽개치고 갈 수는 없으니까.”
“어, 저 여자 봐. 나보다 한 수 더 뜨네. 당신 정말 그래 막 나오기야?”
화가 나지만 마땅한 논리를 찾지 못한 그가 자신도 모르게 시비조가 되어 소리쳤다.
“소리 지르지 마세요. 막 보고 나온 건 당신이에요. 나는 그런 당신의 결정에 대응하는 조치를 생각하고 있을 뿐이라구요.”
아내의 말은 그때까지만 해도 차분했다. 그러나 그게 한계였다. 막상 자신의 입으로 집을 흩어 버린다고 해 놓고 보니 견딜 수 없는 비감이 이는 모양이었다. 이내 아내의 눈에 물기가 어리고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정말 이제 와서 이런 소리를 듣게 될 줄은 몰랐네요.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뭣 때문에 이래요? 이게 이십 몇 년이나 함께 살던 여편네에게 할 수 있는 소리예요?”
그러더니 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 나게 방문을 닫으며 나가 버렸다.
그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속세와 일상의 견고함을 느낀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홀로 남은 방 안에서 그는 갑자기 그 어떤 수로도 빠져나갈 길이 없는 감옥을 느꼈다.
그러자 막연했던 일탈의 감정이 갑자기 강렬한 의지로 모습을 바꾸었다. 부정되기에, 거부당하기에 더 치열해지는 일탈의 유혹이었다.
그날 그의 드물게 이른 출타는 아마도 그런 일탈을 위한 탐색의 의미가 있었다. 이제는 내외 모두 시빗거리가 생겨도 그것을 그 자리에서 결판을 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이가 아니어서 아침의 일은 잠시 덮어 두고 아침 식사를 끝낸 그는 아홉 시가 되기도 전에 집을 나왔다.
예정에 없는 발길이기는 하지만 첫 번째로 그의 저서 목록 절반 가량을 가지고 있는 출판사를 찾은 것은 그런대로 집을 나설 때의 막연한 목적에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책의 절반가량은 다른 출판사에 흩어져 있고 꼭 대표작만 모아 가지고 있지도 않았지만 일반적으로는 그의 주 거래 출판사로 알려진 곳인데, 실은 그에게도 그곳에 갈 때는 왠지 친정을 찾는 듯한 푸근함이 있었다.
늦은 출근 인파에 끼게 된 탓인지 터질 듯한 지하철에서 한 이십 분을 시달린 뒤 출판사에 이르렀을 때는 아홉 시를 좀 넘긴 시각이었다. 그는 출판사가 세 들어 있는 건물 앞에서 새삼스레 그 출판사의 간판을 찾아보았다. 많은 것이 20년 전 첫 책을 낼 때와 아주 달라져 있었다. 그때는 나무판에 조각된 상호 외에도 출판사의 유리창에 크게 상호들이 쓰여 있었는데 이제는 외장을 새로 한 건물 외부 어디에서도 상호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겉으로 요란스레 자신의 상호를 드러내지 않아도 될 만큼 내면적으로 충실해졌다는 뜻일까.
출판사가 있는 3층으로 걸어 올라가면서 한 무명작가로 처음 그 계단을 오를 때를 회상해 보았다. 그때 그는 그야말로 새롭고 빛나는 세계로 솟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이미 상당한 권위를 확보한 그 출판사가 등단한 지 1년도 안 되는 자신의 장편을 내 주기로. 결정한 까닭이었는데 그 기분은 인쇄된 자신의 첫 책을 받아 쥐었을 때까지 이어졌다.
“선생님 오늘은 웬일이십니까? 이렇게 일찍 뵙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출판사가 들어 있는 층 복도로 들어서는데 누군가가 그렇게 인사 삼아 말을 건네왔다. 공연히 회상조가 되어 좌우를 분간 못 하고 걷던 그가 퍼뜩 정신을 차려 돌아보니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고 있던 편집장이었다. 50대 중반으로 먹을 만큼 나이를 먹은 셈이었으나 그에게는 언제나 어리게만 느껴지는 친구였다.
“오다 보니, 어쩌다…….”
그렇게 공연히 어물거리며 대답해 놓고 보니 다시 젊은 편집장의 얼굴에 옛 편집장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의 첫 책을 낼 때 그곳의 편집장은 여자였다. 결혼을 앞두고 치아 교정을 하느라 이상하게 보이는 교정 테를 끼고 있었던 걸로 미루어 생각하면 노처녀이긴 해도 결코 지금의 편집장보다 나이가 많았을 리 없는데도 그의 기억에는 묘하게도 관록 있는 중년 부인의 인상으로 남아 있다. 보자. ― 그로부터 몇 사람의 편집장이 바뀌었나…….
그렇게 보아선지 사장도 그날은 새롭게 비쳤다. 먼저 그의 눈에 띈 것은 그때껏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드나들면서도 전혀 느끼지 못한 그의 늙음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사장은 한창 패기에 찬 40대 초반이었다. 그리고 같이 세월을 보내면서 거의 변화를 알아보지 못했는데 그날에야 문득 60대 초반이라는 사장의 나이가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그사이 허옇게 세어 버린 머리칼 때문이었다.
그를 본 사장의 첫마디도 편집장과 비슷했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이른 시각은커녕 오전에 들른 경우조차 별로 없었던 듯하기도 했다. 초기 몇 년은 그가 지방에서 살아 첫차로 올라와도 출판사에 도착했을 때는 언제나 오후였다. 서울로 옮겨 앉은 뒤에는 근년까지도 유명 했던 그의 늦잠으로 오전에 들른 경우가 드물었다.
“글도 안 되고…… 답답해서.”
그는 그렇게 얼버무리고 접객용 소파에 앉았다. 사장은 그래도 긴한 일로 찾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눈길을 버리지 못했다.
“왜 무슨 일이 있어요?”
“특별한 일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이제는 쓴다는 일이 자꾸 지루해지네요.”
“허, 벌써 갱년기 현상인가. 하긴 그럴 나이도 됐지. 아니 오히려 늦게까지 버틴 셈이오. 한번쯤 쉬고 싶기도 할 거라.”
사장이 비로소 그렇게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 주었다. 원래 집을 나올 때는 훨씬 진솔하게 얘기할 기분이었는데 역시 작가와 출판사 사장의 대화가 되어선지 직업적인 감정의 과장이 일어났다.
“쉬고 싶다기 보다는 동어반복과 매너리줌이 지겹다는 뜻입니다. 벌써 몇 년째 같은 얘기만 하고 있는 기분이에요. 다른 작가들도 이렇게 시들어 갑디까?”
