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의 인턴예정증명서·체험활동신청서 학교 제출
검찰 '담임의 출결관리 업무를 방해했다' 혐의 씌워
기정사실화 유도심문에 담임 "저도 그렇게 생각해"
실제 기억하거나 확인한 게 아닌 추측성 답변일 뿐
'예정 증명서'는 학교 출석 아닌 유학준비반 제출용
"협잡(挾雜) : 그릇된 짓으로 남을 속이는 것."
조국 전 장관과 정경심 교수에 대한 공소사실의 대부분이 그렇지만, 특히 ‘한영외고 출결관리 업무방해’라는 한국 사법역사상 전무후무한 기상천외의 혐의에 있어서는 이 ‘협잡’이라는 어휘처럼 어울리는 말이 없다. 그런데 재판부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유죄를 선고했다.
어느 학생이 “아빠와 박물관 관람을 가기로 했다”며 체험활동계획서를 내고 학교에 빠진 뒤 며칠 후 체험활동보고서를 제출하면 ‘인정 출석’으로 처리한다. 그런데 나중에, 사실은 박물관에 가지 않았고 집에서 놀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쳐보자. 여러분이 학교 교사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최고로 할 수 있는 것은 출석부를 수정해 ‘결석’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그걸 가지고 담임의 출결관리 업무를 방해했다고 고소하거나 고발할 선생님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많이 봐줘도 이 정도의 일에 불과한 것을 검찰은 악착같이 혐의를 만들어 기소를 했고, 법원은 그것을 재판의 대상으로 삼아 기어코 유죄를 내렸다.
인턴 예정증명서→체험활동 신청서→출석 인정
이에 대한 1심 재판부의 판결 내용은 아래와 같다.
“피고인 조국은 조원이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에서 인턴으로 활동할 의사나 계획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한영외고에서 출석을 인정받기 위한 증빙서류로 사용하기 위해 한인섭을 통해 허위 내용이 기재된 ‘인턴십 활동 예정 증명서’를 발급받은 사실, 조원의 한영외고 3학년 담임교사에게 위와 같이 허위로 발급받은 ‘인턴십 활동 예정 증명서’, ‘체험활동 신청서’ 등을 제출하는 방법으로 위계로써 담임교사의 학생 출결관리 업무를 방해한 사실을 인정하기에 충분하다.”
요약하면 "허위의 인턴십 예정증명서를 체험활동 신청서와 함께 담임교사에게 제출해 출석으로 처리함으로써 담임교사의 출결관리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첫 줄의 조원 씨의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십 활동은 입증 책임도 없는 피고인이 명확하게 입증하지 못한 관계로 ‘허위’로 간주한 것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후의 내용, 즉 △출석을 인정받기 위해 ‘인턴십 활동 예정 증명서(이하 ’예정증명서‘)를 발급받았다 △담임교사에게 ’예정증명서‘와 ’체험활동 신청서‘를 제출했다 △더 나아가 담임교사가 위 두 문서를 근거로 출석처리했다는 검찰의 주장과 법원의 판단은 모두 허위다.
이 혐의에는 두 가지 서류가 등장한다. 하나는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에서 발급한 ‘인턴십 예정증명서’이고 또 하나는 한영외고 양식으로 작성된 ‘체험활동 신청서’이다. 검찰의 주장은 “출석을 인정받기 위해 허위로 ‘인턴십 예정증명서’를 발급받아 ‘체험활동 신청서’와 함께 담임에게 제출하여 출석을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담임교사 “예정증명서·신청서, 기억 안 난다”
그러나 이 두 문서는 담임에게 제출된 적이 없다. 검찰 신문에 대한 고3 담임 교사의 답변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였고, 많이 봐줘야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였다.
(2021년 10월 8일 조원 씨의 3학년 담임 교사 증인 신문)
검사(이하 ‘검’) 지금 제시하는 2013년 7월 15일 자로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에서 발급한 조원에 대한 ‘인턴십 활동 예정증명서’입니다. 조원은 이 인턴십 활동 예정증명서를 그 무렵 한영외고에 제출하였다고 진술하였습니다. 증인은 이 인턴십 활동 예정증명서를 본 기억이 있나요?
증인(이하 ‘증’) 진술할 때도 이야기했지만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검 조원은 검찰에서 체험활동 기간 동안 한영외고에 출석한 것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해당 인턴십 활동 예정 증명서를 한영외고에 제출했다고 진술했는데, 증인은 당시 조원으로부터 해당 증명서를 받았는지 여부를 현재로서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인가요?
증 예.
검 다만, 증인은 조원이 해당 예정증명서를 체험활동 신청서에 첨부하여 제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술한 사실이 있지요?
증 예.
조원 씨의 고3 담임교사는 이른바 '출결관리 업무방해'의 피해 당사자다. 그런데 피해자가 업무방해의 도구인 두 문서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출결 위해 예정서 제출?”…검찰의 유도신문
그러나 변호인은 반대 신문을 통해 담임교사의 이 진술이 검사의 유도신문에 의한 추측성 답변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변호인(이하 '변') 증인은 1회 검찰 조사 당시 검사로부터 "조원의 인턴십 활동 예정증명서가 학교에 제출되었다면 체험활동신청서의 첨부자료로 제출되었을 것이라는 것인가요?"라는 질문을 재차 받자 "예, 그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라고 대답하였지요?
