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벽송선원 선원장 월암 스님의 법문 가운데 가사화하지 못한 부분을 추려 뽑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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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송선원장 월암 스님 | 철마다 안거 2천여명 들어온다. 많은 스님들이 간화선 이외의 수행을 택하고 있음을 미뤄 짐작할 뿐이다. 지도 점검을 해주는 이가 없으니 지대방에서 나오는 얘기로 봐서 그렇다. 간화선은 예전에 비해 다른 수행법에 많이 밀린다. 많은 사람들이 출가의 재가자는 아닌지 깊은 성찰해야 한다. 재가의 출가, 출가의 출가자가 돼야 보현행원을 실천할 수 있다.
소통 거부하는 선방 "야단법석 나가지 말라"
지난번 실상사 야단법석에서 향봉 스님이 직설적으로 말한 게 <불교닷컴> 등에 보도돼 수좌회에서 회의를 했다. 설왕설래하다가 결론은 '다시는 야단법석에 수좌가 참석하면 안된다'로 내렸다. 특히 나는 법문 나갈 기회가 많았다. 나를 지목해서 주의하라는 뜻으로 들리더라. 그래서 오늘 강의도 조심스럽다. 대표 스님 몇 분 말씀이 '그래도 나가라'고 해서 나왔다.
요즘 수좌들은 불친절하다. 불친절한 간화선이다. 입실한 수좌들 점검은커녕 요즘 조실 방장 스님은 자기 상좌 이름도 모른다. 화두를 묻는 스님도 아무 생각 없고, 대답하는 분도 입 벌리고 침흘리는 X에게 뼈다귀 던져 주듯이 화두를 준다. 자신과 우주에 대한 사무치는, 팔만사천 땀구멍이 열리듯이 치열함이 있어야 하는데. 3개월 동안 앉아서 시계만 쳐다보는 이도 있다. 죽비를 놨는데 그제사 화두를 어떻게 드느냐고 묻는 사미가 있더라. 이게 현실이다.
선지식이 없다라고 말하지만 '선지식이 필요 없는 시대'를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시대 달마 혜능 부처님이 오신들 그 분들을 인정하겠는가. 지식이 높아지고 물질문명 발달한 지금이다. 헐벗고 고통당할 때 그들이 필요한 것이다. 천당과 극락이 필요 없는 시대다. 중생의 업력 그 편리함에 만족하는 것은 아닌가. 수행자의 한사람으로서 진정으로 선지식을 구하고 있는가. 경청하는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입전수수는 뒷전 조실방장 돌아갈 때까지 한다"
조주 선사 20세가 되기도 전에 남전선사를 예배했다, 40년을 남전 스님 시봉을 했다. 마지막 20년 동안 중국을 돌아다녔다. '100살이라도 나보다 못하면 가르칠 것이고 10살이라도 나보다 나으면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입전수수(入纏垂手 저자에 들어가 중생을 돕다). 조실방장 최고의 자리를 던지고 삼수갑산으로 갔다. 육신 보살들이다. 요즘은 돌아가실 때까지 조실방장한다. 후계자 싸움이나 하고.
현성공안(現成公案 현상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구도(求道)의 과제로 한다). 천년 전의 운문 임제 스님이 말한 말라비틀어진 말로 뭣을 하겠다는 건가. 내 자신의 문제로 오버랩되지 않으면 현성공안이 되지 않는다. 인간과 우주에 관한 사무치는 발심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출재가를 막론하고 탁마의 장이 사라졌다. 야단법석은 탁마의 장이다. 앉아 있으면 그 자리가 선방이다. 대혜 스님은 '오래앉아 있기 대회하는 수행은 잘못된 것이다.'라며 묵조선을 비판하고 간화선을 주창했음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종일관 앉아 있는 것만을 가르친다. 실제 경계에 부딪히면서 공부해야 한다. 내용은 간화선이면 방법은 묵조선을 한다면 되겠나. 해재 죽비치면 화두는 일주문에 걸어놓고 나온다. 간화선 본래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혜능 스님만 최고이고 신수 스님은 안본다"
우리가 알고 있던 선사는 종파주의 입장에서 편향되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혜능스님만 최고이고 신수 스님은 왜 거들떠 보지 않나. 자기 은사는 고승 선사보다 더 큰 부도탑을 세우는 현실이다. 교조주의에 빠져있다면 한국불교는 문제다. 한국 선방은 7성급 호텔이다. 중국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겨울에 입김이 나고 서리가 낀다. 여름엔 모기와 싸운다.
이제 좀 공부가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공부될 듯 하니 세월이 흘러 버렸다. 좀 더 젊을 때 건강할 때 해야한다.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지 않고는 매화꽃을 피울 수 없다.
분별망념으로 그냥 의심한다. '의심하라'는 것은 해답을 찾으라는 것이다. 문 밖에서 보고 있으면 안된다. 문 안으로 들어가 화두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 본래면목 중도정관이라고 하는 자리에 서서 잡아야 한다.