“글쎄요. 다른 이들과 좀 다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혹시 동어반복이라든가 매너리즘이란 것, 소재의 빈곤과 언어의 고갈을 뜻하는 건 아닙니까?”
“그건 아닌데요. 나는 작가의 고갈이나 재충전 어쩌고 하는 말을 인정할 수 없어요. 그건 작가의 죽음입니다. 그게 아니라…… 아직 할 얘기도 많고 준비되어 있는 메시지도 여럿 남았지만 갑자기 그게 그거 같은 기분이 들며 지겨워지는 겁니다. 어쩔 수 없는 어휘와 문체의 반복이 곧 소재와 주제의 반복으로 느껴지며 오는 어떤 못 견딜 중압감 같은 것…….”
그는 그렇게 말을 돌리면서도 속으로는 섬뜩한 기분으로 되뇌었다. 그래 이게 소위 고갈이라는 것인지도 모르지, 이제 내게도 재충전이 필요한 시기가 온지도 모르지, 나는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던 선배들의 그 푸념…….
“다른 말로 바꾸면 피로나 혼란이 될지도 모르지요. 어쨌거나 쉬고 싶은 기분일 거라 짐작했는데, 말을 들어 보니 아닌 것도 같고,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지난 10여 년간 한 번도 이런 말은 못 들었는데.”
“그러니까 이제 하게 되는 거 아닙니까?”
그때 경리과 아가씨가 차를 내왔다. 그 바람에 그 화제는 잠시 미뤄졌다. 그러자 과장적인 감정은 가라앉고 처음 출판사로 들어설 때의 회고조가 되살아났다.
“오늘 여기로 들어오면서 새삼 참 많이 변했구나 하는 기분이 듭디다. 사장님이 늙으신 것도 오늘 갑자기 알아보게 되었구요.”
“환갑 진갑 다 지났으니 나야 당연히 늙어야지. 하지만 다른 거야 뭐…….”
사장은 자신의 나이 이외의 늙음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도 처음 출판사의 변화를 얘기할 때는 늙음의 뜻은 들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사장의 은근히 강경한 부인을 대하자 갑자기 그쪽으로도 생각이 미쳤다.
“아니죠. 활자 조판에서 컴퓨터 편집으로 변했고 활판 인쇄가 컴퓨터 식자의 옵셋 인쇄로 되었고, 매스컴을 통한 대형 광고 시대에 출판도 동참하게 되었고……. 조금씩 바뀌어 와서 그렇지 어떻게 보면 제작에서 판매까지 혁명적인 변화를 겪은 셈이죠.”
말은 그렇게 해도 어느새 그는 사장의 변함없는 출판 의식을 건드려 보고 있는 셈이었다. 사장이 그런 그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실토 비슷하게 말했다.
“하긴 늘어놓고 보니 하나하나가 모두 예전으로 보아서는 놀랄만한 것일 수도 있군요. 그렇지만 함께 흘러와서 그런지 그 속에 있는 내게는 그게 그거 같기만 하단 말이야. 컴퓨터 인쇄만도 그래요. 처음에는 활자 인쇄의 등 떠 있는 듯한 또렷함에 비해 컴퓨터 인쇄의 흐릿한 평면성이 눈에 낯설기만 하더니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요. 어디 그뿐인가. 책도 상품이란 개념, 그것도 처음에는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더구먼. 우리가 출판사 시작하던 60년대만 해도 출판은 문화 사업이고 책은 상품으로서의 성격보다는 일종의 문화적 강요에 가까운 것이었어요.”
사장은 그러면서도 시대와 함께 변해 온 자신의 의식을 말했으나 그가 보기에는 아니었다. 20년 전 그때만 해도 그 출판사는 젊고 진취적인 성향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그런 면으로는 그 출판사를 알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관록 있는 노포(老鋪)로서의 인상이 더 강했다.
사장의 출판 의식이란 것도 자신이 믿는 것처럼 충분하게 시대를 따라온 것은 못 되었다. 책의 상품성만 해도 그랬다. 말로는 책이 상품임을 인정하면서도 사장이 아직도 출판에서 우선해서 고려하는 것은 구식의 고급문화였다. 말하자면 대학 강단과 문단에서도 가치를 인정해 주는 상품을 만들고 싶어 했는데 정히 그가 원하는 문화적 수준과 상품성이 조화되지 않으면 결국 포기하게 되는 것은 상품성 쪽이었다. 옳고 그르고의 문제를 떠나 출판에서도 대량 광고로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고 믿는, 곧 독자도 광고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고 당장은 눈부신 성공을 하고 있는 젊은 출판사들에 비해서는 여전히 낡은 의식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의 말투는 절로 조심스러워졌다.
“그래도 사장님의 고집은 객관적인 여건과의 문제 아닙니까?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혼란과는 다르지요. 변화의 필요성을 감지하면서도 변할 용기도 의지도 없는 것처럼 막막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혹시라도 그가 모르고 있는 상처를 들쑤시는 꼴이 될까 봐 그렇게 한 발짝 옆으로 피해 보았다. 하지만 대화의 시작이 그의 고백 같은 말투여서인지 사장의 실토는 한층 진지해졌다.
“객관적인 상황이라도 어차피 주관의 수용을 거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실은 우리 기성 출판인들의 혼란과 피로도 내면화된 지 오랩니다. 말이 좋아 책의 상품화를 받아들였다는 거지 그 내용은 사실 뒤죽박죽 구구 각색이에요. 우선 상품화의 대상부터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출판을 시작할 때만 해도 상품화의 대상은 거의 문학뿐이었지요. 철학이나 역사도 상품화가 이루어지고는 있었으나 성과는 미미했고 정치학과 사회학 역시 조심스레 상품화를 모색하고는 있어도 그리 가망 있어 보이지는 않더군요. 그런데 70년대 후반 들어 그 가망 없어 보이던 일이 조금씩 현실화되어 가더니 요란 뻑적지근한 80년대가 왔어요. 더러는 고집스레 옛 상품에만 매달렸지만 우리 대부분은 너도나도 정치학과 사회학의 상품화에 뛰어들었지요. 이른바 제품의 다양화인 셈인데 그리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그래서 어렵사리 체질을 바꾸어 놓으니 느닷없는 90년대가 시작됩디다. 출판업계가 90년대를 느닷없다고 하는 것은 예측력의 부족과는 좀 다른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겁니다. 뻔하게 예측되는 일이라도 막상 벌어지게 되면 느닷없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어쨌든 이제는 출판도 모든 것이 상품화가 가능한 대중 시대에 이르렀고, 우리는 후기 산업사회의 다른 제품 생산업자들과 마찬가지로 가늠하기 어려운 대중의 암호를 해독하고 거기에 맞는 상품을 생산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고급문화 또는 교양이란 말 속에 갇혀
있는 자명한 세계 해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어느새 출판도 모든 것을 모든 방법으로 상품화해야만 살아남는 시대에 이른 겁니다. 거기다가 인접 분야의 강력한 도전은 우리를 더욱 혼란시킵니다. 흔히 테이프나 콤팩트디스크로 대표되는 이 시대의 특징적인 문화 전달 형식은 그것들을 출판의 새로운 형태로 보고 우리 안에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경쟁자로 맞아 자체의 경쟁력 강화로 맞서야 할 것인가조차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일견 객관적인 상황의 변화로 보이지만 결국은 내면의 혼란과 고민으로 귀착되지요…….”
