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념의 기/김남조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
없는 것 모양 걸려 왔더니라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
눈 오는 네거리에 나서면
눈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 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기(旗)는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日沒)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 가는
그 일이란다
황제의 항서(降書)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가
맑게 가라앉은
하얀 모랫벌 같은 마음씨의
벗은 없을까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에서
때로 울고
때로 기도드린다.
===[한국 대표 명시 3, 빛샘]===
항서:항복한다는 뜻을 써서 보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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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조
출생 1927년 9월 26일, 대구 (만95세)
가족 배우자김세중
학력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데뷔 1950년 연합신문 시 '성숙', '잔상' 등단
경력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수상 2020.12. 제2회 구상문학상
여성시의 선각자들은 흔히 불행과 파국의 삶을 견디다 간다. 그들은 삶의 불행과 파국이라는 비싼 값을 치르고 상처와 환멸의 ‘시’를 얻는다. 개화기에 태어나 식민지 시대에 활동한 탄실 김명순이 그렇고, 일엽 김원주와 정월 나혜석이 그렇다. 시대를 너무 앞지른 그들의 자유 지향적인 삶의 태도는 기질에 따른 방종으로 매도되기 일쑤다. 그들은 ‘작품 없는 문학 생활’을 영위했다는 험담을 듣곤 한다. 그들의 개체적인 삶은 으레 불행에 차압당한다. 그들은 유교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제라는 당대 사회의 지배적 윤리와 규범의 완강한 새장 속에 갇힌 가엾은 새들이었다. 새장 속에서 퍼덕이던 그들의 날개는 이내 찢기고, 날카로운 울음 소리만 반향 없는 남성 중심주의 시대 속으로 길게 퍼져 나간다.
뒤를 잇는 노천명과 모윤숙은 극단적인 남성 중심주의에 따른 몰이해의 벽을 넘어서기는 하지만 식민지 시대의 부역이라는 원죄를 뒤집어쓴다. 그들의 삶에는 영욕이 교차하며 지나간다. 그러나 1953년 첫 시집 『목숨』을 펴내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남조(金南祚, 1927~ )의 경우는 선각자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
그는 제도와 인습이 강요하는 불행으로부터 비켜나 있으며, 친일 부역자라는 원죄를 뒤집어쓰지도 않는다. 1960년 네 번째 시집 『정념(情念)의 기(旗)』를 펴낸 김남조는 가부장제의 억압 밑에서 한과 슬픔의 정서를 정갈하게 내면화한 여성성에서 자신의 시적 상상력을 길어올린다. 그의 시는 지고 지순한 사랑과 욕망의 시다. 그의 시는 짙은 에로스의 향기로 가득 차 있다. 그럼에도 시인은 거기서 육욕의 사랑을 탈색시키고 그 빈 자리를 영원하고 절대적인 신을 향한 사랑으로 대체하려고 한다. 바로 그 접점에 김남조 시의 매혹이 있다.
김남조는 1927년 9월 26일 대구에서 태어난다. 대구에서 초등 학교 과정을 마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후쿠오카의 큐슈(九州)여고를 나온다. 일본에서 돌아온 그는 서울대학교 문예과를 수료하고 다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문과에 재학중이던 1950년 『연합신문』에 시 「성숙」과 「잔상(殘傷)」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다. 그는 1951년 피난지에서 대학을 마치고 성지여고 · 마산고 · 이화여고 교사를 거쳐 서울대 · 성균관대 강사로 활동하던 1953년 첫 시집 『목숨』을 내놓으며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다. 1955년 숙명여대 전임 강사로 있을 때 그는 시집 『나아드의 향유』를 발간하고, 조각가 김세중과 결혼한다. 1958년에는 초기 시에서 보이던 고립된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타자와의 교감이 가능한 보편적 정서를 담아낸 시집 『나무와 바람』을 펴내고, 이것으로 ‘자유 문학가 협회상’을 받는다
<다음백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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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情念)은 국어사전에 "강하게 집착하여 감정에서 생겨난 생각"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마음의 기'는 밤하늘 별처럼 부끄러운 듯 은근한 빛을 발하면서 누가 보아 주지 않아도 칭송하지 않아도 자랑하지도 으스대지도 않으면서 자기의 몫을 말없이 완수하는 것의 상징물이라고 배운 기억이 납니다.
어린시절 고향의 일하는 소처럼
무겁거나 가벼워도 춥거나 더워도
꾸준히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은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 높은 하늘의 구름처럼 아름다운 날 되시기 바랍니다.
=적토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