증 예.
변 그러나 체험활동 신청서와 인턴십 예정증명서가 방학 전 정규수업을 빠지기 위한 목적으로 동시에 제출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증인의 추측에 의한 진술이었던 것이지요?
증 맞습니다.
변 실제로 예정증명서를 체험활동신청의 첨부자료로, 즉 출석인정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제출했는지 증인이 기억을 하여 진술한 것은 아니지요?
증 맞습니다.
변 2회 검찰 조사 시 검사가 증인에게 "진술인은 전회에서 체험활동신청서와 함께 그 증빙자료로 제출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진술하였지요"라고 질문하자 증인은 "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고, 다시 검사가 "(중략) 체험학습활동을 한다는 것을 명확히 증명하기 위해 진술인에게 체험활동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이 활동예정증명서도 함께 제출한 것이 명확해 보이는데 어떤가요?"라고 장황하게 질문하자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답을 하였지요?
증 예.
변 그런데 앞에서 살핀 바에 따르면 체험학습활동으로 '인정결석'을 받고자 한 목적이었다면 체험활동 신청서만 제출한 후에 나중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증 맞습니다.
변 즉, 검사의 질문은 인턴십 예정증명서의 제출 목적이 방학 전 '인정결석'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고 기정사실화하면서 한 유도질문이었고, 이에 대한 증인의 답변도 역시 그랬을 것이라는 추측일 뿐, 실제로 출석을 위한 목적으로 예정증명서를 제출했는지 증인이 정확히 기억하거나 확인을 한 것은 아니었지요?
증 맞습니다.
교육부의 '2013년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 교외 체험학습의 출결처리는 '체험학습 보고서'로 판단한다.
‘예정증명서’, 학교 출석 아닌 OSP반 제출용
위의 증인 신문에서 "결과보고서를 제출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부분의 문답에서 알 수 있듯이 출석 인정을 위해서는 체험활동 신청서와 보고서만 있으면 된다. 정확하게는 출결 확인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는 체험활동 보고서다. 체험활동 '신청서'는 '예정 사항'이므로 출결 처리의 근거가 될 수 없고, 또한 문서가 아닌 문자나 메일로 결석에 대한 양해를 구하는 형태도 자주 있다.
결국 최종 처리는 '보고서'를 받아서 결정하고 이전 단계가 모두 생략된 채 '보고서' 제출만으로 사후에 처리되기도 한다. <기재요령> 상 최종 단계인 '면담을 통한 사실 확인'은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턴십 예정증명서’는 출결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아무 관계가 없다. ‘인턴십 예정증명서’는 학교 출결이 아니라 방학 중 OSP(유학준비 프로그램)반 수업에 출석할 수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OSP반 디렉터에게 제출된 것이었다.
이 내용은 판결문에 기록되어 있다. 판결문에는 조원 씨의 2019년 9월 24일 검찰 조사 기록을 인용해놓았다.
“한영외고는 방학기간에도 수업을 하는데, 방학기간에 수업에 빠지기 위해서는 별도의 활동증명서를 내야 했던 것으로 추측한다. 아마 그래서 인턴십 활동 예정 증명서를 학교에 낸 것으로 추측한다.”
조원 씨는 검찰 조사에서 "학교에 제출했다"고 답변했고, 검찰은 이것을 들어 "담임교사에게 제출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방학 중 수업'은 OSP반 수업을 말한다. 학교생활기록부 관리 대상이 되는 정규 수업은 방학 중 수업이 없다.
따라서 비록 ‘추측’이라는 단서를 붙였지만 조원 씨는 검찰 조사에서 "인턴십 예정 증명서가 학교 출결이 아닌 OSP반 출결을 위해 제출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OSP반 출결은 학교 출결과는 관계가 없다. 이 부분은 고2 담임에 대한 증인 신문에서 보다 더 명확하게 진술되어 있다.
(2021년 8월 27일 조원 씨의 2학년 담임 교사 증인 신문)
변 그런데 증인은 OSP 프로그램의 출결 여부도 관리를 하나요.
증 그것은 방과후 같은 것이라서 이것을 관리하는 분이 따로 있었습니다. 교실 자체도 아예 다른 교실을 썼습니다.
변 증인은 OSP 프로그램의 출결 여부에 대해서는 전혀 관리를 안 한다는 뜻이지요.
증 어차피 그것은 학교에 있는 학원 같은 것이라서 거기는 출결하든 안 하든 이게 생기부에 기록되는 것도 아니어서요.
변 생활기록부상 '출결사항’에는 OSP 프로그램의 출결 여부도 포함하여 기재하나요.
증 그것은 관계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가 발급한 ‘인턴십활동 예정증명서’는 혐의 내용인 ‘학교 출결’과는 무관한 문서다. 그런데 검찰은 고3 담임교사에 대해 유도신문까지 해가며 악착같이 이 예정증명서를 체험활동 신청서와 함께 제출한 것처럼 몰아갔다. 둘 다 내용이 같아서 ‘예정증명서’가 허위라면 '체험활동 신청서'도 역시 허위일 테니 ‘위계에 의한 출결관리 업무방해’로 혐의를 구성하려면 ‘체험활동 신청서’만으로도 충분한 것이었다.
그런데 검찰은 왜 굳이 ‘인턴십 예정증명서’를 ‘학교 출결’과 엮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을가?
(계속)