거기까지 듣자 그는 집을 나설 때 은연중에 사장에게 걸었던 기대가 반감됨을 느꼈다. 언제나 냉철하고 합리적인 판단으로 조언해 온 사장이지만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그도 어쩔 수 없으리라는 느낌이 갑자기 든 까닭이었다. 내용과 형식이 달라도 사장이 빠져 있는 혼란과 피로 역시 그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나날이 가속도를 더하고 있는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은 그가 어떤 분야에서 일하든 본질적으로는 모두가 비슷한 혼란과 피로 속에 살고 있다는 편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날 그는 그 뒤 거의 한 시간이나 자신이 근래에 겪고 있는 갈등을 털어놓고 사장도 언제나 그래 왔듯 나름대로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나 짐작대로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이렇다 할 도움을 받지 못했다. 다만 자리를 뜰 무렵 사장이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던진 것만이 집에 돌아온 뒤에까지도 유효한 조언으로 남았다.
“어디 여행이라도 떠나 보시지요. 그런 때는 그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가 백운령(白雲嶺)과 도원평 (桃園坪)을 떠올린 것은 출판사를 나와 갑자기 휑뎅그렁해진 듯한 거리를 걸은 지 오래잖아서였다. 어떤 감정과 감성이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인지 30년 가까이 되는 옛날의 막막함과 피로가 한 기억으로서가 아니라 생생한 현실감으로 그를 사로잡으며 오랜 무의식의 수면 아래 잠겨 있던 그 태백산맥 속의 오지를 의식의 표면으로 솟구치게 했다.
그렇지만 그는 이미 옛날의 그 앞뒤 모르는 철부지가 아니었다. 그날은 옛 친구를 불러내 기원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저녁에는 술잔으로 마음속에 이는 불같은 일탈의 충동을 달래 보려 애썼다. 집으로 돌아가서는 제법 아내와의 화해까지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튿날 새벽 눈을 뜨면서 그는 낭패감과도 같은 심경으로 본질적으로는 20여 년 전과 조금도 변하지 못한 자신을 발견했다. 그대로는 아무래도 전과 같은 일상을 반복해 나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바로 그랬다.
“며칠 어딜 좀 다녀와야겠소.”
입맛 없는 아침상을 물리며 그가 불쑥 말했을 때 아내는 행선지조차 묻지 않았다. 그는 한편으로는 궁색한 구실을 만들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그 행선지를 추궁받지 않게 된 것에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아내의 불문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가 마치 미리 준비라도 해 둔 듯 아내가 이내 여행 가방을 내오자 이번에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다녀오세요.”
아내는 애써 표정을 짓지 않은 얼굴로 대문께에서 그를 전송했다. 차를 빼면서 흘긋 쳐다보니 아내가 그날따라 유난히 작고 쓸쓸해 보였다. 느닷없이 저려 오는 가슴에 그는 하마터면 차를 세우고 내릴 뻔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절실하고 힘 있는 다른 감정이 그를 휘몰아 그는 짐짓 세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그게 바로 지난 20년 나를 이 끈적한 안주(安住)에 묶어 둔 사슬인지도 모른다…….
그가 구체적인 길을 잡기 위해 지도를 펴 든 것은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든 뒤의 첫 휴게소에서였다. 지도상으로는 죽령을 넘는 길이 가장 빨라 보였다. 한번 길을 정한 그는 그로부터 네 시간, 한 번 쉬는 법도 없이 도원평이 있는 Y읍으로 달렸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 보는 몽롱하면서도 세찬 열정이었다.
Y읍은 그사이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그때는 일본식 목조 건물의 군청과 중학교를 빼고는 고만고만한 민가들만 백여 호 모여 있던 좀 큰 동네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제법 구획 정리까지 된 현대식의 도시티를 냈다 지도와 도로 표지판이 아니라면 그곳이 정말로 그 옛날의 그 작은 군청 소재지였던가조차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그는 낯설어진 그 소읍과 친화(親和) 의식이라도 치르는 기분으로 중심가의 한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러나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주위를 살피면 살필수록 낯설어질 뿐이었다.
읍 거리를 벗어나면서 길은 더욱 낯설어졌다. 옛날에는 비포장에 1차선밖에 안 되던 길이 2차선、으로 산뜻하게 포장된 것은 그랬지만 끼고 달리는 개울이나 마주 보는 산들도 모두가 기억 속의 그것과는 달랐다.
처음 그는 혹시 길을 잘못 잡은 것이나 아닌가 싶어 두 번이나
차를 멈추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방향을 확인했다. 그 사람들뿐만 아니라 얼마 안 돼 다시 만난 도로 표지판도 자신이 바로 가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하긴 이미 30년이 다 돼 가는 기억을 고집하는 그가 애초부터 잘못되어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윽고 마을과 경작지는 끝나고 길은 본격적으로 백운령(白雲嶺)에 접어들었다. 읍 거리가 상당한 고도의 분지(盆地)에 자리 잡은 것이라 경사는 심하지 않았으나 사방이 점점 산으로 막혀 오는 게 오지의 큰 재로 들어서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그런데 좁아진 골짜기 사이를 달린 지 십 분도 안 돼 그는 다시 기억에 없는 경우를 만났다. 갑자기 길이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는 게 그랬다. 그것도 90도 이상으로 거의 상반된 방향이었다.