염불한 사람은 염불선이 최상승이다. 감기든 사람에게는 감기약 머리 아프면 두통약이 최고듯이. 자연화두여야 한다. 저절로 들어지는 화두가 가볍다. 무거우면 오래 못 간가. 대혜스님도 자연화두를 말했다. 스스로 그러함이 자연이다. 우리는 억지로 든다. 무거우니 몇 년하다 팽개쳐버린다. 정견이 바로 서면 자연화두로 나아간다. 한번 뛰어 넘으면 건방만 늘어가지고 아무리 오래 수행해도 도로아미타불이다. 관념 속의 수행은 백날해봐야 소용없다.
"오와 매가 유하면 오매일여는 틀린 말이다"
오매일여란 오와 매가 유한 입장에서는 안맞는 말이다. 오도 매도 없으면 일여가 된다.
나의 수행과 조사들의 말이 조합될 수 있는가. 수행의 입장에서는 불교는 신앙과 수행의 종교다. 신앙 수행 체계가 분리돼 있다. 화두참선하고 있는 납자들은 불전에 심신이 없다. 공부께나 하는 사람들은 신심이 없다. 신심있는 사람들은 공부가 약하다. 신해행증이라는 것이 수행체계로 갖춰져 있는 입장에서 융섭하게 하나로 드러나야 한다. 수행 신앙 하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된 수행자라 할 수 없다. 선방의 풍토는 조석예불을 법당에 안가고 선방서 대충한다. 중노릇 처음할 때는 불전에 신심이 강한데 점점 사라진다. 실천 불교가 아니고 관념 불교하고 있다. 내가 더 모범이 되어야 하는데 나부터 그렇지 못하다. 조실방장이면 더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어떠한가. 비구 5년차면 뒤로 나앉는다. 부처님께 공양올리는 것도 돈 주고 한다. 월급 받는 부전이 우리들 대표로 나가서 하는 것 아니냐. 본사 말사 주지 먼저 신심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왜 중노릇을 하면할수록 관념적으로 흐르는가. 나부터 그렇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삼매의 입장에서 보면, 정견이 확립되어 실참이 가미되면 성인의 깨달음이 아니더라도 의식이 달라진다.
조계종의 거량은 전부 멱살잡이다. 임제문풍에서 거량하는 것이 멱살잡이 하는 걸로 안다. 조실방장 스님들이 아들들에게 멱살잡히면 부끄러우니까 피한다. 거러니 입실문실이 있을 턱이 있나. 옛날에는 거량이 중요한 깨달음의 수단이었다. 점검도 없어져 버렸다. 밝은 태양과 달이 없으면 할 수 없이 반딧불 눈이라도 모아 밝혀야 한다. 말법시대 아닌다. 선지식 명안종사가 없으면 서로 반딧불이 되어 탁마하고 이끌어주는 역할해줘야 한다. 그런데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고 있다.
선배스님들이 임제가풍을 굉장히 자존으로 내세운다. 선종의 오가. 임제 조동이 맥이 이어져 오는 입장이라 위대하다고 한다. 북경 및 하북성의 수도 바로 옆 정정현 임제사는 당나라 시대에는 변방 중의 변방, 북경 수비도시다.
"임제선풍은 군사문화의 잔재물이다"
임제를 둘러싸고 있는 교화대상은 군인들이다. 창 활 방 등이 군사 용어다. 천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우리가 군인이냐. 민간인에 맞는 언어로 바꿔야 한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절박한 사람들을 위한 언어들이라 폭력적이다. 그래서 간화선하는 사람들의 인격이 단순 무식 폭력 고집 불친절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조주 천태 북종 위양종 법안종이 문풍이 내려왔다면 법의 모습이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사실은 중화주의적인 입장이다. 부처는 인도인이고, 중국은 중국인 조사를 으뜸으로 친다. 법당은 현재의 부처인 조실방장이 법문하는 곳이다.
우린 독단적 문화를 가지고 몽골과 조선족, 한국은 독립국가로 끝까지 남아 있는 이유가 있다. 한국선도 특징 맛 가풍 종풍이 있어야 한다. 간화선의 태동 연원은 우리것이 아니다. 태양은 하나지만 중생이라 국가 민족의 경계가 있다. 한국선, 불교의 특징이 있어야 한다. 무조건 조사선 최고 이건 아니다. 간화선이 우리 것이다라고 하면 중국 사람들 콧방귀 뀐다. 전부 중국 것 가져댜 쓰는 것 아니냐. 우리는 조사를 중국조사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렇게 늘 배웠기 때문에. 조사선 제일주의로 따라가서는 안된다.
"고시원 30년이면 패가망신. 그런데 우리는?"
한국불교는 수행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화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여 있다. 선방은 선불장이라 한다. 부처 뽑는 고시원이다. 그런데 우리는 선방에 몇년 보냈냐를 계급장처럼 자랑한다. '내가 고시원에서 30년 보냈다' 그러면 그 놈은 미친 놈이다. 자기도 집구석도 사회도 망한다. 선방서 오랜철 난 것은 귀감이 될 수도 있다. 수행과 깨달음이 하나라는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몇철 난 것만 뻐기고 있다면 양비론으로 접어들 수 있다.
삼매에 들어 오래 앉아 있었다면 모르지만 억지로 앉아서 며칠을 몇년을 버텼다면 망신이다. '활발발'이라고 하는 간화선이 살아있는 말귀여야지, 말라비틀어진 사구를 억지로 들고앉아 의심하고 있다면 되겠나. 간화선의 위기가 아니라 간화선 수행자들의 위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