그는 잠시 차를 멈추고 다시 한 번 옛날의 기억을 짜내 보았다. 출발 무렵 해서 여러 번 되새기고, 근처에 이르러 확인하는 동안에 꽤나 세밀하게 되살아난 것 같던 기억도 거기서는 무력하였다. 도대체 경물 자체가 낯선데 어떤 길이 백운령으로 가는지를 무슨 수로 판단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가 자신 없는 대로 그가 기억해 낸 게 옛날 고갯길에서 쬐었던 겨울 햇살이었다. 그때 그는 백운령 초입의 어떤 길싶에서 담배를 피우며 지친 다리를 쉬게 한 적이 있는데 쌓인 눈에 반사된 햇살이 두 눈을 찔러 왔던 기억이 났다. 그것으로 산을 왼편으로 낀 길이 영마루로 오르는 길이라고 가늠한 그는 곧 그리로 차를 몰았다.
길은 실망스럽게도 오 분을 못 가 포장이 끝나고 황톳길이 나왔다. 그러나 다음 공사가 멀지 않은 듯 흙과 자갈로라도 잘 다져 놓아 그만이라도 다행스레 여겨졌다. 짐작으로 원래 1차선이었던 그 길의 확장 공사는 재 너머까지 되어 있을 성싶었다. 역대로 길 하나는 확실히 닦는 정부를 가진 덕에 백운령을 넘는 길까지도 확장 포장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흔해 빠진 포장 공사까지 의외로 생각하는 까닭은 백운령 너머에 있는 단절된 세계, 도원리와 은수동 때문이었다. 20여 년 전 그가 그리로 찾아든 것은 그곳이 국도가 다하는 곳이며 사방이 해발 팔백이 넘는 산맥들로 막힌 땅이어서였다. 때 이른 피로와 허무에 지쳐 숨어들듯 찾은 곳인데 이제 그리로 2차선의 포장도로가 찾아들고 있었다.
하지만 확장 공사는 영마루에 이르기 전에 끝나고 예전의 1차선 국도가 나타났다. 차체 바닥에 닿을 듯 바윗돌이 울퉁불퉁하고 두 대의 차가 교차하기 위해서는 이따금씩 나타나는 넓은 구간을 이용해야 하는 길을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아득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변화 없음이 옛 기억을 되살려, 맞게 길을 찾아왔다는 안도를 주었다.
그 참나무 등성이는 어디쯤일까. 그는 30년 가까이 지난 옛날의 눈 개인 오후를 머릿속에서 떠올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려 보았다. 잎 진 가지에 내린 눈이 햇볕에 녹으면서 새까매진 참나무붙이들이 순백의 눈 천지를 배경으로 해서 연출하던 그 현란한 아름다움이 새삼 선명하게 머릿속에 되살아났다. 그러나 이제 눈에 보이는 것은 유월의 한창 푸르른 잡목 숲뿐이었다.
거기다가 험한 산비탈을 따라 난 비포장 1차선 도로를 운전하는 부담도 주위 경물을 눈여겨볼 수 있게 해 주지 않았다. 8부 능선쯤의 굽이 길 맞은편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지프차에 한바탕 진땀을 뺀 뒤부터는 운전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시야가 트인 잿마루에 올라간 뒤에 차를 세우고 주위를 둘러볼 생각이었다.
출발한 읍 거리가 이미 상당한 고지의 분지라 그런지 길은 계속 경사가 완만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좀 훤해지는 것 같더니 어느새 차는 잿마루에 이르러 있었다. 다행히 잿마루에는 두 대의 차가 교행할 수 있게 길을 넓혀 둔 곳이 있어 그는 거기에 차를 멈추고 밖으로 나왔다.
그곳에도 변화는 다가오고 있었지만 짐작으로 잿마루는 20여 년 전 그때와 별로 달라진 곳이 없는 듯했다. 젊은 그가 사진에서 본 알프스의 연봉(連峰) 들을 연상했던 태백의 우뚝한 봉우리들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옛 기억들이 놀랄 만큼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스무 살 그때 나를 이곳으로 이끈 절망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이 백운령과 도원평에 대해 듣게 된 것은 그해 있었던 원인 모를 일탈의 막바지에서였다. 일껏 들어간 대학을 느닷없이 뛰쳐나와 어디가 어딘지도 모를 곳을 서너 달이나 헤매다 그 작은 읍 거리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거기서 그 험한 재와 그 너머의 고립된 세상에 대해 듣게 되었다.
어떤 해 질 무렵 그가 지친 몸으로 쇠전거리 법집에 들어 저녁을 먹으면서 이제껏 따라온 길로 계속 가면 어디에 이르는가를 묻자 중년의 주인 아낙네가 농 섞어 받았다.
“이 양반이 도원평에서 왔나? 요새같이 편한 세상에 뻐스 타믄 어디든동 가고 싶은 곳에 가는데 옛날 과객맨쿠로 길은 왜 물어 쌓노?”
그런데 도원평이란 말을 듣는 순간 그는 묘한 흥미를 느꼈다.
“도원평요? 도원평이 어딘데요?”
“그래고 보이 도원평에서 오지는 않았는갑네. 도원평 이사 구름재 너머 있제.”
“구름재는 어딘데요?”
“이 길루 쭉 따라 내리가다 보믄 남쪽으로 빠지는 길이 있다꼬. 그게 바로 구름재 입새라. 들으이 지도에는 그 재가 백운령으로 나와 있다 카든강.”
“그럼 도원평이란 곳도 그리 멀지 않겠네요. 그런데 왜 딴 세상 얘기하듯 하세요?”
그러자 주인 아낙네가 입심 좋게 도원평 얘기를 들려주었다.
“하마 재 이름 들어 보믄 모르나. 하도 높아 늘 구름이 걸리 있다꼬 이름도 구름재라. 그 재를 넘을라 카믄 한 60리는 좋게 될 거라. 거다서 다시 한 20리 들어가믄 도원평이라꼬 평평한 들이 나오제. 옛날 난리가 나면 숨으러 가던 곳인데 지금도 여남은 집은 남아 있다 카지 아매. 글치만 완전히 별천지라. 길이라꼬는 일제 때 닦은 산판 길이 있지마는 버스도 못 댕겨. 딴 쪽은 사방 깨끄라운(가파른) 산으로 막히 있고. 1년에 두어 번 거다 사람들의 길을 곤치고 육발이(타이어가 여섯 달린 미 군용 트럭)를 불러 농산물을 실어 내고 생필품을 사들여 갈 때만 바깥세상과 이어질 뿐이라. 특히 초겨울 들어 한번 눈이 왔다 카믄 그 이듬해 눈이 녹을 때까지는 저끼리 딴 세상으로 살아야 한다 카이.”
국밥집 주인 아낙네에게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대뜸 그곳이 자신이 가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길을 자세하게 묻자 이번에는 그녀 쪽이 호기심을 내비치며 물었다.
“옛날에는 더러 아편 농사 같은 거로 한몫 잡을라꼬 외지 사람들이 찾아드는 수가 있었지마는 요새는 통 길 묻는 사람이 없는갑던데. 더구나 울진에 공비가 든 뒤부터는 거다 사람들도 소개시켜야 한다는 말까지 있던데, 젊은 사람이 거다는 왜?”
“아뇨, 찾아가겠다는 얘기는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찾아갈라 캐도 이제는 파이라. 벌써 눈이 쌓이도 몇 자는 쌓있을 긴데. 까닥하믄 재 넘다가 얼어 죽기 십상이라 카이.”
그때 그가 도원평으로 갈 결심을 굳힌 것은 오히려 그 눈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미 문학청년의 길을 디뎌 본 그는 자연스레 크눌프를 떠올렸고, 눈 속에서 죽어 가는 달콤한 상상에 이끌렸다. 죽음조차도 어떤 경우에는 달콤하게 상상할 수 있었던 그 나이…….
그는 다시 주위를 휘돌아 보다 악전고투와도 같던 그날의 여정을 떠올렸다.
그날 밤을 가까운 여인숙에서 묵은 그는 이튿날 아침 미지의 신세계를 찾아 떠나는 탐험가나 되는 기분으로 백운령을 찾아 떠났다. 과연 재로 접어든 지 10리도 안 돼 길은 두터운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눈은 그의 사그라져 가던 여행의 흥취를 돋우었을 뿐이었다. 그는 준비해 간 소주를 질끔거리며 세상 편한 나그네처럼 재를 올랐다. 아무리 험한 재라 해도 일찍 길을 떠난 터라 60리쯤은 해 지기 전에 결어 낼 자신이 있었다. 재만 넘으면 그다음에야 저문들 어때…….
그로부터 서너 시간의 감동은 그가 뒷날 쓴 글에서 과장되게 펼쳐 보인 바 있다. 아름다움의 이데아 그 자체로까지 추켜세워져. 그런데 문제는 그 뒤였다. 눈은 갈수록 두터워져 영마루 근처에서는 거의 허벅지까지 빠질 지경이었다. 그런 눈을 헤치고 가노라니 자연 시간과 체력의 소모가 심해 영마루에 이르렀을 때는 벌써 해가 서쪽 산마루로 내려앉기 시작하는 데다 몸은 또 물에 젖은 솜 더미처럼 무거웠다. 자동차로 겨우 한 시간 남짓 온 거리를 그때는 여섯 시간이나 결려 온몸의 기력을 소모하고 오른 셈이었다.
그는 산굽이와 한창 짙은 나무 잎사귀로 가려져 아직은 옛 모습을 찾아내기 힘든 도원평 쪽을 바라보았다. 그때의 그 현란하던 설경은 없으나 아련한 감회는 되살아났다. 저녁 이내 같은 것이 끼면서 갑자기 아득해 보이던 도원평. 그때 잿마루에서 잠시 쉰 그는 외로운 산길에서 맞게 되는 겨울밤이 두려워 내리막길을 재촉했다. 아아, 방황하지 말라, 때가 온다. ― 그런 감미로운 시구는 이제 더 이상 감동을 주지 못했다. 어떻게든 저물더라도 너무 늦기 전에 가장 가까운 민가에 이르러 눈에 젖고 지친 몸을 따뜻하게 지키는 일이 급했다.
그 바람에 구르듯 재를 내려간 그가 다시 10리 눈길을 허둥지둥 헤집어 가다 갑자기 향군 초소를 만나게 되었을 때의 감격이란. 상대는 전혀 예상 밖인 그의 출현에 잔뜩 긴장해 수하를 하고 있던 향토예비군들이었고, 그들을 지휘하는 전투경찰의 총에는 실탄까지 장전되어 있었지만, 그는 그들을 만난 게 그저 반갑기만 했다…….
그는 다시 차에 올라 아득한 옛일을 떠올리며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옛날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차로 내려가 보니 정말로 높고 험한 재였다. 그런 기억 속의 향군 초소까지의 거리와 위치를 가늠하며 천천히 차를 몰았다.
그런데 재가 다 끝나 가는 곳에서 그는 뜻밖으로 실망스러운 변화와 부딪쳤다. 그곳까지 이른 2차선의 잘 포장된 도로였다. 어디서 온 길일까 싶어 그는 차를 멈추고 최근에 산 지도를 펼쳐 보았다. 그 길은 지도에까지 나와 있었다. 동해안의 고속화 도로에서 한 갈래 포장도로가 곁가지처럼 벗어나 재 너머의 읍 거리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백운령 구간만 비포장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옛날 도원평이 그에게 감동을 준 것은 그곳이 불완전하나마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때 너무 일찍 세상과 삶에 지친 그는 아마도 그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열망에 빠져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돌아가 묻혀 살 숲 또는 나무 그늘을 생각하게 되었을 때 문득 그곳을 떠올린 것도 바로 그런 세상으로부터의 고립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변화였지만 그 변화가 그에게 준 실망은 컸다. 이제 더는 별날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세상에 흔한 길과 마을 중의 하나를 되돌아보러 왔을 뿐이었다.
무엇이 어울리지 않게 잘 정비된 2차선 포장도로를 이곳까지 끌어들였을까. 그는 까닭 모르게 불평스럽고 억울한 기분이 되어 그렇게 중얼거리며 차에 올랐다. 오 분도 안 돼 기억 속의 향군 초소에 이르렀으나 난데없이 그곳에는 잘 도색된 가드레일이 몇 십 미터에 걸쳐 이어져 있을 뿐 옛날의 통나무 차단 시설도, 흙벽돌로 쌓은 향군 초소도 흔적이 없었다.
그러자 기억은 다시 옛날의 주막집을 떠올렸다. 향군 초소에서의 간단한 심문을 전혀 심문받는다는 기분 없이 넘긴 그가 마침 교대를 하게 된 향토 예비군 하나와 밤길을 걸어 찾아들었던 곳이었다. 적당한 이름이 없어 주막이지 실은 늙은 과부 할범 혼자 살아만만한 까닭에 겨울철에는 마을 청년들이 거기 모여 술추렴도 하고 내기 화투도 치는 구멍가게 안방일 뿐이었다.
다시 차에 올라 아직은 내리막이 계속되는 길을 달리는데 두 번째의 변화가 눈에 띄었다. 길 오른편으로 들어선 대여섯 채의 농가였다. 옛날 도원평의 마을은 길 왼편으로 띄엄띄엄 늘어선 여남은 채가 전부였다 편리해진 교통이 더 많은 이주민들을 불러들인 듯했다
길 왼편 기억 속의 집들도 변해 있었다. 그때는 대부분이 볏짚으로 이은 초가였고 더러는 억새 지붕도 있었으나 이제는 모두가 기와 아니면 슬레이트로 바뀌어 있었고, 보릿짚 섞어 이겨 바른 흙벽도 깨끗한 회벽이 아니면 시멘트로 달라져 있었다.
주막은 두 번째 집이었던가, 아니면 세 번째 집? 그는 달라진 겉모습 때문에 얼른 옛날의 주막을 찾아내지 못해 망설이다가 세 번째 집 앞에서 차를 멈추었다. 한일자(一) 집 가운데 마루방을 가진 구조가 아무래도 눈에 익은 까닭이었다.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부부가 국민학교 상급반으로 보이는 소년 하나와 마당에서 농기구를 살피다가 의아로운 눈길로 그를 맞았다.
“저어…….”
말을 걸다가 그는 문득 낭패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에게 어떻게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밝힐 수 있을까 :막막한 탓이었다. 남자 쪽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물어왔다
“무슨 일로 왔심니꺼?”
“여기, 혹시 이 집이 한 이십육칠 년 전에 주막이 아니었던가요? 아니, 주막이라기보다는 겨울철에 동네 청년들이 모여 놀고 술추렴도 벌이던 방……. 저쪽 마루 구석에는 소주 궤짝도 놓여 있었고…….”
“그거사(그거야) 우리 어릴 때이께는 잘 모르지만 여다서 동네 형님들이 자주 모이 논 거는 사실이래요. 그 사람들이 찾으이 어메가 술 궤짝도 띠(떼어) 놓고 묵이나 두부도 맹글어 팔고, 그랬을 께래요. 그런데 왜 그래십니꺼?”
“아, 맞군요. 그럼 실례지만 댁은 이 집 아드님 되십니까?”
“그렇심더.”
그렇다면 그 사내는 그때 볼만 많던 까까머리 소년이었을 것이고 나이는 아직 마흔이 차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야 되찾아온 곳에서 그때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을 만난 것은 어쨌든 감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 그때부터 주욱 여기 사셨습니까?”
“아이래요. 군대 마치고 한 10년 객지 생활하다가 여기도 길이 닦이(닦여서) 살 만하다는 소리 듣고 되돌아온 게 이제 한 3년 되니더. 그런데 어디서 왔십니꺼? 보이(보니) 도원평 사람 같지는 않지마는 여기를 쪼매 아시는 모양이네요.”
이제는 경계의 기색이 사라진 눈길로 사내가 그렇게 받는데 등 뒤로 발자국 소리가 나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일꾼 구하기는 고마 파이따(틀렸다). 내일 배추 모종은 우리끼리 내야 될따.”
그 목소리가 귀에 익어 돌아보니 놀랍게도 옛날의 주막 할머니가 사립을 들어서고 있었다.
주막 할머니도 그가 전혀 낯선 사람 같지는 않은 듯했다. 돌아본 그를 힐끔힐끔 보다가 먼저 말을 걸었다.
“보자, 이게 누구로? 어예 생판 낯선 사람 같지가 않네.”
“아직 살아 계셨군요. 절 알아보지 못하시겠어요?”
“누구더라…….”
“거 왜 한 30년 전 눈 많이 오던 해, 울진으로 공비가 들어와 시끄러웠던 해 겨울에…….”
그러자 할머니뿐만 아니라 사내까지도 가만히 기억을 더듬는 눈길이 되었다. 그가 그들의 기억을 도와주었다.
“밤에 눈 덮인 구름재를 넘어…… 저 방에 들어가 한참 앉아 있으니 얼었던 옷이 녹아 온몸이 물에 빠졌다 나온 사람처럼 젖더군요.”
“아, 그 대학생.”
뜻밖에도 그를 먼저 기억해 낸 것은 사내 쪽이었다. 할머니도 그런 아들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러이, 바로 그 사람이란 말이제? 저녁 먹고도 한참 지나 건넌방에서 눈이라도 붙일라 카는데 웬 물허제비(물허깨비) 같은 청년이 김 순경하고 같이 왔제. 호야 아부지하고 막국시 삶아 준 거 달게도 먹디……. 맞지러, 그때 어데 대학생이라 그랬제.”
그러면서 막무가내로 집 안으로 끌어들였다. 아들 부부도 별로 싫어하는 기색이 아니어서 그도 이제는 바닥이 합판으로 바뀐 마루방으로 올라갔다.
“그래 어디 가서 어예 살다 인자 이래 찾아왔노?”
할머니가 마치 오래 기다려 온 사람처럼 그렇게 묻는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며 그는 다시 옛날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날 밤을 그곳에서 묵은 그는 다음 날 진심으로 그 동네에 남을 수 있는 길을 찾아보았다. 그 완전한 고립감과 정적과 평온이 나이보다 일찍 지쳐버린 그에게는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며 가능하다면 그곳에 그대로 묻혀 살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삶은 예나 지금이나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곳은 결국 이름 같은 무릉도원은 아니었고, 사람들도 젊은 그의 추측처럼 환상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고립과 격리가 불편임에도 그렇게밖에는 달리 생계를 구할 수 없는 떠돌이 화전민 몇 집이 험한 산맥에 갇힌 그 분지의 손바닥만 한 들에 기대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머슴 일을 하겠다고 해도 받아 줄 만한 집이 없었고, 그렇다고 막연한 기식(寄食)이 가능한 곳도 아니었다. 아니, 그의 정주 의사부터 아예 믿어 주려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여비를 털어 그 주막에 밥을 부치고 한 일주일을 더 머물렀다. 그러면서 그곳 사람들과 친화를 이루어 어떻게든 그곳에 남아 보려 했으나 끝내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마을에 든 지 여드레짼가 아흐레째 되는 날 눈길을 뚫고 전투경찰의 보급품을 싣고 온 군용 트럭 편으로 그는 다시 백운령을 넘어 되돌아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요새는 뮐 하고 사노? 그때는 참 걱정스럽디. 뭔 일에 실망을 했는동 나이 스물밖에 안 된 사람이 이 골짜기에 처박히 살겠다 카이. 대학까지 댕기든 사람이 머슴살이라도 하겠다미……. 학생 도라꾸(트럭) 타고 가고 난 뒤 김 순경이 카드라꼬. 저 사람 저거 어디 죽으러 가는 거 아인지 몰라, 라꼬.”
할머니의 기억은 생각보다 또렷했다. 그때도 이미 할머니였는데 지금은 도대체 나이가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런 생각에 그는 동문서답과도 같은 물음으로 받았다.
“할머니,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나도 이제는 다 돼 가는 판이라. 일흔다섯이제.”
그렇다면 그때는 아직 쉰도 되기 전이었는데 왜 할머니로 기억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스무 살의 눈이라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할머니가 다시 자신의 물음을 반복했다.
“요새 뭐 하노, 카이. 여다는 무신 일로 왔고오?”
대답을 해야 되자 그는 일순 난처함을 느꼈다. 무슨 수로 이 할머니에게 글 쓰고 사는 직업을 설명해야 할까. 그러나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대로 말했다.
“그럼 작가 선생이 되신 모양이네. 그래고 보이 그때도 뭔가 이상하더라꼬.”
그 직업이라면 내가 잘 안다는 듯이 아들이 대신 받고 나섰다. 마루에 놓인 19인치 컬러텔레비전이 그런 아들의 상식을 뒷받침하듯 기우는 햇살에 번들거렸다. 할머니도 알은체를 했다.
“아, 언젠가 연속극에 나왔던 그러매이 사람. 재떨이에 담배꽁초 수북히 쌓아 놓고 글이 안 되이 종이를 꾸기꾸기해 아무 데나 내떤지고 하던 그 사람 같은 직업 말이제. 그래도 어예튼 성공했는가베. 요새는 그런 글쟁이도 사람들이 꽤 알아주는갑던데.”
도회지 서민층이나 다름없이 획일화된 그들 모자의 상식을 대하자 그는 비로소 그곳이 더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땅이 아님을 느꼈다. 무슨 상징처럼 잘 닦여져 있던 2차선 포장도로가 문득 머릿속을 스쳐갔다.
“이곳도 참 많이 달라졌네요. 그때는 딴 세상 같았는데.”
“그럴께라. 10년 전하고도 천지 차인데 그때하고야.”
아들이 다시 그렇게 받아 한동안 말 상대가 되어 주었다.
“동네 집도 배는 늘어난 것 같은데요.”
“배가 뭡니까? 이 아래로 내려가다 보믄 알겠지만 그때보다 다섯 배는 늘었을 거라. 그것도 요새 몇 집 줄어 글타 카이.”
“이 깊은 골짜기에 무얼 해 이 많은 사람들이 삽니까? 살이들도 많이 나아진 것 같은데.”
“길 들어오고부터 고랭지 채소로 재미 봤심더. 땅은 원래가 걸었(기름졌)으이께. 좋을 때는 한여름 감자, 배추로 대구에 집 한 채 산 사람도 있다꼬요. 요새사 우루과이라운드로 이것도 저것도 다 파이지 마는.”
그때 다시 할머니가 끼어들었다.
“여기 오기도 쉽잖은 일인데, 오늘은 고마 고향 찾아온 셈 잡고 여다서 자고 가소. 그때는 영감 일찍 죽고 어린 아아(아이)들 데리고 사니라꼬 정신이 없어 한 그릇 두 그릇 히알리(헤아려) 가미 밥값 다 쳐 받았지마는 인제는 밥값 달라 소리 안 할 테이. 야야, 뭐 하노? 저녁 준비해라. 귀한 손이따.”
사실 도원평을 찾아올 때만 해도 그는 될 수 있으면 며칠 묵어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그의 기억 속에 있는 도원평은 이미 사라지고 대신 어디서나 흔한 농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미 호텔 방에 익숙해진 그에게는 산골 농가에서의 민박은 불편을 뜻할 뿐이었다.
“아뇨, 됐습니다. 이렇게 와 본 것으로 넉넉합니다. 저는 오늘 밤 안으로 강릉까지 나가야 합니다.”
그는 메말라지는 자신의 목소리를 느끼며 예정에도 없는 거짓말로 그들의 호의를 거절했다. 이번에는 아들이 나섰다.
“옛날에사 강릉 카믄 아마득한 곳이었지마는 요새는 여다서 두 시간 거리밖에 안 되이더. 이왕 오셨으이 소찬이라도 저녁이나 뜨고 가이소. 이쪽으로 넘어가 바닷가로 빠지는 길은 모두 아스팔트가 돼 있으이 밤길이라꼬 어리울 것도 없고.”
그러나 무엇엔가 실망한 그는 왠지 그곳에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새 내온 커피를 낯선 기분으로 서둘러 마신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엇일까. 무엇이 이렇게 실망스럽고 싫은 기분으로 나를 내모는 것일까. 그들 모자의 호의를 뿌리치듯 차에 올라 도원평을 빠져나오면서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나 어떤 생각 못 한 변화가 그것에 대해 품고 있는 그의 환상을 여지없이 깨뜨려 놓았다는 허전함뿐 당장은 그 구체적인 내용이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보다는 도원평에 오래 머물렀던 탓인지 날은 동해안 고속화도로에 들기도 전에 저물어 왔다. 해안 도로에 이르렀을 때는 벌써 바다가 시커먼 어둠 속에 숨고 이따금 바닷가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만이 허옇게 비칠 뿐이었다.
그가 그 도로를 마지막으로 달려 본 뒤로 채 1년도 안 되었는데도 그 도로 또한 눈에 띄게 변해 있었다. 조금이라도 바다가 빤하게 드러난다 싶으면 실속 없는 양풍(洋風)이 들어 무슨 가든이요 레스토랑에 호텔 모텔이었고, 길을 한 굽이 돌았다 싶으면 주유소, 휴게소였다. 전국 어디서나 비슷한 모습, 비슷한 영업 방식의.
그가 자신을 실망스럽고 쓸쓸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린 것은 그렇게 해안가를 달리다가 들게 된 모텔에서였다. 새로 지은 그 모텔에 붙은 횟집에서 저녁 겸 술 한잔을 걸치고 방으로 들어서면서 그는 문득 “잃어버린 숲, 사라져 버린 나무 그늘.”이란 말을 중얼거렸다. 바로 그랬다. 그가 달려온 것은 자신이 기억하는 숲과 나무 그늘을 찾아서였는데 그게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그 숲과 나무 그늘이 세상에서 유일한 것은 분명 아닐 테지만 이상한 감
정의 파장은 다시 그를 한탄처럼 중얼거리게 했다.
“이제는 돌아가 숨을 숲도, 쉴 수 있는 나무 그늘 아래도 없다.”
이튿날 그는 새벽 일찍 눈을 떴다. 간밤 반주 삼아 마신 술 탓에 속이 쓰려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부실한 방음 공사 때문에 유난히 크게 들리는 파도 소리 때문이었다. 커튼을 치지 않아 밝아오는 창가도 그의 잠을 방해했을 것이다.
냉장고에서 찬물을 한 병 꺼내 마신 그는 창문을 여미고 커튼을 둘러친 뒤 다시 잠을 청해 보았다. 그러나 한번 깬 의식은 맑아지기만 했다. 그러다가 생각이 내가 왜 여기 와 있나, 하는 것에 미치자 이제 더는 누워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어제 도원평에서 분명하게 가닥 잡히지 않았던 감정들이 그제야 정연하게 정리되어 왔다.
마침내 더 견디지 못하고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여행 가방에서 필기구와 편지지를 꺼내 쓰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
이곳은 동해안의 어떤 모텔이고 지금은 아직 일출 전의 새벽이오. 마지막으로 써 본 지가 언제인지조차 기억에 없는 이런 고색창연한 통신 방법을 고른 것만으로도 이미 짐작하겠지만 나는 실로 오랜만에 당신에게 진지하게 얘기하고 싶어졌소.
어제 집을 나설 때 사실 내 기분은 자못 비장한 것이었소. 왕궁을 떠나는 싯다르타까지는 몰라도 집을 나서는 팔순의 톨스토이 정도는 되었을 거요. 당신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듯했소. 꼼꼼히 준비된 속옷과 세면 기구를 내놓으면서도 그런 경우 늘 그랬듯 행선지며 할 일을 꼬치꼬치 캐묻는 일은 않더구려.
이 무슨 철없는 문학소년 같은 소리냐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이 며칠 끊임없이 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숲과 나무 그늘이었소. 임서기(林捿期)의 숲과 수하기(樹下期)의 나무 그늘 말이오. 거 왜 당신하고도 며칠 전 그 일로 다투지 않았소?
이 또한 늙음으로 다가감의 징표인지 모르나 언제부터인가 나는 질척한 일상과 가망 없는 성취에 조금씩 절망해 오고 있었소. 20년이 넘도록 참고 힘들여 가꾸어 왔으나 일상의 족쇄와 사슬은 늘어만 가고, 많은 말을 허비해 몇 권의 책을 만들었으나 다시 돌아볼수록 공허할 뿐이오. 일찍 이 명료했던 것들은 갈수록 애매해지고, 특히 삶의 이런저런 시비에 이르면 캄캄한 절망을 느낄 때조차 있었소. 역시 당신이 감지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방심한 듯, 허탈한 듯 보낸 최근의 몇 달은 그와 같은 내 내면의 반영일 것이오. 돌이켜 보면 그런 기분은 내게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오. 20여 년 전에도 나는 이러한 삶을 반은 짐작으로 미리 살아 본 적이 있고, 그래서 못 견뎌 하다 학교와 집을 떠나 여러 달을 헤맨 적이 있었소. 또래와 세상으로부터 떠나 스스로를 쥐어짜다 나름으로는 어떤 해결을 얻어 와 다시 이 오늘로 출발할 수 있었던 것인데, 이제 와서 보니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유예였을 뿐이었던 듯하오. 그나마 이제는 기한이 다 된……. 젊은 시절 한때 나는 허풍스럽게도 스스로를 쏘아야 할 화살을 너무 많이 가진 자,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머무를 수 없는 영혼이라 규정한 적이 었소. ㄹ러나 철이 들며 이내 그런 존재는 감상적인 문학 안에서만 있을 수 있으며, 엄혹한 현실에서 소외된 자들의 자기 미화 내지 정신적인 수음일 뿐이라는 견해 쪽으로 기울었소. 실제로 당신을 만난 뒤의 20년은 그 견해에 충싷하게 살아온 세월이었소.
그런데 요즘 들어 내가 시달려 온 것은 바로 그런 20년의 안주와 집착에 대한 회의였소. 원인은 아마도 가혹하게 내몰려 온 성년의 누적된 피로였겠지만 피로란 게 정말 이상한 폭과 깊이를 가진 의식이더구려. 언제든 불안이나 회의로 전환될 수 있고 때로는 그리움으로까지 변용되는 근원적인 감정 같단 말이오.
어쨌든 언제부터인가 나는 돌아가 숨을 숲과 나무 그늘 아래를 꿈꾸게 되었는데 어제 내가 들른 곳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숲과 나무 그늘 가운데 하나였소. 그러나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그런 숲과 나무 그늘은 없다는 것이오. 인간이 가진 낙원 상실의 신화에는 이제 그 숲과 나무 그늘도 추가되어야 할 것 같소. 타잔의 모험조차도 아직은 전원 문화에 바탕하고 있던 시절에나 가능한 신화였던 것이오.
존재의 근원이나 종말 같은 거창하고 심원한 사색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한 휴식과 자기 성찰을 위한 것일지라도 숲과 나무 그늘이 필요하다면 이제 우리는 그것을 자신의 내면에서 기르고 가꾸는 수밖에 없을 듯하오. 후기 산업사회라고 부르건 과학과 기술의 시대라고 말하건 세상은 어느새 한 끈에 연결된 방울처럼 되어 격리되고 고립된 공간이나 시간은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오.
오랜만에 사용해 보는 통신 방식인 데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나선 여정에서의 과장된 감정이라 내 말이 턱없이 심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너무 걱정은 마시오. 그리워하던 숲과 나무 그늘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고 다만 마음속에서 길러 가야 할 뿐이라면 돌아가야 할 곳은 당신과 아이들이 있는 곳밖에 더 있겠소. 며칠 더 헤매기는 하겠지만 그리 늦지 않게 돌아가게 될 것이오. 돌아가 당신과 함께 남은 헷살을 쬐며 다가오는 늙음과 죽음을 응시할 것이오. 그런데…… 이 성년의 오후가 왜 이리 피로하오? 많이 남지도 않은 이 햇살이 왜 이리 쓸쓸한 것이오…….
거기까지 쓰고 나니 까닭 모르게 눈앞이 흐려 와 더 쓸 수가 없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그새 수평선 위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이상스레 붉고 큰 해였다. 한 번도 눈여겨본 적이 없는 동해 일출의 장관이었으나 그에게는 왠지 속절없는 낙일 같이만 느껴져 왔다. 그게 다시 까닭 모를 비감을 자아내 그는 얼른 돌아섰다. 그리고 테이블로 돌아가 급하게 인사말을 맺은 뒤 편지를 봉했다.
(1998년)
2016년 12월 9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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